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72
아카데미 담당 일진 72화
카강- 카가강-
통짜 쇳덩이로 만들어진 데다가 3성급 방어 마법이 걸려 있는 수련용 더미였지만, 천마검과 닿는 부분마다 깊은 검흔이 남았다.
마지막 검초까지 마쳤을 때, 수련용 더미는 곳곳이 갈라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후우.”
-압도적인 내공으로 무공을 사용했을 때보다는 위력이 약하긴 해도, 나름 쓸 만한 정도는 되는군.
‘그런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러로도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오러로 마법도 사용할 수 있을까?
오러, 내공, 마력. 본질은 같다.
대기 중에 담긴 기운을 단전에 모아 임독양맥의 혈도를 통해 발현시키면 그것을 내공이라 부른다.
단전에 있는 기운을 심장에 있는 마력회로를 통해 발현되면 그것을 마력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뼈와 근육에 기운을 담아 사용하는 것을 오러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다 다르게 사용해야 하지?’
-정말 쓸데없고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이지. 실험해 보면 알 것이다.
백일진은 근육과 뼈에 있는 기운을 움직여 심장으로 보냈다. 백일진의 마력회로는 열을 받더니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손 위에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마법진이 생성되는 시간은 단전에서 마력회로로 기운을 보내는 것보다 확연히 늦었다.
‘아!’
그렇다면 마력회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만들어내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 백일진은 오러를 발현해 마법진을 그려갔다.
하지만 오러로는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 수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 무공을 사용했을 때처럼 내공으로 붙잡아보려고도 했지만 실패했다.
‘음, 왜 안 되지?’
-마력과 오러, 내공은 근본이 같은 기운이라고 해도, 각각 지닌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질?’
-잘은 모르지만, 그리고 예외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마력은 항상 형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마법에는 마력이 사용되는 거지. 하지만 그 자체로는 전혀 능력이 없으므로 마법진이라는 매개체를 만들어내는 데만 사용되는 거지.
‘그렇군.’
-또, 내공은 주먹, 검, 권과 같은 매개에 맺히려는 성질이 있어 무공에 적합하지. 또 여러 가지 성질이 있지만, 그냥 일단은 이렇게만 알아두면 된다.
설명을 들은 백일진은 자신의 주먹으로 내공을 보내보았다. 확실히 오러나 마력보다는 내공이 잘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오러, 이것은 내공, 마력과는 다른 성질이지.
‘그건 아까 말했잖아.’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공, 마력이 액체 같은 느낌이라면 오러는 자유분방한 기체 같은 느낌이지. 하지만 오러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이 모인다면 내공과 비슷하게 맺히려는 성질이 생기…….
‘아까 설명한 건 그만 말해라.’
백일진은 천마검의 말이 길어지자 더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천마검도 말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백일진은 하는 수 없이 수련장 바닥에 앉아서 묵묵히 천마검의 얘기를 들어줬다.
-……그래서 예전에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를 보면 크기가 2m씩은 되었다.
‘그러면 검강보다는 오러블레이드가 강하겠군.’
-크하하하, 웃긴 녀석이군. 오러블레이드가 이긴다고?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오러블레이드는 사정거리와 타격 범위가 넓은 대신 내구도가 부족하니.
천마검은 이렇게 뭔가를 설명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식을 드러냄으로써 어떠한 만족감 같은 것을 느끼는 듯했다.
‘넌 어떻게 그걸 다 아는 거지?’
-천수백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하던 일이라고는 책을 읽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검병이 어떻게 책을 읽은 것인지 궁금했으나, 천마검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은 백일진은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 * *
1학년 교수 회의실.
아카데미의 1학년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장 연장자인 단계홍은 상석에 앉았고, 그의 오른쪽부터 연차 순서대로 앉았고, 좌석 중 가장 마지막은 신입 교수인 당자인이 자리했다.
오늘은 늘 날카롭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던 교수회의와 달리 다들 편한 복장을 착용했고 얼굴에도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니어만은 입가를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단계홍에게 말했다.
“단 교수님, 시작하시지요.”
끄덕.
“곧 중간고사 기간이요. 오늘은 1학년 학생들의 중간고사 문제의 범위와 내용에 관해 이야기해 보기 위해 여러분들을 소집했소. 혹시 이미 정해진 사항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길 바라오.”
몇몇의 교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수가 손을 들었다. 단계홍은 가장 먼저 니어만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저는 특임반을 제외한 모든 반에 공통으로 서술형 문제를 낼 생각입니다. 주제는 로체트 왕국의 현황과 주변 각국의 정세, 또 앞서 제시한 답을 바탕으로 로체트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좋은지에 대한 의견까지.”
몇몇 교수들이 니어만의 얘기를 듣고는 머리를 감쌌다. 주제를 듣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역사학 교수님이신데, 역사가 아닌 미래를 예측하는 정치 문제를 내시는군요, 허허허.”
한 교수가 니어만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니어만은 그 교수를 날카롭게 노려보고는 뼈가 박힌 목소리로 답했다.
“저의 역사란 단순히 어떠한 과거의 사건 사고만을 들추어 말하는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교수님이 저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이 순간도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고 했나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민족은 현재가 없습니다.”
괜히 농담 한번 던졌다가 핀잔을 들은 마도구학 교수 벨리케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살짝 비아냥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니어만 교수님은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켈켈- 싸우지 마시게.”
단계홍은 그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음으로 손을 들었던 진법학의 사마진을 가리켰다.
