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83
아카데미 담당 일진 83화
지태경은 갑자기 숲 밖으로 달려나가는 그들을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신의 사형제들이 허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덩달아 숲을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태경아! 빨리 뛰어!”
“사형, 지금 이 상황이 뭔데 그래요?”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쳐야 산다.”
“아카데미 학생분들도 어서 도망치세요!”
복마단원들이 도망치라고 고함을 질렀음에도 특임반 학생들은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저 사람들 왜 저러지? 아, 귀가 잘 안 들려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방금 그 굉음 때문에 그런가?”
“도망치라는 것 같은데?”
복마단의 인원들은 꿈쩍도 안 하는 특임반 학생들이 답답했는지 고개를 돌린 채 내공까지 담아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빨리 부상자 챙겨서 도망치라고!”
“……도, 도망?”
급하게 주변에 있는 부상자를 둘러업은 특임반 학생들이 공동파의 제자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10분쯤 달렸을까.
안전한 곳까지 왔다고 판단한 전호량이 멈춰 섰다.
“헥- 헥……. 무슨 일이래?”
“그러게 말이야.”
시간이 지나자 먹먹해졌던 청각이 점점 돌아왔다. 원진은 청각이 돌아오면서 동반되는 고통에 표정을 찡그린 채 각 조의 조장들을 불러모았다.
“아미타불, 조장들은 전부 인원 파악부터 해주시게!”
각 조의 조장들이 자신의 조로 돌아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다행히 복마단의 빠른 판단 덕분에 특임반도 대부분 아무 문제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1조 인원 파악 완료.”
“2조 인원 파악 완료.”
“3조 인원 파악 완료.”
“4조 인원 파악 완료.”
“…….”
5조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원진은 조장인 황보수정을 바라봤다.
“5조……?”
황보수정은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 없어요…….”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일진이하고 하윤이가 없어요.”
“뭐라고?”
황보수정의 말을 들은 특임반 학생들이 흠칫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어? 진짜 없네.”
“어, 어떻게 하지?”
“주, 죽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일갈을 내지른 황보수정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굳은 다짐이 담긴 눈빛으로 음산함이 가득한 수풀 너머를 바라봤다.
‘내가 가서 구해야 해.’
지금 당장 저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짚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난 가야 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짚을 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겁의 불에 고통받는 지옥이라도 웃으면서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아공간을 뒤져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애장품을 땅바닥에 꺼내놓고 원진을 바라봤다.
“……제가 갈게요. 제가 조장이니까 제가 구해오는 게 맞아요.”
“뭐?”
그 말을 들은 전호량은 원진을 살짝 밀어내고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막아야 한다.
실종된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복마단을 이끄는 처지로서 더는 피해자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원진 스님, 말씀 좀 해주시지요.”
“그, 그게…….”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 담긴 진심을 본 원진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전호량과 황보수정의 미묘한 대치가 이루어지던 때.
황보수정의 옆으로 모용석과 황보철수, 남궁종수가 섰다. 하이린과 엘리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가겠다.”
“나도.”
“나도 갈 거야.”
전호량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됩니다.”
“……당신이 뭔데.”
“숲에 남겨진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 덕에 당신들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할 것입니까?”
“뭐?”
전호량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은 마녀의 숲이라 불리는 곳.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마녀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었다.
“숲의 마녀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 한 번도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죠.”
“…….”
“하지만!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숲의 마녀는 마음에 드는 제물을 상납받았을 때는 동행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백일진과 설하윤이 제물로서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
“그래서 일진이와 하윤이가 희생했으니,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고 살아라?”
말을 마친 황보수정의 눈망울에선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황보수정을 처음 보는 전호량도 안타까움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흐느낌은 절절했다. 하지만 더는 무의미한 희생자를 늘릴 수는 없었다.
“맞습니다.”
“난 못 해.”
옆에 있던 엘리아는 그들의 대화를 다 듣지도 않고 뛰어나갔다. 뒤따라 하이린도 달렸다.
“복마단!”
“네!”
“잡아!”
전호량의 외침에 그들이 달려나간 방향으로 산개한 복마단원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린과 엘리아를 붙잡아왔다.
그녀들도 거세게 저항했지만, 단둘로는 서른 명이나 되는 복마단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거 놔!”
“가야 하니까 이거 놓으라고!”
전호량은 붙잡혀 있는 그녀들의 수혈을 짚었다.
“미안합니다.”
모용석이 하이린과 엘리아를 받아 들고는 으르렁거렸다.
“이래서 육대문파 녀석들이 싫다는 말이야…….”
“아미타불.”
말을 하던 모용석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잠들었다.
모용석의 수혈에서 손을 뗀 원진이 남궁종수와 황보철수, 황보수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진의 신호를 받은 크리스가 마법을 사용해 그들의 발을 묶었다. 동시에 토마스의 마법이 그들의 몸을 짓눌렀다.
