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87
아카데미 담당 일진 87화
갑자기 들려오는 고함에 사람들은 한마음 한 몸인 것처럼 지태경을 쳐다봤다.
“오, 고백인가 봐.”
“멋있다.”
“로맨틱한데?”
벌써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는 걸 파악한 좌중이 금세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졌다.
“저, 저거 지태경 선배 아니야?”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술이 얼큰하게 취했나 본데?”
“교수님, 저거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그냥 놔둬. 재밌는 구경 하겠는데?”
갑작스러운 지태경의 주사는 천마검마저 당황할 정도로 뜬금없었다.
-저 자식 뭐 하는 거냐?
‘모르겠다. 뭘 잘못 먹었나.’
-얼굴을 보니까, 뭘 처먹었는지 아주 얼큰하게 취했군. 취한 놈은 매가 약인데.
지태경은 팔을 뻗고 소리쳤다.
“저는 오늘 큰 결심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내 지태경의 다음 말을 기다리기 위해 살짝 조용해졌다.
“바로 앞 가게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설하윤!”
안주를 우물거리며 지태경을 쳐다보던 설하윤은 사람들이 자신을 주시하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녀에게 이 정도의 관심은 일상이었으니.
지태경은 모든 사람이 들리도록 더 크게 소리쳤다.
“처음 만났을 때, 저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다면 그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삐이익~
사람들이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타이밍 맞게 어떤 남자가 외쳤다.
“어떤 기회요!!!”
“부모님에게 효도할 기회, 형제자매와 우애를 다질 기회. 마지막으로……!”
지태경의 말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지태경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을 사랑할 기회!”
삐이익!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사람들은 열렬하게 지태경에게 응원을 보냈다. 응원하던 몇몇은 웃통을 벗고 손에 들고는 돌리기도 했다.
지태경의 말을 듣던 남궁종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면서 코웃음을 쳤다.
“하, 요즘 누가 저딴 구닥다리 멘트에 넘어가나.”
“존스, 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무슨 소리냐, 황보철수! 나는 결이 다르다! 결이!”
개가 짖어도 마차는 간다고 했던가. 황보철수와 남궁종수가 말다툼을 하든지 말든지 지태경의 말은 이어졌다.
“저는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없기에 앞선 두 번의 기회는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인 ‘사랑할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태경은 말을 하면서 취기가 더욱 올랐다. 아니 분위기에 취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대화를 한 게 얼마 만인지,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단지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할 뿐이다.’
처음에는 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지만,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아닌 다른 남자의 옆에 있습니다.”
좌중이 침묵으로 둘러싸였다. 그러던 중 웃통을 벗었던 아저씨가 다시 웃통에 몸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뭐야, 그럼 바람을 피우겠다는 거요?!”
“우우우-”
절레절레.
“물론, 둘이 아직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휴우-”
“하지만 곧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꿀꺽-
“그래서 그렇게 되기 전에 이 자리를 빌려 그 친구에게 선포하려 합니다……!”
“……?”
“나와 비무하자. 내가 이기면 그녀를 포기해라. 나도 내가 진다면 그녀를 포기하겠다.”
물론 백일진과 비무를 해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당연히 질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하윤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 어쩌면 이것은 핑계일지도 몰랐다. 사랑을 포기하려는 남자의 핑계.
하지만 그 안에는 전하고 싶은 진심도 섞여 있었다. ‘난 최선을 다했다’라는.
저벅저벅-
마이크를 놓고 내려간 지태경이 어묵을 우물대고 있는 백일진에게 다가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내 비무 신청을 받아주겠나?”
그 말은 도화선이 되었고 이내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 * *
다음 날 아침.
지태경이 번뜩 눈을 떴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는지 그의 방은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으- 머리야.”
“술 냄새가 진동하는군.”
“에……?”
지태경은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킨 지태경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어제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구나. 도사가 될 녀석이 곡주를 너무 가까이하는 것도 좋지 않다.”
“어, 언제 오셨어요?”
“눈은 왜 그런 것이냐.”
“누, 눈이요?”
지태경은 허겁지겁 협탁 위에 있는 거울을 들어 자신의 눈을 살폈다. 양쪽 눈두덩이가 선글라스라도 낀 것처럼 새파란 멍이 든 채 찌부러져 있었다.
‘아, 어제…….’
냉수 한 잔을 벌컥 들이마신 지태경은 어젯밤의 일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분명히 백일진은 자신의 비무 신청을 받아들였다. 웬일인지 백일진은 오른손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왼손으로만 자신을 상대했다.
검기까지 사용했건만, 왼쪽 눈탱이를 얻어맞는 것으로 승부는 가볍게 끝이 났다.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다시 일어나 백일진에게 달려들었고, 그 결과 다른 한쪽 눈탱이마저 밤탱이가 된 것.
‘그런데 나는 술을 마신 적도 없는데 왜 취해서 주사를 부린 거지?’
그때, 길거리 노점에서 사 먹었던 붕어빵이 떠올랐다.
‘아, 붕어빵!’
노점 주인이 그를 말렸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설마, 붕어빵 먹고 취하는 병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데 붕어빵 먹고 취하는 병신 같은 새끼가 나일 줄이야…….’
몸을 뒤덮는 수치심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카데미에서 백일진에게 맞았을 때도 이 정도로 수치스러운 기분은 아니었다.
‘하……. 씨X, 자퇴할까.’
