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59
아카데미 담당 일진 59화
가게 주인은 잠시 말없이 백일진을 지켜봤다. 그 모습에서 왠지 거대한 산맥의 기상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카데미 학생인가.’
백일진은 보채지 않고 멀뚱히 서서 그가 생각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가게 주인의 입이 열렸다. 가게 주인은 풍성하게 자란 수염 가닥을 쓸어 만지며 말했다.
엄지와 검지가 잘려 있어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었지만, 그 세 개의 손가락만으로도 일반 성인 남자의 다섯 손가락을 모두 합친 것보다 굵어 보였다.
“외공은 익혀봤자, 효율이 높지 않소.”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지지 않습니까.”
“강철이라……. 그렇기야 하지.”
주인의 시선은 백일진을 향해 있었으나 백일진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평생을 익혀 강철처럼 단단한 몸을 얻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
“……?”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 법한 무림인들은 검으로 강철을 베곤 하는데 말이오.”
그의 우렁찬 목소리 끝에는 왠지 모를 먹먹함이 맺혀 있었다. 주인 자신도 그것을 인식했는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가게가 떠나가라 웃었다.
“하하하, 이것 참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그런데 외공은 왜 배우려고 하시오? 복장을 보니 아카데미 학생인 것 같은데.”
“쓸 데가 있습니다.”
“무슨 쓸 데? 아카데미에선 내가기공(內家氣功)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인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굳이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묻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백일진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없습니까?”
“골동품 가게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소.”
가게 주인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가게 구석 먼지 쌓인 찬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서책들이 누런 곰팡이가 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백일진이 찬장으로 다가갔다. 가게 구석은 바닥을 청소하지 않는지 발걸음 뒤로 뽀얀 먼지가 떠올랐다.
찬장에는 생각보다 책의 종류가 많이 있었다.
‘흐음, 어디부터 봐야 하지.’
낡은 책들에는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지금은 먼지가 쌓여 아무도 찾지 않는 물건이지만, 한때는 어떤 이의 지식의 보고였던 흔적.
처음 손에 잡힌 서책은 그레이트 소드를 다루는 검술책이었다. 잠시 내용을 훑은 백일진은 그것을 다시 내려놨다.
‘검술은 필요 없다.’
두 번째로 잡힌 책은 중갑옷을 입고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이 적힌 책이었다. 이것도 필요 없었다.
세 번째 책은 방패술이었다. 방패를 사용하는 32가지의 움직임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이 책 역시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책들도 하나씩 훑어보며 확인했지만, 천마검이 원하는 책은 찾기 어려웠다.
‘없는 건가.’
-좀 진득하게 찾아봐라.
‘흠.’
백일진은 다시 먼지를 뒤집어써 가며 책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서른 권도 넘게 책을 뒤적거린 끝에야 겨우 원하던 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책의 이름은 굉장히 단순했다.
‘스틸 바디빌딩(Steel body building).’
해석하자면 강철 같은 몸만들기. 천마검은 이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 책을 추천했다.
-내용도 단순하군. 이 책이면 되겠어.
‘근데 궁금한 게 있다.’
-뭐지?
백일진은 가게 주인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강철 같은 몸을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
‘어차피 이것을 익힌다고 하더라도 상처 입는 것은 매한가지라면 굳이 익힐 필요가 없지 않나?’
백일진의 질문을 들은 천마검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자지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애송이다운 질문이군.
‘……?’
-네놈은 지금 큰 착각 세 가지를 하고 있다.
‘세 가지나?’
무슨, 말 한마디 했다고 착각을 세 가지나 했다는 건가. 이해가 가지 않은 백일진은 의아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공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익혀서 피부를 강철같이 만들어도 상처를 입으니 쓸모가 없다고?
끄덕-
백일진이 천마검의 말에 수긍했다.
-첫 번째, 네놈은 네놈의 회복력을 생각하지 않았다. 강철이 아니라 썩어빠진 나무 정도로만 방어력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 시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지.
