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67)
이게 뭐라고 저렇게 기뻐하는지.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 구석이 쿡쿡 찔린다.
문득 그녀가 했던 보랏빛 김치찌개가 떠오른다.
크툴루도 먹고 깜짝 놀라서 르뤼에로 기어들어갈 법한 코즈믹 호러스러운 맛에 내가 혹평했던 기억도.
설마 그거 때문에 김치찌개를 연습한 건가?
솔직히 그때 그 보랏빛 김치찌개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맛이긴 했지만, 너무 정색하지 않았나 싶다.
괜스레 살짝 미안해진다.
“아니, 뭐 고마울 필요까지야. 이런 걸로 울지도 좀 말고. 밥이나 좀 더 줘.”
조금 짜서 밥이랑 같이 먹어야 간이 맞다.
린이 눈물을 닦아낸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한다.
“아, 알겠다. 살짝 짜다고 했으니 다음에는 간 조절에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다.”
딸칵.
내 앞에 즉석밥 한 공기가 또 놓인다.
하얀 쌀밥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너는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있으니 많이 먹어라. 김덕성.”
린이 옅게 웃는다.
이것도 우리 엄마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
우리 엄마도 밥이 보약이라며 아플 때면 항상 밥을 머슴밥처럼 많이 퍼주곤 했다.
“······그래.”
밥을 한 공기 받아들고는 김치찌개와 함께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 원래 세상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맛.
새삼스럽게 센치해진다.
“시노자키 공! 소녀도 김치찌개가 먹고 싶사와요! 한 그릇 주시어요!”
번쩍.
옆에서 에반젤린이 손을 든다.
“알겠다. 스튜어트 양. 여기 있다.”
딸칵.
수영복 앞치마 차림의 린이 모성애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에반젤린에게 김치찌개와 밥을 퍼준다.
“잘 먹겠사와요!”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에반젤린.
딸칵.
린이 그녀 옆에 앉은 베아트리체에게도
“으으으, 국물이 빨간 게 무척 매워 보이느니라······.”
새빨간 김치찌개 국물을 보고 베아트리체가 몸을 잘게 떨면서 작게 중얼거린다.
쟤가 원래 매운 걸 싫어하나?
설정집에 그런 사소한 것까지는 안 적혀 있어서 모르겠다.
“무척 맛있사와요! 역시 시노자키 공! 한식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것이와요!”
착.
에반젤린이 양손을 기도하듯 모으면서 눈빛을 반짝인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에반젤린의 칭찬에 당황하는 린.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요리치인 린이 요리로 칭찬을 들을 일은 없었을 터.
나뿐만 아니라 에반젤린에게도 칭찬을 들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 나면 소녀한테도 한 수 가르쳐주는 것이와요. 소녀, 김덕성님의 신자로서 한식은 반드시 배우고 싶은 것이와요.”
“으? 응. 나, 나라도 좋다면······. 알겠다······.”
린이 부끄러워하며 웃는다.
매번 정색하거나, 울거나,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머뭇거리기만 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순수하게 기뻐하고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흐뭇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으으, 아무리 봐도 매울 것 같으니라······.”
에반젤린 옆에는 베아트리체가 여전히 울상인 얼굴로 김치찌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망설인다.
그 모습을 본 린의 어깨가 살짝 처지던 그때.
“자자, 트릭시 양도 식기 전에 어서 김치찌개를 드시는 것이와요!”
“자, 잠깐. 여는 먹기 싫······. 읍! 으읍!”
에반젤린이 베아트리체에게 강제로 김치찌개를 먹인다.
“읍!”
베아트리체의 붉은 눈동자가 떨린다.
스윽.
베아트리체의 입에서 숟가락이 나온다.
“이건······.”
베아트리체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꿀꺽.
린이 마른침을 삼킨다.
[내가 다 긴장되는데,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
“꽤 맛이 괜찮군. 빨간 음식이라 매울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느니라. 적어도 계약자가 해준 그 끔찍한 면 요리보다는 훨씬 낫도다.”
베아트리체가 빠르게 원래 중2병 모드로 돌아가면서 콧대를 세우면서 말한다.
끔찍한 면 요리라니.
대체 뭘 해준 거야?
“거기 인간이여, 홍련의 성녀인 여가 친히 칭찬해주지. 영광으로 알도록.”
