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91
아카데미 담당 일진 91화
살루(殺樓)의 일급 살수 백십삼 호, 우조.
그의 인생은 언젠가부터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궤도로 흘러갔다.
언젠가 눈을 떠보니 부모는 차가운 주검이 되어 있었다.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들어보니 아랫집 포목점 송 씨의 짓이라더라.
그때가 몇 살이었는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 요동 거리의 어린 꼬마는 부모를 살해한 원수를 찔렀다.
‘아마 그게 처음이었지…….’
그 뒤로 거지 굴에 들어가 노비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졸지에 천애 고아가 되어버린 그를 받아줄 곳은 그곳밖에 없었으니.
거지 굴에서의 삶은 단조로웠다. 빌어먹고 얻어맞고, 빌어먹고 얻어맞고…….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어느 날, 무슨 이유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도 맞고 있었다. 이렇게 맞다가는 죽을 것 같아 손에 집히는 날붙이로 거지 왕초를 죽였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어느새 싸늘한 송장이 돼버린 왕초를 앞에 두고, 굶주린 어린 꼬마는 바닥에 엎드려 때 묻은 동냥 밥을 주워 먹었다.
슬슬 배가 불러오니 쓰러져 있는 왕초가 눈에 들어왔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온몸에 힘을 잃은 채 축 처져 있는 모습.
‘사람은 참 연약한 존재구나.’
생각해 보니 우스웠다. 산처럼 거대하던 왕초도 이런 조그마한 날붙이 하나에 ‘휙-’ 하고 쓰러진다는 것이.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삶에 대한 집착은.
그 이후로 거지 굴에서도 쫓겨났다.
왕초를 죽여 버린 동료와 살 수는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다행인 건 거지들이 자신들도 죽을까 봐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는 것.
콧수염도 자라지 않은 어린 소년은 세상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고, 당연히 그 누구도 소년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어갈 즈음, 누군가 찾아왔다.
환각일까.
죽은 아비의 얼굴과 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 사람은 원래 이름 대신 오백칠십이 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날 요동의 작은 소년은 다시 태어났다.
소년은 그렇게 살루의 살수가 되었다.
그 후로는 매일 같은 삶의 반복이었다. 의뢰가 들어오면 사냥에 나서는 것.
오백칠십이 호가 삼백 호가 되고 삼백 호가 백십삼 호가 되었을 때, 그는 일급 살수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피를 손에 묻혔고 살루를 위해 충성했다.
“그런데, 왜…….”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주저앉은 백십삼 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살루의 특급살수이자 살왕의 제자, 구서락.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백십삼호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역의뢰를 받았지?”
“……대가가 충분했고, 이 정도라면 받아들여도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서락이 탁자 위로 시선을 돌렸다. 탁자 위에는 가지각색의 보물들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값어치로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의뢰를 왜 루의 허락도 없이 받아들였냐는 말이야.”
“…….”
구서락은 아무런 대답을 못 한 채 눈만 껌뻑이는 백십삼 호에게 다가갔다.
“역의뢰에는 절차가 있다. 각 지역에 있는 정보원들을 통해 연락을 취한 다음, 상부의 결재를 받고 나서야 역의뢰는 성립한다. 하지만 네놈은 그러지 않았지.”
“그, 그건!”
“살고 싶었나? 네놈의 능력으로는 죽일 수가 없는 상대였나?”
“……알고 계셨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았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의심만 하고 있었는데.
아카데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문만 가지고는 백일진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살루에서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자신을 보낸 것이다.
“저를 미끼로 보내신 게 확실하군요.”
“차라리 눈치가 없고 일을 잘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왜, 하필 저였습니까.”
“네가 딱 그 정도니까.”
딱 그 정도.
백일진의 실력이 구서락이 생각한 정도라면, 죽일 수 있을 정도.
백일진의 실력이 생각 이상이라면, 어떤 방도라도 찾아 살아 나올 정도.
‘살행에 실패해도 내가 살아 나올 것이라 예상했나 보군.’
자신이 목숨에 집착한다는 것을 루에서는 미리 파악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러니 역의뢰를 받아서라도 살아 나온다고 생각했겠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하기야, 아무리 티를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업인 살수들을 완벽히 속일 수는 없었으리라.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은?’
