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51)
아, 진짜 모르는 척하고 싶다.
진심이다.
그녀가 요염한 척 미소를 짓는다.
“어때, 세-라 땅의 수영복?”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이라의 수영복은.
히라가나로 세이라라고 쓰인 하얀 명패가 가슴에 붙어 있는, 몸에 착 달라붙는 남색 원피스형 수영복.
그러니까.
스쿨미즈(スク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학교 수영복이었다.
[세이라 누님······.]흑태자가 머릿속에서 탄식을 터뜨린다.
60대의 스쿨미즈라고?
심지어 왼쪽 팔에는 분홍색 튜브까지 끼고 있잖아?
그리고 뭐, 오빠? 세-라 땅?
진짜 노망난 거 아니야?
우웩.
바다다! 여름이다!
세이라의 붉은 시선이 나를 바라본다.
“후훗.”
그녀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흘리면서 맥X 같은 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섹시 포즈를 따라 한다.
세이라가 귀여운 척 눈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어때? 오빠. 세-라땅의 치명적인 매력이? 빠져들면 위험할지도?”
뭘 빠지고 뭐가 위험해? 하긴 위험하긴 하다.
내 정신 건강이 말이다. 염병.
어렸을 때부터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세이라다.
그 때문에 평범한 어린 시절을 동경해서 저런 짓을 한다는 뒷사정 정도는 설정집과 원작 11권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까 미쳐버리겠다.
스쿨미즈를 입고 저렇게 노망난 헛소리를 해대니 진짜 속이 안 좋다.
저러면 진짜 귀여워 보이는 줄 아나.
아침밥이 올라오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쌍욕을 퍼붓고 싶지만, 상대는 이사장.
이용 가치가 무궁무진한 인물이다.
그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뚫린 입이라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이건 아니다.
부르르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그때.
[파트너······. 그래도 그냥 빈말이라도 어울린다고 해 줘라. 세이라 누님이 안쓰럽지도 않냐?]가재는 게 편이라고 흑태자가 세이라 편을 든다.
흑태자가 간곡한 목소리로 부탁한다.
“우후훗.”
세이라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자꾸 섹시 포즈를 취한다.
유아퇴행이면 유아퇴행, 섹시포즈면 섹시포즈.
하나만 해주면 좋겠다.
둘 다 하니까 더는 버틸 수 없다.
구역질이 치민다.
흑태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저 역겨운 꼴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대충 어울린다고 말해주고 말아야겠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 한 마디로 이 토할 것 같은 장면을 끝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오랜만에 내뱉는 역겨운 대사.
말하기 전에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뭐······. 어, 어울리네요······.”
내 말을 들은 세이라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촤르륵.
세이라가 어디선가 꺼낸 검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면서 웃는다.
“정말이야, 오빠? 아니. 정말이더냐? 후훗. 역시 이 몸한테 어울리지 않는 복장 따위는 없지······.”
부채 너머로 붉어진 얼굴이 보인다.
그 역겨운 컨셉질은 이제 끝내기로 작정한 모양.
하지만 니글거리는 내 속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분 좋은 듯 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는 세이라.
[잘했어. 파트너. 수고했다.]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칭찬을 건넨다.
하나도 안 기쁘다.
오히려 미쳐버리겠다.
들끓는 화를 식히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야 한다.
선베드 옆 탁자에 놓인 오렌지 에이드를 빨아당긴다.
이제 좀 속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때.
“이사장님. 체통을 지키십시오. 모두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아리스가 나타난다.
몸매가 전부 드러나는 하얀색 비키니를 입은 그녀가 은발을 쓸어올린다.
“흠흠. 그래그래. 이 몸은 학원의 큰 어른. 체통을 지킬 필요가 있겠지. 알겠다.”
아리스의 지적에 살짝 놀란 세이라가 부채를 흔들며 혼잣말을 한다.
그걸 아는 사람이 방금?
어이가 없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거 우리 귀여운 아이들이 노는데 어른인 내가 너무 주책없이 끼어든 건 아닐까 걱정되는군. 그럼 다들 재미있게 놀거라.”
이사장의 헛소리가 계속된다.
주책을 넘어 노망까지 부렸으면서 멋있는 척 해봤자 별로 멋있지도 않다.
부채를 흔들며 선베드에 드러누운 세이라.
그녀가 선베드 위에서 쓸데없이 요염한 포즈를 취하면서 나를 향해 윙크한다.
“방금 이사장님이었어?”
“귀여워라. 엄청 귀여우신데?”
“이사장님, 의외의 갭 모에를 발견했을지도?”
“볼 깨물어보고 싶어.”
