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28)
“설마 그때 절 같이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잘 아는군. 자네는 역시 총명해. 역시 우리나라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영웅다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통령의 무지성 칭찬이 들려온다.
이런 별 것도 아닌 걸로 날 칭찬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
대체 이 빌먹어먹을 국뽕은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지?
스윽.
대통령이 품속에서 편지를 꺼낸다.
“프랑스 황실 명의로 온 약혼식 초대장일세.”
[올리비아와 윌리엄의 약혼식,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일주일 뒤군.]흑태자가 초대장에 쓰인 프랑스어를 읽는다.
“약혼식이 절정일 때, 자네가 내부 협조자의 도움을 받아 성당 안으로 난입해 이 약혼은 무효라고 선언한 순간, 나는 이 녹취록을 폭로할 생각일세.”
스윽.
대통령이 품에서 USB를 하나 꺼낸다.
“윌리엄이 조작이라고 우기면 어떻게 합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의 직위는 그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게 아니겠나? 이 녹취록의 내용은 내가 외교적으로 보증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대통령이 딱 잘라 말한다.
한국의 신용과 본인의 외교적 지위를 걸고 그렇게까지 한다고?
약간 부담스럽긴 하지만 고맙다.
이 정도라면 한서진이 협력이라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겁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프랑스, 영국 두 나라 간의 국력 차이는 명백하니까요. 양국에서 묵살하면 그대로 끝입니다.”
확실히 충격적인 내용이겠지만, 저쪽에서 작정하고 나서면 묻혀버릴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 모두 이 세계관에서는 강대국이니까.
“그때 자네가 나서는 걸세.”
대통령의 눈빛이 반짝인다.
내가 나선다고?
“영웅은 검으로 말하는 법, 이라고 들었네. 영국은 기사의 나라를 자처하는 국가. 자네가 올리비아 황녀를 걸고 결투를 신청한다면 녹취록 폭로로 위기에 놓인 윌리엄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약혼자 배틀.
내 이럴 줄 알았다.
[대통령의 말이 맞아 파트너. 결국 이 일은 파트너가 해결해야 해.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이번만큼은 나도 진심전력으로 도와줄 테니까. 그런 쓰레기한테 내 사랑스럽고 소중한 여동생을 넘길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흑태자의 말이 머릿속에 울린다.
‘알고 있어. 그 정도는. 그때 올리비아랑 약속했으니까.’
지킨다.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파트너. 그래도 한번 약속한 건 지키는구나?]흑태자가 말한다.
대통령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다음은 이제 김덕성 군, 자네의 시간일세. 일단 겉보기에 객관적인 전력은 윌리엄 왕자가 자네보다 우위에 있네.”
그가 말한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스펙 차이일 뿐이야. 자네가 지금까지 해결했던 사건의 경위를 종합해보면, 자네의 전력은 겉보기 스펙 이상일 거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야. 그리고 최근 윌리엄의 약물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첩보도 있네.”
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생각보다 너무 자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또 파낸 건가?
내가 놀라고 있던 그때.
덥석.
대통령이 내 손을 잡는다.
으, 갑자기 왜 이래?
“그러니 나는 자네가 반드시 윌리엄한테서 승리해서 올리비아 황녀를 되찾을 거라고 믿고 있네. 아니 나뿐만 아니라 해외순방 수행단 전부,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 전부가 자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아. 자네는 대한민국의 성웅(聖雄)이니까 말일세.”
성웅?
아니 이순신 장군님 전용 호칭이 왜 내 이름 앞에 붙어 있는 건데?
반짝반짝.
아이돌 팬미팅에 온 팬처럼 손을 잡고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대통령이라니.
정말 우리나라, 이래도 괜찮은 건가?
“김덕성님의 승리를 위해 우리 국정원에서도 전력을 다해 당신을 보좌하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뒤에 서 있던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파트너, 대통령의 말이 맞아. 그런 약쟁이 쓰레기 왕자 따위, 이 흑태자님과 함께 도버해협 저편으로 날려버리자고! 너는 할 수 있어. 파트너.]흑태자가 머릿속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아, 네. 알겠습니다. 믿음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슬그머니 빼낸다.
