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75
아카데미 담당 일진 75화
백일진의 검을 보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작게 시작된 그들의 술렁임은 금세 연무장이 떠나갈 정도로 떠들썩해졌다.
“오, 오러가 아니었어! 무공 초식을 사용하는 걸 보니까 내공이 노란색인 거야!”
“뭐지?”
“백일진이 익힌 심법의 특성인가?”
“뭐야, 저번엔 분명히 평범한 파란색 내공이었는데…….”
놀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단계홍도 눈을 크게 뜬 채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음? 분명히 오러가 맞는데, 무공에 사용한다니, 저게 가능한 것인가.’
자신도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를 직접 만나본 적은 별로 없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오러가 아닌 것인가?’
학생들의 말대로 오러가 아니라 익힌 내공의 특성일 수도 있었다.
‘여하간에 특이한 건 사실이지, 역시, 백일진. 매번 재미를 주는 녀석이군. 켈켈.’
좌중의 반응이 어떻든 백일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 들린 천마검은 허공을 유영하듯 굽이굽이 움직였고, 노란 오러는 공간을 빛내며 주변을 감쌌던 검은 실들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툭-
투둑-
지대학은 자신의 검사가 끊겨 나가는 장면을 보고 입을 동그랗게 오므린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진이 녀석이 관심을 둘 만하군.’
비록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검사 하나면 모든 1학년을 끝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만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저 백일진이라는 녀석 하나로 인해서 부서지고 있었다.
씨익-
‘괴물이라 이거지.’
세상에서는 범인이 범접하지 못할 마의 재능을 가진 이들을 이렇게 부르곤 한다.
괴물, 천재, 초인.
저 백일진이라는 녀석도 그 범주 안에 들어 있는 녀석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직 입학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새파란 애송이가 내 검사를 끊어낼 수는 없지.’
하지만, 그러한 괴물, 천재들도 더 강한 재능 앞에서는 범인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
‘네가 괴물이라면.’
지대학의 보조개가 깊게 팼다.
‘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툭-
검사가 끊기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윽고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백일진을 마주한 지대학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백일진은 그런 지대학을 보고 턱을 갸웃거렸다.
‘왜 웃는 거지.’
검사가 전부 끊겼고 코앞까지 공격이 당도했다. 도저히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지대학의 미소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조심!
휘리릭-
짧게 끊긴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검사가 살랑이며 나부꼈다.
“백일진 후배, 끝까지 집중해야지.”
하늘하늘거리던 검사는 이내 천마검을 동그란 고치 형태로 옭아매고는 그 상태 그대로 허공으로 끌어 올렸다.
강제로 검이 들어 올려지니, 손을 하늘 높이 뻗은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백일진이어도 안 되는 건가.”
“유독 백일진한테 강하게 하신 것 같은데. 검사까지 사용했잖아.”
“당연히 1학년 랭킹 1위니까, 그 수준에 맞춰서 하셨겠지.”
학생들의 걱정과 달리 천마검은 별다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 농담을 섞어 말했다.
-한 손으로 만세를 하는 자세 같군. 들려 있기 싫으니 얼른 끊어내라.
‘흠.’
자세가 자세이다 보니 오러도 점점 제 색을 잃어갔다.
지대학이 저벅저벅 걸어서 백일진 앞에 당도했다. 그는 오른팔을 하늘 높이 뻗고 있는 백일진을 손가락으로 툭 건들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아쉽게도 백일진 후배는 무기를 잃었으니 일 초식도 못 버텼네…….”
찌지지직-
‘찌지직?’
지금 상황에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지대학의 귓바퀴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지대학 선배님…….”
백일진의 전완에 푸른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올랐다.
전완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의 핏줄이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희미한 색만 유지하던 그의 오러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집중.”
이윽고 굵어지던 오러는 마치 초절정 고수들이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검기성강(劍氣成罡)’과 같이 기를 압축한 모양새가 되어갔다.
“무, 뭐야! 저거 검강 아니야?”
“검강이라고?”
“무슨 소리야. 검강이 뉘 집 개 이름이냐?”
“그럼 네 눈에는 저게 검기로 보이냐?”
