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42)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무도회가 열리는 날이 됐다.
프랑스 파리.
포시즌스 호텔 조지 V 파리.
나와 요리부 멤버들, 그리고 대통령과 해외 순방단이 묵고 있는 최고급 호텔 앞.
드레스룸에서 나는 올리비아가 골라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다 입고 전신 거울을 보니 옷이 날개라고 제법 괜찮은 것 같다.
착각인가?
[오, 파트너. 꾸미니까 그래도 제법 괜찮은데? 신사다워. 그래.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파트너.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 흑태자 님이 보장할 테니까 말이야. 그래도 정장 핏은 탑 클래스니까 말이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신경을 긁는다.
이 양반은 꼭 저렇게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이는 게 문제다.
뭐, 흑태자 말처럼 얼굴은 몰라도 몸은 좋아서 정장 핏 하나만큼은 모델 뺨칠 만큼 기가 막히게 잘 빠지긴 했다.
툭툭.
옷맵시를 만지고 뒤돌아본다.
좋아.
‘이 정도면 그래도 나름 잘생긴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야. 파트너. 자뻑하지마.]다시 흑태자가 속을 긁는다.
내가 흑태자한테 뭐라하려던 그때.
“넥타이가 조금 삐뚤어졌군요.”
한서진이 차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녀가 손으로 넥타이를 살짝 만진다.
“됐습니다. 출발하시죠. 올리비아 씨께서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 세계 생중계로 전속 시녀 선언에 이상한 말까지 떠들어버린 올리비아였기에 거의 강제적으로 내 파트너는 올리비아로 지정되었다.
반드시 무도회에 참가하라는 프랑스 황제의 협박에 가까운 당부는 덤이고 말이다.
부담 백배다.
‘가기 싫은데.’
[어허, 파트너. 레이디를, 그것도 이 흑태자의 여동생을 감히 바람맞힐 생각은 아니지?]내가 한마디 하기가 무섭게 흑태자가 발끈한다.
말을 말지.
속으로 한숨을 쉬며 한서진을 따라 호텔 입구로 내려간다.
입구에는 벨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의 주인님.”
평소와 같은 메이드복 차림, 갈색 단발이 인상적인 그녀가 우아하게 내게 인사를 건넨다.
벨라 뒤에는 길쭉한 고급 리무진이 있었다.
그 뒤로 수행원용 차량으로 보이는 고급 세단이 있었다.
“아가씨께서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타시지요.”
차 문이 열린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리무진 안에 탑승한다.
차 안에는 벨라의 말대로 올리비아가 있었다.
탁.
차 문이 닫힌다.수행원인 벨라와 한서진은 뒤따르는 수행원 차량에 탄 모양.
넓은 리무진 안에는 운전기사와 나, 그리고.
“당신, 뭔가요? 왜 이렇게 늦은 건가요?!”
흥하고 볼을 부풀리는 올리비아가 있었다.
부푼 가슴이 인상적인 백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팔짱을 낀 채 시선을 돌린다.
곧이어 리무진이 출발한다.
자리에 앉자 올리비아가 리무진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한 캔 꺼낸다.
“자, 마셔요. 따, 딱히 당신을 위해서 준비한 건 아니니까 차, 차차착각하지 마시고요!!”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으면서 올리비아가 내게 준 콜라는 빨간색 코X콜라.
펩X가 아니라니 역시 올리비아가 뭘 좀 아네.
콜라를 따서 마신다.
청량한 탄산의 맛이 입안에 감돈다. 그래, 이 맛이지.
“이봐요, 당신!”
그때.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올리비아가 있다.
귓불까지 빨개진 채로, 올리비아가 귀에 찬 귀걸이를 만지작대며 말한다.
“어, 어떤가요. 오늘 제 옷차림······. 뭐 어디 이상한 곳은 없죠?”
올리비아가 시선을 내리깐다.
[역시 내 동생이야. 어떻게 무슨 옷을 입어도 이렇게 전부 예쁠 수 있지? 흐흐흐흐.]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웃음을 흘린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
옷걸이가 좋으니까 무슨 옷을 입어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예쁠 수밖에 없다.
이건 올리비아뿐만 아니라 린, 카스미 선배, 에리, 아리스, 마코토처럼 연예인 뺨때리는 수준의 미모를 지닌 원작 히로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지만.
아무튼.
[야, 파트너. 무조건 대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거 알지? 잘 어울린다고 말해. 어서. 그게 단 하나뿐인 진실이니까. 다른 대답은 없는 거야. 알겠어?]흑태자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속으로 쉬면서 말한다.
“잘 어울리네. 괜찮아.”
“흥, 그, 그그그런 무성의하고 당연한 칭찬 따위, 드, 드드들어도 아무 감흥 없거든요?! 다, 당신한테 잘 보이려고 입은 옷도 아니니까, 차차차각가하지마세요!!”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젓는다.
