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79)
흑태자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심호흡을 하고 너튜브를 켠다.
[소련 멸망! K-영웅 김덕성! 소련을 막고 일본을 구원하다! 초강대국 소련의 EX랭크 영웅 시베리아의 백호가 K-영웅 김덕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면서 굴욕 영상 찍은 이유는?! 최강 무적 특수부대 스페츠나츠를 무릎 꿇린 세계 최강 K-영웅 김덕성의 활약 집중조명!] [K-영웅 김덕성 활약 공개하자 소련 및 공산진영, 바르샤바 조약기구 초특급 국가 비상 사태 선포! 미국 영웅 전문 분석지 충격 발표. “김덕성은 이미 월드 클래스, 같은 나이대에서 그보다 강한 영웅은 없다. 그는 자유세계의 안보를 책임질 미래 인재.”] [한국이 일본보다 영웅 강대국?! 일본은 속 빈 강정?! 믿었던 일본 영웅 전력, K-영웅 김덕성 앞에서 무너지다! 이번 소련 국지 도발에도 손 놓고 있던 일본의 충격적인 내막! “우리 일본도 이제는 김덕성이 필요합니다.”]사실 따위는 없고 순 선동과 날조뿐인 너튜브 썸네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니 내가 소련을 막았다고?
내가 한 거라고는 존버하다가 쓰러진 거밖에 없는데?
이반과 싸운 건 세이라랑 이치로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야 솔직히 이번에 김덕성 진짜 한 거 없잖아 ㅋㅋㅋ 선날승 좀 하지 마라;; 팩트는 이치로랑 세이라가 이반 상대한거지 ㅋㅋㅋ]댓글을 단 순간.
[추천 0] [비추천 –23234]빠르게 올라가는 비추천.
[이 일뽕 어그로 또왔네 ㅋㅋㅋ 같은 아이디 가지고 계속 어그로 끄는거 능지처참하죠? ㅋㅋ] [병먹금] [얘 유명한 일뽕이네 ㅋㅋㅋㅋ 어휴 빛덕성님 음해하느라 애쓴다 애써;] [팩트는 무슨 ㅋㅋㅋ 팩트는 자기 나라 소련한테 뚫리고도 모자라서 빛덕성님한테 또 구원당한 느그 일본의 현실이 팩트임 ㅋㅋㅋㅋ]그리고 빠르게 올라오는 비난 댓글.
심각한 수준의 국뽕이다.
내가 말을 말지.
한숨을 쉬며 포털 사이트에 들어간다.
그래도 여긴 좀 정상적인 기사들이 있겠지?
[대한민국의 자랑, 김덕성. 소련의 위협에서 자유세계를 또다시 구하다!] [일본 영웅 협회 익명 관계자 인터뷰. “김덕성이 그를 상대로 시간을 끌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물론 자유세계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강명현 대통령 청와대 담화. “프랑스 때에 이어 또다시 김덕성이 소련의 음모를 분쇄했습니다. 그가 또다시 자유세계 전체의 안보를 지켜냈습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이 또다시 세계에 드높여졌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아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방한한 美 헐리우드 스타 제니퍼 인터뷰. “김덕성? 물론 잘 알죠. 그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영웅이에요.”] [한류 아이돌 유세라 단독 심층 인터뷰. “그분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언제나 그분의 팬······. 그분 앞에서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라고 기대한 내가 등신이다.
이제는 할리우드 스타에게 내 이름을 물어봐?
두 유 노 클럽에 내가 가입하는 날이 오다니, 정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미치겠네, 정말.
에휴.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을 끄려던 그때.
머릿속에서 아까 놓쳤던 사실이 번뜩하고 스쳐 지나간다.
[파트너, 왜 그래?]한서진.
그녀가 운영하는 너튜브 채널들에 영상이 안 올라왔다.
보기 좋네
아까 고기를 살짝 태우는 실수를 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듯, 인간미 없을 정도로 완벽한 한서진도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 싶긴 했다.
하지만 한서진의 너튜브 채널에 국뽕 영상이 안 올라온 걸 보고 확신했다.
‘한서진한테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거 같은데.’
[큰일? 그걸 파트너가 어떻게 알아?]흑태자가 반문한다.
국뽕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서진이 국뽕 영상 업로드를 거른다?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걸 믿겠다.
시선을 그릴 쪽으로 돌린다.
지글지글.
불 앞에서 열심히 바비큐에 열중하고 있는 한서진이 보인다.
그녀의 이마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흑태자가 말한다.
위로라.
그런 데 별로 익숙하지는 않은데.