검기와 검강의 차이는 일반인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
내공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검기였고, 그러한 검기를 뭉치고 뭉쳐 진하게 압축해 유형화시킨 것을 검강이라 불렀다.
하지만 백일진의 오러는 검기도 아니고 검강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그렇다고 검강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지 않아?”
“그건 그래, 반은 검기 반은 검강 같은 느낌인데.”
단계홍도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그것’을 응시했다.
‘검강은 아니다. 그렇다고 검기도 아니지.’
실제 검강은 저것보다 더 밀도 있게 뭉친다.
‘그럼 오러 블레이드인가?’
아니다, 오러블레이드라고 하기에도 미묘하다. 그가 아는 오러블레이드는 검강이랑 비슷한 모양새에 크기만 더 클 뿐이다.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사용한 것이 내공인지 오러인지도 모르겠는데, 검강이냐 아니냐를 굳이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지.’
얼굴에 웃음기를 완전히 거둔 지대학은 놀란 눈으로 결국 검사 고치를 끊어낸 백일진을 바라봤다.
“너, 괴물이구나?”
누군가를 괴물이라고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보다 더욱 재능이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것.
그렇기에 자신과 맞수로 불리는 언철진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네, 뭐. 감사합니다.”
지대학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이었지만, 백일진은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백일진 S.”
학생들은 난데없는 S라는 말에 크게 술렁였다.
“뭐? S?”
“S라는 학점이 있었어?”
“아니, 내가 알기로는 A+가 만점인데…….”
“점수 계산은 교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태경이가 A+이었는데, 저 정도면 S가 아니라 S+줘도 인정해야 해.”
“그건 맞지…….”
지대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일진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했다.
‘왜 철진이가 집착했는지 알겠군.’
이런 인재를 선도부에 빼앗길 수는 없었다.
‘중간고사 임무가 끝나면, 우리가 먼저 접근해야겠어.’
백일진 다음은 황보철수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들어갈게.”
“넵!”
검도 꺼내 들지 않은 지대학은 크리스를 상대했을 때와 같이 대충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겨우 막아낸 크리스와 달리, 벽력이 담긴 황보철수의 주먹은 손쉽게 바람을 찢어버렸으니.
‘뭐지? 황보철수는 내 기억에 무공전형 상위권에도 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금 더 강하게 할 걸 그랬어.’
손을 흔들어 잔여 벽력을 허공에 털어낸 황보철수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황보철수 A+.”
다음 차례는 순서대로 모용석, 하이린. 엘리아, 남궁종수, 하이린이었다. 이들도 전부 A이상을 받았다.
‘놀라운데? 입학하고 한 학기가 채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특임반 역대 최강의 기수라고 불리던 우리 때보다 재능이 더 뛰어난 것 같아.’
물론, 1학년이라고 모든 학생이 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기대 이하였던 학생도 있었다.
톡-
연무장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대학이 시선을 옮기니 알이 깨진 무테안경이 달랑거리며 구석에 뒹굴고 있었다. 잠시 그것을 지켜보던 그는 미간을 좁히고 어깨를 으쓱였다.
제갈무혁이라는 녀석도 그가 기대하던 학생 중 하나였다.
그 깐깐한 사마진 교수와 제갈목연 교수가 제갈무혁은 천재라고 입이 아플 정도로 칭찬을 해대었으니.
‘제갈무혁은 전혀 재능이 없어. 딱 특임반을 턱걸이로 들어갔을 법한 범재 수준이군.’
물론, 무공보다는 다른 분야에 특출난 장점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새 1학년 특임반 모든 학생의 평가를 전부 마친 지대학이 단계홍에게 다가갔다.
“전원 끝났습니다, 교수님.”
“어, 그래. 우리 학생회장, 수고했네.”
“아닙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학생들의 얼굴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과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로.
* * *
초여름을 지나 본격적인 한여름으로 들어서니 가벼운 산들바람도 무겁게 느껴졌다. 수업을 마친 제갈무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딘가로 향했다.
아카데미 교수들의 연구실이 모여 있는 곳, 창조관. 제갈무혁의 목적지는 그곳 지하 1층에 있었다.
