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43)
옆에 황후를 대동한 채 느끼한 목소리로 다가와 올리비아를 칭찬하는 황제.
황제를 본 올리비아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소리친다.
“흥. 그런 칭찬 아버지한테 듣고 싶진 않거든요?!”
대통령을 대할 때와는 명백히 다른 태도.
이제 좀 익숙한 기분이다.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황제가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크흑! 어떻게 이 아비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느냐? 우리 올리비아가 일곱 살 때만 해도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거늘!”
일곱 살 때?
아빠랑 결혼?
기가 찬다.
[숙부도 참. 언제 이야기를 저렇게 진지하게 믿고 있는 거야. 내가 다 쪽팔린다. 정말.]같은 집안사람에다 올리비아 팔불출인 흑태자조차 차마 실드를 못 치는 수준이라니.
프랑스 황실 수준,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무, 무무무무무슨 그런 헛소리를!! 자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거면 당장 제 눈앞에서 사라져욧!!”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소리친다.
“사, 사라지라니, 정말 싫다니······. 이, 이럴 수가······.”
눈동자가 흔들리는 황제.
국뽕 다음은 라노벨 딸바보 개그신이라니, 이 미친 세상은 정말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 그 자체다.
찰싹.
“빨리 일어나지 못해요? 당신? 귀빈들 앞에서 이 무슨 추태예요?”
이번에도 등짝을 때리는 황후.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는 나를 바라본다.
올리비아 때와는 다른, 알 수 없는 열정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
왜 저래, 부담스럽게.
“이게 전부 네놈 같은 도둑, 흠흠. 아니 자네 덕분이군. 실례. 말이 잘못 나와서 말이지. 자네의 활약에는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네. 악수라도 하지 않겠는가?”
저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도둑놈은 누가 도둑놈이야.
이래서 딸바보가 문제다.
황제가 손을 내민다.
공식 석상에서 상대, 그것도 프랑스 황제의 악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악수를 하긴 해야 한다.
“물론 괜찮습니다. 영광입니다. 폐하.”
영어로 답하면서 황제가 내민 손을 맞잡는다.
꽈악.
황제가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유치한 악력 싸움.
굳이 받아칠 필요는 없다.
“전에 내가 했던 우리 딸 울리면, 가만 안 둔다는 말. 가슴에 새겼겠지?”
황제가 귓가에 속삭인다.
돌겠네.
“안 잊었습니다.”
적당히 답하면서 손을 빼낸다.
어찌나 힘을 준 건지 빨개진 손.
손을 털어내며 어색하게 웃는다.
내가 다시는 악수 하나 봐라.
[미안해. 파트너. 우리 숙부가 좀 그렇지? 내가 대신 사과할게.]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흑태자라도 염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뭐예요?! 아버지. 지금 이 사람한테 무슨 짓 한 거예요?! 손이 빨갛잖아요?! 설마 유치하게 악력 싸움이라도 한 거예요?!”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황제에게 따진다.
“아, 아니, 그, 그건······.”
“아빠 따위 정말 싫어요!!”
당황하는 황제에게 날아가는 올리비아의 결정타.
[이건 좀······. 불쌍한 숙부······. 그러게 적당히 좀 하시지.]황제를 동정하는 흑태자까지.
갈수록 가관이다. 아주.
“크흑!”
“그이를 대신해서 제가 사과드리죠. 죄송합니다. 김덕성 군.”
애처럼 우는 황제를 대신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황후.
“아, 예. 뭐······.”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나지도 않았다.
워낙 어이가 없어서.
시트콤 보는 기분이다.
“그럼, 무도회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두 사람이 주인공이니까요.”
품위 있는 목소리로 웃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황후.
그녀가 황제를 다시 질질 끌고 사라진다.
저번에 병실에서도 저러더니, 또 저러는 게 지겹지도 않나?
“흠, 흠!”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있는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힌 채 어깨를 들썩거린다.
“그럼, 당신. 무도회에 왔으니 파트너인 저와 추, 춤이라도 추는 건 어, 어떠신가요? 따, 딱히 당신이랑 춤추고 싶은 건 아니니까 착각은······.”
올리비아가 츤데레 멘트를 발사하려던 그때.
“잠깐만. 보나파르트 양.”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온통 프랑스어밖에 안 들리는 무도회장에서 들리는 낯익은 일본어.
올리비아의 눈썹이 꿈틀한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보나파르트 양은 또 후배 군을 독점할 생각이야? 정말 욕심쟁이야. 나쁜 후배.”
볼을 부풀리는 카스미 선배가 있다.
머리색과 어울리는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별 모양 보석 장식이 반짝이는 머리띠를 매만지며 말한다.
