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88
아카데미 담당 일진 88화
베이스캠프 밖으로 나온 학생들과 복마단 학생들이 일렬로 도열했다. 그중 한 학생이 백일진을 보더니 옆에 있는 학생에게 수군거렸다.
“일진이, 돌아왔네? 다행이다.”
“진짜네? 카리스 교수님이 대단하긴 하다.”
“그러게, 5조가 따라갔다지만 사실상 카리스 교수님 혼자 구해온 거니까. 근데 쟤네 몸은 괜찮대?”
“네가 물어봐, 난 안 친해.”
“나도 안 친해.”
백일진과 설하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빠르게 돌았고, 그 때문인지 그들의 분위기는 어제와 달리 매우 어수선해져 있었다.
크리스와 토마스는 쭈뼛쭈뼛하며 백일진과 설하윤의 앞으로 다가와 눈치를 보더니 슬쩍 말을 건넸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흥, 선배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어요?”
엘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토마스와 크리스에게 핀잔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 그건……!”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더 빨리 구출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정말, 미안해.”
“진짜로 우리는 너희들까지 무슨 일 생길까 봐 그랬어.”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손을 들어 남궁종수의 말을 막은 백일진은 날을 세운 채 그들을 노려보는 5조의 인원들을 보고 말했다.
“어차피 살아 돌아왔으니 그 얘기는 됐습니다. 너희도 이제 그만해.”
그제야 크리스와 토마스를 흘겨보는 것을 멈춘 5조의 조원들이 단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저 사람은 누구지?”
“나도 모르겠어. 아까 얼핏 듣기로는 지태경 선배 스승이라고 하던데?”
단상 위에는 흰색 도포를 걸치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30대 중반, 많아야 후반으로 보이는 외관임에도 걸친 도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모두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공동파의 2대 제자인 유용이라고 합니다. 세간에서는 추혼검객이라는 과분한 칭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추혼검객이라는 이름을 들은 학생들이 술렁였다. 아카데미에 있으면서, 또 사문에 있으면서도 한 번은 들어본 이름이었으니.
“추혼검객?”
“연맹 무영조의 그 추혼검객?”
“와, 대박이다.”
학생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유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저희에게 도움을 주러 오신 특임반 학생들의 임무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좌중을 돌아본 유용이 마이크를 불끈 쥐었다.
“그전에!”
마이크에서 삐- 소리가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렇게 말한 유용은 마이크를 내려놓고는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깜짝 놀란 학생들은 눈을 크게 뜨고 유용을 바라보았다.
“해야 할 말? 뭐지?”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어제 일진이랑 하윤이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아, 맞네. 그건가 보다.”
학생들이 수군거리든 말든 유용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희 공동에서 특임반 학생들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저희가 실수한 것은 변함이 없으니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실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마이크가 없는 생목소리인데도 내공을 담은 소리는 좌중에 귀에 속속 박혔다.
“백일진 학생, 설하윤 학생, 그리고 특임반의 모든 학생분.”
말을 하던 유용이 무릎을 꿇었다.
쿵!
단상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특임반 학생들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쿵- 쿵-
전호량을 필두로 공동파의 3대 제자들도 전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지태경은 자신의 스승과 사형제들이 전부 무릎을 꿇자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릎을 꿇어……?”
아침에 스승이 원진에게 고개를 숙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잘못한 것은 사실이니 고개 정도는 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릎은 고개와는 그 무게 자체가 다르다.
무인의 자존심은 하늘처럼 드높다. 심지어 공동에서는 제자들을 고고하게 날개를 드높이는 학과 같은 존재라고 가르친다.
그런 공동의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 사형들이 단체로 무릎을 꿇는 장면은 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스승님, 사형.’
* * *
어젯밤.
“사숙, 정말로 그렇게 해야겠습니까?”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복마단원들을 한 자리에 모은 유용은 학생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무릎까지 꿇은 채로 말이다.
복마단원 중 두 번째로 항렬이 높은 지태경은 목에 핏대를 올린 채 대꾸했다.
“무릎까지 꿇고 사죄를 하라니요!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사형 말이 옳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죄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이것은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구하러 가기 싫어서 그 학생들을 놔둔 것도 아니고, 다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선택을 했을 뿐인데, 자존심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는 것은 말이 안 됐다.
유용은 불만을 터뜨리는 사질들의 말을 끊었다.
“무릎? 무릎을 꿇는 게 어렵나?”
“납득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납득이라……. 그래, 내가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복마단원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유용을 쳐다봤다. 검지를 들어 올린 유용이 말을 시작했다.
“첫 번째. 그들은 우리의 요청으로 우리를 도우러 온 사람들이다. 도움을 주러 온 이가 위험에 처했는데, 내버려 둔 것을 강호 동도들이 알게 된다면 우리 공동파는 얼굴조차 들고 다닐 수 없겠지.”
“…….”
복마단원 몇몇이 입을 옴짝달싹 움직였다. 유용도 그것을 봤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두 번째, 그들이 우리의 도움 없이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판단으로는 너희들의 선택이 옳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들 스스로 살아 나왔고 우리들의 선택은 틀린 것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한마디로 살아 나올 수 있는 이들을 버려두고 왔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아카데미의 교수…….”
“아니 그건 변명조차 되지 못한다.”