“정말 미안하다.”
“크리스, 토마스!”
원진은 그들의 움직임이 둔해진 틈을 타, 얼른 수혈을 짚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황보수정과 황보철수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지만, 남궁종수는 눈에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버텨냈다.
“나, 남사모……. 도, 도와줘…….”
특임반 학생들, 특히 남궁종수의 수족을 자처했던 남사모의 인원들이었지만, 차마 이번만큼은 남궁종수를 도와줄 수 없었기에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 존스…….”
“이건 아니야…….”
남궁종수는 결국 눈을 뜬 채로 잠이 들었다.
한숨을 내쉰 남사모 인원 하나가 그의 눈을 감기고는 자신의 등에 업었다.
남궁종수까지 챙긴 걸 확인한 원진이 지태경에게 말했다.
“태경, 인원 파악 한 번 부탁해도 되겠나.”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지태경은 모든 반의 학생 수를 확인하고는 원진에게 보고했다.
“총원 50명, 현재원 48명, 부상자 19명, 실종자 2명이다.”
“알았네.”
사실 지태경도 지금 매우 착잡한 상태였다. 백일진이라는 녀석이야 없어지든 말든 상관이 없었지만, 설하윤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처음으로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추잡스럽다고 생각할 만한 짓도 했고, 지저분한 짓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기분 X 같네.’
그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몸을 돌렸다.
* * *
“허억-”
번뜩- 자리에서 눈을 뜬 설하윤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어디지?”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수풀과 생기 없이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였다.
그녀가 아무리 절정에 달한 무인이라지만,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니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심지어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귀신.
이곳의 음산한 풍경은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기 누구 없어……?”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기척뿐 아니라 숲속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벌레나 새들마저 존재하지 않는 듯, 들려오는 소리는 썰렁하게 나풀거리는 바람의 속삭임뿐이었다.
“후웁…….”
심호흡으로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그녀는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의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와일드 베어와 싸우고 있었는데…….’
이것은 확실하다.
아직도 자신의 손에는 아직도 수투가 끼워져 있었으니.
심지어 수투에는 와일드 베어의 검붉은 핏덩이가 옹기종기 말라붙어 있었다.
핏자국을 긁어내기 위해 그녀는 바닥에서 나뭇가지를 주웠다. 아니, 주워 들려고 했다.
파삭-
생기 없는 나무는 수투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흠칫.
심장이 떨어질 듯 놀란 그녀는 숨을 멈추고 한참 동안 우두커니 굳은 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후, 그냥 나뭇가지가 날아간 거잖아.’
식은땀을 닦아낸 그녀가 마저 생각을 정리했다.
“와일드 베어와 전투하는 도중…….”
웬 굉음이 들려와 귀를 막았었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확실한데 그 뒤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다른 애들은 어디로 간 거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멈칫하더니 제자리에 서서 손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손발은 무언가에 얽매여 있기라도 하듯 느릿하게 움직였다.
‘뭐야. 왜 몸이 무겁지?’
마치 물에 잠겨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움직이느냐, 아니면 사람을 기다리느냐. 잠시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마음을 먹었다.
결론은 ‘움직이자’였다.
‘여기서 아무리 기다린다 한들, 누군가 찾으러 올 것 같지 않아.’
불끈 주먹을 쥔 그녀는 대로를 따라 발을 옮겼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조차 음산함을 더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크게 걸었다.
그때.
툭-
그녀의 발밑으로 돌멩이 하나가 굴러왔다. 원래도 새하얬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누구야!”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돌멩이를 보던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바, 바람에 날려온 거겠지?”
그녀는 다시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삭- 사삭-
아니, 느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자신이 발을 옮기면 다시 소리가 들리고, 자신이 멈추면 소리도 멈췄다.
‘싸워야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싸워보겠지만, 정체도 알 수 없는 것과 싸우려니 손에 힘이 풀렸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차라리 뛰자…….’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내달리려고 할 때.
덥석-
두꺼운 손길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원래도 새하얬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꺄아아악-”
모골이 송연해진 그녀는 얼른 내공을 담아 기수식을 취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새카매진 그녀는 감히 손을 내뻗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정해라, 나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눈을 가린 손가락을 치워 상대를 확인했다. 그곳엔 머리끈이 풀려 산발을 한 백일진이 서 있었다.
“배, 백일진?”
백일진의 얼굴을 본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렁그렁 이슬이 맺혔다.
“이때까지 따라온 거 너였어?”
“그게 무슨 소리지?”
“뭐? 아까부터 계속 따라온 거 너 아니야?”
“아니다, 나는 줄곧 여기에만 있었다.”
그럼 이때까지 자신을 따라다녔던 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녀의 솜털들이 삐쭉삐쭉 섰다.
“그, 그럼……. 이때까지 따라다닌 사람은 누구지?”
“모른다.”
설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엔 새카만 암흑만 가득했으니.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꺄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