“이번에는 나도 후배 군과 춤을 추고 싶어. 후배 군. 받아줄 거지?”
“맞아. 황녀님. 새치기는 나빠.”
카스미 선배 옆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에리.
주황색 미니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올리비아를 쏘아보고 있다.
“보나파르트. 그렇게 독점하려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우리도 그와 춤을 출 권리가 있다.”
뒤이어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린다.
올리비아의 하얀 드레스와 대비되는, 커다란 가슴골과 잘록한 허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에 나비 장식 머리끈으로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린이 거기 있다.
그 와중에도 일본도는 빼놓을 수 없었는지 허리에 찬 모습이 어이가 없다.
“지이이이이이······.”
여전히 입으로 소리 내며 빤히 바라보는 마코토.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머리핀을 한 그녀 역시 커다란 가슴이 강조되는 연두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제가 왜 이런 자리까지 와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불건전한 짓은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아리스가 보인다.
신비로운 은빛 눈동자와 샹들리에 조명을 받아 빛나는 은빛 머리를 휘날리는 아리스의 시선이 나와 올리비아를 훑는다.
“으으으으으읏······.”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물면서 다섯 소녀를 노려본다.
“다, 다다다당신들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여기에······.”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또 시작인가.
속으로 혀를 찬다.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 빌어먹을 춤인지 뭔지를 춰야만 한다.
평생 클럽 입구조차 가본 적 없던 내가 사교춤이라고?
‘그럴 수는 없지.’
눈치를 보면서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이럴 때 한서진이 필요한데······. 주변을 둘러본다.
벨라만 보이고 한서진이 보이지 않는데. 얘 어디 간 거야.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 다섯 소녀 뒤에 있는 한서진이 보인다.
아니 왜 저기 있는 거야?
“황녀님, 너무해. 우리도 황녀님 도와주려고······. 일본에서 프랑스까지 이렇게 달려왔는데······. 황녀님 혼자 독점하는 건 반칙이야······. 흑흑.”
에리가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댄다.
누가 봐도 가짜로 우는 기색이 역력한 발연기.
“이번만큼은 빨래판, 아니 니시자와의 말에 동감이다. 보나파르트. 우리도 그와 함께 춤을 출 권리가 있다.”
“맞아! 보나파르트 양,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딱 그 말 그대로야.”
“지이이이이이이이······.”
에리의 연기에 동조하는 린, 카스미 선배, 마코토.
옆에서는 아리스가 팔짱 낀 자세로 힐끗힐끗 이쪽을 바라보며 입술을 우물대고 있다.
올리비아가 신음을 흘리고, 다섯 소녀가 압박하는 대치 상황이 이어지던 그때.
“주인님의 주인님은 황녀님의······.”
벨라가 앞으로 나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잠시만요.”
올리비아가 말허리를 자른다.
그녀가 드레스 자락을 만지면서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들 말이 맞아요. 이번 사건. 그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도와줬다는 사실도······. 그 은혜도 잊지 않고 있어요. 보나파르트 황실은 은원을 잊지 않는 가문이니까요. 그러니까······. 그, 그는 제 파트너지만······.”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힌 채 더듬거리면서 말한다.
“오, 오늘만큼은 트, 특별히 허락해주죠! 그, 그와 춤을 추는 것을! 다들 제 관대한 결정에 감사하도록 하세요! 아시겠나요?! 그러니까 니시자와 양은 좀 그만 울고요! 다들 자꾸 그, 그러면 제가 쓸데없이 신경 쓰이거든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손가락질하며 의기양양한 표정과 목소리로 외친다.
아니 내가 춤추는 걸 왜 네가 허락해?
어이가 없다.
올리비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언제 울었냐는 듯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에리.
“다행이야. 황녀님이 또 독점하면 어쩌나 고민했거든.”
“흥.”
이때를 틈타 빠져 나와야겠다.
춤은 딱 질색이다.
[파트너. 후회할 텐데.]흑태자의 경고를 흘려 들으며 자리에서 슬쩍 빠지려던 순간.
“이봐요, 당신!”
올리비아의 부름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염병.
“주인님. 누구랑 먼저 춤출 거야?”
뒤이어 들려오는 에리의 목소리.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파트너.]속을 긁는 흑태자.
에휴.
그래, 뭐 언제는 이 미친 세상에서 내가 뭘 바란다고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나 있었나.
체념하면서 등을 돌린다.
“결정해라. 김덕성.”
린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각양각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섯 소녀가 나를 바라본다.
두통이 올라온다. 관자놀이를 짓누른다.
이 상황이 라노벨이었다면 권두 컬러와 흑백 삽화 둘 다 뽑힐 만한 장면이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현실.
이게 그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가 뭔가 그건가?