지태경은 그건 아카데미의 교수가 구하러 갔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하려 했지만, 유용의 단호한 표정에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왜 너희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스승이나 사숙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지? 너희들의 스승, 사숙이 아카데미의 교수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절대 아닙니다! 당시, 스승님과 사숙님들께서 몬스터 토벌에 나가셨다고 들었기에 연락을 취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세간에서는 공동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을 아카데미의 교수가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닐 것이다.”
유용의 말이 맞았다. 떠들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은 이 사건을 더욱 부풀려서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다.
“마지막, 너희들은 그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이다.”
“그,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정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나?”
“…….”
“숲의 마녀에게 잡혀간 순간, 곧바로 구출을 포기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구하러 가겠다고 한 학생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기까지 했지.”
복마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전호량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리눌렀다.
맞다.
자신은 숲의 마녀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구출을 포기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맞는 판단인 줄 알았다. 아마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그의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정말 그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었다.
“억울하겠지. 하지도 않은 생각들인데, 마치 네가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호도당하고 있으니.”
“예?”
“안다. 네가 정말로 그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음을. 다수를 위한 최선을 고려했음을.”
“사숙…….”
“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해 줄 것이라 믿는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세간에서는 공동은 도움을 주러 온 이가 위험해 처했을 때, 외면한 채 고개를 돌리는 간교한 무리라는 낙인을 찍겠지.”
복마단의 모든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너희들이 공동의 이름을 생각했었더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구해냈어야 한다. 아니! 구해내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
유용의 날카로운 말은 비수가 되어 그들의 가슴에 꽂혔다.
마지막 말을 마치고 잠시 뜸을 들인 유용은 부드럽게 목소리를 바꾸었다.
“난 너희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 같아도 너희와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
“예? 방금까지는 그렇게 하면 안 됐다고 말씀하셨…….”
“그것은 사문의 이름만을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 너희들의 목숨은 사문의 명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너희들이 곧 공동이기 때문이다.”
“사숙…….”
“하지만!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정파로서, 명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이라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리라.
“이래도 무릎을 꿇는 것이 어려운가?”
“아닙니다!”
사형제들의 목숨값이라고 생각한다면 무릎 한 번이 문제가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아니, 웃으며 절도 할 수 있다.
“흔히 무인에게 자존심은 생명이라 말한다. 너희들도 모두 무인이지.”
“맞습니다.”
“하지만 무인이기 이전에 너희들은 도사다. 도사란 무릇 신선이 되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쯤은 깃털보다도 가벼이 할 수 있어야지.”
신선과 무릎을 꿇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복마단의 인원들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용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뒤에서 자신과 똑같이 용서를 구하는 복마단원들을 흘깃 보며 무거운 한숨을 삼켰다.
어젯밤, 사질들에게 모질게 말은 했지만, 그도 무인이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어린 나이인 사질들은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는 않을 터인데……. 내 말에 따라주어 고맙군.’
저벅저벅-
누군가 유용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해 보니 부리부리하게 쌍꺼풀진 눈과 송충이처럼 진한 눈썹을 한 사내였다.
“카리스 교수……?”
“사과는 이만하면 됐습니다. 임무 설명할 시간도 없는데 얼른 일어나시죠.”
하지만 유용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교수라지만 지금 당장 카리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특임반의 임무 중 권한은 오롯이 원진만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백일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원진이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유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도 다시 한번 가볍게 목례를 취한 원진이 단상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번 임무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가장 먼저 이번 사건이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다행히 소규모 웨이브인 데다가 감숙을 지나는 몬스터는 전체의 1할밖에 되지 않죠.”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 1할의 규모가 얼마 정도 되나요?”
“2만 마리입니다.”
“……!”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학생들이 술렁였다. 평범한 인간도 2만 명을 상대하려면 끝도 없다. 하물며 몬스터 2만 마리라니.
학생들의 얼굴에서 핏기와 자신감이 동시에 사라졌다.
“2만 마리?”
“2만 마리는 좀 과한데. 어제 와일드 베어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우리 죽는 거 아니야?”
“재수 없는 소리는 집에 가서 거울 보고 해.”
그런 학생들을 보던 유용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물론, 저희 공동에서도 염치없이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대규모 전투는 전부 저희 공동에서 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여러분들은 조별로 나뉘어 저희 공동의 3대 제자들과 같이 추격과 처리를 전담할 겁니다.”
“추격이요?”
“네, 몬스터 웨이브에는 대개 무리 지어 사는 몬스터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죠. 여러분들은 상처 입은 우두머리가 전장에서 이탈할 때, 그 우두머리를 처리하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도망치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오라는 말이었다.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추격의 성공 횟수입니다. 그리고 평가 점수는 상대평가입니다.”
상대평가라는 말에 특임반 학생들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단 한 마리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조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실패했으면, 만점을 드릴 것이고 100마리를 처리하셨다고 하더라도 다른 조가 101마리를 처리했다고 하면 만점은 받지 못하겠죠.”
“채점은 공동에서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들의 담임인 단계홍 교수님께 부탁받은 사항입니다. 저희는 단순히 내용만 전달할 뿐이죠.”
유용이 말을 마쳤을 때,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속해 있는 조의 조원들은 전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이건 가능성이 있다.’
‘우리 조가 1등이야.’
무공 실력만 보자면 백일진이 압도적이라고는 하지만 몬스터를 추격하고 사냥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임무 시작은 언제 하나요?”
“지금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