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93
아카데미 담당 일진 93화
보스 몬스터의 시체에서 수도 없이 증식하는 거미들을 본 정기용이 벽을 짚고 일어서려 했지만, 웬일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긴 또 어디고, 몸은 또 왜 이래, 진짜 개 X 같네.’
꾸물꾸물-
분열되어 새롭게 나타난 거미들은 쓰러진 정기용 쪽으로 스멀스멀 다가갔다. 우글우글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사냥하러 오는 모양새였다.
“씨X, 이거 완전히 X 된 것 같은데?”
“입 좀 다물어, 상스러운 욕은 공동파 특징이냐?”
“너나 아가리 닥치고 빨리 와서 나 좀 구해줘! 몸이 잘 안 움직여!”
징그럽게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거미들을 등지고 당장에라도 남궁종수 쪽으로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몸은 제어장치를 잃은 기계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믿을 건 남궁종수밖에 없었다. 정기용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거미들의 모습에 남궁종수를 보채기 시작했다.
“야, 나 이러다가 죽게 생겼어.”
“하, 진짜 귀찮게 하네. 도움은 안 되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
곧바로 다가온 남궁종수는 대충 검기를 흩뿌려 정기용 주위에 있는 거미들을 도륙 내고는 그를 업었다.
“왜 못 움직이는데.”
“몰라, 힘이 안 들어가.”
“하, 됐고 일단 백일진부터 찾자.”
짧은 한숨을 내쉰 남궁종수는 정기용을 업고는 사방에서 덮쳐오는 거미들을 베어내며 백일진이 있던 곳을 찾아갔다.
“백일진! 들리나!”
“백일진!”
정기용과 남궁종수가 번갈아 가며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 공격도 거미가 아닌 다른 것을 노린 것 같았는데…….’
그런 남궁종수의 생각은 정기용의 고함에 의해 이어지지 못했다.
“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옆에 보라고! 씨X놈아!”
“뭐, 뭐야 저것들은?”
옆으로 고개를 돌린 남궁종수는 눈으로 전부 담기지도 않을 만큼의 거미 떼가 우글우글 뭉쳐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 채 소리를 내질렀다.
남궁종수에게 업힌 정기용은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허리춤을 뒤적였다.
‘이런 씨X, 내 구름의 검 어디 갔어!’
기절한 상태로 업혀 오느라, 자기 검이 보스의 배를 뚫는 데 이용됐다는 걸 몰랐던 정기용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응원밖에 없었다.
“나, 남궁종수 파이팅! 플레이, 플레이 남궁종수!”
“하, 쓸모없는 자식.”
정기용은 그런 남궁종수의 어깨를 툭 내려치고는 정면 쪽으로 손짓했다. 거미들은 정면에서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씨X, 저거 보라고…….”
“저긴 또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 공간만큼은 휑했었는데, 지금은 사방에 거미가 가득 차 시야를 방해할 정도였다.
“하, 이건 진짜 안 쓰려고 했는데.”
“뭔데.”
“입 다물고 있어. 집중해야 하니까.”
남궁종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것과 동시에 자신의 단전 안에서 내공들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고오오-
그의 몸에서 군청색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그의 눈빛도 푸르게 타올랐다. 어느새 남궁종수의 주위로 마치 천애의 폭풍과도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정기용은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남궁종수의 기운을 보고 충격에 빠진 듯 입을 벌렸다.
‘남궁종수가 이렇게 강했다고? 분명히 태경이에게 졌다고 들었는데?’
그는 자신이 남궁종수랑 겨룬다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이가 자신보다 대여섯 살은 더 어렸기에 은연중에 무시하는 감정도 있었다.
‘분명히 와일드 베어와 싸울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뭔가.
남궁종수의 흉포한 모습은 마치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육식동물 같았다. 먹이사슬의 연쇄에서 도태된 피식자들을 사냥하는 포식자의 자태.
‘어린 나이에 이런 무위를 뽐낼 수가 있다니…….’
남궁종수의 검은 거칠었고 또 사나웠다. 그의 검이 닿는 곳엔 거미들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반죽 덩어리가 되어 나뒹굴었다.
