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4)
“말도 안 돼요······.”
올리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번만큼은 동감이다.
괴도 벨라보다 엑스트라 국정원 요원이 더 빠르다니?
“만나서 영광입니다. 김덕성 후보생님. 후보생님의 보좌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한서진이라고 합니다.”
국정원 요원, 한서진이 내게 정중한 말투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한국어로 인사한다.
“어, 그래. 생각보다 빨리 왔네? 어떻게 온 거야?”
“제 기프트는 스피드스터. 단순한 속도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한서진이 고개를 든다.
스피드스터.
초고속능력 보유자라니.
“헌터였군.”
그라운드 제로는 일반인 출입 금지니까, 당연한 결론이다.
한서진이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부끄럽지만 SSS급 헌터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SSS급 헌터라, 높으신 양반들이 날 꽤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야.”
영웅 미보유국 한국에서 SSS급 헌터는 나름 귀중한 인재다.
뭐, 그래봤자 초상병기를 못 쓰는 능력자인 헌터는 현장에서 영웅의 들러리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국내에서 나름 톱 클래스 인재를 내 전담 요원으로 배치하다니.
한국에서 나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김덕성 님을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서진이 인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올리비아를 향한다.
「보나파르트 황녀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한서진이라 합니다.」
한서진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런데 뭐라는 거야?
프랑스어인가?
「당신, 우리말을 꽤 유창하게 하는군요? 태도도 그렇고······. 뭐,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요.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올리비아가 알 수 없는 말로 답한다.
프랑스어인 모양이다.
「협력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도록 하죠.」
둘 사이의 대화가 끝난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욕을 주고받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번에도 내가 이겼군. 온다던 요원이 스피드스터일 줄은 나도 몰랐어.”
“으으으으으! 정말······. 이익!”
올리비아가 분하다는 듯 볼을 부풀린다.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더니, 고개를 들면서 결심한 듯 말한다.
“조, 좋아요. 내기는 내기니까, 어쩔 수 없죠. 당신의 승리를 인정할게요!”
“그래, 뭐. 오랜만에 동기한테 밥 얻어먹게 생겼네.”
동기에게 마지막으로 얻어먹은 밥이 1년 전에 취업턱으로 먹은 삼겹살 같은데.
“메뉴는 제가 고를게요.”
“알아서 해.”
“뭐예요?! 그 성의 없는 반응은!”
내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흔들자 올리비아가 발끈하던 그때.
“김덕성 님.”
한서진의 조용한 목소리가 최심부를 울린다.
“말씀하신 유물이 저 관입니까?”
그녀가 손목에 찬 헌터 워치로 유물을 스캔하며 한국어로 묻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름은 세례의 관, 능력자에게 기프트를 후천적으로 부여하는 유물이지.”
“기프트 말씀이십니까?”
한서진이 화들짝 놀라더니, 곧이어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그래서 프랑스와 협력을 지시하셨던 거군요. 김덕성 님의 혜안은 역시 범상치 않습니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반짝인다.
마치 사이비 교주를 영접한 광신도 같은 표정.
얘는 또 부담스럽게 왜 이래.
한숨이 나온다.
“김덕성 님께서 맡기신 첫 임무, 안 되면 될 때까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믿을게.”
“감사합니다!”
군인처럼 경례를 올려붙인 한서진이 비장의 각오로 눈을 빛내던 그때.
“황녀님. 벨라입니다.”
“벨라!”
두 번째 손님이 입구에 등장했다.
칙칙한 동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먼지 한 톨 없는 메이드복 차림에 갈색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묘령의 미녀.
올리비아의 전속 메이드 벨라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늦었습니까? 그게 무슨······.”
벨라의 포커페이스가 살짝 깨진다.
올리비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벨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된 거군요. 알겠습니다. 황녀님. 다음부터는 승부에 신중함을 기하시길.”
“으으으······. 알았어요······.”
벨라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자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국내 팬덤에서 ‘올리비아 담당일진’으로 불리던 명성이 현실화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순식간에 올리비아를 진정시킨 벨라가 내 앞으로 온다.
“당신이 김덕성 님이군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황녀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벨라가 메이드복 양 끝단을 살짝 들며 인사한다.
그녀의 시선이 빠르게 내 전신을 스캔한다.
“아, 뭐. 나야말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는다.
지금의 벨라는 ‘아가씨의 전속 메이드’ 컨셉의 흔하지만 애매한 비중의 등장인물.
초반 스토리에서 그녀의 역할은 폭주하는 올리비아에게 조용히 태클을 거는 츳코미 조연이다.
그런 벨라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6권의 약혼자 에피소드 도중.
‘괴도’로서의 자신을 드러낸 벨라는 주인공과 협력으로 폭주하는 망나니 왕자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6권의 서브 히로인으로 급부상한다.
‘그걸 이제는 꼼짝없이 내가 하게 생겼군.’
