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72)
무력했다.
린이 피를 토하며 그녀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미래도 떠오른다.
이번에도 못 막을 수는 없다.
부글부글.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나 자신도 놀랄 정도의 분노가 가슴을 새까맣게 태운다.
타닥.
반사적으로 얼어붙은 땅을 박찬다.
비행 모드로 전환해 부스터를 사용한다.
린을 향해 날아가며 이를 악문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막아야 한다.
린이 구속당한 지금, 그 미래를 막을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덕성?!”
내가 날아오자 린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부른다.
“떨어져!”
라노벨 주인공 같은 대사를 내뱉으면서, 최대치의 검은 마력을 실은 양손으로 린의 가슴을 밀친다.
“으읏?!”
쩌정!
그녀의 발목을 붙잡던 얼음이 깨어진다.
린이 당황한 표정으로 밀쳐진다.
그녀의 남색 눈동자가 커진다.
“자기 여자를 우선한 건가, 남자로서는 훌륭하지만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극동의 귀축.”
우우우우우우우웅!
발밑에 잠든 마력이 일어나며 얼어붙은 대지가 진동한다.
[금강불괴]어빌리티를 중첩한다.
금강불괴의 검은 마력이 몸을 휘감는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마력로와 블랙 스톤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른다.
마력회로에 허용치 이상의 마력이 파도치듯 몰아친다.
“끄으으으윽······.”
차갑게 굳은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금강불괴 중첩.
이걸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 이만 죽어라. 프로즌 블래스트.”
콰과과과광!
대지가 폭발하며 새하얀 얼음 칼날 폭풍이 전신을 난도질한다.
마력장과 금강불괴의 이중 방어막을 뚫고 얼음 칼날이 들어온다.
“덕성······!!”
저 멀리서, 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울먹이는 표정과 울보처럼 눈물을 글썽이는 남색 눈동자가 보인다.
린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오지 마라.”
그녀를 향해 손을 내젓는다.
“그렇지만······! 네가······!”
한 발짝, 그녀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아 거, 더럽게 말 안 듣네. 오지 말라니까.
린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가 나를 향해 뻗은 손이 떨린다.
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히로인 대신 희생하는 주인공.
웹소설이라면 고구마 중의 고구마라며 하차 댓글이 1000개가 넘어갈 정도로 불탈 상황.
그런 상황을 무한 이기주의자이며 사이다패스 소인배인 내가 자처한 이유는.
그녀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에반젤린처럼 나 때문에 피 흘리는 호구들을 보기 싫기 때문이었다고
카가가가가가가가각!
린의 모습이 얼음 칼날 폭풍에 가려져 사라진다.
“염병.”
고구마를 내 의지로 먹다니.
내가 미쳤지.
욕설을 내뱉으면서, 나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
콰과과과과과광!
얼음 폭풍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하늘 위로 치솟는다.
먹구름이 잘려 나가고, 대지가 흔들리며 충격파가 주변을 휩쓴다.
얼음 파편이 조각나 휘날리고, 눈바람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김덕성······!”
후방에서 마안으로 구속을 유지하던 베아트리체가 피눈물을 흘리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덕성······!!”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린이 목놓아 울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스스스스스.
연기가 잦아든다.
지하로 파인 끔찍한 크레이터.
그 가운데 김덕성이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는 그의 몸에는 무수한 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피가 흘러나온다.
온통 피로 얼룩진 그의 모습을 본 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털썩.
눈밭에 그녀의 두 무릎이 떨어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린의 입에서 울음 섞인 비명이 흘러나온다.
뚝, 뚝.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양 볼을 적신다.
미래의 아내로서, 그를 지켜낼 거라 맹세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그에게 지켜지고 말았다.
린의 머릿속에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감기에 걸린 그를 간호해준 기억, 자신이 끓인 김치찌개를 그가 괜찮다고 해준 기억.
추억을 떠올린 린이 주먹을 말아쥔다.
이제야 겨우 마음이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야 말았다.
린이 입술을 깨문다.
주르륵.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시노자키 린. 그는 아직······. 살아있다. 여가 마안을 통해 생명 활동을 측정했으니, 확실하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베아트리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 진정해라. 아해야. 진정하고, 일어나라. 일어나서 그가 준 기회를 활용하거라.”
그녀의 말을 들은 린이 입술을 깨문다.
두근, 두근.
린의 심장이 뛴다.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스미스.”
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가 토츠카노츠루기를 바로 쥔다.
에반젤린이, 그가 벌어준 기회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너밖에 안 남았군.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시노자키 가문의 사무라이?”
이반이 웃는다.
쩌정!
그를 구속하고 있는 사슬에 금이 간다.
“끄윽! 끄아아악!”
마안으로 이반을 구속하고 있던 베아트리체가 피눈물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반 안토노프, EX랭크의 괴물. 시베리아의 백호를 가둔 구속이 풀리려 하고 있었다.
