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68)
꿀꺽.
그녀가 마른침을 삼킨다.
오, 좋아.
이제 잘 구워졌으니 한입 맛볼까.
따끈따끈, 갓 구운 마시멜로를 입안에 넣으려던 그때.
[파트너, 그냥 성녀한테도 한 입 주는 게 어때? 불쌍하지도 않냐?]흑태자가 한마디 한다.
“으우우우우······. 지이이이이이······.”
뒤를 돌아보니 성녀가 입에서 의성어를 소리내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아니 네가 마코토냐.
의성어를 입으로 소리내게.
어이가 없네.
[응? 파트너? 솔직히 마시멜로 많이 챙겨왔잖아. 쟤가 불쌍해 보여서 그래. 내가 부탁할게.]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하여간, 저 호색한 성격이 문제다.
어쩔 수 없다.
시끄러운 흑태자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라도 마시멜로 하나쯤 던져줘야겠다.
흑태자 말대로 마시멜로는 제법 많이 챙겨왔을뿐더러, 이용 가치가 무궁무진한 성녀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마시멜로 정도야 못 내줄 것도 없다.
단지 좀 밉상일 뿐이지.
아무 말 없이 마시멜로 하나를 더 꺼내 꼬챙이에 꿰어 굽는다.
“으으으으, 인간이여. 지금 여를 감히 기만하는 것이더냐······.”
뒤에서 성녀가 헛소리를 중얼거린다.
아무 말 없이 전부 구운 마시멜로를 그녀를 향해 건넨다.
“자.”
“이, 인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시멜로를 본 성녀의 눈동자가 커진다.
“흠, 흠. 여한테 일용할 양식을 진상하려는 것이냐? 좋아. 딱히 그렇게 바라던 건 아니지만, 진상한다면 여가 친히 맛 정도는 봐줄 수 있도다. 영광으로 알도록.”
베아트리체가 헛기침하며 짐짓 흔들리는 눈동자를 수습하고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마시멜로 꼬치로 향한다.
허세 부리기는.
“헛소리하면 안 준다.”
휙.
그녀에게 내밀었던 마시멜로를 다시 회수한다.
“자, 잠깐 그, 그러지 마세요오······. 너무해요오오······.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요오······!”
바로 허접 모드로 돌아간 성녀가 볼을 부풀리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하여간, 본전도 못 찾을 거면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파트너, 너 인마 혹시 진짜 안 줄 생각은 아니지?]흑태자가 살짝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장난이지. 넌 날 대체 뭘로 보고 그렇게 정색하는 거냐?’
솔직히 조금 섭섭하다.
내가 그 정도로 쪼잔한 사람은 아닌데.
[음. 속 더럽게 좁은 츤데레 쿨찐 소인배?]‘이 인간이.’
[아, 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흑태자가 어색하게 웃는다.
아무리 봐도 농담 아닌 것 같은데.
하긴, 흑태자에게 뭔가 진지하게 따지려 드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뭐 그건 그거고.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안 하면 안 줄 거야.”
성녀의 버릇은 좀 고쳐놓을 필요가 있다.
매번 저런 식이면 나중에 협력할 때도 곤란해진다.
원작 주인공 놈이야 ‘상냥함’으로 성녀를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끌고 갔지만, 나는 흑태자 말대로 속 좁은 소인배.
호구 유지 놈처럼 베아트리체의 보모 역할을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그녀의 성질을 죽여놓을 필요가 있다.
“······가, 감히 홍련의 성녀인 여한테 하등종인 인간 따위가 그런 굴욕적인······.”
“싫음 먹지 말던가.”
“으우우우우우······. 치사해애······.”
내 말에 볼을 부풀리는 성녀.
그녀가 나와 구운 마시멜로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움찔한다.
“······하, 하면 되잖아요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는 베아트리체.
“자.”
내 말을 잘 따랐으니, 약속대로 포상을 줄 차례다.
나 그렇게 쪼잔한 사람은 아니다.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다.
베아트리체가 공손한 손으로 마시멜로를 받아든다.
우물.
그녀가 구운 마시멜로를 한입 베어문다.
베아트리체의 붉은 눈동자가 커진다.
“마, 맛있어······!”
안 그래도 단 걸 좋아하는 베아트리체였다.