척.
베아트리체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옅게 웃는다.
그녀의 칭찬 아닌 칭찬을 들은 린의 얼굴이 펴진다.
“고, 고맙다. 스미스 양. 다들 전부 고맙다. 모두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린이 눈물을 살짝 글썽인다.
그녀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울지 말라니깐.”
하여간, 생긴 건 쿨데레처럼 생겼는데 까놓고 보면 울보도 저런 울보가 따로 없다.
“아, 알겠다. 덕성. 우, 울지 않겠다.”
그녀가 눈물을 황급히 훔치면서 웃는다.
뺨이 분홍색으로 물든 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오늘 여러모로 린의 처음 보는 모습을 많이 보는 기분이다.
“어머어머. 트릭시 양. 김치찌개를 잘 드시는 걸 보아하니 곧 불닭볶은면도 잘 드시겠사와요!”
“그, 그건 아니니라! 머, 먹이지 말거라!”
에반젤린의 농담에 기겁하는 베아트리체.
설마 성녀에게 불닭을 먹여서 빨간 음식에 기겁한 건가?
돌겠네, 정말.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에반젤린과 베아트리체, 그리고 엄마 같은 미소를 짓는 린을 보면서 김치찌개를 싹싹 비웠다.
“잘 먹었다, 린.”
빈 그릇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릇을 받아든 린의 얼굴이 붉어진다.
“어, 으응······. 고맙다. 덕성.”
그릇을 건네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닿은 순간.
린의 얼굴이 붉어진다.
“소녀도 잘 먹었사와요!”
“스튜어트 양도 고맙군.”
웃는 얼굴로 에반젤린의 빈그릇을 받는 린.
그녀를 바라보면서 베아트리체가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말한다.
“디저트는 없느냐? 여는 단 게 좋도다.”
“스미스 양. 무인도 생존 훈련에 디저트는 사치인 것이와요.”
에반젤린의 말에 어깨를 늘어뜨리는 베아트리체.
디저트는 사치라니.
식량 대신 스콘이랑 차만 잔뜩 짊어지고 티타임은 필수 운운하는 국뽕 불닭 애기븝미 영국 공주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본 린이 웃는다.
“디저트는 여기 있다.”
있다고? 디저트가?
무인도에서 디저트라니.
딸칵.
린이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
“내 기프트로 만든 아이스 망고다.”
그녀가 디저트로 내놓은 건, 우리가 아까 군락지에서 열심히 수확했던 망고.
그걸 본인의 기프트인 ‘빙결’을 사용해 얼려서 아이스 망고로 만든 모양.
얼려진 망고 위로 한기가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본 에반젤린이 입을 손으로 가린다.
“하와와와와······.”
“우와아아아아아······.”
뒤이어 눈을 반짝이는 베아트리체.
설정집에도 단 거를 유독 좋아한다는 설정이 붙은 성녀인 만큼, 단 디저트에 정신이 나간 모습이다.
“마음껏 먹어도 좋다.”
린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까 김치찌개를 내놓으며 불안하고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인 것과는 정반대 모습.
“시노자키 공, 잘 먹겠사와요!”
“잘 먹겠느니라!”
감사 인사를 하며 아이스 망고를 먹는 베아트리체와 에반젤린.
“으으음. 역시 이 맛이니라. 식후엔 디저트가 빠질 수 없지. 안 그러냐? 계약자여.”
“맛있사와요. 후후. 시노자키 공은 뭐든 다 잘하는 만능초인이어요!”
베아트리체와 에반젤린이 린을 칭찬한다.
린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입술이 씰룩댄다.
린이 쭈뼛쭈뼛한 태도로 이쪽을 바라본다.
“덕성.”
그녀가 아이스 망고 하나를 집어든다.
“아······. 해라. 머, 먹여주겠다······.”
그녀가 시선을 내려깐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먹여주는 건 올리비아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린도 이런 거 좋아했었나?
[파트너. 소녀 팔 떨어지겠다. 이만 받아줘.]머릿속에서 또 흑태자가 쓸데없는 훈수를 둔다.
어차피 안 말해도 받아 먹을 생각이었다.
이 정도야 뭐······. 못할 일도 아니다.
아이스 망고까지 준비할 줄은 몰랐으니.
