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49)
그것이 수영복 매장에 들어간 올리비아, 린, 에리, 마코토, 한서진이 카스미와 아리스, 세이라를 마주한 이유였다.
“회장 선배? 이사장님? 어째서 여기 계신 건가요?!”
카스미가 도중 합류한다는 소식만 알고 있었고, 아리스와 이사장이 합류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던 올리비아가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데려왔어. 보나파르트 양. 다 같이 쇼핑하면 좋잖아?”
올리비아의 말에 대답한 건 카스미.
그녀가 우후후, 하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다 같이 하면 좋다.
정론에 가까운 그녀의 대답에 올리비아가 멋쩍은 듯 뺨을 긁는다.
“아, 뭐, 따, 딱히 뭐라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이렇게 사람이 늘어나는 건 마음에 안 든다.
그와 함께 단둘이 쇼핑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냥함을 간직한 올리비아는 그런 속내를 내색하지 않았다.
거기다 상대는 카스미와 아리스.
그녀를 구해준 인물이다.
빚을 진 상대에게 매정하게 나갈 수 없다.
“그, 그럼 수영복부터 고를까요?”
“그럴까? 황녀님은 무슨 수영복 입을 거야?”
“여름 하면 수영복, 수영복 하면 비키니. 나는 비키니를 입겠다!”
멋쩍어진 올리비아가 화제를 돌리기가 무섭게 에리가 올리비아에게 말을 걸고, 린이 당당한 목소리로 비키니를 선언한다.
“비, 비키니라니······. 시, 시노자키 양 지, 지금 그, 그렇게 파렴치한······!”
“여자의 가장 큰 무기인 풍만한 가슴을 수영복이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그한테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부끄러워할 이유가 있나? 보나파르트. 수영복이야말로 여자의 최대 무기이거늘!”
척.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당당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린.
“아, 아무리 그래도······. 비키니는 너무 부, 부끄럽잖아요······. 소, 속옷이랑 다를 것도 없고······.”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당당한 린의 태도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비키니는 너무 부끄럽다.
올리비아가 버벅대고 있는 사이, 비키니 코너에 있는 린 옆으로 마코토가 불쑥 나타난다.
“시노자키 양의 말이 맞아. 나도, 나도······. 승부 수영복 입을 거야. 내 흉물스러운 가슴이 그분의 마음에 들 수 있다면······. 그렇다면······.”
마코토가 진지한 표정으로 비키니를 보며 중얼거린다.
마코토의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럽다.
흉할 정도로 큰 가슴을 비키니를 통해 노출해야 한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분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 사실이 마코토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래. 잘 하고 있다. 카미야 양. 네 가슴은 흉하지 않다. 모성을 상징하는 풍만한 가슴은 여자에게 있어 오히려 자랑거리다. 남자들도 큰 가슴을 좋아한다고 하더군. 앞으로도 계속 자랑스러워하도록.”
툭.
린이 웃는 얼굴로 마코토의 어깨를 치면서 말한다.
“하, 하와와와와······.”
린에게 노골적인 격려를 받은 마코토가 얼굴을 붉힌 그때.
덥석.
에리가 뒤에서 마코토를 덮친다.
그녀의 양손이 마코토의 특정 부위로 향한다.
“마코삐! 여전히 대단한 가슴 사이즈야!”
“꺄앗! 니시자와 양! 그러지 마! 하읏♥”
마코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니시자와라는 말을 들은 에리의 입술이 튀어나온다.
“마코삐, 우리 사이에 아직도 니시자와 양이라고 부르기야? 에리링 섭섭해. 에리라고 불러줘!”
“그, 그치만! 으읏! 꺄앙!”
“에리라고 안 부르고 계속 니시자와라고 하면 더 괴롭힌다?”
“에리 쨩! 알았으니까 그만해!”
그제야 손길을 놓는 에리.
옆에서는 카스미가 수영복을 고르고 있다.
“역시 이 수영복이 좋을까? 회장 선배 생각은 어때요? 이 수영복이랑 저 수영복 중에 어떤 수영복이 후배 군한테 연상의 성숙한 매력을 어필하기 좋을까요?”
카스미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원피스 수영복을 몸에 대보면서 옆에 있던 아리스에게 묻는다.
그 모습을 본 아리스가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걸 저한테 굳이 물어보는 이유가 뭡니까? 호시노 양.”
“선배도 같은 연상이잖아요. 아라아라, 회장 선배도 수영복 사러 온 거 아니었어요?”
스윽.
카스미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아리스를 툭툭 친다.
“그건······.”
말문이 막힌 아리스.
소녀들의 수영복 쇼핑으로 매장이 시끌시끌한 모습을 멀찍이서 보던 이사장, 세이라가 탁하고 부채를 접는다.
“청춘이구나.”
그녀의 입에 쓴맛이 감돈다.
‘40년만 젊었더라도, 이 몸도 저 자리에 당당하게 낄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킨다.
자신도 수영복을 고르고 싶다.
그런 욕망이 세이라의 마음속에서 꿈틀하던 그때.