구운 마시멜로의 맛에 정신을 못 차릴 수밖에 없다.
“맛있냐?”
내가 묻자 화들짝 놀라는 베아트리체.
그녀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가장하면서 말한다.
“흐, 흠. 딱히 못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구나.”
“아직도 그 연기 못 그만둔 거냐? 내 앞에선 소용없는 거 너도 알잖아.”
“······맛있어요오······.”
움찔한 베아트리체가 소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들어간다.
밤도 아침도 아닌, 애매하게 밝은 새벽 하늘이 보인다.
뜨겁게 김이 피어오르는 마시멜로를 한입 베어문다.
맛있네.
구운 마시멜로는 원래 맛있지만, 하필 불침번 서는 도중이라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다.
“추워요오······.”
스윽.
베아트리체가 내 옆으로 다가온다.
새 마시멜로를 꼬챙이에 꽂고 다시 구우면서 묻는다.
“안 자냐?”
“······잠이 안 오는걸요오······.”
베아트리체가 볼을 부풀린다.
말번초 바로 앞이면 그럴 수 있지.
나도 군인 시절, 말번초 바로 앞 근무면 자는 대신 라면이나 먹었었는데.
“그럼 여기 계속 있을 거냐?”
“······아, 안 돼요오?”
베아트리체가 파르르 떤다.
그녀의 시선이 바닥을 향한다.
“맘대로 해라.”
내가 전세 낸 자리도 아니고, 본인이 안 잔다는데.
내가 더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부지깽이로 모닥불을 뒤적거린다.
불티가 하늘 위로 튀어 오른다.
베아트리체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나와 베아트리체, 둘밖에 없다.
이때밖에 없다.
“그런데 넌 여기 왜 온 거냐?”
베아트리체.
그녀가 대체 왜 세인트 조지 학원에 위장 전학이라는 번거로운 수단까지 사용해가면서까지 이 자리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대체 원작과 진행이 완전히 달라진 이유가 뭔지.
원작을 비튼 본인에게 물어볼 기회는.
베아트리체 한쪽 눈동자를 굴린다.
“그건요오······.”
힐끔.
그녀의 눈동자가 마시멜로를 향한다.
더 먹고 싶다는 거냐?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꼬챙이에 마시멜로를 꽂아준다.
마시멜로를 본 베아트리체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제 말해.”
“······다, 다앙신을 만나러 왔어요오······.”
그렇게 말하면서 입술을 앙다문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나를?
“대체 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설마 저게 로맨틱한 고백 같은 건 아닐 테고.
내가 성녀의 관심을 끌 만한 행동을 했던가?
“메, 메사이어의 계획을 연속으로 방해한 다, 당신이라면······. 어쩌면 혀, 협력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닐까 해서어······.”
성녀가 붉어진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과연, 그런 거였군······. 메사이어라······.]흑태자가 그답지 않게 드물게 진지한 모습으로 중얼댄다.
메사이어.
10년 전, 파이브 크라운즈 네 명을 죽이고, 세이라에게 부상을 입혀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원흉.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으니, 흑태자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거겠지.
“그게 다냐?”
성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제야 전후 사정이 완벽하게 파악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미치겠구만.
원래 그녀가 협력자, 메사이어의 대적자를 포섭하기 위해 직접 행차하는 건 원작 14권의 일.
즉,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앞당겨진 건, 전적으로 나 때문이다.
내가 원작과는 다르게 뉴 월드 리그의 음모를 적극적으로 분쇄하고, 말단 빌런은 물론 13사도까지 도주를 용납하지 않고 전부 확인 사살했기 때문이다.
그 일 때문에, 원작의 주인공보다 일찍 성녀가 나를 메사이어의 대적자로 점찍은 거다.
“염병.”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비효과의 결과물을 확인하니 머리가 아프다.
“화, 화나셨어요오?”
“아니. 그래서, 그때 호텔 수영장에서 우리 서로 협력하기로 했잖아. 그럼 네 목적 달성은 끝난 건데, 왜 계속 여기 같이 있는 건데?”
내 시선을 받은 성녀가 움찔한다.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면서, 애꿎은 마시멜로를 만지면서 말한다.
“그, 그건······. 즈, 즐거웠으니까요······.”
즐거워?