그때, 그의 스승인 공동의 이대 제자 유용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아,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아카데미에서 사고를 쳐서 유급을 당하질 않나, 얼마 전에는 후배한테 맞아서 병원을 가질 않나, 이번에는 임무 중에 술을 퍼먹어?!”
“…….”
지태경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스승님.”
“뭐냐.”
“근데 혹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저 혹시 어제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유용은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제자라는 녀석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
“이제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게냐.”
“……죄송합니다.”
“흐음.”
유용은 미간에 새겨진 주름을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러니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너희 반 학생이 업어왔더구나.”
“네, 누가요?”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긴 머리의 남학생이었다.”
“백일진.”
“그 학생이 백일진인가 그 후배더냐.”
“……네.”
유용도 백일진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몇 개월 전, 제자 녀석의 치아를 모조리 부러뜨린 녀석.
그 사건 당시, 장문인이 제자의 복수를 하러 가겠다는 자신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큰 사달이 났으리라.
더군다나 이번에 숲의 마녀에게 붙잡혔다가 살아 돌아온 녀석이기도 하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녀석한테 우리 태경이가 졌다는 말이지.’
지태경은 시시각각으로 표정이 변하는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스승님.”
“사과는 그만하면 되었다. 스스로 반성할 생각이 있다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니.”
“저 스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과는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사과가 아닙니다.”
스승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 것일까.
지태경은 자신이 아카데미에서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증하듯 가감 없이 고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회개한 듯, 담백한 어조였다.
“어제는?”
“스승님, 어제 일만큼은…….”
그런 와중에도 도저히 어제 일만큼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
묵묵히 지태경의 얘기를 다 들은 유용은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
자신의 제자가 비뚤어진 면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의 제자라면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 정도로 망가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생각하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만약, 지태경이 스스로 고한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숫제 사파 놈들이 하는 짓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제자를 잘못 키운 건가…….’
감았던 눈을 뜬 유용이 지태경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인이라고는 하나 아직 앳되다. 갓난쟁이 때부터 자신의 손으로 키우다시피 한 녀석이라 더 그리 보이는지도 모른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꼬…….’
똑똑똑-
유용이 지태경의 처우를 생각하고 있을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경, 들어가도 되나?”
원진의 목소리였다. 지태경은 고개를 돌려 스승의 눈치를 살폈다.
끄덕.
“들어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원진은 유용을 보고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특임반의 원진이라고 합니다.”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예의가 담긴 원진의 품행에 유용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 학생이 태경이와 같이 유급을 했다던 그 아이인가.’
그런데 유급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히려 모범생에 가까운 부류로 보였으니.
‘이런 학생이 왜 유급을 했지.’
궁금증이 돋았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생각만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 유용은 손을 들어 자신의 바로 옆자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자네가 소문으로만 듣던 소림의 신룡이군. 이쪽에 앉으시게.”
“과찬이십니다. 근데 태경, 눈은 왜 그렇게 된 거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모, 몰라도 된다.”
지태경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대화를 끊은 유용이 ‘허허’ 웃으며 원진에게 차를 건넸다.
“나는 여기 있는 태경이의 스승이자 공동의 대표로 온 유용이라고 하네.”
유용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소개했다. 명함 뒤편에는 무림 연맹이라는 글자가 황금색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유용이라면……!’
들어본 적 있었다.
추혼검객(追魂劍客) 유용.
무림 연맹 소속 정보조직인 무영조의 부조장이자 공동파 삼대 검객인 그의 이름값은 소림이 있는 하남까지 알려질 정도로 드높았으니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원진이 고개를 숙였다.
“추혼검객 대협이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허례허식은 챙길 필요 없네. 자리에 앉으시게. 그런데 자네가 특임반의 대표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
유용은 대답을 듣자마자 원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네?”
“우리 측에서 숲의 마녀에게 붙잡혀 간 이들을 구하러 가지 못하게 막았다고 들었네. 우리를 도우러 와준 이들에게 하면 안 되는 몹쓸 짓이지.”
원진은 고개를 숙인 유용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는 지태경의 스승이 맞나.’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한들, 이렇게 배분의 차이가 명확한 상황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은 하기 힘든 일이다.
심지어 평소 지태경의 행실을 생각하니 더욱 믿을 수 없었다.
‘호부 아래 견자 없다는 말이 꼭 진실은 아니구나.’
원진은 슬쩍 눈을 돌려 지태경의 표정을 살폈다. 지태경은 차마 자신의 스승이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보기는 껄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책임을 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임반 학생들도 암묵적으로 복마단원들의 행동을 묵인한 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원진과 토마스, 크리스는 5조 인원들을 제압하는 것을 돕기까지 했다.
“아니, 이에 대한 질책은 우리가 달게 받겠네. 아카데미 특임반에 공동 차원에서 특별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겠네. 또, 3대 제자의 대사형인 전호량에 대한 처우는 교수들과 조율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처리하도록 하겠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다 마치고 나서야 유용은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후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특임반이 이곳에 온 것은 물론 공동을 돕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가장 주된 목적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러나 공동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임무에 관한 것은 뒤로 미뤄져 버렸다.
원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유용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내리쳤다.
“아 참, 그것을 잊고 있었군. 임무에 대해서는 따로 공지할 것이 있으니, 점심시간 이후 다른 학생들도 모아줄 수 있겠는가.”
“네, 그리하겠습니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