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96
아카데미 담당 일진 96화
카리스는 당장에라도 싸울 것처럼 마법진을 더욱 거세게 회전시키고 흉포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카리스 교수.”
하지만 유용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부탁드리겠소.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오. 그러나 적어도 절차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소?”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이 작자는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
유용은 카리스의 눈을 보았다. 반쯤 돌아버린 눈, 강압적으로 말리려고 하다가는 필시 싸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장문인은 하해파 문주를 넘기지 말고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문인이 걱정하는 것은 카리스가 야진을 사로잡아 공동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것일 터.
하지만 지금 카리스는 공동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야진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유용은 침음성을 삼키며 생각했다.
‘차라리 여기서 문주를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차피 문주가 죽어버린다면 사로잡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결론이 섰다. 사실 야진을 찢어 죽여 버리고 싶은 건 자신도 똑같았다.
감히 자신의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공동의 3대 제자를 몬스터의 밥으로 던지려 했으니.
‘그런데 이게 맞는 건가?’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단숨에 죽여 버린다면 그것이 사파와 다를 게 뭔가.
절차를 지키고 명분과 도리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정파가 아니던가.
“카리스 교수, 그대 말은 잘 알겠소. 나도 이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그대와 백 번 같소. 근데 아까도 말했듯 절차라는 게 있지 않소. 그리고 만약 야진 문주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일을 볼 셈이요?”
유용은 이 말을 듣고도 카리스가 야진을 죽이겠다고 한다면 그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뜻이 강고하다면 말릴 방법이 없겠지.’
유용의 말을 들은 카리스가 주위를 훑었다.
장원 주위에는 하해파의 문도들, 아카데미의 학생들, 공동파의 3대 제자들이 한데 모여 자신을 보고 있었다.
‘후우-’
하해파의 문도들이나 공동파 제자들 따위는 보든 말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다르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그는 회전하던 마법진을 꺼뜨렸다. 그리고 유용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특임반의 지원은 여기서 끝입니다. 앞으로 몬스터 웨이브니 뭐니 하는 공동의 일에 아카데미 차원에서는 아무런 지원이 없을 겁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소.”
“공동은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두 개의 빚을 졌습니다. 이 또한 명심하길 바랍니다.”
“알겠소. 보상은 확실히 처리하도록 하겠소.”
말을 마친 카리스가 특임반 학생들을 전부 데리고 하해파 장원 밖으로 나섰다.
지태경은 잠시 멈칫하더니 유용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근데 교수님, 그럼 저희 임무는요?”
“…….”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카리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 * *
이른 아침.
[마법 & 무림 아카데미 – 총장실]총장실 한편에 마련된 긴 회의 테이블에 앉은 교수들은 심경이 복잡한 얼굴을 하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카리스 교수는 무슨 권한으로 특임반의 임무를 중지시킨 겁니까.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안 그렇소, 사마진 교수?”
역사학 교수, 권위의 니어만이 얼굴이 빨개진 채 말했다.
“…….”
평소의 사마진이었다면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귀찮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열변을 토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그새 친해진 건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카리스를 징계하라는 말이 섣불리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카리스가 사고 칠 수 있도록 시간을 바꿔준 것이 자신이기도 하고.
“왜 말이 없소?”
“……일단 다른 교수님 의견부터 들어보죠.”
니어만은 자신과 의견이 같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마진이 별말을 하지 않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데 카리스 교수는 거길 왜 따라간 거래요?”
“그러게요, 특임반 담임도 아니면서.”
“단 교수님은 이유를 아시나요?”
특임반 담임인 단계홍에게로 교수들의 시선이 몰렸다.
사실, 단계홍은 카리스가 학생들을 따라갈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을 하고 말했다.
“나라고 그걸 어찌 알겠소. 제자들이 걱정되었나 보지.”
“그럼 단 교수님은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카리스가 전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단계홍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른쪽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니, 공동에서도 인정했으니 사실이겠지. 그래서 나는 카리스 교수가 적절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소.”
“단 교수님!”
마도구학 교수인 벨리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단계홍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벨리케 교수, 소리치지 않아도 잘 들리네만? 내가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어.”
단계홍의 눈빛을 받은 벨리케의 몸이 움찔하더니 도로 제자리에 앉았다.
“소, 소리를 지른 것은 죄송합니다. 그러면 카리스 교수에 대한 처분은…….”
“그건 내 생각이 그렇다는 얘기고, 결정은 내가 할 일이 아니지.”
말을 마친 단계홍이 상석에 있는 여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카데미 총장, 카르도 마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교수들을 배려하는 방법이었다. 그녀가 나서는 순간, 교수들은 자연스러운 회의를 하지 못할 테니.
교수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회의 도중 그녀에게 질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그녀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리스 교수는 명백한 월권행위를 저질렀으나, 아카데미 학생을 구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등의 공도 있으므로 이번 일은 감봉 및 사회봉사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여 다음에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과중한 징계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마진을 포함한 몇몇 교수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과하게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쪽은 미간을 찡그린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카르도 마진의 말을 어길 수는 없는 법. 교수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 3학년 특임반 교수인 라트라제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면 1학년 특수 임무반 학생들의 성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흠, 그러게요.”
“임무를 수행해야 뭔가 평가를 할 텐데.”
다른 반 같았으면, 학장인 아르무트나 나혁중이 결정할 문제였다.
하지만 특임반은 마법학부 소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공학부 소속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이 생길 경우, 결정하기가 번거로웠다.