‘그럼 이런 남궁종수보다 강하다는 백일진은 얼마나 강한 거지?’
* * *
‘저쪽인가?’
빠르게 내달리던 백일진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천마검을 던졌다.
“나와.”
쉬이익- 소리를 내며 날아가던 천마검이 뭔가에 막힌 듯 힘을 잃고 그 자리에 떨어졌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몰라도 돼.”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누군가 몸을 드러냈다. 군청색 사체 처리반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위에는 은은한 바람이 돌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구서락. 살왕 제이드의 제자이자 살루의 특급 살수였다.
“몰라도 돼는 반말이고.”
“…….”
“근데, 너 어떻게 살아 있지? 분명히 죽었어야 했는데.”
백일진은 대답 대신 신형을 움직여 남자의 뒤로 향했다. 그는 어느새 다시 주워 든 천마검을 역수로 쥔 채 남자의 목을 찔러갔다.
“그것도 몰라도 돼.”
천마검이 목에 닿을 찰나, 로브를 입은 남자의 몸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너 진짜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넌 진짜 말이 많구나.”
당황하지 않은 척 대화를 나누고는 있었지만, 로브를 입은 남자의 등허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씨X, 진짜 죽을 뻔했어.’
저 검의 검날이 무뎌서 다행이지, 만약 멀쩡했다면? 자신의 머리통은 차가운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저번에 확실하게 죽였어야 했어. 일급 살수를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일급 살수? 그때 그 우조를 보낸 게 네놈이냐?”
“우조라……. 아, 백십삼 호의 이름이 그랬었지.”
피식-
그를 응시하던 백일진이 피식 웃었다.
‘웃어? 이 개새끼가…….’
백일진은 그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조는 어디 있지?”
“뇌옥에서 썩고 있겠지.”
“죽이지는 않았나 보군.”
“넌 지금 죽을 놈이 궁금한 게 참 많구나.”
구서락은 지금 당장에라도 백일진을 죽이겠다는 듯 살기를 흩뿌렸다. 하지만 되레 공중으로 더 높이 날 뿐 막상 달려들지는 않았다.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나?”
“그게 무슨 소리…….”
휘익-
백일진이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 그의 앞으로 던졌다.
“흐이익!”
그것은 복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배에 검이 꽂혀 있다는 것.
“인사 나눠.”
“이, 이게…….”
“아, 참 그 검은 주인이 있으니까, 돌려주고.”
저벅저벅 걸어온 백일진이 복면인의 몸에 박혀 있던 구름의 검을 뽑아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 다가오는 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언제…….’
구서락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왜. 기다리던 사람이 아닌가.”
박혀 있던 검이 뽑힌 복면인의 몸이 움찔거리며 흔들렸다. 동시에 그의 귀에서 쌀알만 한 종이가 떨어졌다.
‘종이?’
백일진은 뽑아낸 구름의 검을 털면서 그것을 주워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어떻게 특급 살수를……!”
“공동 천장에 쥐새끼처럼 붙어 있더군.”
특급살수 두 명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던 백십삼 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살려달라고 빌면서 눈물 콧물 흘리던 모습도.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말도 안 된다.
특급 살수란 500회 이상의 살행을 한 살수, 살루 내에서 자신을 포함 특급 정도의 실력자는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근데 이런 애송이한테 이렇게 쉽게 죽는다고?’
무언가 수작질을 한 게 분명하다. 아직 학생인 주제에 실력으로 특급 살수를 어찌했을 리가 없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하자. 이 상황에서 수작질을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구서락, 냉정해져라. 그냥 저 녀석이 강한 거다.’
무슨 수작을 펼쳤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눈으로 보인 실력이 너무 확실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암습이 실패한 이상 일대일로 붙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암습에 특화된 살수. 정면 승부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먼저 공격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구서락이 손을 뻗어 바람의 칼날을 쏘아 보냈다.
“곱게 뒤져라!”
송곳처럼 뭉친 바람이 쇄도해 그의 목을 노려왔다. 연거푸 투사되는 바람의 칼날은 사방을 점해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생각보다 위력이 강하군.