지금 당장 자신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백일진에 대한 것을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 백일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감추면 살아남을 수 있나?’
그건 의미 없다. 이미 자신이 실패한 이상 일급 살수로는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문을 통해 백일진의 실력을 알아내려 하겠지. 정 안 되면 그냥 죽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5분, 10분 더 살 방법은 있어도 살아남을 방법 따위는 없었다.
‘숫제 도구가 따로 없군.’
가슴 한편에서부터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럴 거면 그냥 돌아오는 길에 도망쳐 버릴 걸 하는 깊은 후회가.
그랬다면 독이 퍼지기 전 한 달 동안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지금 죽일 겁니까?”
“아니지. 지금 당장 널 죽일 수는 없지.”
“그러면 살려주신다는 소립니까?”
“아니, 네놈은 다른 살수들 앞에서 본보기로 무참히 죽을 것이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한참 아무 말을 하지 않던 백십삼 호는 급발진을 하며 울분 섞인 말을 토해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억울하네. 이번 건의 의뢰인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 정도의 패물로도 역의뢰를 받지 못할 만큼? 그리고 일급 살수 하나를 처분할 만큼?”
“아니. 의뢰인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하지만, 우리 살루의 자존심만큼은 저딴 보석과 네 목숨이 열 배가 있더라도 상하게 할 수 없지.”
“그래서 제가 역의뢰를 받은 게 살루의 자존심을 긁었다?”
하, 말도 안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역의뢰 횟수만 몇 건인데.
‘그냥 평소에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겠지.’
살수임에도 목숨에 집착하는 모습이.
도구임에도 주제넘게 ‘생각’이라는 걸 하는 모습이.
사냥개를 보고 된장을 푸는 사냥꾼처럼 점점 커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잘라내려고 하는 것이다.
‘삶에 집착하는 살수는 언제고 배신을 할 거라 생각할 테니까.’
모든 것을 체념한 백십삼 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언제 죽일 겁니까.”
“어차피 죽을 놈이니 그것까진 알려주도록 하지. 네놈은 한 달 동안 뇌옥에 갇혀 있을 것이다. 집행은 그다음이다.”
한 달이라, 어차피 한 달이 지나면 자신은 몸속의 독기가 퍼져 죽는다.
‘구하러 올까?’
일말의 기대였다. 자신이 수족이 되겠다 했으니 구하러 오지 않을까 하는.
‘아니다, 무슨 수로.’
이곳을 찾아낼 방법도 없을뿐더러, 자신을 구하러 올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당시에 수족이 되니, 받아들이니 한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이루어진 역할극일 뿐.
어차피 자신도 독 때문에 그런 거지, 진짜 충성을 다 할 생각은 없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나를 구하러 온다면, 그때는 정말 충성스러운 개가 되리라.’
* * *
해청은 별채에서 쉬고 있는 5조원들을 찾아왔다.
“오크 보스는 ‘괴물의 입’이라는 동굴로 도망쳤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 괴물의 입?”
해청의 말을 듣던 남궁종수가 정기용의 입을 가리켰다.
“괴물의 입은 저기도 있는데.”
“뭐야?! 이 개새끼가!”
유난히 누런 이가 콤플렉스였던 정기용은 남궁종수의 말을 듣고 괜히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사형, 참아요.”
“어린 애가 뭘 알겠어요.”
“저 봐, 도사가 저렇게 욕지거리를 하는데 괴물의 입이 아니고 뭐야.”
복마단원들이 몸을 움찔거리는 정기용을 막는 동안, 남궁종수는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정기용을 보고 이죽거렸다.
“너 진짜 뒤질래?”
“죽여봐! 입만 살아서는. 아 그래서 이빨이 노래졌나?”
“아아아아아- 이거 놔!”
그들 사이에 끼어 있던 해청은 식은땀을 흘리며 황보수정에게 어서 좀 말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종수, 그만해. 일단 얘기부터 들어보자.”
“쯧.”
차마 황보수정의 말까지 무시하지는 못하겠는지, 남궁종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정 소협, 죄송해요.”
“흥, 조원 관리 좀 잘해라.”
“뭣……!”
“알겠어요.”
다시 입을 열려는 남궁종수를 가볍게 제지한 황보수정이 고개를 돌려 해청에게 턱짓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괴물의 입이라는 동굴로 가야 한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언제까지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내일까지는…….”
