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65
아카데미 담당 일진 65화
수업이 끝난 후, 특임반 학생들은 얼굴이 극과 극으로 갈린 채 강당 밖으로 나왔다. 그중 몇몇 마법전형 학생은 자신의 조원을 탓하기도 했고, 몇몇은 체념한 채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남궁종수도 안색이 좋지 않은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싱글벙글하던 황보철수가 가라앉은 그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등을 토닥였다.
“존스, 표정이 왜 그래! 그래도 2등이면 잘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그런다.”
모용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종수의 말에 동조했다.
“억울하긴 하지.”
그들의 ‘매직 로켓’은 위력, 속력, 참신함까지 모두 갖춘 마법이었지만 모드 마법의 키워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감점을 받아 2등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남궁종수가 저 멀리서 시시덕거리는 지태경의 얼굴을 노려봤다. 유독 지태경의 얼굴이 얄미워 보였다.
“지태경 저 자식의 조가 1등이라는 거야.”
“저 조에 크리스, 토마스 선배가 있었잖아. 그니까 1등 할 수도 있지.”
“그러고 보니 크리스 선배랑 지태경 선배 화해했나?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몰라 알 바야?”
“그나저나 이제 뭐 하지? 집에 갈 거야?”
황보철수는 지금 집에 가기는 아쉬웠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조원들에게 말했다.
“집에 가야지.”
“뭐 할 게 있나? 조별과제도 끝났는데 푹 쉬어야지.”
황보수정과 엘리아였다.
시무룩해진 황보철수는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는 백일진을 바라봤다. 아무리 백일진이 무심하다지만 2m에 가까운 근육질 남자가 이런 행동을 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일진, 너도 집에 갈 거야?”
“음……. 고민 중이다.”
“그럼 술이나 마시러 갈래?”
“…….”
백일진이 머뭇거릴 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술? 술 좋지.”
다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인 모용석을 바라봤다.
입맛을 다시던 모용석은 조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멋쩍게 웃으며 남궁종수에게 물었다.
“종수, 너는 어떠냐.”
남궁종수는 황보수정, 엘리아, 하이린, 설하윤을 한 번씩 보더니, 언제 안색이 안 좋았냐는 듯 씨익- 미소 지었다.
“그렇지, 이런 날에는 술이 최고긴 해. 날도 더운데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자고.”
“나도 술 좋아…….”
하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마시러 가자는 말에 동의를 표하려 할 때, 옆에 있던 엘리아가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안 돼.”
하이린은 눈을 좁히며 엘리아를 흘겼다.
“왜 안 돼!”
“너 마을에서 있었던 일 잊었어? 그 뒤로 술 안 마시기로 약속했잖아.”
하이린이 히잉- 하는 소리와 함께 짐짓 삐진 척을 했다. 그러던 하이린은 뭔가 떠올랐는지 백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리아는 일진이에게 호감이 있어 보이니까 일진이가 간다고 하면 자기도 간다고 할 거야.’
“이, 일진아, 너도 마시러 갈 거지?”
조별과제를 하면서 말을 놓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하이린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백일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시자.”
백일진이 술을 마시러 간다고 하자 황보수정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 일진이 너도 마신다고?”
“응.”
황보수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기숙사에 가서 화장만 하고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설하윤이 그런 황보수정의 소매를 붙잡았다. 황보수정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소매를 바라봤다.
“하윤, 왜?”
“저…… 그게…….”
“뭔데?”
설하윤은 평소답지 않게 말을 끌었다. 답답해진 황보수정이 그녀를 재촉했다.
“빨리 말해봐.”
“나, 나도 화장해 줄 수 있어?”
“어? 너도 술 마시러 갈 거야?”
끄덕.
“아, 알았어.”
그때, 엘리아가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넌 안 간다며.”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하이린이 가고 싶어라 하니까 가는 거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자 조원들과 여자 조원들이 나뉘었다.
“우리 먼저 장안시티로 나가 있을게. ‘초여름의 끝자락’이라는 가게로 와.”
“거기가 어딘데.”
“저잣거리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공원 알지? 거기 입구 옆이야.”
황보철수가 남궁종수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존스, 어떻게 그런 걸 알아?”
“기, 기본이지! 임마!”
기본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남궁종수도 실제로 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 여학생들이랑 술을 마실지 모르니 종종 장안시티에 나가서 분위기 좋은 술집들의 위치를 외워놨던 것뿐.
