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7)
예상치 못한 습격에 카스미가 헛바람을 집어삼킨다.
깡!
그림자 창이 그녀의 목에 부딪히며 쇳소리를 낸다.
카스미의 새하얀 목덜미는 어느새 보랏빛 비늘로 뒤덮여 있다.
위협을 감지한 용의 인자가 본능적으로 활성화돼 그녀를 보호한 것이다.
“이런 근거로.”
파스스.
검은 종이비행기가 카스미의 방어막에 부딪혀 사라진다.
용인으로 변한 그녀의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찰칵.
스마트폰을 들고 용인이 된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증거 입수 확인. 클라우드 자동 업로드 완료.”
카스미를 바라보며 유사시를 대비해 언제건 전투 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듀랜달에 손을 얹는다.
아까 그녀가 초상병기를 꺼내지 않은 건, 교내에서는 대련과 연습을 제외한 허가 받지 않은 초상병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
하지만 교칙이 의미 없어진 지금, 카스미의 성격을 고려하면 확률은 한없이 낮지만, 그녀가 발악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게임 끝났어. 호시노 카스미.”
오른손은 듀랜달의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그녀의 용인 모습이 찍힌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인다.
카스미의 고개가 떨어진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린다.
“그러게······.”
카스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후배 군 말대로, 끝나 버렸네. 하필이면 여기서······.”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평생을 흑막에게 이용당하고, 스파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원에서 타인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한 카스미에게 이 부실은 유일한 안식처.
그런 장소에서 본인의 정체가 강제로 드러났으니 멘탈이 붕괴된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내 알 바는 아니다.
‘예상대로 발악은 없었군.’
라노벨에서 세탁기 돌리는 히로인이 다 그렇듯, 호시노 카스미 역시 원래 성격은 착하고 상냥하며 스파이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내심 누군가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설정.
그래서 카스미가 발악할 확률은 한없이 낮다.
하지만 동시에 뉴 월드 리그의 스파이기 때문에 잠재적 위험분자다.
‘시한폭탄은 빨리 해체하는 게 상식이지.’
호구 주인공 유지처럼 배신당해줄 생각은 없다.
뉴 월드 리그의 스파이가 통제 없이 학원에 돌아다니도록 놔둘 생각도 없고.
카스미가 고개를 든다.
그녀가 초점이 사라진, 텅 빈 눈동자로 흐릿하게 나를 응시한다.
“······이제 날 어떻게 할 거야? 협회에 넘길 거야? 아니면 언론에 제보?”
“아니. 그럴 생각 없어.”
최종 보스를 족치기 위해서는 카스미도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스파이라는 걸 외부에 공표하면, 자극받은 뉴 월드 리그 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런 위험한 일을 감행할 정도로 나는 머저리가 아니다.
카스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가 양팔로 어깨를 감싸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대체 왜······. 설마 나를 그 사진으로 협박해서······. 아, 안기라도 할 셈이야?”
씨발, 진짜.
이런 상황에서 그런 발상이 어떻게 나오지?
정말 신비하고 창의적이라 말이 안 나온다.
“안 해. 그딴 짓.”
대답을 들은 카스미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래, 후배 군도 나 같은 괴물을 안기는 싫구나······.”
이마를 탁하고 친다.
점입가경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미친 세상을 너무 얕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뭔가 쓸데없는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난 당신 정체성, 그러니까 키메라니 인간이니 그런 거에 단 1%도 관심 없어.”
“······내 몸, 싫어하지 않는 거야?”
“아니 진짜 관심 없다니까? 내가 그걸 싫어할 필요라도 있나?”
카스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대체 이게 지금 뭐 하는 미친 짓거리인지.
그녀와 파멸적인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현자 타임이 온다.
시발, 이럴 때가 아닌데.
“알면 됐고. 내가 선배님한테 바라는 건 하나야.”
현자 타임을 이겨내며 말을 잇는다.
“뉴 월드 리그를 배신하고 내 정보원이 될 것.”
카스미의 눈동자가 떨린다.
“내 지시를 앞으로 고분고분 잘 따르면······. 적절한 시기에 놈들이 인질로 붙잡은 선배님의 친구를 구해주도록 할게. 나는 상벌이 확실한 사람이니까.”
사토우 레나.
카스미와 함께 키메라 프로젝트의 둘뿐인 생존자이자, 현재 혼수 상태에 빠져 기절해 있는 인물.
뉴 월드 리그가 착한 심성이라는 설정을 가진 카스미를 굴복시키고, 그녀에게 배신을 강요할 수 있었던 진짜 원인.
