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58
아카데미 담당 일진 58화
진법학 교수 사마진의 연구실.
소파에 여유롭게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태우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에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모처럼의 여유를 방해받은 탓에 기분이 언짢아진 사마진이 불청객에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뭡니까, 카리스 교수님. 사회적인 거리는 좀 지켜주시죠.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건 저희 어머니도 안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대놓고 주는 면박에 멋쩍을 만도 했지만, 카리스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짜증이 가득하신 걸 보니, 제가 사마 교수 어머님이었어도 사마 교수님은 안 찾아오겠네요.”
“됐고, 오늘은 용건이 뭡니까.”
티 테이블에 있는 원두커피를 본 카리스는 얼른 커피 한 잔을 따르고는 사마진에게 웬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사마진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뭐 어쩌라고’라는 뜻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게 뭔데요?”
“아, 참.”
사진에는 고위 암호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 통찰안을 가진 자신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 낸 카리스가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이 사진의 주인이 천마라고 쓰여 있고, 그게 우리 아카데미 학생인 백일진과 똑같이 생겼어요!’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카리스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커피를 마셨다. 내린 지 얼마 안 된 커피는 목을 타고 흐르며 그의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그냥 미친놈 되는 거지.’
다시 사진을 가져온 카리스는 짐짓 아무 일도 없던 척 품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사마진은 카리스의 이상한 행동을 잠시 지켜보더니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아공간을 열어 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 참 이거 가져가시죠.”
“이게 뭔데요.”
책들의 두께는 상당히 두꺼웠는데 전부 다 꺼내놓으니 바닥부터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쌓였다.
“전에 부탁하셨던 천마에 관한 서적들입니다.”
“생각보다 많네요.”
“우리가 말하는 천마 천수백 단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고, 역대 천마들이 모두 기록된 자료입니다.”
“그렇군요.”
카리스는 침음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기록이라면 원하는 정보를 어느 정도는 얻어낼 수 있으리라.
“이건 전부 어디서 난 거죠?”
“황실, 연맹, 마탑 할 거 없이 전부 다 뒤졌죠.”
“그렇군요. 양이 너무 많으니 일단, 절반만 가져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러시죠.”
* * *
길쭉한 얼음 조각은 순식간의 백일진의 체육복을 찢어내며 그의 날갯죽지를 갈랐다. 깊숙이 박힌 얼음은 그의 피에 닿으니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깜짝 놀란 설하윤의 눈이 부릅떠졌다. 깜짝 놀란 그녀는 품에 안긴 채로 백일진의 등을 더듬으며 물었다.
“괘,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있었는데 없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였다. 이미 아물어 깔끔하게 새 살이 돋아난 등판에는 상처를 입었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응.”
신경은 안 쓰겠다고 말했지만, 어찌 신경이 안 쓰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곳은 다른 쪽이었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한평생 무공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녀에게 ‘심장이 뛴다’라는 것은, 수련을 마치고 숨이 벅찰 때나 겪는 일이었기에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후, 몸이 안 좋은가?’
설하윤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백일진은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어디 다친 건가?”
“응? 아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괜찮아.”
“그렇군, 5분 뒤에 다시 시작하자.”
“응.”
잠시 후, 그들은 다시 마법 수련을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녀는 3성급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물론 천마기를 사용한 백일진이 그녀의 마법진에 담긴 기운들을 세밀하게 조절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훌륭했다.
‘음, 조만간 혼자서도 3개의 마법진을 펼칠 수 있겠군.’
-3성급이면 학생 중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냐. 높은 게냐?
‘잘 모른다.’
백일진이 심상을 통해 천마와 대화를 할 무렵, 설하윤의 태블릿에서 알람이 울렸다. 그녀는 태블릿을 보더니 약하게 얼굴을 굳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왜 그러지?”
“……무공 수련 시간이라…….”
“무공이라……. 방해할 수는 없지. 수고해라.”
말을 마친 백일진이 무정히 뒤돌았다. 설하윤의 얼굴에는 아쉬움의 빛이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무공 연습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오늘도 수업이 시작되기 5분 전이 되어서야 교실에 들어온 백일진은 교실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리가 바뀌었군.’
