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17)
아리스의 분홍빛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파트너. 또 핀치네.]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 기껏 가라앉힌 속이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염병.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게 이런 건가?
사랑하는 소녀는 무적이니까
아리스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이케부쿠로에 쇼핑을 나온 그녀의 시야에 연인처럼 착 달라붙은 마코토와 김덕성의 모습이 보인다.
김덕성.
그의 교우 관계에서 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 정도는 아리스도 알고 있었다.
검은 귀축이라는 이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던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르다.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는다.
머리가 뜨거워진다.
부글부글.
속이 들끓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와 다른 여자가 다정하게 팔짱을 낀 모습이.
“네?”
김덕성이 무덤덤한 얼굴로 되묻는다.
“오늘 하루만 훈련을 빼달라고 했던 이유가 이런 파렴치한 불순 이성 교제 때문이었습니까?”
아리스의 은색 눈동자가 김덕성을 향한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솟아오른다.
나도 사실은 그와 저렇게 단둘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불건전합니다! 김덕성 군!”
척.
아리스가 손가락으로 마코토와 김덕성을 가리킨다.
“아니, 김덕성 군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카미야 양. 대체 누가 밖에서 이런······. 불순 이성 교제를 하라고 했습니까!”
아리스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풍기 문란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슈오우의 학생회장으로서!”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학생회장으로서 의무다.
절대 견제가 아니다.
3학년 선배 주제에 그와 다정하게 연인처럼 데이트하는 1학년 후배의 모습에 추하게 질투한 건 더 아니다.
아리스가 스스로 자기합리화하고 있던 그때.
“으으으······.”
스슥.
마코토가 김덕성의 등 뒤로 숨는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검으로서 주군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발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카미야 씨.]그녀의 귓속에서 한서진의 목소리가 울린다.
[앞으로 나서십시오. 지금이 김덕성 님께 점수를 딸 기회입니다.] [한서진 씨 말이 맞아. 마코삐. 마코삐의 진심을 주인님한테 보여주려면 지금 나서야 해.]에리의 목소리가 마코토의 뇌리에 꽂힌다.
[슈오우 학원의 교칙에는 이성 교제를 금지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카미야 마코토 씨. 지금의 말은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의 억지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김덕성 님을 사모하는 여성 중 한 사람이니까요. 그 부분을 지적하면 그녀는 물러갈 것입니다.]한서진의 현실적인 조언이 마코토의 귓가에 들린다.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 있을 수는 없어. 마코삐의 진심은 그 정도가 아니었잖아? 학생회장 선배를 무서워할 필요 없어. 에리링의 친구 마코삐는 그런 사람이 아닌걸, 그리고 사랑하는 소녀는 무적이니까!]사랑하는 소녀는 무적.
에리의 말에 마코토의 심장이 뛴다.
그녀의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래, 그녀들의 말이 맞다.
이렇게 응원을 받고 지원을 받았는데, 부끄럽게 주군 뒤에 숨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코토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김덕성의 뒤에서 뛰쳐나와 아리스와 김덕성 사이를 가로막는다.
“회, 회장 선배!”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카미야 마코토 양?”
학생회장의 은빛 눈동자가 마코토를 향한다.
마코토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힘을 내 마코삐! 스스로를 믿어! 사랑을 믿는 거야!] [카미야 씨. 카미야 씨는 할 수 있습니다.]귓속에서 한서진과 에리의 응원이 들린다.
마코토가 주먹을 말아쥔다.
“제, 제가 주군과 데이트를 하건 말건 회장 선배가 무슨 사, 상관이죠?”
찌릿.
마코토의 녹색 시선이 아리스의 은빛 시선과 부딪친다.
“무슨 상관이라니 그건 어디까지나 학생회장으로서 학원의 풍기를······.”
“슈오우 학원 학칙에 이성 교제를 금지하는 내용은 없지 않았습니까? 회장 선배.”
마코토가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는다.
움찔.
아리스가 몸을 떤다.
그렇다.
슈오우 학원의 교칙에서 이성 교제를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어디까지나 풍기 문란에 대한 규제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당신들의 행위는······.”
“혹시 풍기 문란을 핑계 삼아서 저와 주군의 사이를 떨어뜨리는 게 회장 선배의 본심입니까?”
스윽.
마코토가 김덕성의 팔짱을 낀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김덕성의 팔에 뭉개진다.
마코토의 말을 들은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시야에 마코토와 팔짱을 낀 그의 모습이 보인다.
“큭······.”
마코토의 말은 정론.
반박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주군을 향한 스스로의 마음을 추하게 부정······.”
“······아닙니다. 절대, 맹세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리스가 마코토의 말허리를 자르며 소리친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소용돌이처럼 뱅뱅 돌아간다.
아리스의 양쪽 주먹이 꽉 쥐어진다.
“저는 슈오우 학원의 모든 생도를 대표하는 학생회장. 공무 집행에 있어서 사심 개입 따위는 절대 없습니다.”
본인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아리스가 말한다.
차가운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그녀의 심장은 뜨겁게 뛰고 있다.
두근, 두근.
“방금 그건 억지가 아니라는 이야기군요. 회장 선배.”
마코토가 말한다.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내가 주군을 지키고 있어.
마코토의 얼굴이 분홍색으로 상기된다.
“큭.”
억지.
정곡을 찔린 아리스가 다시 입술을 깨문다.
마코토의 지적이 맞다는 사실을 공명정대를 소신으로 여기던 아리스는 누구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는 없다.
마코토의 지적을 인정한다면, 마음속에서 들끓는 이 정체불명의 감정까지 인정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럴 수는 없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모두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학생회장이니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그저······. 생도들의 풍기 문란을 조금 염려했을 뿐입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아리스가 옆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궁색하게 변명한다.
