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55)
“제대로 샤워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가 붉어진 얼굴로 작게 속삭인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사이온지 선배.”
“읏······.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회장 선배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젓던 그때.
탁, 타닥.
샤워장을 가득 채운 물소리가 하나 둘 끊기기 시작한다.
“어우, 샤워하니까 개운하네. 이 다음 스케줄이 뭐였냐?”
“영국 학원 쪽이랑 정식으로 대면식 한다던데? 임시 교사 앞 운동장에서?”
“영국 학원이면 공주님 얼굴, 볼 수 있는 거겠지?”
“요정공주 에반젤린 스튜어트님의 존안을 볼 수 있다니······. 벌써 두근두근대는걸?”
복도에서 생도들의 잡담이 울리기 시작한다.
하나둘 샤워를 끝내고 있는 모양.
꿀꺽.
아리스가 마른침을 삼킨다.
“제가 잠시 바깥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선배.”
끄덕.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허락을 받아낸 내가 샤워부스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샤워장 안은 텅텅 빈 상태.
물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감고 기프트를 사용해서 암흑을 샤워장 전역으로 뻗어본다.
‘아무도 없군.’
아리스와 나를 제외한 타인의 기척은 감지되지 않는다.
샤워장뿐만 아니라 이 근방까지 전부.
다들 임시 교사로 이동한 모양.
확신을 얻어낸 나는 다시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가 아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나와도 괜찮습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 김덕성 군. 폐를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내 말을 들은 아리스가 십년 감수했다는 듯, 가슴 위에 손을 살짝 올리며 내게 목례한다.
“폐는 무슨, 별거 아닙니다.”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갈 채비를 하던 그 순간.
탁.
아리스가 바닥에 있던 비누를 밟는다.
“어, 어어어어어?!”
미끄덩.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쓰러진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피해야 하나?
아니, 피하면 아리스가 넘어서 다칠지도 모른다.
그대로 받는다.
내가 결정을 내린 그때.
철퍼덕.
아리스의 부드러운 신체가 나를 덮쳤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꽃향기가 내게 훅하고 다가온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서로 껴안듯 포개지면서 샤워부스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치 러브 코미디 만화의 럭키 스케베 이벤트처럼.
물컹.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사정없이 뭉개지고, 그녀의 부드러운 맨살이 내 상반신에 밀착한다.
마지막으로 아리스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과 충돌하며 겹쳐진다.
입술 박치기.
넘어지면서 키스라고?
게다가 이거 첫 키스잖아?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어디까지나 사고
“흡······.”
그의 입술과 맞닿은 아리스의 입술에서 뜨거운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아리스의 시야에 그의 모습이 들어온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양아치처럼 생긴 얼굴, 조각상을 보는 듯 보기 좋은 탄탄한 근육질 몸매까지.
수영복 차림이라 그런지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를 덮치듯 아리스는 지금 엎어져 있는 것도 모자라 입술까지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이다.
‘키, 키스라니 우, 우짜면 좋노······.’
두근.
상황을 완전히 인식한 아리스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한다.
물이 흩뿌려진 차가운 샤워장 바닥과 대조적으로 따뜻한 그의 체온이 맨살을 통해 그녀에게 전해진다.
단단한 근육의 감촉과 숨결, 비누 향기가 코 끝을 스친다.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느껴진다.
‘퍼, 퍼스트 키스······.’
두근, 두근, 두근.
아리스의 심장 박동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첫 키스.
언젠가는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상대가 그가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싫다는 건 아니지만······. 으읏, 내가 지금 뭐라카는기고?’
가슴이 아플 정도로 조여온다.
그녀의 머릿속에 교토의 추억이 떠오른다.
주정을 부리다 결국 그와 같은 침대에서 동침했던 밤, 그의 품에서 느꼈던 따스하고 포근한 감촉을 아리스는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김덕성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지만, 아리스는 잊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매일 밤마다 그의 체온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리스였다.
파렴치하다고 생각해서 애써 부정해왔던 포근함이 아리스의 온몸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따뜻하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
이대로 계속 입술을 포개고 싶다.
