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30)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소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덕성.
그가 가장 편애하는, 그의 마음에 가장 깊숙이 들어간 상대가 올리비아라는 사실을.
김덕성이 주변에 아무 말 없이 바로 프랑스로 달려간 것 역시, 그가 올리비아를 가장 특별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안 그래도 선두를 달리던 올리비아다.
그런데 이번 약혼식까지 그녀가 그의 관심을 독식한다면?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레이스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
올리비아의 단독 승리는 용납할 수 없다.
에리의 말처럼, 아내가 아닌 측실이라도 좋으니 그의 곁에 있고 싶다.
아니 측실이 아니어도 좋다.
애인, 불륜 상대라도 좋으니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측실 자리조차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런 위기감이 린의 심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식으로 말을 내뱉는 내 질투가······. 열등감이······. 이기심이······. 추하다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의 아내는커녕 측실조차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나는······.”
린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렇게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다.”
반한 남자를 놓치고 싶지 않다.
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돈다.
“······미안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추태를 보였군. 프랑스에 가겠다.”
“아냐. 괜찮아. 시노자키. 다른 사람들은? 주인님 도와줄 거야? 호시노 선배는?”
니시자와의 말을 들은 카스미가 책을 펼쳐 얼굴을 가린다.
“후배 군은 나쁜 남자고, 기사공주만 편애하는 검은 귀축이지만······. 그래도 나는 후배 군의 착실한 노예인걸. 니시자와 양처럼.”
카스미의 눈동자가 빛난다.
“그리고 보나파르트 양도 어쨌건 내가 보살펴야 할 후배니까······. 그러니까 갈 거야. 요리부의 부장으로서.”
“나도. 나도 갈래. 나는 주군의 검이니까, 그분을 지킬 거야.”
카스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번쩍 드는 마코토.
“좋아. 호시노 선배. 마코삐. 둘 다 같이 가자고 해 줘서 고마워. 거기 남정네들은. 어쩔 거야?”
에리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있는 이시하라와 유지를 향한다.
“니시자와.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형님의 아우로서 당연히 형님 가는 길에 뒤따라가야지!”
불끈 쥔 주먹을 양아치처럼 흔드는 이시하라.
“나도 갈 거야.”
그 옆에서 쿠로사와 유지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김은 내 소중한 친구니까.”
“그럼 전원 동의한 거네?”
모두의 의견을 들은 니시자와 에리가 손뼉을 친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빨래판.”
“회장 선배한테 가야지.”
에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가서, 요리부 해외 견학 허락을 맡을 거야. 그러니까 우선 계획서부터 작성하자고.”
*
슈오우 영웅 학원.
제2별관. 학생회실.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는 아리스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의 생도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에리, 마코토, 린, 카스미, 유지, 이시하라의 요리부 여섯 명.
아리스가 일행의 얼굴을 훑어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일입니까?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했으면 합니다.”
“요리부 전원, 프랑스로 해외 견학을 가려고 해.”
“프랑스······?”
아리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응. 프랑스에 갈 거야.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로 유명하잖아? 가서 프랑스 요리 견학도 하고, 레스토랑 탐방도 할 거야. 그래서 외유 허락 맡으려고 왔어.”
부활동을 내세운 막무가내식 외유 허락.
하지만 아주 말이 안 되는 논리는 아니었다.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식의 고장.
요리부의 견학 장소로 이상한 곳은 아니다.
거기다 일본 최고를 자처하는 슈오우 영웅 학원은 공식적으로 생도들의 부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해외 견학이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다.
“여기, 부활동 견학 계획서야.”
스윽.
에리가 아리스의 책상 위에 계획서를 올린다.
아리스가 계획서를 훑어본다.
“······계획은 생각보다 알차게 짜여 있군요. 좋습니다. 그런데 김덕성 군과 보나파르트 양은 왜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같은 요리부 아닙니까?”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요리부를 훑는다.
“후배 군과 보나파르트 양은 사전 답사를 보냈어요. 회장 선배. 현지에서 합류할 예정이에요.”
아리스의 말에 대답한 건 부장인 카스미.
그녀의 말에 아리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군요. 약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한 보나파르트 양과 그녀를 구하러 나간 김덕성 군이 언제부터 요리부 사전 답사 멤버로 둔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리가 딸꾹질을 한다.
“그, 그걸 어떻게······.”
에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조차 방금 알아낸 정보다.
그런데 아리스가 어떻게?
“이 학원에서 슈오우의 학생회장인 제가 모르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아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의 말에 학생회실에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은 그때.
