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92)
“도착 즉시 환영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김덕성님과 일행분들.”
한서진이 사회자처럼 안내한다.
그와 함께 우리를 태운 버스가 청와대로 입성한다.
“청와대에 도착했습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이자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기구가 밀집된 대통령부로, 오늘 김덕성님과 일행 여러분들의 환영 행사가 개최되는 장소입니다.”
한서진이 평소와는 다르게 열띤 목소리로 청와대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청와대는 일본의 수상관저 같은 곳인가 보군······. 이 정도 환대를 받을 줄은 몰랐다. 덕성. 역시 너는 대단하군.”
그녀의 설명을 들은 린이 진지한 어투로 말한다.
린의 남색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굳이 답하지 않는다.
부담스러워 미치겠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당장이라도 버스를 멈추고 싶지만, 야속하게도 버스는 청와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보, 멍청이.”
올리비아가 살며시 내 손을 잡는다.
들끓던 가슴이 조금 진정된다.
고개를 돌린다.
“뭐, 뭘 봐요?! 흥.”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한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쓸데없이 귀엽게 보이는지 모를 노릇이다.
입가에 무의식적으로 호선이 그려진다.
그래도 부담스러웠던 기분이 약간은 해소되는 기분.
“도착했습니다.”
TV 뉴스에서나 보던 푸른 기와 건물,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이걸 내가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본관 앞 계단에는 태극기를 손에 들고 있는 어린이들과, 대통령 내외 및 정부 관료들, 그리고 수많은 취재진들이 서 있다.
벌써 정신이 어지럽다.
탁.
버스가 멈춰 선다.
문이 열린다.
“김덕성님이다!”
“김덕성님!”
“예쁜 언니도 있어!”
“만나서 좋아요!”
태극기를 든 어린이들이 웃으면서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 가운데는 대통령 강명현이 있었다.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 그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내면서 나를 바라본다.
“김덕성군. 귀국을 환영합니다.”
포토라인 너머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아, 정말 부담스러워 죽겠네.
꼬옥.
올리비아가 손을 잡는다.
“······멍청이, 둔탱이 같으니.”
그녀가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얼른 힘내서 가라고요. 우주 제일 바보.”
올리비아가 내 등을 살짝 떠민다.
그녀에게 살짝 떠밀려 대통령 앞에 선다.
[파트너, 말을 더듬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조국이 파트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가볍게 한 마디 해줘.]흑태자가 머릿속에서 조언한다.
긴장이 살짝 풀리는 기분이다.
그래봤자 국뽕의 메스꺼움은 그대로지만, 어쨌건 조금은 낫다.
대통령이 내민 손을 맞잡으면서 말한다.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하하하하하하하. 저야말로 우리 김덕성 군을 다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대통령의 광대가 승천한다.
마치 아이돌을 영접한 팬 같은 미소를 짓는 초로의 중년인 남성의 모습이란.
거기에 옆에 있는 정부 관료들 역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두 배로 메스껍다.
찰칵.
찰칵찰칵.
찰칵찰칵찰칵.
대통령과 내가 손을 맞잡은 순간,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악수가 끝난 나는 대통령의 안내에 따라 그의 옆에 섰다.
“아, 이쪽은······. 프랑스의 황녀님이군요. 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통령의 말을 통역사가 전달한다.
“프랑스의 황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예요. 저야말로 다시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한국의 대통령님.”
올리비아가 우아한 포즈로 대통령과 악수한다.
어김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악수를 끝낸 올리비아가 내 오른쪽 옆에 와서 선다.
“······아까는 제법이었어요. 은하 제일 바보치고는. 흥.”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리면서 입술을 삐죽인다.
이건 칭찬이야, 아니면 매도야?
[내 동생이 너한테 최고의 칭찬을 하는군. 감사한 줄 알아. 파트너.]흑태자가 올리비아의 말을 해석해준다.
칭찬이었네.
“시노자키 린······. 양이라고 그랬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해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시노자키 일족의 시노자키 린입니다.”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통령과 악수하는 시노자키 린.
악수를 끝낸 그녀가 내 왼쪽 옆에 와서 선다.
“니시자와 에리 양.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 이외의 남자는 질색하는 에리답게 싫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살짝 악수하다가 바로 뛰쳐나오는 그녀.
악수를 끝낸 에리가 내 뒤에 선다.
“에리링. 역시 주인님 옆이 제일 좋아.”
그녀가 내 뒤에서 귓가에 속삭인다.