“멋짐에 귀여움까지 겸비하다니! 이사장님 최고! 역시 우리 슈오우 학원의 자랑이야!”
엑스트라들이 말도 안 되는 억지 헛소리를 한다.
슈오우 학원의 자랑? 수치가 아니라?
우웩.
이 빌어먹을 광경을 더 보고 듣다가는 내 시신경과 뇌가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시선을 돌린다.
옆에 선 비키니 차림의 아리스가 보인다.
그런데 잠깐, 비키니?
아리스는 분명 경영 수영복밖에 안 입을 텐데?
최약영웅 공식 수영복 일러스트랑 굿즈에도 아리스는 경영 수영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웬 비키니?
물론 아리스 역시 몸매가 좋은 만큼 비키니가 어울리기는 하지만 조금 낯설다.
내 시선이 아리스에게 향한다.
“읏······!”
그녀와 내 시선이 마주친다.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척.
그녀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지금 어딜 보는 겁니까? 김덕성 군. 불건전한 시선은 당장 거두세요! 이 수영복은 그런 파렴치한 의도로 착용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요즘 생도들 사이에 유행하는 복장을 직접 체험해보겠다는 학생회장으로서의 결단에서 착용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온갖 변명을 덧붙이는 아리스.
아리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그녀가 부끄러운 듯 한쪽 팔로 풍만한 가슴을 가린다.
“학생회장 선배가 비키니라니······. 대담해······. 처음 봐······.”
“역시 검은 귀축, 학생회장 선배한테까지 마수를 뻗친 게 분명해. 그 고지식한 사이온지 선배가 비키니라니······.”
“교토에서 학생회장 선배랑 동침할 때 밤새도록 건물이 들썩거렸대. 아래층에서는 쿵쿵대서 잠도 못 잤다나봐.”
“역시 검은 귀축······. 눈만 마주쳐도 보내버린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봐, 무서워······. 히익! 나 방금 눈 마주친 것 같아!”
아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변에서 수근대기 시작하는 엑스트라들.
진짜 돌아버리겠다.
이게 무슨 피서냐, 고문이지.
“후배 군! 나쁜 남자 후배 군. 내가 왔어. 어때? 내 수영복 차림은? 이번만큼은 후배 군한테 선택받을 자신이 있어.”
그런 아리스 옆으로 보라 머리 미소녀, 카스미가 나타난다.
여전한 하얀 머리띠에 보라색 비키니를 입은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손가락을 부딪친다.
“이번에는 날 선택해줄 거지? 후배 군. 나는 후배 군을 믿고 있어.”
“나를 선택해라. 김덕성.”
“주인님. 주인님은 역시 에리링이 좋지?”
“주군, 나도 한 번만 돌아봐 줘······.”
“이봐요 당신, 당연히 전속 시녀인 이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선택하겠죠?”
선베드에 누운 내게 다가오는 다섯 소녀.
평소라면 모를까 하나같이 노출도 높은 수영복 차림이라 그런지 어질어질하다.
그나저나 선택은 무슨 선택이야.
바닷가까지 와서도 이러네.
머리가 아프다.
[파트너, 곤란해 보이네. 쯧쯧. 그러니까 작작 좀 하지 그랬어.]뭘 작작 하라는 거지?
[좋아. 그냥 보기도 뭣하고, 아까 내 부탁도 들어줬으니 이번에는 내가 파트너를 도와주지. 파트너. 꿀팁 알려줄까?]‘무슨 꿀팁?’
[이럴 때는 화제를 돌리면 돼. 바닷가까지 왔으니까 물놀이하러 가자고 말하면 다들 수긍할 거야.]물놀이?
솔직히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건 소금기 때문에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쭈욱.
오렌지 에이드를 빨아 먹은 뒤에 탁하고 탁자 위에 놓으면서 말한다.
“다 잘 어울리니까 헛소리 좀 하지 말고 물놀이나 하러 가자. 모처럼 바다도 왔는데.”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킨다.
모든 소녀의 시선이 바닷가로 향한다.
철썩, 쏴아아아아.
영화에나 나올 법한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파도가 백사장에 하얗게 부서져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본 소녀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진다.
영웅이니 뭐니 해도 얘네들 본질은 고등학생.
하여간, 누가 애들 아니랄까 봐 물놀이에 사족을 못 쓰는 건 똑같다.
“흠, 그 말도 맞군. 모처럼 바다에 왔는데 물놀이는 무조건 해야지.”
린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트, 틀린 말은 아니네요. 흐, 흥. 따, 딱히 물놀이 따위에 관심은 없지만 그, 그래도 뭐 모처럼 왔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팔짱을 낀 채 흥, 하고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리던 그때.
돌고래 튜브를 왼손에 든 에리가 양팔을 바둥거리면서 소리친다.
