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02)
탁.
문을 닫고 마유즈미 선생이 사는 관사 내부로 들어선다.
세계 최고의 시설이라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는 슈오우 영웅 학원답게 교관 관사 내부는 고급 아파트와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술과 음식 냄새에 찌들었다는 거지.
“미, 미안해요, 김 군. 선생님이 메시지를 이제 확인해서······. 에헤헤헤★”
분홍색 머리를 긁적이면서 해맑게 웃는 마유즈미 선생님.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가슴이 흔들린다.
[야 파트너. 네 교관. 이런 사람이었냐?]충격받은 것 같은 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아차차, 선생님 정신 좀 봐. 우선 환기부터 하고 올게요!”
본인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황급히 베란다 창문을 열어 제끼는 마유즈미 선생.
밖에서 바람이 들어오자 그제야 술 냄새가 좀 빠지는 것 같다.
“김 군.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 선생님이 손님 대접용 음식이라도 조금 내올 테니까요!”
마유즈미 선생이 권한 자리에 앉는다.
“앗, 뜨뜨!”
와장창! 콰광!
부엌에서 마유즈미 선생의 비명과 함께 애니메이션 효과음이 들린다.
누가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저런 거까지 재현해놓다니.
말세다, 말세.
[저 사람, 먹을 수 있는 걸 만드는 거겠지? 아니 그것보다. 저런 사람을 요리부 고문으로 앉혀도 괜찮은 거냐?]흑태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마유즈미 선생은 오랜 독신 생활로 요리 실력이 제법이라는 설정.
덜렁대는 성격이 문제라서 그렇지 음식 자체는 먹을 만한 수준으로 만들 거다.
“자! 음식 완성됐어요! 오코노미야키예요!”
그게 술안주라는 게 문제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철판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코노미야키가 올려져 있다.
탁, 서걱.
마유즈미 선생이 쇠주걱으로 오코노미야키를 반으로 가른다.
콸콸콸.
그녀가 맥주잔 용도로 쓰이던 유리잔에 콜라를 따른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요! 김 군!”
주는 건 먹어야지.
젓가락을 들어 오코노미야키를 먹는다.
입안에 짭짤한 소스와 쫀득한 밀가루, 돼지고기의 맛이 어우러져 감돈다.
[맛있냐?]‘맛있네.’
맛있다.
대학교 다닐 때 대학로 앞 상가 일식집에서 팔던 오코노미야키보다 훨씬 맛있다.
이집 요리 잘하네.
콜라를 마신다.
“선생님의 요리, 어떤가요?”
마유즈미 선생님이 분홍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묻는다.
“맛있네요.”
내 말에 마유즈미 선생의 안색이 밝아진다.
그녀가 붉어진 양 뺨을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다행이에요. 선생님, 실은 다른 사람한테 요리를 대접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쩔까 걱정했어요. 후후. 김 군은 겉으로는 까칠해 보여도 상냥한 생도네요! 칭찬 도장 10개 찍어주고 싶어요!”
원래 저렇게 오버하는 사람인 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부담스럽다.
[으으. 파트너. 파트너 담임 교관 좀 이상한 거 아냐?]흑태자마저 기겁할 수준.
탁.
마유즈미 선생이 양손으로 탁자를 치면서 눈을 반짝인다.
“그래서, 김 군. 상담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선생님이 전부 다 들어 줄게요. 선생님은 언제나 생도 편이니까요! 말해 봐요.”
“제가 요리부 창설을 준비 중인데 선생님한테 고문 교관을 좀 부탁할까 해서요.”
“할게요! 요리부! 재밌어 보여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마유즈미 선생.
[저렇게 쉽게 넘어와도 괜찮은 거냐? 파트너. 네가 자신 있는 이유가 있었구나?]흑태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유즈미 선생에게 고문 교관 서류와 펜을 건넨다.
“이렇게, 이렇게. 됐다! 작성 끝났어요!”
마유즈미 선생에게 서류를 건네받았다.
이제 다 끝났다.
[축하해. 해냈구나. 그런데 파트너, 정식 부활동 승급까지는 숙려 기간이 필요하다며?]그것도 무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휴대폰에 저장된 세이라의 연락처를 찾는다.
이제 이사장에게 연락할 시간이다.
*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실.