린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속인 건 죄송합니다. 회장 선배. 하지만 저희는 반드시 김덕성을, 보나파르트를 구하러 가야 합니다. 그러니 해외 견학 허락을······.”
“저도 여러분과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쿵.
아리스가 학생회장 직인에 인주를 묻혀 견학 계획서에 찍으면서 말한다.
그녀의 말을 들은 모두의 눈동자가 커진다.
시선을 받은 아리스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한다.
“······슈오우의 생도가 위험에 처하는 일은 학생회장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자, 여기 견학 계획서입니다. 니시자와 양.”
아리스의 계획서를 받아든 에리가 웃는다.
요리부 전원에 학원 최강인 아리스의 합류까지.
이 정도면 주인님도, 황녀님도.
전부 구할 수 있다.
에리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녀가 아리스를 보면서 말한다.
“역시 회장 선배도 주인님을 좋아하는구나?”
히히히히.
에리가 헤픈 웃음을 흘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불건전합니다! 저는 슈오우의 학생회장으로서, 생도들을 지킬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동행을 요청한 것일 뿐입니다!”
탁.
아리스가 탁자를 치면서 얼굴을 살짝 붉힌다.
“그래?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해 줄게. 아무튼 고마워. 회장 선배.”
“당연한 일에 감사를 받는 취미는 없습니다.”
아리스가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에리가 미소짓는다.
팔랑.
에리가 손에 든 견학 계획서를 흔들며 소리친다.
“그럼 요리부 전원에 회장 선배까지! 다 같이 사이좋게 프랑스로 출격이야!”
주인님은 우리가 지켜줄게.
에리가 뒷말을 삼키며 웃었다.
에리링의 두근두근 프랑스 대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에리링 등장♥
프랑스 파리.
시내에 우뚝 선 에펠탑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센 강이 인상적인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영국, 서독과 함께 붉은 물결에서 유럽을 보호하는 방파제.
그리고 원작에서는 단 한 번도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 적 없는 장소.
그곳에 지금 나는 있다.
파리에 온지 이틀째.
국정원이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한서진의 보좌를 받으며 파리를 구경하는 동양인 관광객 행세를 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낮의 파리 거리를 보면서 한국어로 나지막하게 중얼댄다.
“파리도 사람 사는 동네구만.”
파리에 딱히 환상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미디어에서 주입한 ‘빛의 도시’ 파리의 이미지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 파리는 생각보다 더럽고 불친절한 동네였다.
파리 신드롬이 왜 생긴 건지 알 것 같다.
“방금 작전 준비가 다 끝났다고 합니다. 안가로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시죠.”
한서진이 내 귓가에 한국어로 속삭인다.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시내.
한서진을 따라 걸어 도착한 곳은 파리 교외의 한 저택.
국정원이 마련한 안가다.
딩동.
한서진이 인터폰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린다.
끼익.
열린 대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
탁.
저택 안, 지하실로 들어가자 첩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지하 벙커의 모습이 펼쳐진다.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모니터.
양복을 입고 헤드셋을 낀 채 바쁘게 통화하는 오퍼레이터들.
가운데 놓인 회의용 탁자까지.
벽에 걸린 커다란 태극기와 국가정보원 마크도 인상적이다.
“김덕성 생도님께서 오셨다!”
“김덕성 생도님께 경례!”
내가 벙커에 내려간 순간, 모든 요원이 작업을 멈추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경례를 붙인다.
심지어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요원, 기절하는 요원까지 보인다.
몇 번을 겪어도 이 염병할 국뽕 오버 액션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안녕하십니까? 김덕성님. 이번 작전 지휘의 총책임자인 국가정보원 1차장 김명수입니다.”
내게 다가온 선글라스를 낀 중년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내게 악수를 청한다.
얕은 지식이지만, 국정원 1차장이 어떤 자리인지는 어렴풋이 안다.
대부분의 조직도가 기밀인 국정원에서 유일하게 공개된 직위인 3개의 차장 중 하나.
국정원 1차장은 해외 정보 수집과 첩보를 총괄하는 책임자다.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김 차장님.”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 맞지?
김 차장과 손을 맞잡는다.
“만나서 정말 영광입니다!”
김 차장이 울먹대며 내 손을 잡고 악수하면서 구십도로 인사한다.
그런 김 차장을 다른 요원들이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진짜 버티기 힘드네.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됐으니까 착석합시다.”
“알겠습니다. 전부 집합!”
내 말 한마디에 김 차장이 주요 요원을 원형 회의 테이블에 소집한다.
착.