6권 스토리를 떠올리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고구마를 백 개 먹은 기분.
사이다가 필요하다.
이게 다 주인공 놈이 엉뚱한 히로인의 알몸을 본 덕분에 생긴 일이다.
빌어먹을 럭키 스케베.
그래도 벨라는 좀 말이 통하는 캐릭터라 다행이다.
“저희 아가씨께서 시녀 일이 서툴러 폐를 끼치지는 않는지 걱정입니다. 주인님의 주인님.”
라고 생각했던 내가 미친 놈이다.
역시 이 미친 세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내가 빙의라는 끔찍한 미래를 사전에 알았더라면!
라노벨 작가 대신 유료 연중 아카데미물 웹소설 작가에게 5700자 쪽지를 보냈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쯤 상태창으로 기연도 공부도 날먹하면서 오글거리는 라노벨 대사도 안 듣고 한국에 있는 헌터 아카데미에서 소확행 앤 스라밸을 누리고 있을 텐데.
‘엿 같은 인생 같으니.’
라노벨 빙의라고?
지금 이걸 소설로 연재 사이트에 올렸다가는 20화 이전에 연독률 반 토막에 눈물의 공지 후 자물쇠 엔딩이다.
내가 작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그그그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 벨라!”
“벌써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요, 황녀님?”
“그, 그건 그렇지만······.”
“좀 짐덩이 같기는 하지.”
“다다다당신은 조용히 해요!”
한 마디 끼어들자 올리비아의 반응이 격렬해진다.
아, 또 히전죽 마렵네.
“그렇습니까? 그래도 아가씨께서는 솔직하지 못할 뿐이지 심성이 나쁜 분은 아닙니다. 부디 주인님의 주인님께서 어여삐 봐주시길.”
“그래, 뭐. 알았어. 그럴게.”
생각이 바뀌었다.
벨라, 말투만 좀 어떻게 참는다면 괜찮은 상대다.
“감사합니다.”
벨라가 희미하게 웃는다.
올리비아는 씩씩대며 입술을 우물대지만, 아무 말도 못한다.
츤데레 억제기 최고다.
“그럼 이 유적은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 벨라가 한국에서 온 국정원 요원분과 협력해서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두 분께서는 이제 유적을 벗어나 여가를 즐겨주시길.”
벨라가 가슴 위에 손을 얹고는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한다.
이제 슬슬 이 지겨운 유적 탐색도 끝날 때가 된 모양이다.
국정원과 벨라라면 믿고 뒤처리를 맡길 수 있다.
“그렇다는데?”
“아, 안 그래도 나갈 참이었어요! 시, 식사 대접 약속도 지켜야 하고······. 들어올 때는 제가 앞장섰으니 나갈 때는 당신이 앞장서요!”
올리비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한다.
식사 약속이라.
하긴, 그녀에게 백염검식 얘기도 해야 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자리를 따로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앞으로도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주인님의 주인님.”
“으으······.”
올리비아의 앓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유적을 나섰다.
부탁이 있어
일몰 후의 도쿄.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반짝이는 일본의 번화가를 나는 올리비아와 함께 걷고 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올리비아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한다.
도시의 매연 섞인 공기가 그렇게 좋나?
그녀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저저정말 숙녀에게 같이 외출하자고 말해놓고 유적에 데려가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긴, 여기 있다.
고성능 노예는 부려 먹으라고 있는 거다.
“진짜! 믿을 수 없어요! 으으으으!!”
한바탕 소리치던 그녀가 부끄러운 모양인지 작은 목소리로 투덜댄다.
“괘, 괜히 신경 썼잖아요······.”
“뭘?”
신경 썼다는 거지?
“보고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매너뿐만 아니라 눈치도 꽝이군요!”
올리비아의 모습을 살핀다.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
가슴이 도드라진 하얀 셔츠 위에 연한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리며 내게 항의하고 있다.
“옷에 신경 좀 썼네.”
“흥. 지금이라도 아셨다면 됐어요.”
그녀가 시선을 돌린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을 혼자서 오지게 드링킹한 모양이다.
“그래서, 저녁은 뭐 사줄 건데?”
“치즈 닭갈비요.”
뜬금없이?
“웬 닭갈비?”
“치즈 닭갈비가 신오쿠보의 인기 한국 요리라는 풍문을 들었거든요.”
올리비아의 말을 듣자, 머릿속 한쪽 구석에 있던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유난히 K어쩌고를 강조하는 국뽕 너튜브 영상 썸네일에서 일본 치즈 닭갈비 유행?! 일본인들도 먹어보고 감탄한 한국 요리의 위엄! 이라고 적혀 있던 기억.
아주 구라는 아니고 실체가 있는 소문이긴 했나 보다.
“따, 딱히 당신을 위해서 선정한 메뉴는 아니니까 쓸데없는 착각은 사양이에요. 어디까지나 제가 궁금해서 선정한 메뉴라고요!”
