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54)
양팔로 커다란 가슴을 감싸며 이상한 멘트를 내뱉는 마코토.
“후배 군은 역시 나쁜 남자야······.”
고개를 숙인 카스미 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후훗.”
마지막으로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 린까지.
아주 개판 5분 전이 따로 없다.
솔직히 말했는데도 분위기가 이 지경이라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한 이 분위기.
돌아버리겠다.
‘야, 흑태자. 이럴 때는 어떻게 빠져나가냐?’
[자업자득이야. 파트너.]동문서답을 하는 흑태자.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몇 초간 흐른 그때.
“안 되겠어요. 이봐요 당신, 저한테도 서, 서서선오일 바, 발라주세요! 따, 딱히 파, 파렴치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차, 착각하지 마시구요. 아시겠나요!?”
번쩍.
올리비아가 붉어진 얼굴로 나를 향해 츤데레 멘트를 내뱉으며 침묵을 깨뜨렸다.
“에리링도! 에리링도 주인님한테 선오일 마사지 받을래! 에리링, 젖소보다 가슴은 작지만 그래도 꽉 찬 B컵이니까,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도 좋아! 에리링은 몸도 마음도 주인님 꺼니까!”
“주군! 나도, 나도 선오일······!”
“후배 군, 나도 발라줄 거지?”
그녀가 침묵을 깨뜨리자 기다렸다는 듯 선오일을 발라달라고 달려드는 에리, 마코토, 카스미 선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았으니까 여기 일렬로 누워봐.”
선오일 한번 잘못 발라줬다가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결국 나는 모두에게 선오일을 발라주고 난 뒤에야 가까스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한바탕 선오일 소동이 끝난 뒤.
마침내 찾아온 샤워 타임.
럭키 스케베 이벤트를 사랑하는 라노벨 세상답게, 당연하게도 샤워 시설은 성별 구분 없이 하나뿐이며, 남녀의 사용 시간이 따로 나뉘어 있는 형식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기숙사 대욕탕과 정확히 같은 구조.
레이디 퍼스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순서는 여생도가 먼저 남생도가 그 다음이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여생도 샤워시간이 끝났다.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에 설치된 샤워장 밖으로 옹기종기 나오는 여생도 무리.
‘드디어 샤워로군.’
찝찝한 소금기와 모래를 깔끔하게 씻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바닷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바로 이 샤워 타임이었다.
“김, 오늘 재밌었지?”
“형님. 잘 노셨음까?”
이시하라와 유지의 인사를 대충 받아준 뒤에 샤워장 안으로 들어간다.
화장실처럼 칸막이로 구분된 개인 부스.
벌써 샤워를 시작한 건지 시원한 물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무 생각 없이 맨 끝에 있는 샤워부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흡······!!”
안에는 선객이 있었다.
허리까지 길게 기른 은빛 머리카락, 신비로운 은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하얀 비키니를 입은 미소녀.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가 비명을 지르려는 입을 오른손으로 간신히 틀어막은 채, 붉어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잠깐, 아리스라고?
지금은 분명 남생도 샤워 시간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내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거 설마.
바닷가 이벤트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인공과 히로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샤워부스 안에 함께 갇히게 되는 럭키 스케베 이벤트?
이런 염병할 라노벨 세상 같으니.
하여간 누가 뽕빨물 세계 아니랄까 봐, 무슨 놈의 이벤트가 개연성이랑 복선도 없네.
넘어지면서 키스
날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는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같으니.
샤워부스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한 명이 쓰기에는 그럭저럭 넉넉하지만, 두 명이 쓰기에는 비좁을 정도로 애매한 넓이.
이게 다 엿 같은 럭키 스케베 이벤트 때문이다.
하여간, 누가 일본 라노벨 아니랄까 봐,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이벤트에 맞춰진 거 보면 기가 찬다.
희미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붙든다.
지금이라도 여길 나가서 다른 샤워부스로 갈까?
어쩌면 그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입을 틀어막고 있는 아리스를 무시하며 부스를 슬쩍 나가려던 순간.
덥석.
아리스가 손목을 붙잡는다.
“······가지 마십시오. 김덕성 군······.”