어제까지만 해도 무공전형, 마법전형, 신입생, 유급생, 유급생 중에서도 2년 유급생, 1년 유급생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어제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전형과 학번에는 상관없이 카리스의 조별과제 조 인원들끼리 뭉쳐 있던 것.
‘오늘은 기초 마법학 수업도 아닌데…….’
그때, 문 앞에서 서성이는 그를 발견한 모용석이 훠이훠이 손을 흔들었다. 황보철수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그의 팔은 다른 학생의 허벅지처럼 보였다.
“어이, 백일진. 이쪽이야.”
모용석의 말을 들은 다른 조원들도 백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사를 건넸다.
백일진도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그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연스레 자리가 비어 있는 설하윤의 옆에 가서 앉았다.
항상 황보수정이나 황보철수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역할 분류가 된 팀끼리 앉아 있던 것.
그의 앞에 앉은 황보철수가 몸을 돌려 뭔가를 내밀었다. 남궁종수와 도서관에 가서 조사한 자료였다.
“일진, 일단 우리가 조사한 시너지 마법들이야. 실험해 보고 가장 효율이 좋은 것 찾아줘.”
“알겠다. 근데 오늘은 조별 강의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앉은 거지?”
“모든 과목을 통틀어 한 학기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조별과제잖아. 조별과제는 다른 개인 과제들보다 배점이 다섯 배는 더 높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다들 그것만 보이겠지.”
황보철수 옆에 앉아 손거울을 보며 꼬리 빗으로 앞머리를 매만지던 남궁종수가 투덜거렸다.
“그게 말이 되나. 다른 교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공간에서 전공 서적과 필통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던 황보수정은 남궁종수의 투덜거림을 듣더니 하던 것을 멈추고 대화에 참여했다.
“아니야, 왜냐하면 조별과제는 우리만 받는 게 아니니까.”
“아-”
“다른 반은 아마 다른 교수님들의 조별과제가 부여됐을 거야.”
“그렇군.”
백일진은 시선을 돌려 다른 학생들을 눈에 담았다. 학생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기초 마법학 수업에 관한 얘기만 하고 있었다.
“모두 조용.”
서로 담론을 나누던 학생들의 얼굴은 일제히 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역사학 교수 니어만이 서 있었다.
“쯧,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거늘. 어찌 역사학 강의 시간 전에 마법 얘기만을 하는 게냐.”
권위의 니어만. 마법이나 무공을 다루는 능력은 전혀 없는 일반인 교수인 그가 권위라는 별호를 받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수도의 루모르 백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물론 아카데미에서는 귀족 가의 성을 사용할 수 없다.- 황실학원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한없이 고고했고 더없이 권위적이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카데미의 역사학 교수로 있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실력’이었다.
역사학 실력도 역사학 실력이지만, 학생들을 휘어잡는 능력도 엄청났다.
일례로, 아카데미의 어떤 학생이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체형은 가냘팠지만, 니어만을 눈앞에 둔 학생들은 왠지 모를 기세에 짓눌려 주눅이 들고는 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488페이지 펼치도록.”
니어만이 마카를 잡고 칠판에 지도를 그렸다. 그의 지도는 위에 대고 본을 떴다고 해도 될 만큼 정교했다.
“로체트 왕국의 북부를 넘어가면 가이오 왕국이 존재한다. 가이오 왕국은 야만인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답게, 강함만을 추구한다. 가이오에 사파 연맹과 흑마법사들이 모인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지.”
그의 수업은 어려웠지만 간결했다. 그런 만큼 머리에도 속속들이 박혀 들어왔다. 이러한 강의는 왜 그가 역사학의 최고 권위자인지를 알려줬다.
어느새 교실에는 단 두 종류의 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니어만의 목소리와 학생들의 필기 소리.
“우리 로체트는 좌로는 바다, 동에는 산맥, 남쪽에는 큰 강과 비옥한 곡창지대가 있고, 북서와 북동에는 광맥이 흐르지.”