“사마 교수, 말씀해 보시게.”
“저는 학생들에게 절치진(切齒陣)을 겪게 할 생각입니다. 10분 안에 탈출 시 100점, 20분 90점, 30분 60점, 40분 50점…… 이렇게 시간별로 점수를 매길 생각입니다.”
“좋군.”
“깔끔하네요.”
“다음은…….”
단계홍은 우직하게 손을 들고 있던 카리스를 가리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번에는 반마다 공통으로 문제를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특임반은 임무로 시험을 대신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마법 전형 학생들이 많은 마법 연구반, 마도공학반에게는 실기 문제. 그 외 무공 연구반, 기관진식반, 경영학반, 역사학반, 간호학반에는 실기가 아닌 이론 문제를 낼 생각입니다.”
나름 합리적으로 보이는 출제 형식에 모든 교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 사마진이 손을 들었다.
“마법 전형 학생들이 많은 반과 아닌 반으로 나눈다고 하시는 걸 듣자 하니 실기를 매우 어렵게 내실 모양인데, 그럼 배치고사 성적 등 운때가 맞지 않아 마도공학반에 들어간 무공 전형 학생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닙니까?”
카리스는 고개를 틀어 사마진을 응시했다.
사마진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으나, 카리스는 왠지 사마진이 ‘훗’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리스는 사마진을 보고 어깨를 으쓱이고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네?”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카데미가 학생들 개개인 과외를 해주는 곳도 아니고, 본인의 실력이 부족해서 원하던 반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걸 일일이 맞춰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카리스는 눈도 깜빡 안 하고 말을 이었다.
“만약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유급 후, 배치고사 재시험을 치르는 방법도 있고, 2학년 때 전반시험을 치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반이 결정된 이상 억울한 게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안 그러면…….”
“알겠네, 카리스 교수. 생각은 알았으니 앉으시게.”
단계홍은 뭔가를 더 말하려고 목젖이 꿈틀거리는 카리스를 서둘러 자리에 앉혔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지자 단계홍이 나지막이 혀를 찼다.
‘이 자식들은 만날 때마다 닭과 개처럼 싸우는군.’
다른 교수들의 계획까지 전부 다 들은 단계홍이 웬 종이를 꺼낸 뒤 허공섭물을 사용해 교수마다 하나씩 배부했다.
“오-”
“단 교수님의 허공섭물 실력은 역시 일품입니다.”
“무공 실력이 더욱 발전하신 것 같습니다.”
웬만한 염력 마법보다 더 완벽하게 제어를 하는 모습을 본 교수들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단계홍은 그들의 반응에 히죽-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특임반 중간고사 임무에 관한 안건일세.”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교수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특임반의 임무 수행은 아카데미의 유일한 공식 외부 활동이었다. 이들이 임무 중 받은 평가로 교수들의 평판도 달라졌기에 교수들이 생각하는 중요도가 다른 반과는 확연히 달랐다.
단계홍도 얼굴에 웃음기를 삭 빼고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 공동파에서 당자인 교수를 통해 임무 요청이 왔다지?”
“네, 그렇습니다.”
“임무의 내용은?”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몬스터 웨이브라는 말에 교수들 사이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몬스터 웨이브 혹은 마물범람(魔物氾濫).
일정하지 않은 주기로 한 번씩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버리고 집단 이동을 하는 현상.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사실 자신들의 거주지를 버리고 이동하는 것은 본인들 마음이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들이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다는 점.
심지어 ‘장안’은 본래 미개척지를 개척한 도시였기 때문에 몬스터 웨이브로 피해를 보는 일이 잦았다.
“이번엔 공동파 쪽이 몬스터 웨이브의 범위에 포함된 것 같더군요.”
“그나마 공동파 하나라면 다행이긴 한데……. 1학년 학생들을 보내도 되는 건가.”
“아, 이번 웨이브는 소규모이기도 하고 소형급 몬스터들의 이동이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카리스가 손을 들었다.
“저는 반대입니다. 아무리 소형 몬스터들의 웨이브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동하는 몬스터가 100만 마리가 넘습니다.”
말하던 도중 카리스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 차올랐다.
“그중에 공동파의 범위로 지나가는 몬스터가 1푼만 된다고 하더라도 1만 마리의 몬스터인데 그것들을 1학년 특임반 학생들만으로 막는다? 절대 반대입니다.”
사마진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카리스를 바라봤다.
“작년에 1학년 학생들에게 단신으로 중형 몬스터를 잡아 오라는 진급 과제를 낸 것이 카리스 교수님 아니셨던가요?”
“끄응.”
“저는 찬성입니다. 아무리 1학년이라 하나 유일하게 외부 활동을 허가받은 만큼 특임반은 아카데미의 얼굴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특임반이 몬스터가 무서워서 도움을 외면하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사마진은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의 목소리와 뺨에서 나는 톡톡 소리가 묘하게 어울렸다.
“그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없겠죠.”
“옳소!”
“저는 반대입니다! 카리스 교수의 의견이 맞습니다!”
교수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조용히 시작된 회의가 어느새 얼굴을 붉히고 감정싸움까지 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허, 참. 성질머리들하고는…….”
한참을 말씨름하던 교수들은 결국 특임반의 담임이자 1학년 담당 교수들의 대표인 단계홍에게 눈치를 보냈다.
“음…….”
묵묵히 모든 교수의 의견을 들은 단계홍은 침음성을 흘렸다. 이제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특임반의 임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