불건전한, 학생회장의 직위로서는 하면 안 될 파렴치한 생각들이 아리스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명멸한다.
“······읍, 으읍.”
아리스의 얼굴이 저녁노을처럼 새빨개진 그때.
그녀의 입술에 짓눌린 김덕성의 입에서 신음이 흐른다.
그제야 아리스가 정신을 차린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입술을 떼어낸다.
“이 가스나가 참말로 미쳤데이. 내, 내 정신 좀 보소, 이, 이게 무신 남사스러운······!!”
당황한 아리스의 입에서 칸사이 사투리가 튀어나온 순간.
김덕성의 검지가 아리스의 입술을 짓누른다.
“조심하세요. 누가 올지도 모릅니다. 선배.”
김덕성의 목소리가 아리스의 귓가에 들린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더없이 달콤하게 들려서.
설렌다.
두근댄다.
가슴이 옥죌 듯 아프다.
김덕성의 검지가 입술에서 떨어진다.
“읏······.”
아리스의 무표정이 깨진다.
그녀가 입에서 새어 나오려는 달콤한 한숨을 간신히 참아낸다.
그의 말이 맞다.
슈오우 학원의 학생회장으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은 아리스가 눈을 질끈 감는다.
“알겠······. 습니다. 또 추태를 보이고 말았군요. 죄송합니다. 김덕성 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교토 교류전에 이어 두 번째다.
허당 같은 모습을 그에게 보인 건.
그의 앞에만 서면 가슴이 옥죌 듯 아프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을 놓으며 허술해지게 된다.
편하다.
계속 같이 있고 싶다.
안기고 싶다.
더 진하게 키스하고 싶다.
아리스는 그런 파렴치한 생각과 감정들을 애써 억누르고 부정했다.
‘방금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입니다! 키스가 아닙니다! 저는 슈오우의 학생회장······. 모든 생도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사적인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고통이 느껴지자 정신이 번쩍 든다.
슈오우의 학생회장은 막강한 권력만큼이나 무거운 책임도 뒤따르는 자리.
한가롭게 사적인 감정에 취해 있을 여유는 없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아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따스한 체온과 상큼한 비누 향기, 단단한 근육의 감촉이 멀어진다.
아.
저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올라온 탄식을 아리스가 꾹꾹 눌러담는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김덕성 군. 방금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입니다. 절대 퍼스트 키스······. 같은 게 아닙니다.”
두근대는 가슴을 끌어안으며, 아리스가 시선을 회피한다.
잠깐의 침묵.
아플 정도로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아리스가 머뭇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 김덕성 군도 처음······. 이었습니까?”
끄덕.
김덕성이 살짝 붉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처음이었다.
그런 의미의 대답에 아리스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데······. 자, 잠깐 내, 내가 무신 남사스러운 망발을······.’
당황한 아리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방금 질문은 그냥 한 겁니다······! 절대 파렴치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번 건은 어디까지나 사고니까요! 키스 카운트에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아리스가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며 항변한다.
“알겠습니다. 그런 걸로······. 하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넘어진 것 때문에 다시 더러워진 것 같은데 샤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배.”
김덕성의 대답이 들려온다.
샤워장에서 그를 마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학생회장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폐만 끼쳐왔던 자신이다.
심지어 방금은 본의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쨌건 그의 입술을 빼앗아버리지 않았는가?
그가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아리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이토록 상냥하고 다정하게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다.
여자라면 심장이 뛸 수밖에 없다.
‘만일 제가 학생회장이 아니라 평범한 생도의 신분이었다면······. 반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김덕성 군. 정말 위험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아리스가 두근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샤워부스 밖으로 나가 있겠습니다.”
탁.
샤워부스 문이 닫힌다.
쏴아아아아.
아리스가 샤워기를 튼다.
헤드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아리스는 그제야 달콤한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아리스가 손으로 본인의 분홍빛 입술을 쓸어내렸다.
그의 입술 감촉이 아직 남아있는 느낌.
더 하고 싶다.