하여간, 츤데레 짓하고는.
“그래, 알았다.”
“바보, 멍청이······. 흥.”
대답을 들은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린다.
냉장고에서 콜라 캔을 하나 더 꺼내 마시며 차창 밖을 쳐다본다.
슬슬 해가 질 기미가 보이는 오후의 파리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비싼 리무진이라 그런지, 차 내부에 소음은 하나도 없다.
“도착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한 건 슬슬 해가 저물어갈 무렵.
궁전 앞 아름 광장에 도착한 리무진의 문이 열리고, 그 너머로 광장에 우뚝 선 나폴레옹 1세의 기마상이 보인다.
그 유명한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형상화한 모습.
기마상 뒤로 깔린 레드 카펫과 양옆으로 쫙 늘어선 기자들도 보인다.
레드 카펫이라니.
내가 무슨 연말 시상식에 참가하는 스타 배우도 아니고, 이런 걸 밟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바리케이트 너머 우글대는 기자들 모습만 봐도 현기증이 치민다.
속이 안 좋다.
역시 그냥 무도회 같은 거 참여 안 하면 안 될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이럴까.
리무진 밖으로 발을 내디디려는 그때.
“당신, 뭐해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을 돌아보니, 그녀가 시선을 내리깔면서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게 내밀고 있다.
“······.”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올리비아.
[파트너. 무도회에서는 신사가 숙녀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해주는 게 예의라고.]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한숨을 쉬며 설명한다.
에스코트라니.
이런 허례허식은 싫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올리비아의 손을 잡는다.
하얀 실크 장갑의 감촉이 손에 느껴진다.
“흥. 멍청이.”
올리비아가 일본어로 낮게 중얼거린다.
그녀의 손을 잡고 리무진에서 내린 순간.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레드 카펫 양옆으로 깔린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쏟아진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세계 유수의 외신들까지 전부 있는 상황.
말 그대로 세계가 이 무도회를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자리에는 처음 서보는 거라 속이 쓰리다.
원작에서도 이런 전개는 없었는데.
“뭐해요. 안 가고?”
올리비아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그녀를 데리고 레드 카펫 위를 걷는다.
뒤에는 벨라와 한서진이 뒤따르는 상태.
TV 연말 시상식에서는 푹신해 보였는데, 실제로 밟아 보니 그렇게까지 큰 감흥은 없다.
“안녕하세요! 김덕성 씨. 윌리엄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입수했습니까?”
“올리비아 황녀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이미 깊은 관계라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한국 국적의 유일한 영웅 전력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까?”
“학원에서 검은 귀축이라고 불리며 수많은 여생도와 염문을 뿌린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기자들이 영어로 내게 질문 공세를 쏟아붓는다.
뭐? 검은 귀축? 깊은 관계?
어이가 없다.
역시 그때 올리비아가 전속 시녀니 뭐니 헛소리하던 것과, 전 세계 생중계 현장에서 가슴 사이즈 배틀을 하던 린과 에리를 말렸어야 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던 그때.
“인터뷰 안 하니까 다들 물러가시죠! 무례한 사람들 같으니!”
내 옆에 있던 올리비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영어를 사용해 소리친다.
“하지만 황녀님, 저희는 세계인의 알 권리를 위해······.”
“시끄러워요! 인터뷰 거부한다고 저는 분명히 말했어요!”
기자 하나가 용감하게 마이크를 들이대 보지만, 올리비아의 츤데레 철벽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황녀님께서는 인터뷰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기자 여러분은 더 이상 무례하게 굴지 말아주시길.”
“알겠습니다.”
뒤이어 벨라까지 나서자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는 기자들.
그녀가 아가씨 웃음을 짓는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아가씨 웃음이라니.
라노벨 세상, 이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아무튼 귀찮은 기자들을 물리쳐준 건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잘했네.”
“흥. 다, 당신 따위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 그냥 자꾸 귀찮고 거슬리게 해서, 어, 어디까지나 저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요!!”
내가 일본어로 묻자 일본어로 답하는 올리비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프랑스인과 한국인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다.
“빨리 가기나 해요!”
올리비아의 재촉을 들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지나 베르사유 궁전의 정문인 명예의 문을 통과한다.
어느새 교과서에서나 보던 베르사유 궁전 건물이 눈앞에 다가왔다.
판타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서양 궁전 모습.
베르사유 궁전은 원래 세상에서는 박물관이지만, 프랑스 제정이 멀쩡히 유지되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진짜배기 황궁이다.
보나파르트 황실을 곁들인.
끼이익.
근위대 제복을 입은 병사가 정문을 개방한다.
올리비아와 함께 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무도회가 열리는 장소는 거울의 방이에요. 저쪽이니까 길 잃지 말고 똑바로 가세요. 아시겠나요?”