[자, 한서진 양한테 빨리 안 가고 뭐 해, 파트너.]흑태자가 재촉한다.
그래도 해야겠지.
한서진은 내 최대 스폰서인 한국에서 붙여준 보좌 요원.
거기다 한서진이 없었더라면, 올리비아 약혼 사건 때도 이번 무인도 실습 사건 때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서진의 기분을 풀어주기는 해야 해.’
인사관리는 원래 중요한 법이다.
[솔직하지 못하긴. 쯧.]흑태자가 혀를 찬다.
이제는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지쳤다.
그의 말을 무시하면서, 그릴에서 고기를 굽는 한서진에게 향한다.
“한서진.”
“김덕성님. 오셨습니까?”
고기를 굽는 도중에 나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한서진.
“너랑 지금 단둘이 좀 할 얘기가 있는데······.”
곁눈질을 한다.
화르륵.
아직 남은 고기 양을 보니, 너무 일찍 말한 건 아닐까 싶던 그때.
“주인님. 바비큐는 지금부터 에리링이 구울게!”
어느새 내 뒤로 나타난 에리가 집게를 흔들면서 웃는다.
아, 깜짝이야.
설마 내 말 듣고 지금 자기가 고기 굽겠다고 나선 건가?
“히히. 둘이서 마음껏 이야기하다가 와. 여기는 이제부터 에리링이 책임질 테니까. 주인님. 에리링 잘했지? 칭찬해줘. 칭찬.”
에리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우쭐한 표정으로 주황색 머리를 들이댄다.
칭찬해달라는 제스처.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어떻게 알고 온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준 건 사실이니까.
“그래, 잘했어.”
돈도 안 드는 칭찬 정도야, 어렵지 않다.
슥슥.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가 웃는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고 와. 주인님, 한서진 씨.”
에리가 손을 흔든다.
“······감사합니다. 니시자와 씨.”
한서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내 옆으로 따라붙는다.
경영 수영복을 입은 한서진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나를 올려다본다.
수영복이라.
그러고 보니 다른 옷을 입은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번 정장 차림이었는데.
한서진도 미녀다 보니, 수영복도 잘 어울린다.
몸매도 나쁘지 않고.
내 시선을 받은 한서진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녀가 말한다.
“단둘이······. 대화하고 싶다고 하셨으니, 제가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김덕성님.”
평소처럼 차분함을 가장한 말투.
하지만 나는 한서진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흠, 이제야 파트너가 왜 그렇게 부산을 떨었는지 알겠군. 확실히 저 아가씨, 뭔가 고민이 있어 보여. 이걸 파트너가 먼저 눈치채다니, 파트너. 많이 성장했어. 훌륭한 한 명의 신사야. 이제 하산해도 좋아.]하산은 무슨.
흑태자의 헛소리를 들으면서 한서진과 백사장을 걷는다.
쏴아아아, 철썩.
오키나와의 에메랄드빛 파도가 백사장에 하얗게 부서진다.
끼룩, 끼룩.
갈매기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왁자지껄한 바비큐 파티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뚝하고 끊긴다.
울퉁불퉁한 커다란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닷가가 나온다.
저녁노을이 빨갛게 물들인 바다와 백사장이 환상적이다.
[여긴······. 정말 풍경이 환상적이군. 이 해변에 이런 데가 다 있었네.]흑태자가 탄성을 터뜨린다.
하지만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본 장소기 때문.
애니메이션 바닷가 에피소드 국룰.
히로인이 할 말이 있다며 불러내는 외딴 바닷가가 바로 여기다.
원작에서는 약혼자 배틀이 마무리된 뒤, 올리비아가 주인공 유지에게 감사를 전하며 고백하려다 실패한 장소.
붉게 물든 노을 아래, 노을처럼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올리비아가 옆머리를 귀 뒤쪽으로 쓸어넘기면서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은, 올리비아단이 뽑은 애니메이션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작화도 훌륭했고 말이다.
어쨌건, 거기를 한서진과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엿 같은 라노벨 세상에서 정녕 클리셰는 피할 길이 없는 것인가.
“김덕성님.”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념에서 깨어나 그녀를 본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
파르르.
그녀의 눈썹이 살짝 떨리는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제게 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용이 무엇이건 경청하겠습니다.”
한서진이 고개를 살짝 숙인다.
빨간 노을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든 것처럼 보인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올리비아가 보여줬던 얼굴과 비슷한 얼굴.
차이점이라면, 애니메이션과 달리 여기는 빌어먹을 현실이라는 점 정도겠지.
“······.”