‘크음, 쪽팔리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 * *
정갈하게 꾸며진 장안시티 공원을 지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남궁종수가 말했던 ‘초여름의 끝자락’이라는 술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부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해놓은 것을 보아하니 돈깨나 바른 모양새였다.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북적대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실내 공간을 잘 활용한 덕인지 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좁아 보이지는 않았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찾아 앉으니 종업원이 다가왔다. 여타 술집의 종업원들과 다른 깔끔한 복장과 단정한 머리 맵시가 돋보였다.
“여기 메뉴판 좀 주시겠어요?”
“네, 손님, 혹시 테이블이 너무 크시면 자리를 옮겨 드릴까요?”
“아, 일행 더 올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메뉴판은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종업원이 기본 안주와 함께 두꺼운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음, 뭐 먹지?”
황보철수가 고민하자 남궁종수가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냥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응……. 근데 자세는 왜 그래?”
남궁종수는 쌍꺼풀을 짙게 만들고 눈을 게슴츠레 뜨며 고블렛 잔에 담긴 물을 들이켰다. 늘 그랬듯 새끼손가락은 들려 있었다.
“남자란 동물은 원래 감성적인 곳에 오면 우수에 젖는 법이지.”
“아, 그래.”
잠시 후, 그들이 주문한 요리와 술이 나왔다.
“와, 잔 만져봐. 시원하다.”
황보철수가 빙결 마법이 걸려 있는 맥주잔을 들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주에 정신이 팔린 백일진은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맥주잔 옆에는 돼지고기로 만들어진 수제 소세지가 놓였고, 그 앞에는 적당히 익힌 스테이크도 나왔다.
그리고 그중엔 그가 저번에 맛보지 못했던 회도 있었다. 갓 잡은 싱싱한 회의 윤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돋우었다.
곧바로 회를 한 점 집어 든 백일진은 같이 나온 양념을 살짝 묻히고는 입안에 넣었다.
‘어!’
두툼하게 썰린 통통한 회는 쫄깃한 식감이었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 자체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소스와 어우러지니 풍요로운 감칠맛을 내뿜었다.
“맛있군.”
가장 맛있는 반찬은 허기라고 했던가. 백일진은 쉬지 않고 젓가락을 놀려댔다. 남궁종수는 그런 백일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임마, 누가 쫓아오냐?”
“짠 하자!”
“그래, 모두 고생했다!”
“짠!”
가장 먼저 모용석이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남궁종수, 황보철수도 건배하고는 잔을 들었고, 백일진도 그들을 따라 맥주를 들이켰다.
처음 마셔보는 맥주, 나쁘지 않았다.
입에 닿는 순간 혀를 감싸는 부드러운 맥아 향이 느껴졌고, 그다음에는 톡 쏘는 쌉싸름함이 다가왔다. 뒷맛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이 마무리까지 훌륭했다.
“꽤 괜찮군.”
그때, 술집 안이 웅성거렸다.
“우와…….”
“저 여성분들 어디서 온 거지?”
“네가 가서 말 걸어봐.”
“임마, 우리랑 마셔주겠냐?”
고개를 틀어 입구를 바라보니 설하윤과 황보수정, 엘리아, 하이린이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한껏 꾸미고 온 그녀들은 어두웠던 술집 안을 밝게 빛나게 만들 정도로 눈이 부셨다. 남성들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그녀들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기가 죽어 다가갈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이쪽이야!”
가장 먼저 황보철수의 목소리를 들은 황보수정이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뒤이어 설하윤, 하이린, 엘리아도 테이블에 착석했다.
술집 안에 있는 남성들은 그들의 테이블을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동행자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푸념을 시작했다.
“누구는 수염 난 털보 자식이랑 술 먹는데, 누구는 꽃밭에서 술을 먹네.”
“나도 너같이 머리 벗겨진 타조 알이랑 먹기 싫어, 임마.”
하지만 아름다운 그녀들이 오든 말든, 뭇 남성들이 그들을 힐끔거리든 말든 백일진은 음식만을 주워 먹고 있었다.
엘리아는 자신이 꾸미고 왔는데도 백일진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맥없이 포크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럼에도 백일진은 살짝 쳐다만 보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여 음식을 먹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무뚝뚝한 자식.’
그때, 남궁종수가 입꼬리를 잔뜩 끌어 올린 채 술을 가득 따르며 말했다.
“우리 술 게임이나 할래?”
“술 게임?”
“그게 뭔데.”
남궁종수는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어온 게임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인삼 게임, 보니보니, 팅팅탱탱 놀이 등 전부 처음 듣는 게임들이었다.
“자, 내가 하는 거 따라 해봐.”