그녀가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인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일일이 반응해봤자 피곤해지기만 할 뿐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익숙한 한국어가 간간이 들리고, 한글 간판이 보인다.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요, 이쪽이에요.”
그녀가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보며 나를 이끈다.
올리비아를 따라 도착한 곳은 간판에 가타카나로 닭갈비(タッカルビ)라고 크게 쓰여 있는 가게.
식당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반겨주고, 자리를 안내받아 착석한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즈 닭갈비와 밥이 함께 나온다.
뜨끈뜨끈 김이 풀풀 올라오는 동그란 철판에 담긴 닭갈비와 올려진 치즈의 조합이 미각을 자극한다.
꼬르르륵.
배에 천둥이 친다.
“당신, 배가 어지간히 고프셨던 모양이군요?”
맞은편에 앉은 올리비아가 웃으며 되묻는다.
점심 이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유적 탐사를 했다.
칼로리를 소비했으니, 배가 고픈 건 당연한 일이다.
“잘 먹을게.”
일단 얻어먹는 거니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젓가락을 들어 닭갈비를 한 점 입에 넣는다.
“어때요,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네.”
고개를 끄덕인다.
입대 당일, 지금은 사라진 춘천 102보충대 앞에서 팔던 유사 닭갈비보다는 확실히 맛있다.
그때 거기서 닭갈비를 먹는 게 아니었는데.
“다행이네요.”
올리비아가 옅게 웃는다.
그녀가 포크를 들어 닭갈비를 한 점 찍고는 입 안에 넣는다.
“뭐, 나쁘지 않네요.”
굳이 번역할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무 말 없이 새하얀 쌀밥에 닭갈비를 얹어 먹는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잘 들어간다.
학원 식당은 다른 건 다 좋은데 한식 메뉴가 없어서 문제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로운 유적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유적을 탐사한 건 한국과 프랑스의 영웅 후보생으로······.]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오늘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인데, 잠깐.
“저거 우리 얘기 아닌가요?”
올리비아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다.
TV가 보인다.
일본인 앵커가 열심히 멘트를 읊는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세례의 관의 소유권은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가져가기로 당국과 협의했으며, 이르면 내일 유물이 한국으로 반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학계에서는 기프트를 후천적으로 부여하는 이번 유물의 등장으로 전 세계에 파란이 일어날 거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세례의 관이 있는 유적 화면과, 나와 올리비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황급히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한다.
[K-영웅 김덕성! 또 사고 치다! 일본에서 발견된 레전드급 유물을 두고도 일본 영웅 협회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K-영웅의 활약에 침묵하는 일본 열도!] [전 세계가 경악했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K-영웅 김덕성이 발굴한 유물 ‘세례의 관’의 정체는?! 집중분석!] [ㅋㅋㅋ 김덕성 거품이라던 국까들 다 나와라 ㅋㅋㅋㅋ 이래도 거품이냐?] [김덕성 솔직히 거품이지 ㅋㅋㅋ 언블리‘버블’ ㅋㅋ] [김덕성! 김덕성! 김덕성!] [으 국뽕들 날뛰는거 극혐이네 ㅋㅋ 갓본에서 이정도 유물은 너무 흔해서 뉴스거리도 안되는데 ㅋㅋㅋ 미개한 약소국 수준 ㅋㅋㅋ] [추천 0] [비추천 –1903]– 느그 나라로 꺼져 ㅋㅋㅋㅋ
– 울지 말고 말해봐 ㅋㅋ
– 일뽕 오열중 ㅋㅋㅋㅋㅋ
– 아닌데? ㅋㅋㅋ 일본 협회에서 아쉬운 티 존나 내던데?? ㅋㅋㅋㅋㅋ
[프랑스와 유물 협상 극적 타결······. 유물 소유 지분은 50:50, 소재지는 한국에 두고 사용하기로······.] [강 대통령.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영광스럽다.” 입장 발표.] [대한민국의 자랑 김덕성, 유물 ‘세례의 관’ 발굴에 주도적 역할. 프랑스 측 관계자. “이번 유적 탐사에는 김덕성과 한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발언.]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은 이미 광란의 도가니로 변한 상태.
전부 국뽕 치사량을 맞고, 지나치게 혹사당한 주모는 벌써 실신한 지 오래.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마를 짚는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하게 국뽕을 맞을 줄이야.
우웅.
휴대폰이 울린다.
[후보생님. 한서진입니다. 지시하신 임무 처리 관련 보고드립니다.] [지시하신 유물의 소유권은 프랑스와 한국이 5:5 지분으로 소유하기로 협의했으며, 유물 소재지는 서울에 있는 한국 헌터협회 본부에 두기로 했습니다.] [또한 매달 유물 사용료의 10%를 후보생님 몫으로 정산하기로 합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