그녀가 말허리를 자른다.
아리스의 예쁜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든다.
그녀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인다.
아리스의 얼굴을 본다.
변함없이 예쁜 얼굴에 떠오른 난감한 기색.
주인공 놈이었다면 라노벨 호구답게 당연히 선배를 곤경에 처하게 놔둘 수 없다며 여기 있었겠지.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여기를 탈주하겠다는 아까 내 생각이 최선일까?
만약 내가 샤워부스를 나간 뒤에 다른 남자가 여길 들어온다면?
아리스가 다른 남자와 밀착한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꼴은 볼 수 없다.
“······안 가겠습니다.”
발걸음을 멈춘다.
차라리 내가 붙어있는 쪽이 낫다.
“감사합니다.”
아리스가 작게 속삭인다.
쏴아아아아.
주변 샤워 부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사이온지 선배, 왜 여기에······.”
쉿.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리스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막는다.
그녀의 체온이 느껴진다.
둘이 있기에는 비좁은 공간.
아리스의 체온과 향기가 전해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와 심장이 요동친다.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큰 소리를 내면 주변에 들킬지도 모릅니다.”
좁은 공간 밀착 이벤트에서 히로인이 내뱉는 전형적이고 클리셰적인 멘트.
너무 판에 박혀서 어질어질한데, 그녀 말대로 소리를 냈다가는 주변에 들킬 위험이 있다는 게 더 아이러니하다.
완벽초인 학생회장을 연기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이런 모습을 주변에 들키고 싶지 않은 거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게다가 나도 지금 이 모습을 들켜서 좋을 게 없다.
안 그래도 교토 때 동침 소문 때문에 난감했는데, 거기에 샤워부스 밀착 소문까지 돌면 감당할 수가 없다.
작게 말해야 한단 말이지.
그녀에게 다가간다.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슬금슬금.
아리스가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난다.
탁.
그녀의 등이 벽에 닿는다.
그녀의 살결이 닿기 직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멈춘다.
탁. 벽에 오른손을 짚으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대체 왜 지금 시간에 여기 있는 겁니까?”
의도치 않은 벽쿵.
움찔.
내 숨결이 귓가에 닿자 아리스의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물 위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펄쩍펄쩍 움찔움찔한다.
간지러워서 그러나? 왜 저래?
뭐, 귀엽긴 하다.
[파트너. 벽쿵에 이어 자연스러운 스킨십, 대단한데? 그런데 너무 자극적인 거 아냐?]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태연하게 말한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은 무슨.
그녀 말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샤워부스가 둘이 있기에는 비좁은 것도 한몫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어쩔 수 없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라노벨에서 캐비넷처럼 좁은 공간에 갇힌 주인공과 히로인이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서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장면은 필수다.
이게 라노벨이라면 흑백 삽화 감이었겠지.
라노벨 볼 때는 서비스신을 위한 작위적인 상황 설정이라고 욕했는데 정작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이다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럭키 스케베 이벤트 앞에서는 개연성도 핍진성도 내다버리는 미친 라노벨 세상 같으니.
아무튼 흑태자 말대로 자극적인 상황은 맞지만, 그렇다고 거기 휩쓸리면 안 된다.
“그게······. 제가 들어올 때 분명 샤워장 앞 팻말에 여생도 사용 시간이라 적혀 있었는데······. 그래서 들어갔더니 지금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붉게 물든 얼굴로 소곤소곤 말하는 아리스.
팻말 바꿔치기라니.
B급 러브 코미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고전적인 수법이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다.
한숨을 쉰다.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들 씻고 나갈 때까지 이렇게 있도록 하죠.”
움찔.
몸을 잘게 떠는 아리스.
속으로 한숨을 쉰다.
모래랑 바닷물 때문에 찝찝해서 한시라도 빨리 샤워하고 싶지만,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다.
아리스를 위해서라도 참을 수밖에.
조금 늦게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인내심은 있다.
“읏······. 미안합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아니 됐습니다. 별거 아닌데요.”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자 다시 움찔하는 아리스.
[파트너, 완전 선수야. 선수.]흑태자가 휘파람을 불면서 말한다.