‘그렇군.’
-그리고 두 번째, 외부의 공격에 대한 대처로 외공을 익히는 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부에서 날뛰는 기운을 버티기 위해서다.
‘흠.’
-나는 검기 좀 사용했다고 살갗이 벗겨지고 혈도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녀석은 여태 너 말고는 본 적이 없다.
‘…….’
-외부에 입은 상처야, 네놈의 기이한 회복력 덕에 빠르게 상처가 아문다지만, 내부에서부터 진탕이 나면 이번처럼 반나절은 걸리겠지.
천마검의 말마따나 이번에 내부를 회복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마지막은 뭐지?’
-외공이라고 해서 신체만을 단련한다고 생각해 강철이라는 한계를 두는 것, 그게 네 마지막 착각이다.
‘아-’
-강철? 흥, 외공으로도 충분히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을 이룰 수 있다.
‘음…….’
오랜만에 입이 트인 천마검은 잠시도 쉬지 않고 설명을 해나갔다.
슬슬 설명을 그만 듣고 싶어진 백일진은 말을 끊으려 했으나, 신이 난 천마검의 목소리를 듣고는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공은 외가기공(外家氣功)의 준말이다. 즉, 외부에서 기운을 이용한다는 말이지.
‘아.’
-무림인이 이 세상에 이주하기 전, 기사들 중에서는 검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있었나.’
-그래, 소드 마스터니, 그랜드 마스터니 하는 이들은 무공이 보급되기 전에도 존재했다.
그러고 보니 역사학 수업의 교수 니어만의 가문, 루모르 백작가. 그 가문도 소드 마스터를 여러 차례 배출한 가문이라고 들었다.
-그럼 그들은 어떻게 오러 소드, 즉 검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
‘모른다.’
-답은 전신이다. 단전에 기운을 받아들이는 마법사, 무림인과 달리 기사들은 외공을 통해 피부와 뼈로 기운들을 받아들인 거지. 그렇기에 중갑을 입고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던 거고.
‘그렇군.’
-외공도 ‘오러’라 불리는 일종의 내공을 사용한다는 거지.
‘알았다. 이제 그만…….’
-무림인들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단전에서부터 시작한 기운이 외부와 조화를 이뤄 환골탈태하여 금강불괴지체를 얻는 경지를 조화경(造化境)이라 부른다.
‘그럼 기사들은?’
-외부에서부터 받아들인 기운이 내부와 조화를 이뤄 ‘바디 체인지’를 하는 자들을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라 부르는 거지.
‘그런데 왜 요즘 기사들은 외공을 버리고 내가기공을 받아들인 거지? 네 말대로라면 외공도 내공과 똑같지 않나.’
-아까도 말했지만, 힘드니까.
‘내공도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닌가.’
-도착지까지 걸리는 시간이 같다면 네놈은 넓은 대로를 이용하겠나, 아니면 좁은 구불길을 이용하겠나.
‘그렇군. 그러면 동시에 익히는 것은?’
천마검이 기가 찬 듯이 말했다.
-구불길로 들어갔다가 대로로 나왔다가 다시 구불길로 들어갔다가 하는 미친 짓을 반복하는 놈이 어디 있겠나.
‘그럼 나는?’
-네놈은 대로가 구불구불한 녀석이니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뭐라는 거야.’
천마검의 설명이 더 이어지기 전 말을 끊은 백일진은 ‘스틸 바디빌딩’이라는 서책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가게 주인은 그 서책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곧바로 서책을 봉지에 담으면서 말했다.
“좋은 책이지.”
“그런가요? 책이 오래되어 보이던데.”
“그렇소. 지금은 멸망한 예전 한 기사 가문의 비전이지.”
“그렇군요. 얼마인가요.”
“가격은 받지 않겠소. 대신…….”
봉지를 들고 카드를 꺼내려던 백일진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주인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입술을 오물조물하더니 말을 내뱉었다.