천마검의 말마따나 암살에 특화된 그의 마법은 위력과 속도에 치중되어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백일진은 바람의 칼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최대한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에 스친 상완과 허벅지가 깊게 베였다.
‘음.’
-몸을 띄워라.
천마검의 말을 들은 백일진은 제자리에서 몸을 띄워 구서락의 공격을 피해냈다.
-아킬레스건을 잡고 바닥에 내려쳐 중심을 잃게 한 후 목을 찍어라.
하지만 다음 천마검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구서락이 눈으로 잡기도 힘든 속도로 허공을 배회하며 몸 주위로 바람을 방출했기 때문.
콰과광-
동굴 안에 시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라 그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성공했나?’
그 순간, 서늘한 감각이 구서락의 목덜미를 덮쳐왔다.
흙먼지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검은 구서락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가 날아가니 백일진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났다.
“할 수 있는 건 다 끝났나.”
털썩-
구서락이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거지?”
“미,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뭐?”
“내가 잘못했다……. 임무를 수행할 욕심에 그랬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백일진은 어이가 없어 행동을 멈췄다.
‘천마검, 살수들은 원래 죽음조차 불사한다고 하지 않았나.’
-……황당하군, 나도 이런 놈들은 처음 본다. 살루라는 곳의 살수들은 하나같이 얼빠진 놈들만 모여 있나 보군.
구서락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붉어진 그의 홍조와 격앙된 숨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의 오열 안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
“…….”
쿵쿵쿵-
구서락이 바닥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다.
‘바닥에 머리를 찧는 것도 똑같군.’
백십삼 호도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었다.
“살려만 주면 하라는 대로 할게. 제발…….”
바닥에 머리를 찧어대던 구서락은 급기야 백일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제발,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딸이 있어…….”
-그냥 죽여라.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
‘흠.’
백일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목에 겨눴던 검을 슬며시 내렸다.
그 순간, 눈물을 흘리던 구서락의 눈에 광채가 서렸다.
“고맙다…….”
동시에 구서락은 품에서 총 모양 아티팩트를 꺼내, 백일진의 가슴에 겨눴다.
타앙-
“믿을 걸 믿어라. 이 새끼야. 뒤져!”
타앙-
타앙-
너무 긴장해서일까, 장전된 총알을 전부 다 쓰지 못하고 방아쇠를 쥔 손가락에 힘이 풀린다.
아니, 긴장해서가 아니다.
손가락뿐 아니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발만 더 쏘려고 하는데, 눈앞이 어지럽다.
“어……?”
구서락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구름의 검을 바라보았다.
쿨럭-
이게 아닌데?
도대체 언제……?
어느새 다가온 백일진이 그의 눈을 감겼다.
* * *
남궁종수의 몸을 둘렀던 푸른 기운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는 처음과 같은 속도로 거미를 으깨고 있었다.
‘남궁종수…….’
목덜미에서 흐르는 흥건한 땀만이 그가 무리하는 중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다.”
“씨X, 아직도 몸은 안 움직여?”
“미안하다.”
평소 욕을 즐겨 하지 않는 남궁종수의 입에서도 걸쭉한 욕이 튀어나오는 상황.
“왼쪽!”
“이런 씨-X!”
정기용은 남궁종수가 미처 보지 못한 거미의 방향을 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곧 전방에 있는 거미들은 다 뚫는다.”
“헉, 헉.”
어느새 남궁종수의 얼굴은 땀과 피, 비비크림이 뒤엉켜 있었다.
‘싸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애써 숨을 돌리던 그의 얼굴 쪽으로 거미 하나가 달려들었다.
“으악-”
“남궁종수!”
남궁종수의 등에 업혀 있던 정기용은, 얼굴로 달려드는 거미를 낚아서 바닥에 던져 버렸다.
“정신 차려! 왼쪽!”
“이런 씨-X!”
남궁종수의 왼쪽 옆구리에 거미가 달라붙었다. 곧바로 떼어내긴 했지만, 이미 물렸는지 피가 새어 나왔다.
“크으윽.”
영악한 거미들은 피가 새어 나오는 남궁종수의 옆구리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아이 씨! 미치겠네, 진짜!”
그렇게 거미들과 나뒹굴고 있을 때, 뒤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뭐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