한서진이 내 옆자리에 앉자 벙커의 불이 꺼진다.
지잉.
빔 프로텍터가 돌아가며 기사 하나가 화면에 떠오른다.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인 르몽드지다.
문제는 프랑스어로 적혀 있어 내가 읽을 수가 없다는 것.
‘저거 뭐라고 적힌 거냐?’
[올리비아와 윌리엄의 약혼식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흘 뒤에 개최된다고 적혀 있네.]흑태자가 곧바로 대답한다.
나흘 뒤라.
대통령이 알려준 날짜 그대로다.
“디데이까지는 나흘. 작전의 상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대통령께서 약혼식이 절정일 때 녹취록을 폭로하면, 김덕성 생도님께서 내부 협조자인 벨라의 도움을 받아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잠입, 대상에게 결투를 신청하시면 됩니다. 구체적인 침투 루트는 이렇습니다.”
탁.
1차장이 리모콘 버튼을 누르자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도가 펼쳐진다.
“약혼식 당일 경계는 삼엄하며, 사전에 초대된 인원 외에는 입장이 불가능하고, 행사가 시작되면 입구가 봉인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올리비아의 전속 시녀인 벨라의 도움을 받아 바로 여기.”
벨라의 사진과 함께 노트르담 성당 지붕이 보인다.
“지붕을 뚫고 침투해서 약혼식이 열리는 식장 바로 한복판에 강하할 예정입니다.”
1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태자가 탄성을 터뜨린다.
[누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어도 기가 막힌 연출이군. 영화 같은 느낌이야.]영화는 무슨.
라노벨 같은 연출이다.
한숨이 나오지만, 어쩔 수 없다.
올리비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이번만큼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라노벨 연출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천장에서 떨어져서 윌리엄, 그놈한테 결투를 신청하면 된단 말이지. 올리비아를 걸고.”
“맞습니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전.
하지만 윌리엄이 상대라면 나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진명해방 없이 약빨로 버티는 놈이다.
게다가 원작과 다르게 닥터 모로모로가 제거되면서 약물 공급도 제대로 안 되는 약쟁이 따위는 객관적으로 봐도 내 상대가 아니다.
문제는 13사도인 가레스.
원작에서처럼 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 말고 다른 영웅의 보조가 필요하다.
내가 윌리엄을 상대하는 동안, 올리비아와 벨라가 가레스를 상대하라고 해야 하나?
그걸로 놈의 발목을 묶을 수 있을까?
조금 미심쩍다.
게다가 상대는 윌리엄과 가레스만 있는 게 아니다.
영국 왕실 호위를 담당하는 근위대 소속 영웅들도 있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나 혼자서 다른 놈들까지 상대하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너무 급하게 프랑스로 온 것 같기는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애들도 부를 걸 그랬다.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부르는 게 어때? 파트너. 아직 안 늦었다고.]‘역시 그게 낫겠지?’
그러려고 만든 요리부니까 말이다.
[파트너. 너무 혼자 다 해결하려는 생각은 좋지 않아. 함께 사는 세상이잖아?]흑태자가 상투적인 잔소리를 한다.
원래부터 혼자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이득은 나 혼자, 고통은 모두와 나눠서.
독식과 사이다.
나를 위해 살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이다패스 정신이란 말인가.
역시 웹소설이 최고다.
‘그럴 거야.’
흑태자에게 대충 대꾸한 뒤 한서진을 부른다.
“한서진.”
“부르셨습니까. 김덕성님.”
옆자리에 앉은 한서진이 고개를 숙인다.
“학원에 남은 요리부 애들 여기로 좀 불러. 아무래도 윌리엄 말고 다른 전력을 상대하면 걔네도 있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방금 니시자와 양과 연락을 마친 참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서진이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뭐?
“벌써?”
아니 대체 언제 연락한 거지?
“지금 요원의 안내를 받아 여기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지금 오는 중이라고?
“그게 무슨······.”
너무나 갑작스러운 한서진의 말에 내가 당황한 그 순간.
벌컥.
벙커의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일본어가 귓가에 들린다.
“에리링 등장♥ 일본에서 프랑스까지 주인님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주인님의 충실한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이야★”
끔찍한 라노벨형 리액션과 함께 문 너머에서 개목걸이를 찬 주황색 트윈테일 미소녀, 니시자와 에리가 나타난다.
“후배 군은 나쁜 남자야. 부장인 나한테도 한 마디 귀띔 없이 멋대로 프랑스로 가고, 나쁜 후배 군.”
에리의 뒤에서 나타나서 볼을 부풀리는 카스미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