오늘도 전담 비서인 리츠코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긴 채, 말차를 홀짝이며 콧노래를 흥얼대고 있는 세이라.
본인의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의자에 앉은 세이라가 버릇처럼 다리를 까딱까딱하고 있다.
하얀 니삭스로 감싸인 그녀의 다리는 의자 위에서 아무리 까딱여도 바닥에 닿지 않지만, 세이라는 이미 이 체형에 익숙해진 상태.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한다.
“응? 누가 이 몸한테 연락한 거지?”
그녀가 업무용 번호가 아닌 개인 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중에서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학생회장 아리스와 협회장 이치로 정도.
“설마 꼬마인가?”
두근.
세이라의 얼굴이 붉어지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기대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가득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입술을 깨문다.
“으으, 주책이니라. 주책······.”
짝, 짝.
세이라가 양손으로 가볍게 뺨을 두드리면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켠다.
[이사장님. 부활동 창설 요건 전부 완료했습니다. 승인 부탁드립니다.]멈칫.
세이라의 손이 멈춘다.
스윽.
세이라가 손을 터치하자 방금 김덕성과 나눴던 메시지가 나타난다.
“부활동이라······. 꼬마가 아까 이 몸한테 마유즈미의 방을 알려달라는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마유즈미 선생과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나 보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세이라가 황급히 고개를 흔든다.
“으으으, 정말 맹랑한 꼬마인지고······.”
세이라가 신음을 흘린다.
얼굴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그가 야속하다.
그가 보고 싶다.
“이, 이 몸이 지금 무, 무슨 생각을······!”
세이라가 화들짝 놀란다.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아리스와의 대화에서 스스로의 연심을 느낀 이후.
김덕성과 대화할 때마다 자꾸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 세이라였다.
방금 그와 메시지를 나눌 때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려서 그녀 본인도 놀랄 정도.
“이렇게 말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렇다고 그의 부탁을 안 들어줄 수도 없다.
지금 들어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녀가 사랑했던 그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있을 때 최대한 해주고 싶다.
그가 바라는 거라면 무엇이건.
다시는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으므므므므므므······.”
세이라가 고개를 흔든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마음이 제멋대로 폭주하는 걸 느낀 세이라가 미간을 좁힌다.
“나쁜 꼬마 같으니······.”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내려다 멈칫한다.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세이라의 손이 멈칫한다.
그와 통화해도 괜찮을까?
“전화 정도는······. 걸어도 괜찮겠지.”
조심스럽게 연락처 어플의 통화 버튼을 누르는 세이라.
[이사장님]통화 연결음이 끊기고 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세이라의 맥박수가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추면서 평정을 가장하며 말한다.
“으, 음. 그래. 부활동을 창설하고 싶다고?”
[예. 원래대로라면 임시 부활동을 정식 부활동으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하지만······.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요. 부탁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별거 아닌 부탁.
하지만 세이라의 얼굴은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빨갛게 변해 있었다.
“무, 물론 당연하지! 이 몸이 들어줄 수 없는 부탁 따위는 없느니라!”
탕탕.
세이라가 빈약한 가슴을 치면서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의 귓가에 김덕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주신다는 거죠?]“물론, 서류만 이 몸한테 보내주거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뚝.
통화가 끊어진다.
감사합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세이라의 귓전에 감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흥, 흐흥. 흥흥흥흥♪”
재차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세이라.
그녀가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다시 까딱대기 시작한 그때.
“기분 좋아 보입니더. 이사장님.”
구수한 칸사이 사투리가 세이라의 귓가에 들려온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세이라의 시선이 돌아간다.
거기에는 민트색 머리를 금색 비녀로 고정한 정장 차림의 안대 미녀, 리츠코가 서 있다.
“이 할마시가! 내한테는 업무를 과로사 수준으로 몰아주고는 몇십살은 어린 학상이랑 통화하면서 주접을 떨고 앉았나? 내 참 어이가 없어갖고······.”
리츠코가 탁, 하고 서류 더미를 내려놓는다.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실시간으로 변한다.
꿈틀.
세이라의 눈썹이 휘어진다.
“리츠코.”
“와 불러쌌노. 할마시.”
“누가 그렇게 버릇없이 굴라고 했지? 정녕 다시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정신차리겠느냐?”
교육.
세이라에게 5시간 연속 설교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 리츠코가 식은땀을 흘린다.