린이 입술을 깨문다.
이길 수 없다.
절망적이다.
역시 나는······.
여자력이 낮은 나 따위는······.
매번 2등, 두 번째였던 나 따위는······.
린이 절망에 빠진 그때.
[시노자키 일도류는 바람이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검과 네 몸을 합일해야 한다. 그래야 시노자키 일도류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다.]그녀의 머릿속에 이치로의 가르침이 스쳐 지나간다.
먼 옛날.
시노자키 일도류를 배울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기본 가르침.
잊고 있었던 가르침이 뇌리에 되살아난 순간.
린은 느꼈다.
그녀의 전신을 휘감는 삭풍의 흐름을.
린이 눈을 감았다 뜬다.
그녀의 남색 눈동자에 섬광이 번쩍인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린은 손에 든 일본도, 토츠카노츠루기와 자신이 일체화된 기분을 느꼈다.
합일.
이치로가 말한 가르침의 의미를 린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응?”
이반의 눈썹이 꿈틀한 그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린이 기합을 내지른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녀의 칼날에 삭풍이 휘감겨 소용돌이친다.
남색 마력이 뒤섞인 삭풍의 소용돌이가 검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뻗어나간다.
츠팟.
그녀의 등 뒤에 남색 섬광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솟아오른다.
[토츠카노츠루기] [진명해방] [삭풍을 조율하는 냉기의 일검]진명해방을 이룬 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가 이를 악문다.
“죽어라, 악당.”
린이 차갑게 읊조린 순간.
삭풍의 소용돌이가 무인도에 휘몰아친다.
*
다도해.
수많은 무인도가 널린 바다 위.
한 줄기 회색 섬광이 수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서진이었다.
번쩍.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수면 위를 달리는 한서진의 등 위에는 백발 적안 고스로리 미소녀, 세이라가 업혀 있었다.
“꼬마가 있는 곳에는 언제 도착하느냐. 한서진.”
세이라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한서진이 침착하게 답한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세이라의 시야에 지금까지 지나친 다른 섬과는 달리, 홀로 겨울인 섬이 보인다.
여름인 지금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게, 겨울처럼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열대 기후인 오키나와와는 어울리지 않는 얼음 섬이 세이라의 눈에 들어온다.
콰과과과과과광!
그녀의 예민한 기감에 폭음과 함께 막대한 마력의 유동이 감지된다.
그녀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린다.
세이라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조금만 기다려라, 꼬마야. 이 몸이 반드시 너를 구해줄 테니······.”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
세이라는 뒷말을 삼키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유언은 다 지껄였나(삽화 有)
휘오오오오오.
삭풍이 몰아친다.
린의 등에 돋아난 바람의 날개가 흔들린다.
“진명해방이라, 과연 일본 제일의 기재다운 재능이군.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 성장하다니.”
이반이 웃는다.
“실로 대단하군.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그그그그그그그.
대지가 흔들린다.
이반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황금빛 사슬이 헐거워진다.
“끄아아아아아악!”
성녀의 왼쪽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며 피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하얀 눈밭에 주저앉은 베아트리체가 이를 악문다.
그녀의 전신에 황금빛 마력이 일어난다.
성녀의 비명을 들은 린이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눈에서 차가운 눈물이 흐른다.
[적을 앞에 두고 동요하지 마라, 린. 항상 침착해라. 승리는 열정이 아닌 냉정에서 오는 것이다.]쿠로사와 일족과의 교류전에서 소꿉친구인 유지에게 연전연패했을 때.
도장에서 이치로가 그녀에게 말했던 가르침이 머리에 떠오른다.
린이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
침착해야 한다.
에반젤린이, 트릭시가.
그리고 김덕성이 목숨을 걸고 벌어준 기회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절호의 찬스를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라. 린.’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을.
우우우웅.
삭풍의 마력이 응집된 토츠카노츠루기의 칼날이 떨린다.
“자, 어떻게 나올 거냐, 시노자키 가문의 사무라이.”
이반이 차게 웃는다.
그의 몸을 구속한 사슬이 군데군데 끊어지기 시작한다.
EX랭크 영웅.
압도적인 강자.
린과 이반은 같은 빙결의 기프트 능력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역량 차이에는 그녀도 속수무책이다.
그를 견제해야만 한다.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해야 했다.
린이 토츠카노츠루기를 든다.
“시노자키 일도류, 오의──.”
휘-오-오-오-오-오!
그녀의 등에 솟아난 삭풍의 날개가 소용돌이치고, 칼날에 응집된 남색 마력이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린이 입술을 깨물면서 검을 휘두른다.
“풍림화산!”
휘이이이이이이이잉──!
칼날에서 소용돌이치는 남색 삭풍이 얼음 칼날과 함께 이반에게 직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