“알겠어요.”
말을 마친 황보수정이 정기용에게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내일 출발할 건데 어떻게 하겠냐는 의미였다.
사실상 정기용이 가기 싫다고 하더라도 이미 특임반 5조가 가기로 한 이상 선택권은 없었지만, 체면을 차려준 것.
그것을 모르지 않는 정기용은 황보수정에게 조금 전처럼 반말지거리는 하지 못하고 공대로 말했다.
“알겠소. 그러면 내일 아침 이곳으로 오겠소.”
황보철수는 정기용을 필두로 별채를 나가는 복마단원들을 보면서 말했다.
“근데 공동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입이 거칠지? 도사들 맞아?”
“남부 지방에는 원래 몬스터가 자주 나오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거칠어져서 그래.”
“아-”
모용석의 설명을 들은 천마검이 코웃음을 쳤다.
-공동의 말코 자식들은 원래부터 입이 걸었는데, 저게 무슨 개소리야.
‘너는 왜 입이 거칠지.’
-흥, 나는 마교라서 그런다. 불만 있나.
가끔 보면 천마검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존스랑 놀면 잘 어울리겠어.’
* * *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하해파의 장원은 어수선했다. 아침잠이 많은 백일진마저 눈이 절로 뜨일 정도였으니.
‘으.’
애써 눈을 비빈 백일진은 대충 마른세수를 한 다음 문을 열고 나왔다. 약속 장소로 걸어가니 먼저 나온 황보수정이 목에 핏대를 높여가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안 됩니다. 저들은 일반인이잖아요.”
“일반인이 아니라, 저희 하해파 제자들입니다.”
황보수정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군청색 옷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사체 처리반?’
그들의 옷 뒤에는 사체 처리반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내공이 거의 없는 녀석들이군.
‘그런가.’
그렇기에 황보수정이 반대를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해청의 고집은 완강했다. 저들도 하해파의 제자들이니 무림인이라는 것. 그리고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저들이 꼭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다.
해청도 사실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못마땅했다.
어차피 스크롤을 사용했을 때, 안에 있는 이들이 전부 죽어버린다면, 괜히 사체 처리반을 희생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지만 문주인 야진의 말을 들은 해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의심할 테니까.’
결국, 해청의 고집을 꺾지 못한 황보수정이 마지못해 턱을 주억였다.
“하, 그러면 저들의 안전은 저희가 보장할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준비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해청이 가장 먼저 앞장섰다.
“이쪽으로 산을 타고 가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네요?”
“이렇게 가까워도 되나?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
근교 밖으로 나와 얼마 걷지 않아 괴물의 입이라 불리는 동굴이 보였다. 동굴의 외관은 정말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와, 진짜 괴물의 입이라는 이름 잘 지었다.”
“그러게, 진짜 들어가기 께름칙하게 생겼네.”
“조용히 하고 다들 모여봐.”
황보수정은 5조원들을 전부 모아두고 각자 역할을 부여했다.
“종수랑 석이가 몬스터들을 모아오면 하윤이, 철수, 일진이가 처리를 할 거야. 나와 엘리아 하이린은 뒤에서 원거리 지원을 할게.”
“알았어.”
“응.”
각자 할 일을 되새긴 그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동굴에 발을 내디뎠다.
* * *
동굴 안으로 그들이 전부 들어갔을 무렵.
누군가 동굴 주변의 수풀을 헤치며 나왔다. 부리부리한 쌍꺼풀과 각진 턱, 진한 눈썹과 높은 콧대를 가진 그는 기초 마법학 교수 카리스였다.
카리스는 한동안 동굴 주위를 서성이더니 팔짱을 끼고 입구를 바라봤다.
“이쪽이 괴물의 입인가?”
당장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괴물의 입이라는 동굴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매우 깊고 넓으며 몬스터 또한 부지기수라고 들었다.
‘혹시나 다치면 어떡하지?’
만일, 자신의 조카들이 조금이라도 다쳐서 나온다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카리스는 동굴 입구로 오른발을 집어넣었다.
‘아니야, 참아야 해.’
그래도 명색이 교수라는 작자가 따라 들어가서 임무를 도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입구에 집어넣었던 오른발을 다시 뺀 카리스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후- 이게 자식 키우는 기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