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52
아카데미 담당 일진 52화
진실게임.
규칙은 간단했다. 전등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저것을 질문한다. 질문은 총 세 번까지 가능하다.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지목해 전등을 넘길 수 있다. 단. 한 번 대답한 사람에게는 넘길 수 없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무조건 마력의 맹세라는 마법을 펼치고 나서 사실만 말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마력의 맹세가 깨진다.
“마력의 맹세가 깨지면 어떻게 되는데?”
“음, 못해도 한 달간은 요양해야 할걸?”
“근데 마력의 맹세는 4성급 마법 아니야? 무공전형 애들은 어떻게 펼치라고.”
크리스는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훗-’ 하는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들어 올렸다. 투박하게 색이 바랜 은팔찌였다.
“그게 뭔데.”
“이게 그 유명한 ‘아티팩트’다, 이 말씀이야. 아티팩트라곤 교복이랑 아공간 주머니 말고는 본 적도 없는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마는.”
“오오- 아티팩트!”
아티팩트라는 말에 황보철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백일진에게 물었다.
“일진, 너도 아티팩트 있지 않아?”
“있지.”
학생들은 아티팩트라는 말에 기대하는 눈초리로 백일진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빛을 본 그는 잠시 풀러두었던 천마검을 주워 들었다.
“여기, 아티팩트.”
“오, 검신이 날카로워 보이는데 이게 아티팩트야?”
“아니다. 검병이 아티팩트다.”
“……응?”
순간, 학생들의 눈에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상대는 백일진.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나름 웃으며 말했다.
“하하, 고풍스러운 멋이 있네.”
“하하, 파상풍 백신으로 딱이겠어.”
“하하하, 그러게!”
그들의 얼떨떨한 반응의 이유를 모를 리 없는 천마검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핏덩이들이 뭘 안다고 씨불이는 거냐!
‘사실 별 능력이 없는 것도 맞지 않나.’
-흥, 내가 없으면 천마기는 누가 다루지?
사실, 백일진이야 천마검을 무시하고 있었지만, 천마검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천마기를 다룰 수 있었고, 다른 아티팩트의 기운도 흡수해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자아가 있지 않으냐.
‘알겠다.’
천마검의 투덜거림을 전부 들어준 백일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마검을 다시 내려놓았다.
학생들은 저마다 모여 큰 거실에 빙 둘러앉기 시작했다. 덩치 큰 남학생이 25명이나 되다 보니 자연스레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그럼 누가 먼저 시작하는 거야?”
“크리스가 먼저 하자고 했으니까 크리스 먼저인가?”
“그래, 크리스 선배가 먼저 해요.”
크리스가 라이트 구체가 담긴 물통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가운데로 나와서 앉았다.
“하는 수 없지.”
학생들은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이 중에서 크리스가 질문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
“음, 남궁종수.”
“예스!”
남궁종수는 자신이 지목된 것이 기분이 좋은지 제자리에 일어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크리스를 바라봤다. 크리스의 침이 꿀꺽 삼켜졌다.
“나 크리스는 지태경이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맞다, 아니다?”
크리스가 아티팩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아티팩트에서 네 개의 마법진이 생기더니 계약서의 형상을 한 기운이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후우,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모용석이었다.
“언제가 가장 꼴 보기 싫었습니까?”
“꼭, 지가 대장인 것처럼 나댈 때.”
이번엔 황보철수였다. 황보철수는 차마 다른 이들처럼 독한 질문은 할 수 없었는지 최대한 부드러운 질문을 골랐다.
“그래도 친구로서 좋아하시죠?”
“……애매하다.”
그것으로 크리스의 질문은 끝이었다.
크리스는 티모스 마브로에게 물통을 넘겼다. 학생들은 손을 들었고 티모스 마브로는 치누타 느어드에게 질문권을 줬다.
“혹시 로체트어로 말을 못 하십니까?”
“할 수 있다.”
티모스 마브로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 중에서도 장인으로 유명하신데, 혹시 저희에게 아티팩트를 만들어줄 생각은 있으신지?”
“아직은.”
티모스 마브로의 질문이 끝나고 모든 학생이 한 번씩 질문을 받은 뒤 토마스, 황보철수, 모용석까지 대답을 마쳤다.
“다음 차례는 남궁종수.”
물병을 들고 가운데로 나간 남궁종수는 질문하겠다고 손도 들지 않은 백일진을 골랐다.
‘이 녀석이 제일 약한 질문을 할 것 같으니.’
백일진은 잠시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예자원 선배와 교제 중인가.”
“푸읍-”
설마 백일진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무방비 상태로 물을 마시던 남궁종수가 크리스의 얼굴에 물을 내뿜었다.
“교제라……. 나는 한 여성의 자유로운 마음을 옭아맬 생각이 없다.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지.”
다음은 티모스 마브로였다. 아공간에서 흑맥주 한 잔을 꺼내 마시던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물었다.
“한마디로 바람을 피우겠다는 거군?”
“……그건 아니오. 단지, 아직 서로를 구속할 정도의 크기가 되지 않았다고 느낄 뿐.”
가만히 듣던 모용석이 물었다.
“종수, 명문세가의 자제로서 조금 더 건실하게 살아갈 순 없나?”
“있지.”
모용석의 질문을 들은 학생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갑자기 웬 명문세가를 들먹이면서 이상한 질문을 한단 말인가.
“용석! 그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해.”
“용석이는 잘생기고 무공도 잘하는 데 문제가 하나 있어.”
“무슨 문제?”
“재미가 없어.”
모용석의 미간이 살짝 떨렸다. 입술도 살짝 튀어나오려 한 것 같았지만, 모용석이 입을 가리는 바람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런 그를 보고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삐졌군.’