겨우 도착해 문을 여니, 무더운 바깥과 차가운 내부의 공기 차 때문인지 금 간 무테안경에 새하얀 김이 서렸다.
“왔어? 안경은 또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제가 맞을 사람입니까? 그냥 그럴 일이 있었어요.”
안경을 닦아낸 제갈무혁은 동아리실을 둘러봤다. 드넓은 동아리실에 있는 인원이라고는 제갈무혁 본인과 베르만밖에 없었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제갈무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근데, 앉아만 있지 말고 뭐 차가운 거라도 좀 주세요.”
“맡겨놨냐? 눈치껏 저기서 아무거나 갖다 꺼내 먹어, 인마.”
“저기가 어딘데요.”
“저기 검은색 캐비닛 보이지? 그 뒤에 냉장고 있어.”
주위 둘러보았으나 동아리방 곳곳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과 서랍들이 마구잡이로 놓여 있어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검은 캐비닛이 몇 갠데요. 좀 꺼내주세요.”
“귀찮게 하네.”
“좀 치우고 살면 안 됩니까.”
“제갈목연 교수님 방은 이것보다 더 지저분해.”
“할아버지 얘기는 왜 꺼내요.”
베르만은 킥킥대며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수를 내밀었다. 유리병에 담긴 과일 주스였다.
“윽, 이거 맛이 왜 이래요.”
“아? 미안, 미안. 유통기한 지난 걸 줬네. 안 죽어, 그냥 마셔.”
“아이 씨, 장난 좀 그만 쳐요.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요?”
“아, 이제 곧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과제니 뭐니 준비하러 갔지. 너는 준비 안 해도 되냐?”
중지로 무테안경 중앙 부분을 한번 추켜올린 제갈무혁이 ‘훗’ 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저는 어차피 특임반이라 준비 안 해도 괜찮아요. 뭐, 다른 반이었어도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재수 없는 자식.”
“그런 말 자주 듣곤 했었죠. 요즘은 아니긴 한데…….”
“그니까 왜 주제도 모르고 특임반을 갔어.”
제갈무혁도 베르만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지 대답 대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 자식이 그런 괴물 자식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특별 합격생이라며. 당연히 괴물이지.”
“근데 1등은 저였죠.”
“특별 합격생이 더 대단한 거 아니야?”
“대단하면 1등을 했겠죠.”
제갈무혁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질 생각이 없었다. 일생의 자존심이었으니.
“그보다 뭐, 그 녀석에 관한 얘기 좀 들고 왔어?”
“그전에, 저 이제 정식으로 뽑아주는 거 맞죠?”
“너는 왜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는 걸 집착하냐.”
“그, 그게…….”
사실 제갈무혁은 특임반에서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치누타 느어드라는 녀석과 같이 다니긴 하지만, 녀석과는 취향이 너무 안 맞았다.
아니, 그 녀석이랑만 안 맞는 것이 아니라, 그냥 특임반이라는 반 성향과 자신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우려고 밖에 안 하는 놈들이랑 안 맞는 게 정상 아니야?’
사실 특임반에 지원하기 전부터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일진이라는 녀석에게 승부욕이 생겨 버린 그의 눈에는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근데 이렇게까지 외로움이 견디기 힘들 줄은 몰랐지.’
막상 들어오고 나서는 승부욕은커녕 말을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도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음유시인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음유시인은 그와 비슷한 성향인 필기전형만 뭉쳐 있는 곳이었기에, 한마디로 이곳에 들어오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는 부끄러웠다.
“뭐, 그냥……. 원래 이런 것에 관심이 좀 있었어요.”
“같은 반에 친구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푸훕- 그, 그게 무슨! 저 완전 인기인입니다?!”
“아니면 아닌 거지, 흥분하고 그래. 아무튼, 백일진 얘기나 계속해 봐.”
입가에 묻은 오렌지 주스를 대충 닦아낸 제갈무혁이 입을 열었다.
“못 믿으실 수도 있는데, 이거 전부 제 눈으로 본 것들이에요.”
얘기를 듣던 베르만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뭐? 노란색 검강을 사용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