돌겠네, 진짜.
왜 나 가지고 이 난리야.
주인공은 누가 주인공
여섯 소녀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여름 축제 때도 이랬었지?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웃으며 나를 놀린다.
그때도 이랬던 것 같다.
누굴 선택할 거냐고.
[휘유. 하나같이 전부 아름다운 아가씨뿐인데? 순서 정하기가 쉽지 않겠어.]그때는 올리비아를 선택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유카타를 입었는데 혼자 한복을 입은 모습이 돋보여서 그랬었지.
과거 기억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이번 한 번만큼은 특별히 제가 마지막에 그와 춤추도록 하죠. 제 관대함에 감사하도록 하세요. 아시겠나요?”
마지막 순서를 자처하는 올리비아.
그녀의 입가가 씰룩거린다.
[오, 역시 내 사랑스러운 동생. 마음도 바다처럼 넓구나.]당연하다는 듯 따라붙는 흑태자의 팔불출 대사.
그렇게 올리비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순간.
“후배 군. 당연히 내가 후배 군의 1등 노예이자 착실한 스파이니까, 나를 골라줄 거지?”
카스미 선배가 나를 바라보면서 양 손을 기도하듯 가슴에 모아 깍지끼며 말한다.
“주인님. 이번만큼은 에리링이 1순위지? 그렇지?”
옆에서 에리가 방정맞게 뛰면서 개목걸이를 만지며 웃는다.
“주군, 이번에는 날 선택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먼저 할래!”
뒤이어 가슴 위에 손을 얹는 마코토가 소심하게 말한다.
“저는 딱히 아무 순서나 상관없습니다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이왕이면 첫 번째가 좋을 것 같습니다.”
힐끔힐끔 이쪽을 바라보는 아리스.
그 옆에는.
“큿······.”
입술을 깨물고 있는 린이 있다.
그녀가 숙였던 고개를 든다.
남색 포니테일이 흔들린다.
“김덕성!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린이 가슴 위에 손을 얹으면서 비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만큼은 내가 너의 처음이 되어보고 싶다! 그러니 나, 나를······. 선택해주지 않겠나···?”
그녀의 어깨가 떨린다.
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어머, 저 사람이 소녀를 울렸어. 황녀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검은 귀축이라 불린다더니, 저래서 그랬구나. 여자를 울리는 나쁜 남자라니, 의외로 매력적일지도? 라는군. 주변에서]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프랑스어를 쓸데없이 통역해준다.
전형적인 엑스트라 대사를 들으니 더 어지럽다.
아니 왜 울고 그래.
난처하다.
린 성격상 내가 먼저 하자고 할 때까지 계속 울어제낄 거다.
그러면 나만 곤란해지고.
돌겠네.
“너랑 먼저 할 테니까 울지 좀 마라. 제발.”
한숨을 쉬며 린을 가리킨다.
네가 애냐?
“저, 정말인가? 내, 내가 첫 번째인가?”
린이 눈물이 매달린 눈동자를 크게 뜨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다.
“그래. 그런데 나 춤출 줄 모르는데 괜찮냐?”
“괘, 괜찮다. 그건 내가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다! 이래 봬도 일본 최고 명문가의 일원이니까 말이다.”
린이 언제 울었냐는 듯 자신만만하게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쳇, 젖소. 눈물을 무기로 쓰다니, 비겁해.”
“후배 군은 의외로 눈물에 약하구나. 알았어. 기억해둘게.”
“주군, 다음에는 내가 제일 먼저인 거지?”
“딱히 바라지도 않았습니다만······.”
린의 반응에 툴툴대는 에리와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카스미 선배, 여전히 소심한 마코토와 애꿎은 바닥을 하이힐로 툭툭 차는 아리스가 보인다.
[파트너, 두 번째 춤은 어떤 숙녀와 출 거야?]흑태자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다음이라니.
계속 이러다가는 순서 정하다가 무도회가 끝날 판국이다.
무슨 좋은 방법 없나?
생각에 잠깐 빠진 순간, 뇌리에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소녀들을 응시하며 말한다.
“맨 마지막에 한다고 자청한 올리비아랑 맨 먼저 하기로 한 린 빼고, 나랑 만난 순서대로 하자. 공평하게.”
내 말이 끝난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좋아. 그럼 에리링이 두 번째네. 에리링은 주인님이랑 짝꿍으로 만났으니까.”
“그 다음은 나야? 세 번째인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앞쪽 순번이니까 만족할게. 후배 군.”
“저는 네 번째로군요. 딱히 순번 따위에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미묘한 숫자입니다.”
“내가 마지막에서 바로 앞······. 다음번에는 날 첫 번째로 선택해줄 거지?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