“김덕성님과 함께 여름을 즐기고 싶은 겁니까? 이사장님.”
세이라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이라가 고개를 돌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세이라가 미간을 좁힌다.
거기에는.
“너는······?”
회색 단발 정장 미녀.
한서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투명한 회색 눈동자로 세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서진이 차분하면서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제게 묘책이 있습니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빛난다.
벌써 두려워지네
“묘책?”
세이라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습니다.”
한서진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한서진의 말을 들은 세이라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녀와 한서진 사이의 접점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한서진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너는······. 꼬마의 수행원이로군. 이름이······. 한서진이랬나?”
세이라의 붉은 눈동자에 경계의 빛이 드리운다.
“그렇습니다.”
한서진이 흔들림 없는 태도로 답한다.
“한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소속 요원, 한국의 유일한 영웅 전력인 꼬마를 데리고 뭘 하려는 거지? 설마 허울 좋은 국익과 애국심이라는 명분으로 꼬마를 멋대로 이용하려는 건 아니겠지?”
슈오우 학원 내부라면, 이사장인 그녀가 모르는 정보 따위는 없다.
한서진에 대해서도, 김덕성에게 그녀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을 때부터 이미 조사해둔 상황.
“그걸 위해서 이 몸한테 접근한 거라면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군. 이 몸의 신체가 어리다고 해서 정신까지 어린 건 아닌······.”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군요. 이사장님.”
한서진이 이사장의 말허리를 자른다.
“이사장님 말대로 제 신분은 국가정보원 요원이 맞습니다. 국익, 애국심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차가운 광기로 불타오른다.
그녀의 강렬한 시선을 받은 이사장이 한 발짝 물러선다.
“그 어떤 가치도, 김덕성님의 행복보다 우선될 수 없습니다. 제게는 오직 김덕성님 단 한 분뿐입니다. 저는 그분한테 몸도 마음도 영혼도 인생도 전부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서진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그러니 그런 오해는 불쾌하군요. 이사장님.”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서진의 회색 눈빛과 이사장의 붉은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잠깐의 신경전 끝에 세이라가 한 발짝 물러난다.
“확실히, 네 눈빛은 진심이로군. 아이야. 이 몸이 오해한 것에 관해서는 사과하마.”
“사과에 감사합니다.”
한서진이 가볍게 목례한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웃는다.
“예의가 바른 아이로구나. 그래, 좋다. 그래서 그 묘책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더냐? 제법 흥미가 동하니 이 몸이 한번 들어는 보겠다. 말해보거라.”
세이라가 한서진에게 말한다.
잘난 척 한번 들어는 보겠다고 말한 세이라였지만, 그녀의 시선과 귀는 이미 한서진의 입에 쏠린 상황이었다.
오키나와에 가고 싶다.
다른 경쟁자들에게 뒤처지기 싫다.
세이라의 마음속 검은 욕망이 혀를 날름거린다.
“협회장님을 부르십시오.”
“협회장?”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가는 게 부담스럽다면 협회와 학원 차원에서 영국의 국빈을 맞이한다는 명목으로 협회장을 끌어들여 여름 학교에 함께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때마침 영국의 공주도 온다고 들었습니다.”
한서진의 말에 세이라의 눈동자가 빛난다.
그녀가 학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프로페서 때문.
하지만 같은 EX랭크 영웅인 협회장 이치로와 협회 정예 전력이 함께한다면?
프로페서도 함부로 그녀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부재 시 학원 방위 문제도 협회에 부탁한다면 학원 지하 유적의 비밀을 아는 이치로가 본인의 오른팔이자 EX랭크 영웅인 영웅 협회 부협회장 명왕(冥王)을 파견해줄 터.
거기다 한서진의 말대로 영국의 국빈인 공주를 맞이한다는 완벽한 명분까지 있으니.
확실히 묘책이었다.
이치로에게 빚을 진다는 점이 조금 걸리지만,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쁜 방법은 아닌 듯하군. 제법 쓸만해.”
촤르륵.
세이라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며 얼굴을 가린다.
그녀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여름 학교에 갈 수 있다.
그에게 수영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춘기 소녀처럼 날뛰는 심장을 제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무슨, 어, 어디까지나 국빈 맞이를 위해서다. 그뿐인 것이다!’
세이라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작게 젓는다.
들끓는 욕망을 억누르려 애쓰는 세이라의 귓가에 한서진의 속삭임이 들린다.
“영국 공주도, 협회장님도, 슈오우 학원 생도들도 이번 여름 학교에서 이사장님의 행차를 바랄 것입니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좌를 차지하는 전설적인 영웅, 백색 여제를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세이라의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그 순간을 포착한 한서진이 속으로 웃는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유일한 생존자.
백색 여제.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
자존심 높은 EX랭크 영웅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 명의 여자에 불과하다.
단지 화려한 타이틀에서 오는 자존심 때문에, 본인의 나이 때문에 먼저 나서지 못할 뿐.
