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46
아카데미 담당 일진 46화
선도부장을 보던 백일진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들어왔다. 언철진의 뒤에 선 그는 개선장군이나 된 듯이 가슴을 펴고 걷고 있었다.
‘제갈무혁.’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어디론가 꽁지 빠지게 달려가길래 도망친 줄 알았더니, 선도부를 불러온 모양이었다.
언철진의 등장은 좌중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선도부원들이 비그리와 프레이, 알베르토의 주위를 빙 둘러 감쌌다.
창룡(槍龍) 언철진, 거친 야생늑대처럼 날카로운 눈빛, 구릿빛 피부와 우뚝 솟은 콧날, 풀어 헤친 앞섶에 언뜻 보이는 흉터까지.
아카데미 학생들의 정점에 선 두 명 중 하나, 학생들은 그런 그를 보면서 모두 같은 단어를 공유했다.
야생(野生).
마치 날것 같은 그의 분위기는 학생들의 공포심을 고조시켰다. 그것은 혈사자회의 회장인 비그리와, 노스 윈드의 회장, 부회장인 프레이, 알베르토도 피해갈 수 없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
언철진의 말에 그들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배꼽 앞에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언철진의 눈 밑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 모습을 본 그들은 몸을 벌벌 떨었다.
“이봐, 비그리.”
“……네, 선배님.”
“무슨 일이냐.”
“저, 그게…….”
비그리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부터, 어떻게 일어난 건지까지.
“……이렇게 된 일입니다.”
“쯧, 한마디로 이 새끼들 때문이라는 거군.”
비그리의 목에서 창을 뗀 언철진이 프레이의 어깨에 창을 걸쳐놓았다. 단순히 걸치기만 한 것인데도 봇짐 한 묶음을 올려놓은 것처럼 어깨가 아파왔다.
“달리 할 말 있나.”
프레이는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가 언철진과 눈이 마주쳤다.
‘죽는다.’
물론 머리로는 죽이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왠지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정말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언철진의 창이 프레이의 어깨를 강하게 눌렀다. 입술을 깨물며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아낸 프레이가 사실을 실토했다.
“크윽- 마, 맞습니다. 저희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죄송합니다.”
언철진은 고요한 눈빛으로 프레이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창대에 무게를 실었다. 프레이는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점점 더 가해지는 무게에 프레이의 발이 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으윽, 선배님, 잘못했습니다.”
“음.”
언철진은 다시 한번 힘을 가해 창을 내리눌렀다. 프레이의 다리가 점차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쿠웅-
가해지는 힘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프레이의 다리가 접히더니 무릎을 꿇었다. 프레이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언철진은 창끝으로 프레이의 얼굴을 강제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선도부원들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선도부원들이 시야를 트자, 프레이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 학생들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그 상태 그대로 언철진이 프레이의 등을 찍어 눌렀다. 그러자 절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지금부터 내 말을 복창한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러분 죄, 죄송합니다.”
언철진은 절을 마친 프레이를 뒤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내공을 담아 학생들에게 말했다.
“전쟁은 여기서 끝이다. 더 움직이면 선도부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다.”
* * *
교수 회의실.
학장급 이상을 제외한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유는 노스 윈드가 일으킨 동아리 간의 전쟁 때문.
“요즘 들어 아카데미가 엉망이구만. 얼마 전에도 블루 로즈인지 뭐시기 하는 놈들 때문에 모이지 않았었나.”
“그 녀석들도 자기들끼리 싸우다 전부 자퇴했다죠?”
“말도 마세요. 그거 때문에 2학년 마법 연구반 학생이 15명이나 줄었어요.”
“에휴- 아카데미는 우물일 뿐인데 개구리들이 물어뜯고 싸우니 우물 밖으로 벗어나는 인재가 생기질 않지.”
교수들의 머릿속엔 블루 로즈가 학생을 납치했다는 기억은 없었다. 대신 그들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 홧김에 자퇴했다는 새로운 기억이 그것을 대체했다.
교수들의 대화를 듣던 단계홍의 등허리에 식은땀 한 줄이 흘러내렸다.
‘총장의 기억 조작 마법이 대단하긴 하군.’
아닌 게 아니라, 교수들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파고들면 허점이 보일 법한 대화인데도 말이다.
‘이것을 제외하고도 얼마나 많은 기억 조작이 일어났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군.’
카르도 마진, 그녀의 온화한 미소 안에 숨겨진 칼날을 엿본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데칸트 교수님 체면이 말이 아니겠어요.”
“그러게요. 하필 노스 윈드의 지도교수시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했던가, 노스 윈드의 지도교수인 데칸트와 오늘 회의의 진행을 맡은 제갈목연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데칸트는 호랑이가 아닌 풀 죽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늘만큼 동아리 지도교수를 맡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하아…….’
교수 수십 명의 눈총을 받는 일은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데칸트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을 쓰다듬었다.
‘이 새끼들은 왜 전쟁을 일으키고 지랄이야.’
데칸트는 소리도 나지 않게 의자를 들어서 빼고는 살포시 걸터앉았다.
그런 데칸트를 보고 누군가 혀를 찼다. 3학년 특임반 담임인 라트라제였다.
“쯧. 애들 관리 좀 잘하시지.”
“죄송합니다.”
“회의 시작해야 하니 그만하시게들.”
가볍게 손을 들어 라트라제 교수에게 주의를 준 제갈목연이 회의 봉을 두드리며 회의를 시작시켰다.