아무 말 없이 입을 벌리자, 린이 떨리는 손으로 아이스 망고를 내 입에 집어넣는다.
얼린 망고가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서 녹는다.
찌잉.
머리가 약간 아프긴 하지만 괜찮다.
맛있네.
“어, 어떤가? 덕성. 이번에도 괜찮나?”
린이 앞치마 자락을 움켜쥐면서 고개를 숙인 채 이쪽을 힐끗힐끗 올려다본다.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어.”
사실 조리법이랄 것도 없는 요리긴 했다.
빙결 기프트를 가진 그녀가 그냥 망고를 능력 써서 얼리면 그만이니.
망고 자체가 워낙 맛있기도 하고.
“······다행이다. 오늘은 전부 네 마음에 들어서.”
린이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웃는다.
저녁노을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그런 린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문득 어머니와 겹쳐 보여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그날의 저녁 식사가 끝났다.
*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무리된 뒤.
우리 조는 취침 준비에 들어갔다.
자는 동안 불침번은 네 명이서 돌아가면서 서기로 했다.
나는 말번초.
그리고 불운한 말번초 바로 앞이 베아트리체였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인간. 어서 안 일어나고 뭐하느냐?”
그것이, 베아트리체가 침낭 안에서 곤히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운 이유였다.
“끄응······.”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빌어먹을 불침번 같으니.
군대에서도 느낀 거지만 경계 근무건 불침번이건 간에 자다가 일어나는 건 못 해먹을 짓이다.
이세계 전생하면 불침번 같은 건 안 설 줄 알았는데.
“인간. 그대가 불침번 다음 차례다.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후후.
베아트리체가 웃으면서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하여간, 패션 중2병 주제에 폼은 엄청 잡는다.
[파트너. 정신은 좀 들어?]‘그래.’
흑태자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서 터덜터덜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간다.
새벽이라 그런지 여름인데도 쌀쌀한 날씨가 나를 반긴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이 보인다.
“어후.”
양 팔을 교차해 팔꿈치를 감싸며 모닥불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불침번이라. 나도 옛날에는 야전에서 많이 섰었지. 그때 생각이 나는군.]흑태자가 같이 경계 근무 나간 분대장 선임 사수 같은 말투로 말한다.
불침번보다 경계 근무가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말동무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엿 같은 선임이 사수거나 폐급 후임이 부사수로 걸리면 그건 그거대로 고역이었지만.
홀로 막사 복도에서 고독을 씹어야 하는 불침번보다는 그래도 대화 상대가 있는 경계 근무가 시간이 잘 가는 편이었다.
아무튼, 옆에 흑태자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죽일 필요는 없어서.
‘그래.’
흑태자의 말에 맞장구치며 품에서 마시멜로를 꺼내 꼬챙이에 꽂는다.
모닥불에는 역시 마시멜로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캠프 파이어에 마시멜로 굽는 거.
[오. 파트너. 마시멜로 구울 거냐? 너도 뭘 좀 아는데?]여기 불침번이 유일하게 군대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건 근무 중에 취식이 가능하다는 점이겠지.
마시멜로를 모닥불에 익히고 있던 그때.
“흠흠.”
등 뒤에서 누군가의 헛기침이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마,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인간이여, 그 말랑말랑한 음식, 여한테도 한 입 진상할 수 있는 영광을 특별히 주도록 하지.”
양심 없는 한입충 중2병 성녀가 서 있었다.
농담 아닌 것 같은데(삽화 有)
뭐? 한입? 진상?
어이가 없다.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한 게 뭐가 있다고 지금 내 걸 달라는 거지?
“지금 뭘 달라고? 이건 내 건데? 왜 달라는 거야? 꼬우면 너도 마시멜로 갖고 오던가.”
“히끅!”
내가 낮게 말하자 성녀가 딸꾹질한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됐지? 나는 줄 생각 없으니까 김칫국 마시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들어가 자라.”
“흐으으으······ 너무해애애······.”
베아트리체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녀가 말끝을 늘이면서 볼을 부풀린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어디서 얻어먹으려고.
저래도 줄 생각 없다.
“······.”
힐끔힐끔.
저 뒤에 주저앉은 성녀가 붉은 외눈으로 모닥불에서 구워지는 마시멜로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