‘그러니 합리적인 명분을 제공한 뒤에 이렇게 조금만 부추겨도 금방 넘어갈 겁니다. 못 이기는 척하면서.’
한서진의 눈빛이 세이라를 향한다.
EX랭크 영웅인 세이라는 하렘 계획의 중추를 담당할 키 플레이어.
파이브 크라운즈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슈오우 영웅 학원의 이사장인 그녀의 권력이라면 하렘 계획의 진행도 빨라지고 김덕성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질 터.
그러니 반드시 포섭해야만 한다.
“그,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이 백색 여제가 그토록 보고 싶다는데······. 한 번쯤 얼굴을 비춰주는 것도 생각해두지.”
세이라가 부채를 살랑거리면서 말한다.
부채로 가려진 그녀의 입가가 씰룩댄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흠흠. 그래.”
“모처럼 매장에 왔는데 수영복은 안 보셔도 됩니까? 만일 이사장님께서 여름 학교에 간다면 수영복을 입을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한서진의 은근한 제안에 세이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그렇군.”
한서진의 말이 맞다.
수영복을 반드시 입는 게 아니라, 그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결단코 꼬마를 수영복으로 유혹하겠다는 주책맞은 망상은 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에 준비하는 것이 올바른 영웅의 자세지. 흠. 좋아.”
유비무환이라는 좋은 핑곗거리를 찾아낸 세이라가 수영복 코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서진이라고 했나? 수영복 좀 봐줄 수 있겠나? 이 몸이 꼭 입는다는 건 아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일세.”
세이라의 붉은 시선을 받은 한서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이사장님.”
한서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하렘 계획은 오늘도 순항 중이었다.
*
수영복 매장 앞 의자에 앉아있은 지도 어느덧 반나절이 넘어갔을 때였다.
워낙 좀이 쑤셔서 근처 카페에서 사서 비워낸 스무디만 세 컵이 넘어가고, 막 네 컵째 마신 스무디 컵을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 골인시킨 그때.
딸랑딸랑.
문종 소리와 함께 매장 문이 드디어 열린다.
“후우. 정말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쇼핑이었어요!”
가장 먼저 나온 건 올리비아.
그녀가 찌뿌둥한지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흠흠. 이번만큼은 네 말에 동감이다. 보나파르트. 보람찬 쇼핑이었다.”
부스럭.
뒤이어 린이 소중하게 수영복이 든 걸로 보이는 종이봉투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드디어 끝난 모양이다.
‘지루해 죽는 줄 알았네.’
[어허, 파트너. 인내심을 길러. 그리고 내가 파트너랑 많이 놀아줬잖아?]‘너도 사실 지루했던 거 아니냐?’
[그건······.]흑태자가 말끝을 흐린다.
[흠. 노코멘트하도록 하지.]지루했던 거 맞네.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튕기기는.
흑태자의 반응에 혀를 차고 있을 때.
“주인님! 많이 지루했지? 미안해. 오래 걸려서. 많이 기다렸어?”
니시자와 에리의 주황색 머리가 눈앞에 불쑥 나타난다.
“많이 기다렸지.”
그녀의 말에 퉁명스럽게 답한 순간.
꼬르르륵.
배에서 천둥이 친다.
“주군? 배고파?”
“김덕성 군. 배가 고프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지 그러셨습니까?”
“후배 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주인님! 에리링이 요리해줄까?”
꼬르륵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마코토, 아리스, 카스미, 에리가 반응한다.
잠깐.
아리스?
아리스가 왜 여기 있어?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들어차던 그때.
“흐응. 우리 꼬마가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구나. 때마침 식사 시간도 됐으니······. 오늘은 특별히 이 몸이 사랑스러운 우리 학원 생도들한테 저녁을 사겠느니라.”
또각, 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검은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은 백발적안의 미소녀, 세이라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며 나타난다.
그 뒤로 검은 정장 미녀, 한서진이 보인다.
한서진과 세이라라니.
이게 대체 무슨 조합, 아니 그것보다 이사장은 또 언제 온 거야?
“일행을 오래 기다려준 우리 꼬마를 위해 특별히 비싼 코스 요리로 사줄 테니 다들 이 몸만 믿고 따라오도록.”
세이라가 부채를 살랑거리며 나를 향해 찡긋 윙크한다.
우웩.
주책이야 진짜.
그래도 비싼 밥 사준다니까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쇼핑도 다 끝난 모양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가자꾸나.”
이사장의 인도를 따라, 일행과 함께 지옥 같은 쇼핑몰을 빠져나온다.
그렇게 쇼핑이 끝난 뒤, 다 같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세이라가 사준 고급 코스 요리를 먹는 걸 마지막으로 쇼핑이 완전히 마무리됐다.
쇼핑이 끝난 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끝낸 뒤 곧바로 침대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전신을 감싼다.
정말 정신적으로 지치는 하루였다.
준비 쇼핑만 해도 이렇게 엿 같은데, 바다에 가면 대체 어느 정도로 염병할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지 감도 안 온다.
벌써 두려워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