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09)
니시자와 에리는 설레는 마음에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가 겨우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니시자와 에리는 따뜻한 도시락을 챙긴 뒤에 길을 나섰다.
지나치게 들뜬 나머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니시자와 에리였지만, 그녀는 아무 상관 없었다.
곧 주인님과 만날 테니까.
주인님과 만나서 피크닉도 즐기고, 나룻배도 같이 타고, 당고도 같이 먹고.
팔짱도 끼고, 이왕이면 뽀뽀까지.
그런 핑크빛 상상을 하며 주인님을 기다린 니시자와 에리였다.
그렇게 약속 시간이 지나고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록 주인님이 오지 않았을 때도.
니시자와 에리는 한없이 기다렸다.
‘주인님이 약속을 어길 리가 없어.’
주인님은 상냥하니까.
나랑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니시자와 에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돼도, 도시락이 전부 식어도.
점심을 지나 저녁을 지나 밤이 돼도.
비가 쏟아져도.
데이트를 나왔던 연인들이 모두 돌아가고 공원 폐장 시간이 가까워져도.
학원 통금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인님은, 김덕성은, 결코 약속을 어기는 남자가 아니니까.
비록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늦고 있지만.
반드시 그녀를 만나러 와 줄 거다.
니시자와 에리는 그렇게 믿고 기다렸다.
“주인님······. 보고 싶어······.”
쏴아아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진다.
니시자와 에리가 고개를 숙인다.
“안 오는 걸까······. 주인님······.”
니시자와 에리의 눈가에 눈물이 돈다.
“또 버림받은 걸까. 에리링······. 또 미움받는 걸까······.”
니시자와 에리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애써 억누르고 있던 불안감이 터져 나온다.
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린, 올리비아, 마코토, 아리스, 카스미 같은 다른 경쟁자들과는 달리 김덕성이 그녀를 진심으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물론 김덕성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건 전적으로 그녀 본인의 잘못이었으니까.그렇기에 니시자와는 필사적으로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에리링’이라는 호칭도 그의 일환이었다.
좀 더 귀여움을 어필하면, 좀 더 여자다움을 어필하면, 은하 랭크 미모를 활용하면.
사랑하는 주인님이 나를 돌아봐 주지 않을까.
“······주인님······. 에리링, 이제 더 이상 버려지기 싫어······.”
니시자와 에리의 눈에서 눈물이 쉴틈없이 쏟아진다.
그녀의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모녀를 매일 학대하다가 결국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가정 폭력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너 때문에 남편이 집을 나간 거라며 한동안 그녀를 원망하던 어머니.
낡아빠지고 퀴퀴한 다다미 넉 장 반 단칸방.
아무도 온정을 주지 않던 차가운 방바닥의 악몽 같은 감촉이 그녀의 뺨에 느껴진다.
“싫어, 에리링이 잘못했어······. 주인님······.”
니시자와가 버릇처럼 개목걸이를 만진다.
간신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슈오우 학원에 합격하고, 어머니와 화해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주인님을 만났다.
그런데 그때처럼 또 버림받는 건 싫다.
비를 맞은 개목걸이가 차갑게 느껴진다.
니시자와 에리가 도시락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인 순간.
“야, 니시자와.”
그녀의 귓가에 꿈에도 잊을 리 없는,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든다.
눈물범벅이 된 시야 속에, 익숙한 얼굴이 아른거린다.
“너······. 너 임마······. 헉. 허억. 안 가고 지금까지 여기서 비 맞으면서 뭐 하냐? 진짜······. 미치겠네.”
쏟아지는 비.
두 명이 들어서도 될 법한 커다란 골프 우산을 그녀에게 씌워주면서 김덕성이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시자와는 웃었다.
와줬다.
주인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니시자와 에리의 심장이 가쁘게 뛴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역시 주인님은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뿐인.
“주인님!”
니시자와 에리가 눈물을 뿌리면서 김덕성의 품에 뛰어들었다.
“염병······.”
갑작스러운 포옹.
김덕성이 우산을 든 채 그녀를 안아주면서 나지막하게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쏴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장대비가 김덕성의 말소리를 묻었다.
어쩔 수 없이 외박
“주인님!”
니시자와가 내 품에 안긴다.
쏴아아아아아.
장대비가 골프 우산을 때린다.
“보고 싶었어, 주인님······.”
그녀가 울먹거리면서 중얼거린다.
온통 빗물에 흠뻑 젖어 속옷이 다 비치는 얇은 원피스 자락이 가슴팍에 문드러진다.
