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13)
이렇게 추하게 질투했는데도, 눈앞의 룸메이트이자 친구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걱정해준다.
부끄럽다.
마코토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진다.
“혹시 주인님 때문에 그래?”
에리의 주황색 눈동자가 마코토를 향한다.
본인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녀의 시선에 마코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으, 응······. 다, 다른 분들은 주군과 점점 사이가 가까워지는데······.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마코토가 고개를 숙인다.
“나도 실은 니시자와 양처럼 주군과 단둘이······. 아, 아냐. 이건 잊어줘! 니시자와 양!”
저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은 마코토가 황급히 본인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런 마코토의 모습을 본 에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주인님과의 관계가 진척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던 에리 본인의 모습이, 지금의 마코토에게서 겹쳐 보였다.
‘주인님은 상냥하지만 여자 관계에 있어서는 의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심하니까······. 마코삐, 불쌍해.’
학원의 아이돌이었던 에리였지만, 의외로 그녀에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학원 생도들은 멋대로 그녀를 아이돌로 숭배하거나, 멋대로 그녀에게 음심을 품거나 둘 중 하나.
게다가 성격이 빈말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에리였기에, 그녀 주변에 사람은 많아도 친구는 없었다.
그녀보다 입학 순위가 높았던 린과 올리비아는 아예 에리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 에리에게 있어서 마코토는 학원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
비록 언젠가는 사랑을 두고 다투게 될 라이벌이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친구로서 마코토를 도와주고 싶다.
친구가 풀 죽은 모습을 볼 수 없다.
“마코삐. 주인님이랑 데이트 하고 싶구나.”
“아, 아니야! 그, 그건 그냥 해본 말이야!”
마코토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손을 내젓는다.
“나, 나 같은 여자가 주, 주군과 어떻게 데이트를······. 과분한 일이야······.”
마코토가 고개를 숙인다.
탁.
그녀의 처진 양쪽 어깨에 에리가 손을 올린다.
“에리링이 도와줄게. 주인님이랑 데이트. 에리링이 마코삐의 사랑의 코치가 되어줄게!”
에리가 웃으며 말한다.
“사, 사랑의 코치?”
그녀의 말에 마코토의 눈동자가 흔들리던 그때.
드르륵.
가정실습실 문이 난데없이 열린다.
“뭐야?”
“누구······.”
마코토와 에리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회색 단발머리 미녀, 한서진이 차가운 잿빛 눈동자를 빛내며 서 있었다.
“당신, 누구더라······?”
한서진의 난입에 에리의 미간이 좁혀진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에리가 말끝을 흐리던 그때.
“저는 한서진. 김덕성 님을 보좌하는 수행비서입니다.”
한서진이 가볍게 목례한다.
“아······.”
에리가 낮은 탄식을 터뜨린다.
그제야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학원 외부에 나갈 때마다 그림자처럼 김덕성을 수행하던 정장 미녀.
그녀가 한서진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여긴 왜?”
정체는 알았다.
하지만 아직 한서진이 여기 온 이유를 에리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질문을 받은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차갑게 빛난다.
“돕기 위해서입니다.”
“뭘?”
다시 이어진 에리의 질문.
한서진이 답한다.
“카미야 마코토 씨와 김덕성 님의 데이트 계획, 저도 같이 돕겠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하렘 구축을 위해서.
뒷말을 삼킨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열망으로 차갑게 불타오른다.
모든 게 계획대로
한서진의 말에 에리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녀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 한서진에게 삿대질하며 말한다.
“당신이 우리를 왜 돕는다는 거야? 수상해.”
마코토와 한서진은 접점이 없다.
이는 에리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제 와서 난데없이 튀어나와 도와주겠다니.
“신뢰할 수 없어.”
“김덕성 님은 한국의 유일한 영웅 후보생. 그분의 교우관계를 국가에서 보조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한서진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에리의 말문이 막힌다.
그녀도 한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주인님의 고국이었으니까.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었지만 영웅 전력으로는 약소국 중의 약소국.
온 나라를 통틀어 영웅 전력이라고는 아직 후보생 신분인 김덕성이 전부일 정도.
그런 상황이니 한서진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납득할 수 없어.”
에리가 볼을 부풀린다.
츠팟.
한서진의 전신에서 회색 섬광이 반짝인다.