그래도 중년 남자랑 손잡는 건 좀.
“아······.”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뱉는 대통령.
남자가 저러니까 소름이 돋는다.
에휴, 도와준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울렁거림을 참으며 대통령에게 말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까?”
사실 더 나눌 이야기도 없다.
대략적인 계획이 나왔으니, 남은 건 한서진 말대로 국정원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계획을 실행하는 것뿐이다.
대화를 끝내기 위해서 예의상 던진 질문.
분명 그럴 터인데.
“물론 그렇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네.”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남자의 얼굴 붉히는 모습이라니.
우웩.
진짜 아까 먹은 한식이 다시 올라오려는 거 같다.
거기에 부탁하고 싶은 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이 부탁하고 싶은 일이라니.
그 내용이 대체 뭘지 짐작도 안 간다.
설마 누구 암살해달라던가 그런 내용은 아니겠지?
“사, 사인······. 좀 부탁하네. 기왕이면 셀카도 같이 찍었으면 좋겠군.”
대통령이 주섬주섬 내 얼굴이 찍힌 포토 카드와 검은 유성 매직을 건넨다.
어이가 없다.
뭐? 사인?
내가 대통령 사인을 받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내 사진을?
[아, 이건 좀······.]흑태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초현실적인 상황.
“역시 어려운 부탁이었나? 그렇다면 미안하네.”
대통령이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중년 남자의 실망한 표정 같은 건 더 보고 싶지 않다.
윽.
울렁대는 속을 달래기 위해 하동 녹차를 한 모금 한다.
한결 낫네.
“······아뇨, 해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은 지금 내 최대 스폰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
돈도 안 드는 사인 정도야 못해줄 것도 없다.
“저, 정말인가?”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대통령.
얼굴 표정은 안 보는 게 낫겟다.
“예.”
스슥.
포토 카드에다 유성 매직으로 사인을 해서 건넨다.
사인을 받아든 대통령의 입가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한 함박웃음이 걸린다.
“고맙네. 이 사인은 꼭 대통령 집무실에 장식하도록 하겠네. 퇴임 후에는 사저로 가져가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주도록 하지.”
대통령이 감격 받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이게 뭐라고 가보로?
쪽팔려 미치겠다.
차라리 라노벨 리액션을 보는 게 낫다.
그건 익숙하기라도 하지, 이건 정말 버티기 힘들다.
“대통령님. 여기 셀카봉입니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보이는 태극기 배지 남자가 셀카봉을 대통령에게 건네준다.
대통령이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끼운 뒤에 내게 말을 건다.
“사진도······.”
“예, 찍어드리겠습니다.”
“고맙군.”
스슥.
대통령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가 브이자를 그리며 말한다.
“자, 김치 하게나.”
“김치.”
내키지 않지만 서비스로 해준다.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힌다.
“오, 오오오오. 김덕성 군의 사진이라니!”
대통령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런 대통령을 부럽다는 눈길로 바라보는 방 안의 수행원들.
이 정도면 광기를 넘어 공포다.
“이 사진은 인쇄해서 자네 사인과 함께 집무실 벽에 걸도록 하겠네. 흐, 흐하하하하하하하! 김덕성 군의 사인에다 같이 찍은 사진이라니! 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미친 듯이 웃는 대통령.
아까 냉철했던 대통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무시무시한 광경.
[······파트너, 우리 여기서 나가면 안 될까?]‘이번만큼은 나도 네 말에 동의해.’
흑태자의 말에 동의한다.
여기는 이미 미쳤다.
빨리 나가야 한다.
“흠, 흠. 내가 너무 체통 없는 모습을 보였구만. 미안하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대통령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한다.
“괜찮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한숨을 쉬던 그때.
쪼르르르, 딱.