심지어 5시간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그날은 야근까지 해야 했다.
두 번 다시는 하기 싫은 경험.
“그거는······. 아닙니더.”
“알았으면 양갱이나 더 가져오너라.”
탁.
세이라가 빈 그릇을 리츠코에게 내민다.
“하여간 악덕 상사 할마시······.”
리츠코가 구시렁대며 빈 그릇을 들고 나간다.
탁.
이사장실 문이 닫히는 걸 보면서 세이라가 웃는다.
“후후, 꼬마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었구나.”
빙그르르.
그녀의 작은 몸을 태운 의자가 한 바퀴 회전한다.
*
제1별관, 독서부 아니 이젠 요리부가 된 부실.
탁.
탁자 위에 이사장이 보낸 서류를 올려놓는다.
“여기. 다 끝났어. 정식 부활동 등록 서류야.”
서류를 본 카스미 선배의 눈이 커진다.
“후배 군. 정말 하루 만에 일을 다 끝내버렸구나. 솔직히 기대도 안 했는데. 후배 군은 나쁘지만 유능한 남자야.”
[정확한 평가군. 저 호시노 카스미라는 소녀, 통찰력이 대단한데?]통찰력은 무슨.
카스미 선배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니시자와가 개목걸이를 만지면서 자신만만한 말투로 소리친다.
“에리링은 주인님이 하루 만에 일을 해치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 자, 에리링이 내기에서 이겼으니까 다들 돈 줘.”
잠깐 뭐? 돈?
설마 이거 가지고 내기한 거야?
“으으으으으으으, 칠칠치 못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한 방 먹었군요.”
“큿······. 면목이 없군······.”
“주군······. 미안해······.”
“후배 군이 해낼 줄은 몰랐어.”
짤랑, 팔락.
니시자와 앞에 놓이는 동전과 지폐.
니시자와가 웃는 표정으로 돈을 쓸어 담는다.
“히히히. 이거 전부 주인님이랑 데이트 할 때 써야지.”
어이가 없네.
[너, 이렇게 신뢰를 못 받고 있었냐?]‘시끄러워.’
날 두고 내기하는 클리셰를 눈앞에서 볼 줄이야.
새삼스럽게 여기가 라노벨 세상이라는 사실이 다시 실감이 난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깬 건 카스미 선배의 말.
“흠흠. 그럼 좀 늦었지만 연수전 뒤풀이 시작할게!”
짝짝짝.
카스미 선배의 박수와 함께 시작된 뒤풀이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안 그래도 혼자만 놔둬도 시끄러운 히로인들이다.
다섯 명이 한꺼번에 모여 있으니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거기에 말 많은 흑태자까지.
과자와 콜라를 먹으며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버티고 나서야 뒤풀이가 끝났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구만.’
[파트너, 너는 좀 더 즐길 줄을 알아야 한다고. 다른 남자였다면 부러워했을 광경이라고. 알아들어?]부러워하긴 개뿔.
더 말싸움할 기력도 없다.
터덜터덜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던 그때.
저 멀리, 익숙한 인형이 보인다.
남색 포니테일과 세라복 위로 도드라진 큰 가슴이 인상적인 일본도 미소녀.
시노자키 린이다.
“······김덕성.”
“무슨 일이야?”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녀가 어색하게 뒷짐을 지고 있다.
“그, 그게······. 우, 우선 이걸 받아다오!”
불쑥.
그녀가 허리를 숙이면서 양손으로 내게 어설프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내민다.
선물?
린의 손에서 선물 상자를 낚아채 포장을 풀어낸다.
거기에는 딱 봐도 어설픈 솜씨의 곰돌이 자수가 새겨진 조그마한 동전 지갑이 들어 있었다.
“웬 동전 지갑이냐?”
“지, 직접 만든 거다······. 너, 너한테 주려고······. 두, 둘만 있을 때 건네주고 싶었다······. 내 솜씨가 아직 미숙해 모양은 좀 이상하겠지만······. 그래도 최근 여자력 수행의 성과가 나온 것 같아서 이렇게 보고를······.”
린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붉어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한다.
여자력 수행?
그 이상한 수련은 아직도 안 끝났냐?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린에게 돌린 순간, 그녀의 손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늘에 상당히 많이 찔린 듯 여기저기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생채기가 나 있는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