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62)
그런 칭찬 안 받고 싶거든?
그렇게 린과 함께 밀림 속을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나는 마침내 린이 말한 망고나무 군락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다. 김덕성.”
눈앞에 망고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모인 군락지가 펼쳐진다.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풍경.
일본 서브컬쳐 무인도 조난 편에서 항상 나오는 게 열대 과일을 따서 먹는 거고, 원작에서도 나온 건데 그걸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이걸 따가기만 하면 된다 이거지?
“여기는 식물형 이계종인 자이언트 트리의 서식 구역이기도 하다. 놈들은 평범한 나무로 위장했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덩굴로 휘감아 잡아먹는다고 하지. 하지만 김덕성, 너는 미래의 아내인 내가 지킬 테니 안심하도록.”
배낭을 멘 린이 다 아는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앞장선다.
B랭크 식물형 이계종 자이언트 트리.
원작 망고 채집 장면에서도 나온 놈이다.
덩굴로 휘감는다는 린의 설명답게, 망고를 따는 에반젤린과 올리비아의 전신을 덩굴로 구속해서 유사 촉수 구속 서비스신을 연출한 이계종.
원작 라노벨에서는 흑백 삽화로, 애니메이션에서는 훌륭한 작화로 재현된 바 있다.
“그래, 뭐. 조심할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망고를 따서 배낭에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한 자루를 꺼내 집어넣는다.
근데 이거 맛있는 거 맞나?
원래 야생에서 자라는 과일은 별로 맛없다던데.
원작에 맛있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맛있겠지?
*
망고나무 군락지.
쨍쨍한 햇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망고를 따는 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후후후.”
그녀는 지금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그와 단둘······!’
올리비아도, 에리도, 마코토도, 회장도, 카스미 선배도 없다.
이 드넓은 밀림 안에, 오직 단둘뿐이다.
두근.
두근두근.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 뛴다.
린의 가슴이 아플 듯 조여온다.
그녀의 뺨이 붉어졌다.
‘오늘은 보람찬 하루였군, 길 안내로 그한테 점수도 땄으니 이제 가방 안에 있는 비장의 승부 수영복으로 그를 유혹하면······.’
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변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그와 단둘이 있는 장소에서만 보여줄 생각인 비장의 수영복이 지금 배낭 안에 들어 있다.
린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약점이 여자력이라면, 강점은 풍만한 가슴과 글래머한 몸매였다.
‘이거라면······. 김덕성도 넘어올 게 분명하다.’
다른 라이벌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그에게 점수를 딸 기회다.
비장의 승부 수영복을 떠올리며 린이 진지한 얼굴로 각오를 다지던 그때.
스으윽.
그녀의 뒤로 촉수를 연상시키는 굵은 초록빛 넝쿨이 슬금슬금 움직인다.
“뭐지?”
심상찮은 기척을 느낀 린이 뒤를 돌아본 순간.
툭.
비장의 승부 수영복이 든 가방을 낚아챈 넝쿨.
그 뒤로 본색을 드러낸 식물형 이계종, 자이언트 트리가 있었다.
“어, 어, 아, 그건 안 된다!”
식물형 이계종에게 배낭을 빼앗긴 린이 당황해서 손을 휘저으며 달려가던 그때.
툭.
바닥에 튀어나온 돌부리에 그녀의 발이 걸린다.
“으아아아아······. 앗!”
털썩.
린의 발이 접질리며 앞으로 쓰러진다.
그녀의 왼쪽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스르륵. 스윽.기회를 놓치지 않은 자이언트 트리의 초록빛 넝쿨이 바닥에 쓰러진 린을 순식간에 포박한다.
“히익!”
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워낙 순식간에 당한 일인데다, 발목을 접질려서 그런지 무기를 뽑지조차 못했다.
당황한 그녀가 소리친다.
“김덕성! 도, 도와다오!”
*
과수원에서 감을 수확하는 농부의 기분으로 주렁주렁 열린 망고를 하나씩 딴다.
흠.
왜 감 농사를 지으면 다들 휴재하는지 알 거 같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김덕성! 도, 도와다오!”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린의 목소리다.
[파트너, 시노자키 양이 위험에 처한 거 같은데, 가봐야 하지 않겠어? 남자로서.]흑태자가 말한다.
위험?
여기서 위험은 원작에도 나온 서비스신 전용 이계종밖에 없는데.
설마?
[빨리 가자. 파트너. 큰일일 수도 있잖아.]여자 관련 일에는 기막히게 빠르게 반응하는 흑태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린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큿······.”
입술을 깨물며 귀갑묶기 형상으로 넝쿨에 포박당한 린이 있었다.
안 그래도 노출 많은 비키니 차림인 그녀다.
그런데 귀갑묶기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구속된 형태를 보니 한층 더 민망해 보인다.
비키니에 감싸인 린의 풍만한 가슴이 덩굴에 조여지며 출렁인다.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서비스신과 정확히 똑같은 모습.
어이가 없다.
본인도 지금 상태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다.
귓불이 새빨개진 린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며, 면목없지만······. 도, 도와다오······.”
나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말을 말지.
문득 머릿속에 원작의 그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올리비아와 에반젤린이 자이언트 트리의 덩굴 촉수에 휘감겨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붉히던 장면.
애니로 봤을 때는 서비스신 쩐다고 생각하고 봤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고, 그 상대가 린이라고 생각하니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
“그래, 구해줄게.”
“고, 고맙다······.”
린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한숨을 쉬면서 듀랜달을 뽑아든다.
임간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상급 이계종이 아닌 일반 이계종을 상대로 전투 모드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다.
듀랜달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파트너, 가자고. 숙녀를 구하자! 암흑 발도를 사용하는 거야, 파트너!]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검집에 꽂힌 듀랜달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우우우웅.