귓가에 시시오도시 소리가 들린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일본식 정원 속 대나무 물레방아가 보인다.
이 염병할 대나무는 또 왜 여기 있는 거야.
잠시도 방심할 틈이 없는 미친 세상 같으니.
아무튼, 올리비아 구출 작전의 대략적인 얼개는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건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는 일뿐이다.
주인님은 에리링이 지켜줄게
슈오우 영웅 학원.
기숙사.
김덕성의 방문 앞.
주황 트윈테일 미소녀, 니시자와 에리가 문을 탕탕 두드리면서 소리친다.
“주인님! 오늘도 주인님의 귀여운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이 왔어!”
오늘만큼은 다른 연적들에게 지지 않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룸메이트인 마코토 몰래 일어나서 방을 빠져나온 뒤, 김덕성의 방문을 두드린 에리다.
하지만 방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주인님?”
에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직 안 일어난 건가, 라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정말 쥐 죽은 듯 조용한 느낌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주인님?”
에리의 얼굴에 걱정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그녀가 목에 찬 개목걸이를 만지면서 방문에 귀를 댄다.
“에잇.”
짧은 기합과 함께 에리가 마력을 끌어올린다.
반짝.
작은 주황빛 섬광과 함께 귀에 마력이 집중된다.
만일 정말로 아직 그가 자고 있다면, 마력으로 청각을 몇 배나 확대한 지금 귓가에 숨소리라도 들릴 터.
하지만 에리의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인님, 없어?”
에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는다.
주인님이 문 너머에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에리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에리링······. 혹시 버려진 거야?”
에리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상냥한 주인님이 그녀를 버릴 리가 없다.
그날.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계속 비를 맞으며 기다릴 때도 마지막에 자신을 버리지 않았던 주인님이다.
이제 와서 버릴 이유가 없다.
“주인님. 거기 가만히 있어. 에리링이 구해줄게!”
스릉.
니시자와 에리가 사슬낫을 뽑아든다.
지잉.
주황빛 마력이 사슬낫에 감돈다.
그 상태로 에리가 도어락을 내리친다.
콰광!
폭음과 함께 도어락이 떨어져 나가며 문이 강제로 열린다.
“주인님······?”
그렇게 열린 김덕성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뻐끔, 뻐끔.
린이 축제 때 건져준 어항 안의 금붕어들과, 에리 자신이 사준 텐구 가면, 그리고 카스미가 경품 사격에서 따온 까만 곰인형이 장식되어 있는 방 안은 놀라울 정도로 차가웠다.
“주인님······.”
에리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녀가 벽에 걸린 텐구 가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갑자기 자리를 비우다니, 아, 아니야. 주인님은 에리링을 버릴 사람이 아니야! 주인님, 역시 무슨 일 있는 거지? 그렇지?”
에리의 혼잣말에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에리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휴대폰을 들어 저장된 연락처를 뒤져 김덕성에게 전화를 건다.
뚜르르르르.
받지 않는다.
에리의 고개가 숙여진다.
“······주인님.”
에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아니지? 주인님? 아니지?”
에리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무슨 사정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김덕성의 행방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에게.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한서진의 연락처를 터치한다.
김덕성의 수행원이자, 마코삐의 러브러브 데이트 대작전을 도와준 그녀라면 김덕성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뚜르르르.
통화 연결음이 에리의 귓가에 울리던 그때.
[안녕하십니까. 니시자와 씨.]한서진의 차분한 목소리가 에리의 귓가에 울린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에리의 눈가에서 지금까지 참았던 눈물이 터져 주르륵 흘러내린다.
“한서진 씨! 주인님이, 주인님이······. 지금······.”
히끅, 히끅.
에리가 눈물을 삼키면서 말끝을 흐린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통화가 곤란하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뚝.
한서진의 전화가 끊긴다.
털썩.
에리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뚝, 뚝.
방울져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진다.
“주인니이임······. 주인님······. 에리링은 주인님이 보고 싶어······.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