“먼저 이번 사태에 대해서 발언할 것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누군가 손을 들었다. 역사학 교수인 니어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데칸트 교수님, 지금 노스 윈드에서 일으킨 전쟁 때문에 보건실이 부상당한 학생들로 가득 찼답니다. 지도교수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데칸트로서는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니어만이 눈을 더욱 빛내고 말했다.
“데칸트 교수님,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시죠.”
“죄송합니다. 저도 그 부분은 보고받은 적이 없다 보니…….”
그 뻣뻣한 데칸트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재미있던 단계홍은 얼굴 가득한 주름을 더 쭈그리며 켈켈- 웃었다.
“그니까 지도교수로서 아는 게 없었다는 말이구만.”
“……죄송합니다.”
동아리 지도교수는 서류가 올라오면 도장을 찍어 결재만 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에 세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니어만이 들고 있던 종이를 다음 장으로 넘기며 물었다. 얼핏 본 종이에는 질문할 것들이 빽빽이 차 있었다.
“그럼 동아리 간의 전쟁을 일으킨 학생들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학생들끼리의 일에 처분을 왜 합니까.”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교수들이 시선을 돌렸다. 1학년 진법학 교수 사마진이었다.
“사마진 교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동아리의 파벌, 파벌의 대표 동아리들의 악습, 그 파벌 간의 대립까지. 경쟁의식을 함양시킨다는 명분으로 그것들을 전부 인정한 것은 우리 교수들입니다.”
“저, 저게 무슨!”
그 말에 몇몇 교수들이 발끈해 일어서려 했지만 제갈목연이 그들을 자중시켰다. 그러고는 사마진에게 물었다.
“계속 말씀해 보시게.”
“그런데 이제 와서 처분을 내린다고요? 그렇게 간섭할 바엔 동아리 파벌 자체를 없애 버리시죠?”
사마진의 공격적인 말에 카리스가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되물었다.
“그럼 부상자들은요? 그 싸움 때문에 무고하게 피해 본 학생이 한둘입니까? 아까 못 들었습니까? 보건실을 전부 채웠다고.”
풉-
카리스가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본 사마진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뿜었다.
“왜 웃으십니까?”
“카리스 교수님의 의중이 궁금해서요. 왜 그렇게 부상자들을 챙기시는지. 설마 부상자 중에 가족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네, 아닙니다. 그럼 사마진 교수님의 생각은 이대로 아카데미 내에서 유력 동아리들이 폭행, 협박, 갈취하는 것을 계속 두고 보는 게 맞다는 입장이시군요.”
사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 비행을 하는 것이 아닌 경쟁을 통해 얻어내는 합리적인 전리품 선이라면요.”
“폭행, 갈취, 협박에 합리적인 선이라는 게 있습니까?”
사마진이 날카롭게 눈을 가라앉힌 후, 카리스를 응시했다. 카리스도 지지 않고 눈을 마주 봤다.
“카리스 교수님, 우리 아카데미 출신이 황실학원 출신들보다 아웃풋이 좋은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능력이 뛰어나서…….”
“우리 아카데미에는 ‘경쟁’이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경쟁은 통제 속에선 생기기 어려운 법이죠.”
“경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카리스와 사마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토론을 이어갔다. 교수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둘을 지켜봤다.
“아니, 능력보다는 혈통, 계급을 중요시하는 다른 교육기관에서는 제대로 된 경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혈통’이라는 서열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카데미를 보세요. 오대세가, 육대문파, 마탑 출신과 중소방파나 개인 수련으로 들어온 학생을 차별하지 않고 실력만으로 평가하죠.”
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오류 또한 있었다.
“시작이 다르잖습니까. 실력으로 평가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상승무공을 배우거나 마탑의 가르침을 받고 들어온 학생들이 실력이 높은 건 당연한 건데, 실력으로 평가한다고 하면 사실상의 차별 또한 있는 거죠. 그리고 실력과 폭행, 갈취, 협박과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제에서 벗어나지 마시죠.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인성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게 사파, 흑마법사와 뭐가 다르죠? 아, 설마 실력을 핑계로 비행을 두둔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말을 마친 카리스가 후련한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사마진은 의외라는 얼굴로 카리스를 봤다.
‘다혈질 마검사라고 불리길래 깡통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을 잘하잖아.’
내심 카리스를 인정한 사마진이 고개를 주억거린 후 입을 열었다.
“저는 비행을 두둔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곡해는 말아주세요.”
“저는 자유를 명목으로 방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들의 의견은 반으로 갈렸다.
사마진의 말처럼 학생들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견과 카리스의 의견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강하게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
서로 생각을 쏟아내다 보니 어느새 의견이 하나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제갈목연은 회의 봉을 세 번 두드리며 결정된 사항을 전했다.
“동아리 간의 파벌은 그대로 존속시키되,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 앞으로 비공식적인 전쟁은 없다. 지금부터 파벌 간의 세력 다툼은 공식적인 비무로만 해결하도록 한다.”
* * *
회의를 마친 후, 사마진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건들거리며 나가는 카리스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커피를 건넸다.
“아까 말씀 잘하시던데요?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사마진 교수님?”
주머니에서 손을 뺀 카리스는 커피를 받아 들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마진을 쳐다봤다.
“무슨 일 있습니까.”
“카리스 교수님, 저번에 물어보신 거 말입니다.”
“물어본 거요? 천마? 그때 분명히 모르신다고…….”
“그때는 몰랐는데, 찾아보니 재밌는 추측이 들어서요.”
항상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사마진답지 않게 꽤 흥분한 목소리였다.
“무슨 얘기입니까?”
“마교가 멸망할 때, 천마는 죽지 않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