니어만의 설명대로 로체트인의 찌를 듯한 고고함은 여유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험하다.”
“예?”
“북쪽으로는 야만인과 사파, 흑마법사가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있고, 남쪽 국경 밖으로는 산적이나 마적 떼가 수시로 출몰하고, 동쪽 카프티스 산맥 변경에는 몬스터가 야생동물들보다 더 많지.”
“으-”
“그나마 안전한 건 바다가 있는 서쪽이겠군.”
학생들의 얼떨떨한 표정을 본 니어만이 피식 웃었다. 그는 웃을 때도 입만 웃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장안 시티는 변방 중에서는 나름 내륙과 붙어 있는 곳이기에 안전한 편이니.”
지리를 설명하던 니어만은 그 지역에 얽힌 역사를 설명했다. 역사를 설명할 때만큼은 니어만의 눈에서 ‘권위’가 엿보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도 없이 장장 세 시간을 연속으로 강의한 니어만은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쳐다보고 말했다.
“조만간 중간고사가 다가온다. 조별과제에 빠진 것도 좋지만, 중간고사에 부여받을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역사, 지리를 알고 나가는 것이 좋겠지?”
“네-”
임무라는 말에 학생들의 마른침이 목을 타고 꿀꺽 넘어갔다.
특임반의 중간고사는 아카데미에서 시험을 치르는 다른 반과는 다르다.
학생들에게 임무를 내리고 그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매겨지기 때문에 어느 과목이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익혀두는 게 좋았다.
“이상.”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 * *
수업을 마친 백일진은 천마검의 말을 듣고 어딘가로 향했다.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한 골동품 상점이었다.
-어제 얼음 쪼가리에도 몸이 뚫리니, 드디어 몸뚱어리를 단련시킬 생각이 들었나 보군.
‘근데 외공이 필요하다면서 왜 이런 곳으로 가라고 한 거지?’
골동품 상점의 내부에는 하나같이 오래되고 역사가 깊어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했지만, 무공 같은 것은 취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림에도 철두공이니, 철사장이니, 삼괴권이니 하는 외공이 많지만, 제대로 된 외공은 기사들의 것이지. 물론 지금은 기사에게도 버려진 옛것들이니 골동품 상점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다.
“기사?”
-그렇다. 제대로 익힌 외공 고수들은 어지간한 내가고수들보다 강했지. 그게 이 로체트란 곳에 있던 기사들이었다.
‘그러면 계속 외공을 익히면 될 것을, 왜 버렸다는 거지?’
-외공은 내가기공에 비해서 익히는 과정도 훨씬 고통스럽고, 설령 익힌다 하더라도 절정 이상의 고수가 되는 이는 드물다. 한마디로 효율의 문제지.
‘그렇군.’
-그래서인지, 몸에 오러를 쌓지 않는 요즘 기사란 녀석들은 내가기공의 영향을 받아 단전에 있는 내공을 가지고 오러니, 심장에 단전을 만들어 놓고 오러바디니 시답잖은 짓을 하고 있다더군.
천마검의 지식도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과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흘러가는 흐름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천마검의 얘기를 들으며 골동품 가게의 입구로 들어갔다. 곧이어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슈.”
계산대 뒤편에서 가게의 주인이 앞치마를 툭툭 털고 나왔다. 주인은 장안 시티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덩치부터가 엄청났는데 온몸에는 엄청난 근육과 그보다 더 많은 흉터가 가득했고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는 잘려 있었다.
‘찰스도 이 사람 앞에 서면 멸치라는 소리를 듣겠군.’
키는 황보철수보다는 작았지만, 덩치는 살짝 과장을 보태면 모용석과 황보철수를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흉악한 외모와 다르게 목소리에는 꽤 친절함이 느껴졌다.
“뭐 찾으시는 것 있으시오?”
“혹시 외공을 배울 수 있는 서적이 있습니까.”
“외공? 그건 왜……?”
“익히고 싶어서요.”
외공을 구한다는 백일진의 말에 상점 주인은 뜬금없이 피식 웃고는 눈을 번뜩였다.
“외공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