기프트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에리 곁으로 다가간 한서진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니시자와 씨도 이미 제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러브호텔에 남은 방 하나. 설마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마코토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속삭임.
그 말대로였다.
니시자와와 김덕성이 들른 러브호텔에 남은 방이 하나였던 이유는 한서진이 나머지 방을 전부 대실했기 때문.
그녀의 하렘 계획 보고서는 이미 국정원장을 거쳐 대통령의 결재를 받은 상태에다, 하렘 계획 관련 특수활동비까지 따로 편성 받은 상황.
이제 본격적으로 계획을 집행하는 일만 남았다.
마코토 데이트 코치는 그 시작이다.
한서진의 말을 들은 에리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건······.”
그녀의 말문이 막힌다.
기가 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 줄이야.
“그날. 김덕성 님께 우산을 두 개가 아닌 하나만 준 것도 저입니다.”
“······.”
에리가 입을 다문다.
그녀의 시선이 한서진을 향한다.
한서진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도와준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에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번쩍.
회색 섬광이 반짝이며 한서진이 에리의 곁에서 물러난다.
“그야······. 김덕성 님은 한국의 유일한 영웅이니까요.”
한서진이 조리대를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말한다.
“그분은 어깨에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홀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한서진의 말에 마코토와 에리의 표정이 굳어진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게 여겨지는 이곳 학원 생활도 생도들 사이의 교우관계도, 그분께는 하나하나가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으로 직결되는 일, 함부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한서진의 말에 힘이 실린다.
그녀의 말대로다.
한국에서는 김덕성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그런 중압감을 짊어지고 이곳 일본에서 학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카미야 씨를 돕는 이유는, 그 중압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속셈 따위는 없습니다. 오직, 그분만을 위해서.”
한서진이 비장한 각오가 깃든 목소리로 말한다.
“주인님······.”
“······주군.”
한서진의 말이 맞았다.
그녀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학원 생활도, 조국의 기대를 홀로 짊어지고 있는 김덕성에게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일.
그가 짊어진 무게감을 느낀 에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한서진 씨. 아까 당신 의심한 것, 미안해. 사과할게.”
“아닙니다. 저야말로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한서진이 에리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마코토가 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붙잡으면서 말한다.
그녀의 표정이 숙연해진다.
방금까지 고작 주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우울해졌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주군은 내게 관심이 없던 게 아니야, 관심을 줄 수 없었던 거야.’
주군의 등에 짊어진 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기나 하다니.
이 얼마나 철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주군의 검 자격 상실이야.’
마코토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고개를 든다.
“말해줘. 한서진 씨. 나는······. 나는 주군을 위해서 뭘 하면 될까?”
“김덕성 님과 데이트를 하십시오.”
한서진이 짧게 말한다.
“데이트를 통한 잠깐의 짧은 휴식으로 그분의 부담감을 덜어드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카미야 씨가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그걸 돕기 위해 지금 여기 온 것입니다.”
한서진의 말에 마코토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응. 맡겨줘! 한서진 씨! 나, 반드시 주군에게 힘이 되어줄게!”
“에리링도! 에리링도 마코삐의 데이트 코치가 될 거야! 에리링도 주인님한테 힘이 될 거야!”
에리가 볼을 부풀리면서 마코토에게 달라붙는다.
“흐앗! 니시자와 양! 또 그렇게······.”
뒤이어 이어지는 민망한 광경.
그 모습을 보던 한서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습니다.’
하렘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겠지만 하렘 구성원 전원에게 일부다처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뜸 하렘을 만들겠다고 말하면 당사자들은 반발할 게 분명하다.
한서진도 그분을 사모하는 한 명의 여자이기에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독점욕은 누구나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하렘 구축 동의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코토와 에리의 협력은 중요하다.
지금은 두 사람뿐이지만, 앞으로는 다른 구성원들 사이에도 친목 도모를 유도할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서서히 모든 여자들에게 하렘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들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당신의 하렘 구축,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경애하는 나의 김덕성 님.’
한서진이 결심을 다지면서 말한다.
“자리를 옮기죠. 데이트 코스부터 짜야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마코토와 에리의 시선이 한서진에게 향한다.
*
슈오우 영웅 학원 제2별관.
학생회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조직답게 학생회실은 지나치게 넓고 깨끗했다.