그녀를 언급하자 카스미의 손이 떨린다.
“거절하면 뭐, 협회랑 인터넷에 사진 다 뿌려버리는 거고. 선택은 선배 몫이야. 아, 나한테 허튼 짓하면 자동으로 클라우드에서 메일 전송하게 되어 있으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말고.”
할 말을 끝내고 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과정이 약간 금발 태닝 양아치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카스미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내 노예 2호가 되는 것.
1호는 올리비아니까 2호다.
휘파람을 불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어색한 침묵이 얼마간 흐른 그때.
“······할게.”
카스미의 대답이 들려온다.
2호기 탄생이다.
혼자가 아니야(삽화 有)
“현명한 선택이야.”
카스미에게 칭찬을 던진다.
그녀가 고개를 조용히 끄덕인다.
“선배는 이제 이중 스파이야. 뉴 월드 리그 놈들의 지시와 명령은 받는 즉시 전부 나에게 보고하고, 상황 동태도 파악해서 내게 연락해.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내 명령을 최우선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내가 후배 군의 말 잘 들으면······. 정말 레나를 구해주는 거야?”
카스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래. 약속하지.”
어차피 싫어도 구할 수밖에 없다.
사토우 레나도 서브 히로인 캐릭터고, 최종 보스를 상대할 때 필요하다.
하긴, 라노벨에 나오는 여캐 중에 주인공에게 반하지 않는 여캐는 없다.
예외가 있다면 30대 이상의 연상 캐릭터나 엄마 정도?
나이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100살 이상이면 100% 확률로 히로인 캐릭터니까.
여동생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라노벨 중에 여동생이라는 제목이 들어가는 작품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데.
아니, 요즘에는 엄마도 마망이라는 이름으로 히로인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개짓거리인지.’
쌍욕이 절로 나온다.
이게 다 주인공 놈이 그때 엉뚱한 히로인의 알몸을 봐서 생긴 나비효과다.
깜찍한 호구 새끼.
이 대가는 등골을 뽑아서라도 반드시 징수할 거다.
아니면 아예 주인공 놈 보고 구원하라고 시키던가.
그때.
카스미가 머뭇거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럼······. 약속의 의미로······. 소, 손가락 걸어줄 수 있니?”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내게 내민다.
숨이 턱하고 막힌다.
돌아버릴 것 같다.
“······아, 안 되는 걸까······. 나는 후배 군의 약속······. 받고 싶은걸······.”
카스미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표정이 또 어두워진다. 카스미의 새끼손가락이 떨린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옛 현자가 말하길,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고작 손가락 약속 따위로 상대의 신뢰를 얻는다?
오직 상냥한 라노벨 세계에서만 가능한 기적이다.
웹소설이었다면 약점 잡아놓고도 안심을 못 해서 마법 계약이니 마나의 맹세니 하는 수단으로 목줄을 채워야 했겠지.
잠깐의 쪽팔림만 참으면, 2호기가 완전히 내 손에 들어온다는 거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손을 뻗어 떨리는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어준다.
“약속하지. 선배가 이중 스파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내 명령에 고분고분 잘 따라준다면, 반드시 적절한 시기에 사토우 레나를 구해주는 건 물론, 놈들에게 복수할 기회까지 주겠다고.”
얽힌 새끼손가락을 통해 그녀의 체온과 떨림이 전해진다.
카스미의 뺨이 붉어진다.
“그러니까 선배도 약속해.”
나만 하면 억울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약속······. 후배 군의 충실한 스파이가 될 거야.”
카스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그래.”
손가락을 재빨리 빼낸다.
쪽팔려 뒤질 거 같다.
“아······.”
카스미가 낮은 탄식을 흘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은 해야겠다.
“약속까지 했으니까, 내 명령 최우선하는 건 당연한 거고, 앞으로 선배 일거수일투족 전부 나한테 보고해.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카스미는 위험 분자다.
동선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저, 전부?”
“그래. 명령이야. 싫어?”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 아니. 싫지 않아. 그렇지만 뭐랄까······.”
뭐랄까?
“나, 정말 후배 군의 것이 되어버렸나 하고······. 실감이 나서. 후후.”
카스미가 보랏빛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돌리며 말한다.
대체 무슨 엿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이젠 일일이 반박하는 것도 지친다.
아, 몰라. 맘대로 망상하라고 해.
“······명령은 그게 끝이야?”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입부 신청, 받아.”