올리비아가 옆에서 툴툴대며 길을 안내한다.
과연 유럽에서 제일 유명하고 넓은 궁전답게, 내부도 화려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초상화와 금박 장식으로 도배된 복도를 지나 마침내 그 유명한 거울의 방 앞에 섰다.
“황녀 전하, 어서 오십시오.”
“무도회 참석을 환영합니다. 황녀 전하와 파트너분.”
거울의 방 입구를 지키고 있던 근위병이 나를 도둑놈 보는 것처럼 노려본다.
‘아까 정문 지키던 위병도 그렇고, 얘넨 눈빛이 왜 다 저래?’
[파트너. 내 여동생은 프랑스 최고의 인기 스타라고. 그런 올리비아의 파트너가 파트너니까 그런 거지. 그런 당연한 것도 몰라?]흑태자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하긴, 여긴 그런 게 상식인 세상이었지.
끼익.
근위병이 문을 열자, 무도회장으로 꾸며진 거울의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천장화.
벽에 박힌 거울과 화려한 금박 장식.
그 아래 비치된 음식과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선남선녀.
한쪽에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까지.
판타지 소설에서 묘사되던 무도회 장면보다 몇 배는 화려한 풍경이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녀님과 그 파트너인 김덕성 생도님 입장하십니다!”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거울의 방을 가득 메운다.
그와 동시에 거울의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와 올리비아를 향한다.
짝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거울의 방 안을 가득 메운다.
그렇게 무도회장에 입장한 나와 올리비아를 가장 처음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어서 오게. 김덕성 군. 자네를 여기서 볼 수 있다니, 정말 무한한 영광이 따로 없······. 크흑······. 흑······.”
보자마자 난데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대한민국 대통령, 강명현이었다.
벌써 어지럽네.
아니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매번 저래도 괜찮나?
왜 나 가지고 이 난리야
“이거 내가 추태를 보였구만. 미안하네. 김덕성 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대통령.
이번 무도회에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정부 해외 순방단도 초청받았다고 듣기는 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까지 오버 액션을 할 줄이야.
[······.]어이가 없는 모양인지 침묵하는 흑태자.
“아, 예. 뭐. 괜찮습니다.”
여기서 단호하게 잘라낼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인사를 받아준다.
대통령이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물을 닦아내면서 울먹이며 말한다.
“이번에도 아주 대단했네. 세간 사람들은 자네 활약에 벌써 파리 대첩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더군. 자네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자유세계 전체를 지켜냈네······.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을 대표해서 자네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군. 정말로 고맙네.”
그가 내 양손을 잡고 흔들면서 허리를 구십도로 숙인다.
뚝뚝 흐르는 눈물.
때마침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도 구슬픈 멜로디로 바뀌어서 그런지 더 당황스럽다.
중년 양복남이 내 앞에서 저러니 속이 안 좋다.
“아, 네. 뭐······.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비행기 안 태워주셔도 됩니다.”
부담스럽다는 말을 대놓고 하기에는 좀 그런 자리였기에,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빼낸다.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역시 자네야말로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에 길이 빛날 성웅일세! 흐하하하하하하하하!”
제발 그 성웅 이야기는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들을 때마다 쪽팔리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고, 이순신 장군님께 죄송한 마음만 든다.
무지성 찬양 멈춰! 제발!
“아, 내 정신 좀 봐. 올리비아 황녀님의 활약도 잘 봤습니다. 이번에 진명해방을 하셨다지요? 축하드립니다.”
대통령이 뭔가 잊었다는 듯 올리비아에게 한국어로 말을 건넨다.
대통령 옆에 있는 통역사가 대통령의 한국어를 프랑스어로 통역해 올리비아에게 말한다.
“칭찬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올리비아가 평소의 츤데레 모드와는 다르게, 우아한 황녀 모드로 돌아가 기품 넘치는 목소리로 답한다.
그것도 한국어로.
“영광입니다. 황녀님. 한국어가 유창하시군요.”
“별 거 아니에요.”
“하하하하하하하.”
프랑스어로 답하는 대통령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올리비아.
보고 있으니 놀랍다.
‘와, 올리비아 쟤 원래 저런 애였어?’
새로운 모습이다.
원작에서도 매일 같이 츤츤대기만 해서 본 적 없는 모습인데.
[뭐? 원래 저런 애였어? 내 동생은 원래 저랬어. 인마.]흑태자가 머릿속에서 툴툴댄다.
그렇게 대통령과 올리비아가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그때.
“크흠, 흠.”
멀리서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그와 함께 무도회장에 가득한 인파가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갈라진다.
거기에는 프랑스 황제가 있었다.
“오늘도 아름답구나. 사랑스러운 내 딸, 올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