마력을 받아들인 듀랜달이 진동한다.
그대로 검집에서 빠르게 듀랜달을 발도한다.
[흑광검식] [제4식] [암흑 발도]번쩍.
검은 마력광이 터지면서 허공에 칼날 궤적이 어지럽게 그려진다.
[한번 더, 파트너!]스르륵.
다시 칼날을 납도한 뒤에 다시 듀랜달을 뽑아낸다.
두 번째 암흑 발도를 날리자 눈앞의 초록빛 나무, 자이언트 트리에서 괴성이 흘러나온다.
[키이이이이이이이······.]스르르륵.
비명과 함께 풀리는 넝쿨.
그와 함께 허공에 구속되어 있던 린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 어어어어······.”
린의 남색 눈동자가 떨린다.
[파트너, 받아줘야지.]흑태자가 또 잔소리한다.
안 그래도 받아주려고 했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떨어지는 그녀를 양팔로 받는다.
툭.
“흐앗?!”
졸지에 공주님 안기로 안겨버린 린.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으으으······. 아까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장담했는데······. 오히려 너한테 지켜지는 추태를 보여버렸다······. 미안하다······. 김덕성······.”
그녀가 양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면서 작게 중얼거린다.
“미안은 무슨, 그럴 필요 없어.”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다.
라노벨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큿······. 그래도······. 미안하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아, 알았다······.”
한번 더 말하자 그제야 사과를 그만두는 린.
품에 안긴 그녀를 바닥에 서서히 내려놓은 그때.
“흐앗?!”
땅바닥을 디딘 린이 발목을 절뚝거리며 내게 기우뚱하고 쓰러진다.
쟤 왜 저래?
얼떨결에 그녀를 떠맡은 내 시선이 린의 발목으로 향한다.
빨갛게 퉁퉁 부은 왼쪽 발목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건 또 언제 다친 거야?
[파트너, 이거 파트너가 이 아가씨를 업어야겠는데?]머릿속에서 흑태자가 결론을 도출해낸다.
“으으······. 미안하다······. 김덕성······. 정말 미안하다······.”
내 품에 기대듯 안긴 린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몸을 파르르 떤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흘러내린다.
저 모습을 보니 문득 교토 교류전 때 청수사에서 린이 발목을 삐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그렇게 업어주기 싫었는데.
지금은.
뭐 딱히 싫지는 않다.
린에게도 올리비아처럼 미운 정이 들어서 그런가?
헛웃음이 나온다.
[파트너, 숙녀가 울고 있다고. 이대로 방치할 거야?]‘하면 될 거 아냐.’
흑태자에게 답하면서 린의 뺨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낸다.
“울지 마라. 좀. 이런 걸로. 네가 애냐?”
린의 뺨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그렇지만······.”
“됐고, 그 상태로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냥 업혀라.”
그녀의 말허리를 자른다.
린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내게 반문한다.
“저, 정말인가?!”
“정말이니까 내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업혀라.”
“아, 알겠다!”
주섬주섬.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챙긴 뒤, 내 등에 업힌다.
좋아.
이제 복귀만 하면 된다.
무게중심을 잘 맞춘 뒤, 베이스캠프를 향해 첫 발걸음을 뗀 그 순간.
툭, 투둑.
뺨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방울이라고?’
불길하다.
등골이 서늘해진 내 시선이 하늘로 향한 그 순간.
쏴아아아아아아.
빗줄기가 뺨을 후려팬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염병······.”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운이 없군.
불닭에 김치를 싸서
쏴아아아.
장대비가 쏟아진다.
열대 기후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건 흔한 일이라는 건 아는데, 그게 하필 지금 쏟아질 줄은.
전혀 몰랐다.
비 내리는 장면이야 있기는 했지만, 지금 폭우는 원작에도 없던 일인데.
조금 당황스럽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미안하다······.”
등에 업힌 린이 속삭이듯 힘없이 중얼거린다.
여기는 개연성도 핍진성도 없는 라노벨 세계.
린 같은 초인도 얼마든지 젖으면 감기에 걸리는 미친 세상이다.
게다가 린은 원작에서 이미 감기에 걸린 적 있는 캐릭터.
이번 실습 동안 99.9% 아니 100% 확률로 돌발 상황이 발생할 텐데, 고작 감기 때문에 린을 전력에서 열외시킬 수는 없다.
이래 봬도 린은 올리비아와 맞먹는 재능과 실력을 지닌 유능한 인재니까 말이다.
그 깐깐하고 인재 좋아하는 협회장 아저씨가 괜히 양녀로 들인 게 아니다.
“미안하기는 무슨, 잠깐 좀 기다려 봐라.”
스륵.
린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는, 입고 있던 비치 후드 집업을 벗어 그녀의 몸에 둘러준다.
얇은 여름용 겉옷이지만, 안 입는 것보단 낫겠지.
“기, 김덕성······. 이건······.”
린이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우물댄다.
툭, 투둑.
장대비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다.
린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살짝 떤다.
“고, 고맙······.”
“고마우면 감기 안 걸리게 노력 좀 해라.”
네가 감기 걸리면 나만 곤란해지거든.
“······아, 알겠다······. 노, 노력하겠다! 반드시!”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는 린.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더 붉어진다.
[오, 파트너. 멘트 제법인데? 완전 선수야, 선수. 이쯤 되면 파트너도 유죄야.]흑태자가 또 머릿속에서 헛소리한다.
뭐? 유죄?
어이가 없네.
누구 마음대로 유죄야?
평소라면 뭐라 한 마디 쏘아붙였을 테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
흑태자와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시 업혀라.”
“그, 그래······.”
그녀를 다시 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