“여름이다! 바다다!”
드디어 나왔다.
일본 애니메이션 여름 에피소드 단골 대사가.
“주인님! 얘들아! 우리 다 같이 놀러 가자! 빨리빨리! 물놀이하러 가자!”
덥석.
에리가 내 팔목을 붙잡고 말한다.
“잠깐만요. 니시자와 양. 우리는 여기 놀러 온 게 아닙니다. 쓸데없이 들뜨다가 다치지 마세요!”
옆에서 딴지를 거는 아리스까지.
완벽한 일본 애니메이션 바닷가 에피소드 장면의 완성이다.
질질질.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에리에게 손목을 잡고 이끌려 바닷물에 뛰어든다.
“바다다!”
“여름이다!”
또다시 바다다를 외치는 에리와 옆에 여름이다를 외치며 같이 뛰어드는 마코토.
풍덩.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차갑게 몸을 감싼다.
따가운 햇살 아래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니 기분이 좋기는 하다.
[캬, 역시 바다가 최고지.]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중얼댄다.
“하여간,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요. 다들 유치하기는요. 흥.”
뒤이어 츤츤대면서 살며시 바다에 뛰어드는 올리비아.
“나도 가겠다! 기다려라!”
“후배 군! 내가 갈게!”
비장한 표정으로 입수하는 린과 카스미 선배.
“받아라, 보나파르트. 시노자키 일도류! 파도 베기다!”
촤르륵.
올리비아에게 바닷물을 끼얹는 린.
“나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보나파르트 양. 에잇!”
“보나파르트 양, 나빠. 나도 공격할 거야!”
뒤이어 에잇, 소리를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카스미 선배와 옆에서 소심한 목소리로 올리비아를 공격하는 마코토.
“으으으으으, 가, 감히 이 저에게 물장난을 해대다니, 각오는 되었겠죠? 백금의 기사공주,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당신들을 상대하겠어요! 에이이잇!!”
척.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올리비아가 세 사람을 향해 물보라를 일으킨다.
철썩! 촤악! 촤아아아악!
격렬한 물장난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정말 라노벨스러운 광경이 아니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물장난으로 정신없는 사이.
내 손목을 이끌고 그녀들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온 에리가 바다 위에 두둥실 떠오른 돌고래 튜브를 팡팡하고 두드리며 말한다.
“주인님. 에리링이랑 돌고래 튜브 타자.”
그 빌어먹을 돌고래 튜브, 아직도 포기 못 한 거냐?
한숨이 나온다.
“혹시 싫어? 주인님, 에리링이랑 전부 다 같이 물놀이하자고 말했으면서. 에리링이랑 돌고래 튜브 타는 건 싫어?”
에리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개목걸이를 만지작대며 말한다.
아니 그러니까 저 빌어먹을 개목걸이는 왜 지금까지 차고 있는 건데?
[한번 타 줘라. 파트너. 그게 그렇게 어렵냐?]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재촉한다.
철썩.
파도를 맞으면서 손을 떠는 에리.
바닷물에 맞아서 그런지 그녀의 주황색 머리카락이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는다.
저러고 있으니까 쓸데없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날 기다리겠답시고 하루종일 비를 맞은 모습이.
괜히 마음 한쪽 구석이 쿡쿡 쑤신다.
“타면 될 거 아냐.”
“정말? 정말 같이 타는 거지? 타자! 타자! 에리링이 리드할게!”
언제 의기소침해졌냐는 듯 반짝이는 눈길로 내 손목을 잡고 돌고래 튜브에 태우는 에리.
저거 연기 맞지?
빌어먹을.
연기건 아니건 어쨌거나 돌고래 튜브에 타게 되었다.
흔들.
안 그래도 비좁고 둥근 돌고래 튜브에 두 사람이나 타니까 격렬하게 흔들린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주인님. 에리링 허리 잡아. 안 잡으면 떨어지니까. 주인님 떨어지게 둘 수 없어!”
에리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녀가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무게중심이 잘 안 맞아서 잡을 수밖에 없다.
이거 의도된 건 아니겠지?
어쩔 수 없이 에리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비키니를 입어서 그런지 허리에 있는 젖은 맨살이 부딪히는 감촉이 약간 민망하다.
그녀의 분홍색 프릴 비키니가 눈에 들어온다.
슬렌더한 몸매도.
가슴 부근이 좀 부족하기는 해도, 라노벨 히로인답게 몸매 밸런스 자체는 괜찮다.
“주인님을 태우고 에리링의 돌고래 출발합니다. 슈우우우우우우우우웅!”
에리가 한쪽 팔을 들고 신난다는 듯 소리치던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