비에 젖은 강아지 꼴을 한 니시자와의 모습에 말문이 막힌다.
니시자와를 찾으러 기숙사 밖으로 나와 혹시나 해서 약속 장소였던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향하고 있을 때.
국정원 정보망을 가동한 한서진에게서 아직 니시자와 에리가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주인님······. 에리링은 주인님이 와줄 줄 알았어······. 믿고 있었어. 주인님이 에리링 반드시 만나러 올 거라고. 왜냐하면 주인님은······. 주인님은······.”
니시자와가 눈물을 비처럼 흘린다.
“주인님은 상냥하니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하는 니시자와.
그녀가 양팔로 내 허리를 꽉 끌어안는다.
평소라면 오글거린다고 한바탕 욕을 퍼부으며 그녀를 밀어내도 모자랄 상황.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약속을 어긴 건 내 쪽이었기 때문에.
“돌겠네······.”
한국어로 낮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멘트인 건 확실하다.
염병.
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떼어낼 수도 없고.
“믿고 있기는 개뿔이. 야 니시자와. 넌 이 시간까지 안 들어가고 뭐 했냐. 비도 오는데. 내가 진짜 안 오면 어쩌려고 이런 멍청한 짓을······”
“그렇지만 와줬잖아?”
니시자와가 빨갛게 부은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며 말한다.
그녀가 내 품에 얼굴을 묻는다.
“주인님. 에리링은 주인님이 괜히 뻘쭘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 다 알고 있어.”
“······헛소리하고 있네. 마코토가 연락 안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알아? 야, 넌 내가 늦었는데 화나지도 않냐?”
솔직히 내가 얘 입장이었으면 화날 만하다.
내가 니시자와를 찾은 것도, 그녀가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주요 캐릭터인 그녀와의 관계를 파탄 내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거 걱정해서 수습하러 온 건데,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솔직히 이건 내 잘못이다.
“괜찮아. 주인님이 날 안 버렸으니까······. 늦은 건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에리링은 괜찮아. 에리링은 주인님의 충실한 노예인걸?”
니시자와 에리가 눈물을 흘리며 애써 웃어 보인다.
“그냥 조금만······. 주인님 품에 더 안겨 있고 싶어.”
차라리 화를 냈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 일도 없었을 텐데.
저러니까 오히려 더 미안해진다.
죄책감이 밀려든다.
“에리링, 주인님한테 쓰담쓰담도 받고 싶어······.”
니시자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안 되는 걸까?”
니시자와가 나를 올려다본다.
세계관 최고 미녀라는 설정답게 비에 젖고 눈이 빨갛게 부었는데도 쓸데없이 예쁜 얼굴.
새삼스럽게 니시자와의 미모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뭐.
그 정도야.
쪽팔려도 어쩔 수 없다. 지은 죄가 있으니.
말없이 그녀의 주황색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주인님······.”
니시자와가 품에 파고든다.
그녀의 귓불이 새빨개진다.
“히히히히······.”
니시자와가 웃음을 흘린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
번쩍! 우르르르릉!
천둥 번개가 수차례 지나간 후에야, 니시자와는 내 품에서 살며시 떨어졌다
그녀가 웃는다.
“좋아. 에리링. 주인님 성분 전부 충전했어! 이제 완전 멀쩡······. 에엣취!”
괜찮은 척 하던 니시자와가 재채기를 한다.
말을 말지.
니시자와가 배시시 웃는다.
세계관 최강자 수준으로 예쁜 그녀의 미모가 어우러져 정말 뭘 해도 전부 쓸데없이 예뻐 보인다.
그녀가 내 옆으로 다가오며 눈웃음을 짓는다.
“에리링. 주인님이랑 같은 우산 아래에서 팔짱 끼고 싶어. 안 될까? 주인님 기다리면서 다 젖었는데······.”
손가락을 부딪치면서 울상을 짓는 니시자와.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귀책 사유가 나에게 있으니 뭐라 말하지도 못하겠다.
오늘은 그냥 쟤가 하는 말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게 좋겠다.
그래야 좀 덜 미안할 것 같다.
“······마음대로 해라.”
“알았어! 에리링 신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니시자와가 신난 표정으로 팔짱을 낀다.
그녀의 체온이 내 팔에 느껴진다.
“에리링도 가슴 사이즈가 조금만 더 컸으면······. 젖소처럼 팔짱으로 주인님한테 서비스해줄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우유를 더 먹는게 좋겠어.”
니시자와가 입술을 삐죽인다.
진짜 단어 선정 하나하나가 파멸적이다.
내 잘못만 아니었어도 욕 한 바가지는 퍼부어줬을 텐데.