그나마 가장 발언권이 강한 1학년 특임반의 담임인 단계홍이 말했다.
“기말고사 성적으로 중간고사를 대체해야겠지.”
“그러면 다른 학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텐데요.”
“2, 3, 4학년 학생들처럼 개인 임무를 부여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안 될 일일세. 1학년들이 단체로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를 모르나?”
1학년 학생들이 단체로 임무를 부여받는 이유는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단체 생활을 통해 협동심을 기르기 위함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경험 없이 개인 임무를 할당받았다가는 임무에 실패하거나 임무 도중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질 테니.
“난도를 낮춰서 개인 임무를 부여하는 건…….”
“간단한 일이라면 임무가 아니라 심부름이지. 그렇게 하면 다른 학년 학생들의 불만이 더 커지지 않겠나.”
“그건 그렇죠.”
각 학년의 특임반 교수들이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의 의견만 내세우자, 지켜보던 아르무트의 입이 열렸다.
“제가 여기서 낄 건 아니지만, 한마디 더 해보자면 월말마다 개인 임무 하나씩을 부여하는 건 어때요? 아까 라트라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난도는 낮춰서요. 기말고사까지는 3개월 남았으니 3개의 임무를 수행하는 거죠.”
“음…….”
꽤나 괜찮은 제안이었다.
“임무는 누가 부여하죠?”
“필요한 교수들이 단계홍 교수님을 통해 의뢰하도록 하죠. 그러면 단 교수님이 학생의 특성에 맞춰서 임무를 부여하는 거예요.”
단계홍은 턱을 부여잡고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흘러간다면 자신이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것 아닌가.
‘뭔가 귀찮아질 것 같은데…….’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던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감숙 근처 객잔에 묵고 있던 학생들은 서둘러 방에서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차가운 녹차를 홀짝이며 무게를 잡은 채 창문 밖을 바라보는 지태경에게 다가온 신입생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태경 선배 얼굴 좀 풀어요. 공동에 책임 안 묻겠다잖아요.”
“공동에서 막대한 보상을 뱉어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그러던 와중에 어떤 학생이 태블릿을 보고 소리쳤다.
“뭐야, 공지 나왔는데 특임반 중간고사는 여기서 끝이라는데?”
“뭐? 그럼 아카데미에 돌아가야 해?”
“아, 아쉽다. 보스 몬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꼭 보고 싶었는데.”
임무다운 임무 한 번 수행하지 못한 학생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크리스는 그 말을 한 신입생의 뒤통수를 내리갈겼다.
퍼억-
“와일드 베어 보고 질질 싸던 놈들 맞아?”
“악! 왜 때려요. 그때는 처음이라 그랬고, 진짜 제대로 임무를 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크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고는 신입생들에게 핀잔을 시작했다.
“미친놈들, 운 좋은 줄 알아. 나 때는 말이야, 임무에 나간 전원이 부상당했고, 세 명이 죽었어. 다섯 명은 불구가 됐지. 특임반 2학년 라스틴 알지? 걔가 왼손이 왜 없는 줄 알아? 엘리게이터 맨한테 잡아먹혀서 그래.”
크리스의 말이 길어지자 학생들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시작됐다.”
“크리스 형은 꼰대 기질이 너무 심해요.”
“맞아요, 요즘은 나이가 벼슬이 아니에요.”
“뭐, 뭐야?!”
다른 신입생들까지 가세하자 크리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꼰대라니.
“됐고, 오늘 술이나 사요. 뒤통수 값으로.”
“끄응.”
신이 난 남궁종수는 특임반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크리스가 술을 산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야! 백일진 너도 술 마시러 갈 거지? 크리스 형이 산대.”
백일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할 게 있다.”
“뭐? 이제 임무 끝났는데 뭐 할 게 있어. 설마 너 여자 생겼냐?!”
“아니다.”
“뭘 아니야, 여자 생겼네!”
남궁종수는 요란스럽게 소리를 질러댔고, 그 말을 들은 엘리아와 황보수정의 귀가 움찔거렸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온 엘리아와 황보수정이 백일진에게 캐물었다.
“야, 백일진. 너 진짜 여자 생긴 거야?”
“일진아, 아니지?”
“아니다.”
백일진은 남궁종수가 또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다음 주까지 공강이라고 그랬나.”
“응. 너 설마, 그동안 안 오게? 내일 우리 세가에 갈 건데?”
“응.”
“야!”
그는 방문을 닫는 것으로 남궁종수와의 대화를 마쳤다.
‘정신 사납군.’
방으로 들어온 백일진은 대충 짐을 아공간에 던져 넣고 창문을 열었다. 창틀에 있던 먼지가 바람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하루밖에 보지 않은 녀석인데, 정말 구하러 갈 생각이냐?
‘가야지.’
천마검은 그 살수 녀석을 구하러 가는 백일진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죽을 녀석이고 하루밖에 보지 않은 녀석인데 뭐가 예쁘다고 직접 구하러 간다는 말인가.
-위험할 수도 있다. 저번에 그 녀석들은 살수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녀석들이었지만, 제대로 된 살수는 다르다.
‘상관없다.’
-그리고 위치가 어딘 줄 알고 간단 말이냐.
‘대충 짐작 가는 곳이 있다.’
그렇게 말한 백일진은 품에서 웬 쌀알만 한 종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종이 끄트머리에는 범인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요동 요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