막상 한서진에게 말하려고 하니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리비아를 포함해서 내가 관계를 맺은 다른 사람들이야 비중이야 어쨌든 원작에서 등장했던 인물이지만, 한서진은 아니다.
원작 라노벨, 애니메이션, 스핀오프, 외전 그 어디서도 등장한 적 없는 인물.
이 세상이 픽션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상징하는 사람.
그런 그녀였기에, 나는 역설적으로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막막하다.
‘돌겠군.’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건 불가능하다.
진퇴양난의 상황.
그때.
[파트너,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면, 솔직하게 물어보는 건 어때. 무슨 일 있냐고. 지금은 돌직구를 던져야 할 때인 것 같아.]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조언을 던진다.
흑태자가 딱히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그의 말에 일리는 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물어보자.
결심한 나는 한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너, 오늘 하는 행동이 평소랑 좀 달라서. 고기를 태워 먹지를 않나, 너튜브 영상 업로드를 까먹지를 않나······.”
“······그건······.”
한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거 봐.
역시 무슨 일 있는 거 맞다니까.
“······조금 걱정됐다고.”
“저같이 하찮은 것 때문에 걱정까지······.”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든다.
하찮은 것?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단어 선택이 왜 저런지 모르겠다.
한서진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제 사정 때문에 김덕성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니, 이 모든 건 저의 불찰······. 책임지고 시정하겠습니다.”
그녀가 군대처럼 딱딱한 말투로 말한다.
“시정은 무슨,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그냥 진짜 걱정되고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무슨 일인지 말이나 해봐. 명령이야.”
명령.
그 말을 들은 한서진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면서, 가슴에 손을 올린다.
“명령이라면······. 알겠습니다.”
쏴아아아.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린다.
한서진이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에 김덕성님께서, 정말로 목숨이 위험한 위기 상황에 놓였는데도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영웅이 아닌 헌터인 저는······. 소련의 영웅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던 김덕성님께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학원 배틀물 라노벨이 으레 그렇듯, 초상병기라는 이름의 슈퍼무기가 이 미친 세상에서 지닌 위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초상병기 전투 모드 전개 시에 사용자에게 부여되는 마력장은 최소 제타 랭크 이상 상급 이계종과 같은 수준.
상급 이계종의 마력장을 뚫지 못하는 헌터로서는, 초상병기 전투 모드를 전개한 영웅의 마력장도 뚫지 못한다.
따라서 대인전에서도 초상병기는 오직 초상병기로만 상대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한서진은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헌터인 그녀로서는, 영웅인 이반을 상대로 싸울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런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분했습니다······. 김덕성님께 필요 없는 존재가 될까 봐, 버려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한서진이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내린다.
감정을 거의 내비치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보여준 격렬한 감정.
한서진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그저 제 내면에 똬리를 튼 추한 열등감과 욕심, 그것뿐입니다. 김덕성님이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닙니다.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김덕성님께 염려를 끼친 것도 모자라 추태까지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내게 사과한다.
그렇게 된 거였구만.
한숨이 나온다.
“사과할 일 아냐.”
미안할 것도 없으면서 왜 미안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도움이 안 된 것도 아니야.”
내 말을 들은 한서진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런 말 하면 손발이 좀 오그라들고 그렇긴 한데, 너는 충분히 도움이 됐고 지금도 도움이 되고 있어. 한서진. 윌리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네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건······.”
한서진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너는 충분히 유능한 보좌 요원이고, 나한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니까. 절대 안 버려.”
대체 무슨 착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한서진을 버릴 일은 없다.
국뽕이 좀 부담스럽긴 한데, 그 정도는 감당할 만하다.
저렇게 유능한 보좌관을 내가 왜 내치냐고.
“김덕성님······.”
한서진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린다.
[파트너, 이럴 때는 안심하고 기운 내라고 남자답게 멋있게 한 마디 하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거야.]흑태자가 머릿속에서 조언한다.
머리를 쓰다듬으라고?
그건 좀.
에리라면 모를까, 한서진에게도 통할 지가 의문인데.
[어허, 망설이거나 의심하지 말고. 나만 믿어. 파트너.]좀 못 미덥긴 하지만, 속는 셈 치고 흑태자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한서진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기운 좀 내라고. 그 말 하고 싶었어.”
그녀의 회색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준 뒤 손을 떼어낸다..
한서진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알겠습니다. 김덕성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서진이 고개를 숙인다.
이제 기운 좀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보기 좋네.
한서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진다.
“그럼, 전 밀린 업무 처리 때문에······. 먼저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녀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사무적인 말투로 묻는다.
거기에 아까 같은 불안감은 없었다.
“그래. 그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