어이가 없다.
대체 뭐가 선수라는 건지.
쏴아아아아아.
주변 물소리가 들린다.
“······.”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몸에 묻은 모래가 샤워부스 바닥에 떨어진다.
아리스의 시선이 내 몸을 훑는다.
“김덕성 군······.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한다.
“별로······.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고개를 살짝 젓는다.
사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내가 조금 기다리면 그만이다.
내 말에 아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제가 봤을 때는 불편해 보입니다. 저 때문에 샤워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씻는 게 어떻습니까?”
“선배도 보시다시피 공간이······.”
너무 비좁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리스가 말허리를 잘랐다.
“샤워 시간이 끝나면 샤워장이 폐쇄될 겁니다. 거기다가 이 부스만 유독 물소리가 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공간 문제는······.”
그녀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군요. 제가 당신을 씻겨줄 수밖에는요.”
아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댄다.
잠깐, 뭐?
“절 씻겨준다고요?”
이게 무슨 헛소리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리스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김덕성 군이 이런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도 전적으로 제 책임······. 이니까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불건전하거나 파렴치한 마음 따위는 한 점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꺼낸 것입니다.”
아리스가 빠르게 이유를 늘어놓는다.
그녀의 말이 변명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리스는 워낙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런 비좁은 공간에서 씻겨준다는 건 좀, 민망하다.
“정말 괜찮······.”
“씻겨드릴 테니 가만히 있으세요. 김덕성 군. 반론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의 제기도 전부 기각입니다.”
아리스가 단호하게 말하면서 비누 거품이 묻은 샤워볼을 내 몸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는 1인용 샤워부스.
두 명이 들어가 있기에는 좁았기에, 아리스는 필연적으로 내 몸에 밀착할 수밖에 없었다.
“읏······.”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래서야 제대로 샤워가 되지 않겠군요.”
아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리스 말대로다.
워낙 좁은 탓에 그녀가 팔을 움직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가 뭔가 비장한 각오가 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한 불가피한 접촉, 당신의 효율적인 샤워를 위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절대 파렴치한 행위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김덕성 군.”
아리스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귓불까지 붉어진 얼굴로 비누 거품을 온몸에 묻힌다.
잠깐, 묻힌다고?
그 상태로 나를 살며시 끌어안는다.
그녀 몸에 묻은 비누 거품이 나와 그녀 사이에서 하얗게 피어오른다.
“으읏······.”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몸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아리스의 수영복에 감싸인 부드러운 가슴이 비누 거품과 함께 가슴팍에서 뭉개진다.
이건 또 다른 의미로 머리가 어지럽다.
물론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그날.
어쩔 수 없이 러브호텔에서 같이 에리와 동침했던 그때, 그녀가 욕실에 무단 침입해서 등을 밀어준다며 이렇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에리와 아리스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역시 크기겠지.
빈약했던 에리와는 다르게 아리스의 굴곡지고 풍만한 가슴과 얇은 허리에서 전해지는 감촉은 나를 계속해서 시험에 들게 하고 있었다.
아까 린의 오일 바르기는 양반이다.
[파트너, 이거 완전 호강하는데?]흑태자의 말에 답변할 정신이 없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흥분하는 신체를 가라앉혀야만 한다.
안 그래도 민망한 상황을 더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
초인적인 자제력을 발휘해 필사적으로 혈기를 억누른다.
자제력에 한계가 오던 그때.
“끝났습니다.”
아리스가 어깨까지 붉어진 모습으로 내 몸에서 떨어진다.
‘진짜 죽을 뻔했네.’
[좋아 죽을 뻔했다고?]흑태자가 또 쓸데없는 시비를 건다.
굳이 답하지 않는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싫지는 않았다.
그냥 지금 상황이 좀 난감해서 그렇지.
“이제 물로 씻어내리면 됩니다.”
탁.
아리스가 샤워기를 조작하자 샤워기 헤드에서 물이 쏟아진다.
쏴아아아아아.
물소리와 함께 몸에 묻은 비누 거품이 모래, 소금기와 함께 씻겨 내려간다.
그래, 이래야 샤워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샤워는 시원하고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