에휴.
그때 사오리에게 비약을 받아 마시는 게 아니었다.
아니, 파워 업의 대가로 이 정도면 싼 건가?
이런 저런 잡념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그때.
내 옆에 달라붙은 니시자와 에리가 묻는다.
“그런데 기숙사 통금 시간 지났잖아. 주인님. 괜찮아?”
“어쩔 수 없이 외박해야지.”
지금 가봤자 교문은 닫혀 있을 거다.
통금이라니, 쌍팔년도도 아니고 어이가 없지만 그렇게 돼먹은 학교니 어쩔 수 없다.
“외박······. 주인님이랑 에리링이랑······. 히히히······.”
옆에서 니시자와 에리가 뺨을 붉히며 웃는다.
“쓸데없는 망상 그만하고 따라와. 숙소 잡아야 하니까.”
무단 외박은 벌점이지만, 이사장에게 말하면 그 정도는 어떻게든 무마 가능할 거다.
상냥함이라는 정체불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사장에게 니시자와를 돌봐 주기 위해서 나갔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가줄 터.
그 정도 계산도 없이 통금 시간 직전에 학원을 뛰쳐나가지는 않았다.
“응!”
니시자와를 데리고 폐장 직전의 공원을 벗어난다.
쏴아아아아아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폭우.
우산이 하나밖에 없다는 핑계로 내 옆에 달라붙은 니시자와 에리를 데리고 도쿄의 밤거리를 배회한다.
인구 천만이 넘는 불야성의 대도시, 거기다 주말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에 폭우까지 쏟아지는데도 도쿄 거리에는 인파가 넘쳐났다.
“주인님. 저기 호텔 있어!”
니시자와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녀의 손가락 끝을 따라간다.
거기에는.
수상할 정도로 핑크색 하트와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간판이 인상적인 건물이 서 있었다.
호텔은 맞는데, 저거 러브호텔이다.
아니 다른 좋은 숙소 놔두고 왜 저런 데를?
“주인님. 가자. 에리링 몸이 젖어서 무거워······. 빨리 쉬고 싶어.”
니시자와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칭얼댄다.
평소 같았으면 연기하지 말라고 떼어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
속으로 한숨을 쉰다.
니시자와와 만날 때는 대체 한숨을 몇 번이나 쉬는 건지.
“그래, 알았다.”
국제 영웅 협약에 따라 영웅 후보생은 성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나와 니시자와의 외박은 절차상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니시자와의 손에 이끌려 러브호텔 내부로 들어선다.
러브호텔 안은 조용했다.
프라이버시 보호 때문인지 카운터에는 직원 대신 키오스크와 음료수 자판기뿐.
“흥, 흐흥. 흐흐흥. 주인님. 당연히 에리링이랑 같은 방 써줄 거지? 응?”
옆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니시자와가 내게 말한다.
뭐?
같은 방?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누구 마음대로.
“그치만 이 호텔. 남은 방이 하나뿐인걸?”
니시자와가 옅게 웃으면서 키오스크 모니터 한쪽 구석에 떠 있는 빈방 현황을 가리킨다.
그녀 말대로 남은 방은 하나뿐.
일부러 여기 오자고 한 건가?
킹리적 갓심이 든다.
“주인님. 에리링 많이 피곤해······. 그냥 들어가서 쉬면 안 될까? 으응?”
니시자와가 팔에 매달린 채 볼을 부풀리면서 가슴을 흔들며 아양을 떤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돌겠네.
“······그래, 뭐. 알았다.”
어쩔 수 업다.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키오스크에 집어넣는다.
딸칵.
카드키가 떨어진다.
“히히히히히히······.”
기분 좋은 듯 웃는 니시자와.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녀를 데리고 카드키를 찍고 방 안에 들어선다.
러브호텔답게 야릇한 분위기의 조명 아래 펼쳐진 퀸사이즈 침대와 욕실이 보인다.
하필 침대도 하트 형태, 벽지도 하트 형태다.
기분이 묘하다.
“따뜻해!”
니시자와가 팔짱을 풀고 침대 위에 앉으며 말한다.
저렇게 헤프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좀 마음이 편해진다.
탁.
러브호텔 방문을 닫는다.
니시자와가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보자기에 싼 무언가를 올려놓는다.
“그러고 보니 그건 뭐냐? 아까부터 신주단지 모시듯 계속 껴안고 있던데?”
아까도 한쪽 팔은 나랑 팔짱을 끼면서, 다른 쪽 팔로는 소중하게 계속 저 보따리를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