학생회장, 부회장, 서기라는 직함이 쓰인 명패가 놓인 사무용 책상이 보인다.
“왔습니까? 김덕성 군.”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넓은 학생회실에 있는 사람인 오직 한명.
빨간 완장을 찬 늘씬한 은발 미소녀,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뿐.
“조금 늦었군요.”
아리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시골 소녀일 때와는 다른, 냉정하고 침착한 학생회장의 모습.
“왜 부르셨습니까?”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리스 덕분에 그 개판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좋지만, 그녀가 나를 부른 이유는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게, 왜 부른 걸까? 파트너.]흑태자가 머릿속에서 쓸모없는 질문을 되풀이한다.
내 질문을 들은 아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을 호출한 이유는 우선······. 김덕성 군. 당신한테 개인 교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개인 교습?
“갑자기 무슨 교습입니까?”
뜬금없다.
“저는 교토에서 당신이 진명해방에 성공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진명해방. 아직 완전한 진명해방은 아닌 걸로 추측됩니다.”
아리스가 은빛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저 아리스라는 아가씨. 보는 눈이 완전 끝내주는구만. 괜히 학원 최강이 아니야.]흑태자가 추임새를 덧붙인다.
“당신의 불완전한 진명해방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단련을 통해 일체화의 영역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김덕성 군. 당신은 지금까지 단련을 꽤 게을리했더군요.”
아리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한다.
단련을 게을리했다니, 팩트긴 한데 좀 아프다.
“김덕성 군, 당신은 슈오우 학원에서 저와 함께 단 둘뿐인 진명해방을 각성한 생도. 슈오우 학원의 전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당신은 하루빨리 완전한 진명해방에 도달해야 합니다.”
척.
아리스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슈오우 영웅 학원의 학생회장으로서, 그리고 당신의 선배로서, 제가 당신의 단련을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별일 없으면 매일매일 연습실에서 개인 교습을 진행할 테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길게 말했지만 결국은 앞으로는 방과 후마다 아리스 본인과 연습하자는 이야기다.
‘아리스가 싫은 건 아니지만, 연습은 질색인데.’
몸이 힘든 건 별로다.
날로 먹는 게 최고다.
[파트너.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번 기회에 저 아리스라는 아가씨와 연습 찐하게 잘 해 보자고. 아, 물론 내 사랑스러운 동생 올리비아 눈에서 눈물 흐르면 알지?]헛소리를 지껄이는 흑태자.
그의 말을 무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연습이 별로기는 하지만, 아리스의 말대로 지금의 내게 연습이 필요하기는 하다.
교토에서 체득한 진명해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일체화의 영역에 내 마음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학원 최강인 아리스가 지도해준다면, 힘들어도 결과는 확실히 보장될 터.
원작에서도 7권 이후 아리스와 함께 단련한 유지가 강해지는 장면이 나왔으니 몸은 좀 힘들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득인 일인 셈이다.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예, 뭐. 그러도록 하죠. 연습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말이 있습니다.”
할 말?
연습 말고 또 다른 할 말이 어디 있지?
라고 생각하던 그때.
스윽.
아리스가 품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사장님이 신문부의 아마노 양한테서 압수한 사진입니다.”
그건 나와 에리가 팔짱을 낀 채 러브호텔로 들어가는 장면.
아니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야?
진심으로 당황스럽다.
“러브호텔에서 동침이라니······. 어떻게 이런 불순 이성 교제를······.”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뺨이 떨린다.
“불건전합니다. 김덕성 군. 대체 니시자와 양과 러브호텔에서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얼굴을 붉힌 아리스가 나를 바라보며 추궁한다.
[파트너. 이거 완전 핀치 아니야?]‘아니니까 잔말 말고 그냥 있어.’
흑태자를 진정시킨 뒤 속으로 한숨을 쉰다.
불순 이성 교제라니?
이 무슨 러브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 선택과 상황 설정이란 말인가?
뺨이 분홍색으로 상기된 아리스를 바라보며 말한다.
“별일 없었습니다. 하필 그때 통금시간을 넘겨서 외박할 수밖에 없었고, 근처 숙소가 러브호텔밖에 없었을 뿐입니다. 회장 선배도 저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으니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아무 짓도 안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그, 그건 김덕서이. 니, 니 가, 갑자기 그때 일을 꺼내믄······. 그거는 반칙이데이!”
당황한 아리스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