베아트리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저, 정신을 차리면서부터 지금까지, 교단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간 적 없어요. 새장 속의 새처럼. 주변에는 온통 절 이용하려는 사람만 한가득······. 그래서······.”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여기가 좋았어요. 검은 속내도 없고, 저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순수한 호의로 저를 대해주는······. 상냥한 사람들이 있는 여기가······. 좋았어요. 조금만 더······. 이 일상을 누리고 싶었어요. 설령 그것이 거짓으로 점철된 관계이며, 덧없는 꿈이라 해도······.”
베아트리체가 눈을 감았다 뜬다.
“그 꿈이 끝날 때까지는, 성녀 베아트리체가 아닌 트릭시 스미스로 있고 싶었어요.”
타닥, 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의 주홍빛이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비춘다.
새장 속의 새.
원작 17권에서도 주인공에게 베아트리체가 비슷한 뉘앙스로 했던 말이다.
하지만 실제 본인의 입으로 들으니 말문이 막힌다.
전부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빙의자인 내가 쌓아 올린 관계는 착각과 오해가 중첩된 거짓에 가깝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내게 이 빌어먹을 세상은 덧없는 일장춘몽과도 같다.
그리고 빌어먹도록 상냥한 주변인들은 너무나 쉽게 나를 신뢰하고 호구처럼 순수한 호의로 나를 대한다.
“······그냥, 그랬어요.”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 나다.
하지만 어쩌면 베아트리체처럼 한쪽 구석에는 원래의 내가 아닌 이 세상의 ‘김덕성’으로 살아가려는 욕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지나치게 상냥한 세상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그녀들의 얼굴을 지워내며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여기 눌러앉을 수는 없다.
난 돌아갈 거다.
원래 세상에 남겨진 우리 가족, 정년퇴임을 앞둔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
“그래. 말해줘서 고맙다.”
스윽.
그녀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더 건넨다.
마시멜로를 받아든 베아트리체가 헤실헤실 웃는다.
저 멀리, 동트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슬슬 기상 시간이다.
*
아침.
어제 남은 김치찌개로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일정을 정하기 위해 모인 자리.
거기서 맨 처음 의견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여는 바다에 가고 싶으니라.”
베아트리체였다.
그녀가 오만한 중2병 말투로 말한다.
“어머, 트릭시 양. 물놀이가 하고 싶은 것이와요? 소녀도 마찬가지여요. 김덕성님과 함께 바닷가에서 물놀이하고 싶사와요. 그래서 튜브도 챙겨왔사와요.”
그러자 옆에 앉은 에반젤린이 맞장구를 친다.
그녀가 튜브를 들어 보인다.
저건 또 언제 바람 넣은 거야?
“또 물놀이냐······?”
무인도 가기 전에 실컷 했는데 무인도에 와서도 물놀이라니.
솔직히 또 하기는 싫은데.
라고 말하려던 그때.
“덕성.”
린이 나를 바라본다.
“나, 나도······. 너와 바다에서 물놀이하고 싶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린의 남색 눈동자가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린이 저러니까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염병.
어제 이후 린에게 예전처럼 막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진짜 돌겠다.
[파트너. 웬만하면 그냥 수용하는 게 어때?]에휴.
그래 내가 양보해야지.
“그냥 바닷가 가자.”
“저, 정말인가? 고맙다. 덕성.”
린이 옅게 웃는다.
이제 마음이 약간 편해진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뒤, 나는 일행을 데리고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쏴아아아.
원작에서 주인공 일행이 놀았던 무인도의 한적한 바닷가가 보인다.
생도들이 바글바글 가득 들어찼던 여름 학교 때의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프라이빗 비치처럼 아무도 없는 넓은 백사장에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막상 직접 보니 풍경이 꽤 좋다.
“우와! 바다여요!”
에반젤린이 바다를 바라보며 국룰 대사를 외친다.
이제 곧 린, 에반젤린, 베아트리체 세 명이 애니메이션처럼 바다를 향해 돌진하겠지.
안 봐도 뻔하다.
나는 안 들어가고 그냥 그늘에서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그때.
“크윽!”
베아트리체가 안대로 가려진 왼쪽 눈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면서 소리친다.
“크윽! 홍련의 마안이 깨어난다. 크아아아아악!”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