아리스는 스스로의 연심을 애써 부정하면서 몸을 잘게 떨었다.
“제 퍼스트 키스를 빼앗아가다니······. 정말, 위험한 사람······.”
쏟아지는 물소리 속에서, 아리스의 혼잣말이 부스 안을 맴돌았다.
*
아리스가 씻는 동안 나 역시 반대편 샤워부스에서 물로 다시 몸을 한번 헹궜다.
쏴아아아.
샤워기 물을 맞으면서 입술을 매만진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리 라노벨 세상이라도 그렇지, 넘어졌다고 바로 입술 박치기가 말이 되나?
어이가 없다.
현실이었다면 샤워장에서 넘어지는 즉시 뒤통수가 깨지고 서로 이가 부딪혀 지금쯤 병원에 실려갔을 거다.
라노벨 세상이라서 그런가? 넘어져도 아프지도 않고, 입술 박치기 과정에서 이가 서로 부딪히지도 않았다.
하긴, 학원 최강의 초인인 학생회장 아리스가 고작 비누 밟았다고 넘어지는 것부터가 사실 말도 안 되는 상황 설정이긴 하다.
개연성, 핍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세상 같으니.
[그래도 좋았잖아? 파트너? 미소녀와의 키스라니. 부러워.]흑태자가 머릿속에서 떠들어댄다.
딱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최애캐와의 키스, 씹덕 출신이라면 한 번쯤 상상했던 일을 직접 겪는다니.
가슴이 안 두근거린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거기다가 빙의 전과 이후를 통틀어서 첫 키스이지 않는가?
두근.
심장이 계속해서 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괜히 들뜰 필요 없다.
심호흡하며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힌다.
그렇게 가볍게 샤워를 끝마치고 밖에서 기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스가 샤워부스 문을 열고 나왔다.
“······끝났습니다.”
혹시 몰라서 바닥을 다시 살펴본다.
비누는 없다.
깨끗하다.
좋아. 방금 같은 불상사가 발생할 일은 이제 없다.
“나가죠.”
이제 남은 건 샤워장 퇴장뿐.
샤워 한번 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렇게 내가 아리스와 함께 샤워장을 나가려던 그때.
“······김덕성 군.”
아리스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얼굴을 붉히면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아리스가 있었다.
“괜찮다면 바다의 집······. 저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갑자기요?”
뜬금없는 제안.
머릿속에 물음표가 채워진다.
바다의 집이라니.
물론 그게 뭐 하는 시설인지는 알고 있다.
바닷가 에피소드에서 빠질 수 없는, 바닷가 근처 목조 가건물에 입주한 간이 음식점.
그러니까 일본판 계곡 백숙 식당인 셈이다.
바닷가 에피소드에서 해수욕이 끝난 뒤에 쉬어가는 장면에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용도로 자주 등장하는 장소인데, 거기를 왜 가자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제가······. 샤워장에서 김덕성 군한테 상당히 많이 폐를 끼쳤기 때문에······. 아까 사고도 그렇고, 그래서 보답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혹시 싫습니까?”
아리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떨린다.
평소의 냉철하고 이지적인 완벽 초인 학생회장 모습과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파트너. 설마 숙녀의 애절한 요청을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흑태자가 한마디 거든다.
“아뇨, 뭐 상관없습니다.”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바다의 집이 어떤지 한번 가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공짜 밥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최애캐가 사주는 밥이라면 더더욱.
“알겠습니다. 그럼 따라오십시오.”
아리스가 성큼성큼 앞장선다.
그녀의 뒤를 따라 샤워장을 나선다.
백사장에 아직 남아있는 생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목조 가건물로 지어진 간이 음식점.
이른바 바다의 집이었다.
아리스에게 이끌려 테이블에 앉는다.
비키니를 입은 여생도가 인사하면서 메뉴판을 내준다.
“이 바다의 집은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침식지인 산호 해변에 왜 바다의 집 같은 게 있나 했더니 학생회에서 만든 곳인 모양이다.
메뉴판에는 빙수, 야키소바, 카레, 라멘 등 익숙한 이름이 잔뜩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