주도권은 완전히 마코토에게 넘어온 모습.
[잘했어! 마코삐!] [잘하셨습니다. 카미야 마코토 씨.]에리와 한서진의 칭찬이 들린다.
마코토가 주먹을 불끈 쥔다.
“주군한테 아무런 사적 감정도 없다니, 정말로 그렇다면 참견은 그만둬줬으면 좋겠습니다. 회장 선배.”
슥.
옆에서 노골적으로 달라붙으며 옅게 웃는 마코토.
그 모습을 보는 아리스의 속이 들끓는다.
찌릿.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김덕성을 향한다.
“김덕성 군! 오늘 빠진 훈련은······. 다음에 몇 배로 보충할 테니 각오하시길 바랍니다!”
척.
아리스가 손가락으로 김덕성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절대 화나서 그런 게 아니다.
데이트, 아니 개인 훈련을 빼먹고 자기보다 연하인데다 가슴도 큰 후배와 만난 모습에 절대 질투한 게 아니다.
훈련을 빠지면 보충하는 건 당연한 일.
“네, 뭐. 알겠습니다. 사이온지 선배.”
“읏······.”
김덕성의 대답에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사이온지 선배.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울림이다.
사실 성 말고 이름인 ‘아리스 선배’로 불리고 싶다.
요리부 부장인 2학년 후배, 호시노 카스미는 벌써 그에게 ‘카스미 선배’라고 불린다던데.
그보다 더 가까운 ‘아-쨩’으로······.
‘아직은, 아닙니다.’
분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사이온지 아리스는 학생회장이니까.
아리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럼 두 사람 다 건전하게 시간을 보내길. 제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섬주섬.
아리스가 땅에 떨어진 봉투를 주워 들고 황급히 자리를 뜬다.
여기 더 있으면 그동안 완벽한 학생회장 연기를 위해 애써 억눌렀던 감정들이, 사투리가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휴우.”
아리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본 마코토가 커다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에리의 응원과 한서진의 요구를 들은 마코토가 팔짱을 풀고는 김덕성에게 다가가 머리를 들이민다.
“주군. 나 잘했지? 칭찬해줘. 머리 쓰, 쓰담쓰담······. 해줘······.”
“뭐?”
김덕성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 모습을 본 마코토가 살짝 겁먹은 그때.
[마코삐.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마코삐라고 귀엽게 애교 부리면 주인님이 쓰담쓰담 해줄 거야.]에리의 권유가 마코토의 머리에 울린다.
두근.
그녀의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개진다.
마코토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몸을 흔든다.
커다란 가슴이 같이 흔들린다.
“마, 마코삐 머리 쓰담쓰담 해, 해줘!”
마코토의 말에 김덕성이 속으로 한숨을 쉰다.
벌써 주변 사람들 시선들은 전부 이쪽으로 집중된 지 오래.
“어머. 방금 뭐야? 사랑의 싸움이야?”
“저거 슈오우 교복 같은데.”
“쟤가 그 유명한 검은 귀축?”
“번화가 한복판에서 사랑 싸움이라니 정말 청춘이다, 청춘이야. 껄껄.”
“여자가 아까워······.”
엑스트라들의 목소리가 김덕성의 귓가에 들린다.
쪽팔리게 이게 무슨.
[파트너. 남자답게 숙녀의 요구를 들어줘야지?]흑태자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지만, 저대로 놔뒀다가는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기세이니 어쩔 수 없다.
김덕성이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코토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래, 그래. 잘했다.”
성의 없는 칭찬.
하지만 마코토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녀의 가슴이 뛰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숨소리가 가빠진다.
“고마워······. 주군.”
마코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역시 데이트하길 잘했다.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덕성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
아리스와의 대치가 끝난 뒤.
나는 마코토와 선샤인 수족관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은 뒤, 마지막 코스인 선샤인 60 전망대로 향했다.
이케부쿠로의 랜드마크인 선샤인 60 빌딩 꼭대기 층에 있는 전망대.
스카이 서커스 선샤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전망대에서 보는 도쿄의 야경은 꽤 화려했다.
장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우와. 예쁘다.”
마코토가 탄성을 터뜨린다.
식당에서도, 수족관에서도 그런 것처럼 이 전망대에도 이상하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눈치챌 수 있다.
“야, 마코토.”
내 부름에 마코토가 이쪽을 돌아본다.
“오늘 식당이랑 수족관이랑 전망대랑 사람 다 없는 거······. 전부 네가 통째로 빌려서 그런 거냐?”
내 말을 들은 마코토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허, 참.”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부정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인정하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대체 왜 그렇게 쓸데없이 돈을 쓰냐고 해야 하나.
[파트너. 그만큼 파트너를 생각하는 미스 마코토의 마음이 대단했다는 거야. 남자라면 보답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보답은 무슨.
“그래, 뭐.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쓸데없이 돈 낭비 하지 말라······.”
“쓸데없는 낭비 아니야!”
마코토가 말한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다.
한 발짝, 마코토가 내게 다가온다.
“주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야······. 나(私), 알고 있어. 내가 시노자키 양, 보나파르트 양, 니시자와 양보다 매력이 없다는 것 정도는······.”
마코토가 입술을 깨문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僕)처럼 남자 같은 여자라도 재미없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해서라도 주군에게 어필하고 싶었어. 그, 그냥 그런 거니까······. 뒤처지고 싶지 않아······.”
마코토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난다.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와타시라고 잘 하다가 갑자기 보쿠로 1인칭이 바뀐 모습을 보니까.
마음 한쪽 구석이 쿡쿡 찔린다.
뚝, 뚝.
마코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어이, 파트너. 숙녀가 우는데 그대로 놔둘 셈이냐?]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리를 시끄럽게 울린다.
돌겠네, 진짜.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난감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