카스미와 공식적인 접점을 가지려면 독서부에 가입해야 한다.
“응.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줄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입부 신청서 하나를 꺼내 볼펜과 함께 내민다.
볼펜을 쥐고 신청서를 작성한다.
그때.
팔뚝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코 끝에 라벤더향이 감돈다.
고개를 돌린다.
“김, 덕성. 역시 후배 군이 그 한국인 생도 맞았구나?”
카스미가 바로 옆에 있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내 팔뚝에 닿고 있다.
이거 의도한 건가?
바로 팔뚝을 빼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이가 없네.
“후배 군······. 너무해.”
카스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대체 뭐가?”
왜 또. 뭐가 문제야?
“역시 후배 군도 나 같은 흉측한 괴물의 몸은 싫구나······.”
하여간 누가 라노벨 히로인 아니랄까 봐, 기만질이 아주 패시브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인외 히로인 캐릭터가 고작 뿔 따위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인터넷만 가도 뿔 가능 비늘 가능한 사람들이 널렸는데 말이다.
히로인의 자존감을 낮춰 주인공에게 빠르게 반하게 만들려는 얄팍한 편의주의적 설정의 잔재다.
‘하여간, 음습한 작가 놈 같으니.’
자기가 예쁜 걸 모르는 미인? 세상에 그런 미인이 대체 어디 있어.
미모가 개연성 수준인 외모 금수저인 주제에, 그깟 뿔이랑 비늘이 대수인가?
누구는 금발 태닝 양아치처럼 생긴 외모 흙수저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 볼 때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생각하다 급 현자 타임 오는데?
아.
갑자기 잘생긴 얼굴로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기만질하는 주인공 놈이 생각나서 더 빡친다.
“흉측하긴 누가 흉측하다고 그래? 기만질 좀 적당히 하고 자기 객관화를 합시다. 제발. 씨발 사람 빡치게 하지 말고.”
무슨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에서 뽑기 시즌만 되면 매일 올라오는 전진후진 기만질마냥 시도 때도 없이 숨 쉴 때마다 기만질이야.
“후, 후배 군······.”
“아직 자각을 못 하시는 것 같은데, 뿔나고 비늘 나도 선배 기분 나쁠 정도로 존나 예쁜 건 팩트니까, 나 같은 인상 더러운 놈 앞에서 엿 같은 기만질 좀 그만하라고. 듣고 있는 양아치 후배 빡치니까. 알아들으셨어요, 선배님?”
기만질은 영구 차단감이야.
카스미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의 뺨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후, 후에······?”
라노벨 감탄사까지.
지랄이 풍년이다.
카스미가 고개를 숙인다.
“으응······. 응······.”
그녀가 손가락으로 보랏빛 머리카락을 만지작댄다.
“고, 고마워······. 위로해줘서······.”
“위로 같은 거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한 번만 더 그 외모로 기만질 하면 이중 스파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인터넷에 사진 올립니다. 아시겠어요?”
뇌절이 특기인가?
사람이 좀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를 몰라요.
“후후후. 응.”
카스미가 웃는다.
“흥, 흥흥흥♪”
그녀가 콧노래를 부른다.
남의 속은 뒤집어놓고, 대체 뭐가 저렇게 좋은 거지?
올리비아도 그렇고, 라노벨 히로인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다.
한숨을 쉬며 다 작성한 입부 원서를 그녀에게 내민다.
“여기. 원서.”
“알았어.”
그녀가 입부 원서를 인형처럼 꼭 끌어안는다.
“후배 군의 입부 원서. 확실히 접수했어.”
카스미가 웃는다.
“독서부에 가입한 걸 환영해. 후배 군.”
“아, 네. 뭐.”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뭐, 독서부 활동 잘하시고.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수업 복습을 해야 한다.
개 같은 공부, 엿 같은 학교 같으니.
카스미가 고개를 숙인다.
“······너무해. 후배 군 나빠.”
“이번엔 또 뭔데. 대체 왜?”
“······후배 군은 여자의 몸과 마음을 이렇게 마음껏 희롱해놓고 그냥 가버릴 셈이야? 기사공주한테 갈 셈이지? 바람둥이 후배 군. 나빠.”
머리가 지끈거린다.
5700자 쪽지가 대체 뭐라고 나에게 이런 엿 같은 시련이 닥치는 거지?
“공부하러 간다. 공부. 공부! 복습!”
“복습?”
카스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이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후배 군. 귀엽네.”
미쳤군.
“됐고, 가보겠습니다.”
“복습, 내가 가르쳐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