‘삐졌네.’
‘삐졌어.’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을 사람은 백일진이었다. 백일진은 자리에 나와 물통을 건네받고 앉았다.
학생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백일진에게는 질문할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일단, 첫 번째로 정체. 지금 백일진은 몬스터와 혼혈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능력이 범상치 않았다.
두 번째로는 사용하는 무공. 무공에 대해선 빠삭하게 공부한 이들이지만, 백일진의 무공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연애. 황보수정이 그에게 호감을 지닌 것은 황보철수를 제외한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설하윤. 그리고 아름다움의 기준이라 불리는 엘프인 엘리아까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혹시 이들 중 누구와 마음을 통하고 있지는 않은지가 궁금했다.
“존스, 말해라.”
“이젠 너도 존스라고 부르는 거냐.”
남궁종수가 포기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보다는 막역해진 것 같긴 한데, 기분은 왠지 구릿했다.
“백일진,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이 있나?”
“…….”
백일진이 팔찌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계약서가 두둥실 떠올랐다. 맹세를 하니 계약서와 연결된 보이지 않는 끈이 마력회로를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모른다.”
정말 백일진은 있다, 없다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이성이 들어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
-네 아비는 네 나이 때, 열 명이 넘는 여인들을 만났거늘. 네 녀석이 이런 부분에서는 좀 모자라구나.
‘관심 없다.’
백일진의 대답을 들은 남궁종수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다음은 황보철수였다.
“일진, 혹시 그전에 쓰던 아티팩트 나한테 팔 수 없을까?”
“불량품이었는지 고장 났다.”
학생들이 눈을 흘겨 뜨고는 황보철수를 째려봤다. 아까 똑같이 당했던 모용석도 같이.
“마지막 질문은 내가 해도 되겠나.”
“네, 말씀하세요. 원진 선배.”
“자네의 말도 안 되는 재능을 보고 말들이 많다네. 물론 과장된 표현에 가깝네만, 마물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릴 정도지.”
“네.”
“잠시만, 내 눈을 바라봐 주겠나? 이게 내 질문이네.”
“네.”
원진은 눈에 내공을 담아 백일진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는 호두알만 한 염주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술. 인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마물이라면 이 자리에서 즉사할 것이다.
하지만 백일진은 아무런 반응 없이 멀뚱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하하,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쓸데없는 짓에 어울려 주어서 고맙네.”
“아닙니다.”
진실게임이 끝나고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밤은 깊어져 갔다.
다음 날.
특임반 학생들은 핏줄 선 눈을 후비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체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그들은 퀭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궁종수는 급하게 머리에 왁스를 발랐지만, 이미 생겨 버린 까치집은 왁스로 해결되지 않았다.
백일진이 클린 마법이 걸려 있는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남궁종수는 의문을 품었다.
‘저 자식은 어떻게 방금 씻은 것처럼 깔끔한 거지?’
다른 학생들도 씻지 못해 꾀죄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소림의 원진, 원각 사형제가 머리까지 세수하는 걸 보고 부러운 기색을 띠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머리가 부럽다.”
“그러게 말이야.”
“너어는 진짜.”
학생들은 느직느직 운동장으로 집합했다. 어느새 단상 위에 올라선 교관이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은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반 인원 전체가 밧줄로 몸을 묶고 행군을 할 겁니다.”
“악!”
“대신 오늘 오후는 훈련이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악!!!”
“장기자랑을 할 인원들은 오전 훈련을 마치고 신청해 주세요.”
오후 훈련이 없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밧줄을 자신의 몸에 고정했다.
교관은 운동장 뒤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라콘 산은 뒷산이라고 만만하다고 여기기엔 꽤나 험준하고 가파른 산세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릅니다. 정상에 있는 조교에게 호패를 받아 내려오시면 됩니다. 출발!”
“악!”
특임반 학생들이 가장 먼저 출발했다. 백일진도 몸통에 밧줄을 묶은 채 그들과 호흡을 맞췄다.
‘협동심이 올라갈 만도 하군.’
앞에 선 사람이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나가면 묶어둔 밧줄이 흉곽을 조여왔고, 뒤에 선 사람이 앞을 배려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산을 오르는 동안 사소한 말다툼과 언쟁이 생겼지만,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협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들은 숨 고르기마저 비슷하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오, 너희 반 애들은 꽤나 적응이 빠르군.
‘그런가.’
-예전 마교에서도 비슷한 훈련을 했었지, 그런데 이게 하루 이틀 한다고 맞춰지기가 힘든데 말이야.
‘그렇군.’
결국, 특임반 학생들은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지어진 정자에 드러누워 있던 지도호가 일어나서 그들을 맞았다.
“특임반이군.”
“맞습니다.”
“이걸 가지고 내려가서 교관님께 확인을 받도록.”
지도호는 웬 호패 하나를 꺼내 원진에게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원진은 학생들을 이끌고 산을 내려왔다.
“흐아, 드디어 끝이다.”
“죽을 것 같아…….”
훈련을 마친 이들은 숙소로 돌아왔다.
씻지 못했던 이들은 샤워를 했고, 잠을 못 잤던 이들은 숙면을 취했다. 그리던 와중, 날이 저물고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다가왔다.
천마검은 반 친구들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가던 백일진을 불렀다.
‘왜 부르지?’
-뒤쪽 문 앞에 있는 녀석에게 집중해라.
‘문 앞?’
천마검의 말에 백일진은 힐끔 고개를 돌려 문 앞을 흘겨봤다.
그쪽엔 왼 볼에 길쭉한 칼자국이 있는 수습 조교 하나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이 왜.’
-살기(殺氣)를 품고 있다. 아니, 사기(死氣)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