남궁종수가 이상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여우가 하는 말! 움치치움치치-”
남궁종수를 보는 조원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건 백일진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뻘쭘해진 남궁종수는 오히려 더 뻔뻔하게 나왔다.
“뭐, 왜, 뭐! 불만 있어? 그래서 안 할 거야?”
당연히 하기 싫었다.
근데 안 한다고 하면 남궁종수가 잔뜩 삐질 것 같았다. 조원들은 어쩔 수 없이 남궁종수에게 맞춰주기로 하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 게임 중엔 절대 내공이나, 마력으로 취기 날리지 않기!”
“알았어.”
막상 부끄러움을 잊고 시작한 술 게임은 나름 재미있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전부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심지어 황보수정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었다.
‘술 게임이라는 건 정말 고역이군.’
-적당히 마셔라.
“일진, 우리 아이스크림 사오자.”
황보철수가 딸꾹거리더니 백일진에게 귓속말을 했다. 진한 술 냄새가 코로 전해져 왔다.
“그래.”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나!”
“나.”
“나도!”
각자 먹고 싶은 맛을 받아 적은 황보철수와 백일진이 술집 밖으로 나갔다. 술에 취한 황보수정을 깨우기 위해 그녀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의 테이블에 빈자리가 생기자마자 기회를 엿보던 누군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기 저 아카데미 2학년 진철이라고 합니다. 1학년이신 것 같은데 혹시 저희도 빈자리에 앉아서 같이 마셔도 될까요?”
술 게임 도중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기에 남궁종수는 그들에게 그냥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근데 이번 상대는 그전까지와는 달리 쉽게 가지 않았다. 그는 남궁종수를 보고 반갑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어? 너 혹시 남궁종수 아니야?”
“아,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
“무슨 아는 척이야, 형 몰라?”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좀 가세요.”
그때, 진철의 일행인 보쿠스와 가이베가 테이블 위로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이런 어린 새끼가 선배 말이 말 같지가 않아? 같이 좀 먹자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그러게 진짜 버르장머리가 없네.”
“가이베, 보쿠스, 참아. 내가 얘기할게.”
진철이 자신의 친구를 말리더니 다시 남궁종수에게 시선을 던졌다.
“야, 남궁종수. 형 진짜 몰라? 형도 정무단 소속이야. 그리고 우리 어릴 때도 몇 번 봤잖아. 나 태산파의 진철이야!”
“그래서 어쩌라…… 정무단?”
남궁종수는 상대가 정무단 소속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다. 정무단 1학년 중 유일하게 간부로 들어간 자신이 아닌가.
간부가 돼서 동아리원이랑 싸울 수는 없었다.
잠시 화를 억누른 남궁종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팔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알겠으니까, 저 친구들이랑 왔으니까 술은 다음에 같이 먹고, 오늘은 그냥 가주세요.”
“아니, 형이라니까? 형이랑 같이 술도 못 먹어?”
“다음에 마셔요. 다음에.”
계속 거절을 당하자 진철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만 비릿하게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하, 이 새끼. 이거 말 진짜 못 알아듣네. 그냥 좀 같이 마시자고.”
“하, 진짜.”
“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선배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남궁종수의 이마에 혈관이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술도 마셨겠다. 선배고 뭐고 그냥 엎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우리끼리 먹을 거니까 그냥 좀 가라고요!”
그때, 흥분한 남궁종수를 제지한 모용석이 진철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정중하게 말했다.
“선배님, 죄송한데 저희가 오늘 조별과제를 마치고 와서요.”
“넌 뭐야.”
“모용세가의 모용석이라고 합니다.”
진철은 모용석이라는 이름을 듣고 몸을 움찔했다. 아무리 아카데미 선배라지만, 남궁종수와 모용석 둘을 압박하기엔 부담스럽다.
심지어 모용석은 같은 정무단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때, 무림인들의 생리를 잘 모르는 보쿠스와 가이베가 진철 대신에 모용석의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아니, 너희만 여자랑 술 먹냐?”
“그래, 좀 같이 재미 좀 보자.”
“죄송…….”
“죄송이고 뭐고 그냥 같이 좀 먹자고!”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얘기를 듣던 설하윤과 엘리아, 하이린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하지만 설하윤은 빙궁의 상황 탓에 나설 수 없었다.
‘태산파…….’
자신이 여기서 홧김에 손이라도 썼다가는 태산파에서 빙궁으로 보내는 지원금이 끊길지도 몰랐으니.
그리고 하이린은 원래 이런 상황에서 나서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때.
“진짜, 짜증 나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엘리아가 진철의 따귀를 거세게 올려붙였다. 짜악- 하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