“……잘 익혀주시길 바라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필요한 게 생기면 오시게.”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돌린 백일진의 시야에 가게 주인의 쓸쓸한 손가락이 담겼다.
* * *
백일진은 골동품 가게를 나온 후, 근처 디저트 가게에서 와플 다섯 개를 구매해 우걱우걱 먹으며 강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천마검이 백일진에게 물었다.
-왜 그런 것이냐.
‘뭐가.’
-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돈을 놓고 온 거지?
‘가치가 있는 물건을 얻었고, 값을 치렀을 뿐이다.’
낡은 서적은 금화 서른 닢-시가 1억 5천만 골-을 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엔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래도 한 가문의 역사를 구매하는 데 금화 서른 닢이면, 거저 아닌가.’
-웃긴 녀석이군.
강당에 도착하니 설하윤이 먼저 와서 마법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남궁종수와 황보철수도 있었는데 자료를 조사해 온 모양이었다.
“어! 일진! 어디 갔다 왔어?”
“빨리빨리 좀 다녀라.”
“왔어?”
백일진은 황보철수가 내민 자료들을 받아 들었다. 꽤 열심히 조사한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 이건 뭐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한 페이지에는 전부 매직 미사일의 키워드만이 담겨 있었다.
남궁종수는 백일진이 계속 매직 미사일이 적혀 있는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퉁명스레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그건 그냥 혹시나 해서 적어본 거니까.”
“음, 이건 누가 적은 거지?”
남궁종수와 황보철수의 시선이 동시에 교차했다. 아무래도 둘의 합작인 모양.
“괜찮군.”
“뭐? 괜찮다고?”
“아직은 모른다. 실험을 해보면 알겠지.”
“무, 무슨 실험?!”
백일진은 뭔가를 곰곰 생각하더니 다섯 개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법진에 새겨 넣은 룬어 키워드가 전부 비슷했다.
매직 미사일은 1성급 마법이기에 다른 키워드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리스의 첫 수업 때 배웠던 모드 마법(Modification Magic)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속성 키워드 [바람, 마법], 외관 키워드 [미사일], 작동 키워드 [접착].’
‘속성 키워드 [바람, 마법], 외관 키워드 [미사일]. 작동 키워드 [접착].’
‘속성 키워드 [바람, 마법], 외관 키워드 [미사일], 작동 키워드 [투척].’
‘속성 키워드 [바람, 마법], 외관 키워드 [미사일], 작동 키워드 [가속].’
‘속성 키워드 [바람, 마법], 외관 키워드 [미사일], 작동 키워드 [가속].’
황보철수는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가더니 마법진을 살폈다. 이리 만져도 보고 저리 만져도 보고 침까지 흘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비슷한 키워드의 마법이지만, 키워드를 달리해서 만들다니…….’
마법진을 손 앞으로 위치시킨 백일진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설하윤, 존스, 찰스. 앞에 서봐라.”
“무, 뭐 하려고!”
“너희들이 조사한 매직 미사일의 위력을 확인해 봐야겠다.”
그런데 설하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백일진은 그런 설하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음, 가장 앞에서 맞으라고 해서 그런가 보군.’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인 백일진이 다시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설하윤, 존스, 찰스 일자로 서지 말고 나란히 서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궁종수가 백일진에게 고함쳤다.
“아니! 미친놈아! 이거 다친다고!”
어찌나 급하게 소리를 쳤는지 튀는 침이 다 보일 정도였다.
“안 다치게 하겠다.”
백일진은 설하윤의 표정이 풀리지 않자, 생각을 바꿨다.
‘존스처럼 다칠까 봐 그런가 보군. 살살해야겠어.’
하지만 설하윤의 표정이 안 좋았던 이유는 그러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애들은 별명이나 성을 떼고 부르는데, 왜 내 이름은 그대로 부르지……?’
왠지 기분이 나빠진 설하윤은 티 나지 않게 표정을 숨긴 채, 발끝으로 애꿎은 땅을 툭툭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