청와대에서 주인님 소리를 듣게 되다니.
속이 두 배로 울렁거리는 기분이다.
“호시노 카스미 양. 반갑습니다. 한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네? 네······. 고, 고마워요! 저, 저도 여, 영광이에요······. 한국의 대통령님······.”
당황하며 평소처럼 소심한 기색을 내보이는 카스미 선배를 지나.
“카미야 마코토 양. 반갑습니다.”
“네, 넵! 저, 저도 영광입니다!”
긴장한 모양이지 혀를 씹은 마코토에.
“쿠로사와 유지 군.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잘 놀다 가시길 바랍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주인공답게 전혀 당황하지 않는 유지에.
“이시하라 다이키 군.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명현 대통령님.”
금발 태닝 양아치 외모와는 다르게 예의를 잘 차리는 이시하라까지.
기나긴 악수 행사가 끝났다.
대통령이 웃으면서 양 팔을 벌리며 말한다.
“자, 그럼 우리 김덕성 군이랑 일행분들? 우리 어린이들이랑 같이 사진 찍읍시다. 김덕성 군과 일행분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 광역시도별로 추첨해서 뽑힌 친구들이에요.”
초롱초롱.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빛을 빛내는 태극기 든 어린이들.
이거 애들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냥 내가 포기해야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김치 합시다.”
대통령이 웃는다.
“김치!”
그 김치를 또 따라 하는 일행들.
찰칵!
결국 사진을 몇 번 찍은 다음에야, 나는 다음 행사 식순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다음은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 있던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한다.
이걸 안 부를 수도 없고.
군대 아침 점호 이후에 내가 다시 애국가를 부를 날이 오게 되다니.
돌겠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색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며 옆을 힐끔 바라본다.
대통령이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돌겠네.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제창이 끝났다.
“다음은 의장대 사열이 있겠습니다.”
의장대 사열?
시선을 돌려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을 자세히 본다.
육해공군 해병대 의장대는 물론, 아까 봤던 한복 입은 전통 의장대가 질서 있게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한 가운데 앞으로 레드카펫이 깔려 있다.
아니 내가 무슨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의장대 사열을 왜 해.
“갑시다. 김덕성 군.”
대통령이 웃으면서 내게 권한다.
아, 다시 속이 쓰리기 시작한다.
이걸 안 할 수도 없고.
역시 한국에 오는 게 아니었다.
염병.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허허 웃는 대통령과 함께 사열대 단상을 내려가 레드카펫을 밟는다.
“김덕성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빰빠라빰빰빰 빰빰빰~♪]레드카펫을 밟자마자 군 복무 시절, 그렇게 듣기 싫었던 장성 행진곡을 군악대가 연주한다.
전주 멜로디가 네 번 반복된 뒤, 들어본 적 없던 후렴구가 울린다.
“김덕성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충-성!”
이젠 더 욕할 기운도 없다.
하도 어이없는 일이 휘몰아치니 정신이 멍해진다.
나와 눈이 마주친 군인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다.
개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군인들도 있다.
아니, 이런 행사 끌려오는 거 다들 싫어하지 않나?
군대 특성상 행사 리허설도 토 나올 정도로 빡세게 굴렸을 텐데?
내가 군인일 때는 사단장 행사한다는 소리만 들어도 기겁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아무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니?
이거야말로 우주적 공포가 아닐까?
대통령과 함께 대광장을 한바퀴 순회하며 의장대 사열을 끝내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그저 여름방학 합숙을 하러 왔을 뿐인데, 왜 청와대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냐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이제 좀 쉬고 싶다.
“자, 김덕성 군. 이제 영빈관에서 환영 만찬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많은 손님분이 김덕성 군을 기다리고 있으니, 참여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현실은 냉혹했다.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말하는 대통령의 제안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씨발.
이게 끝이 아니라고?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
환영식이 끝난 나는 결국 대통령과 함께 국빈 만찬회가 열리는 청와대 영빈관으로 끌려갔다.
사실 오늘 밥이라고는 아까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으로 비빔밥밖에 안 먹어서 배가 고프긴 하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밥을 먹는다?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청와대 영빈관.
푹신한 고급 카펫 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하얀 식탁보가 씌워진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문이 열리고 내가 들어오자, 영빈관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우리 김덕성 군을 만나기 위해서 정재계, 문화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전부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대통령이 친절하게 웃으면서 설명한다.
초롱초롱.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개중에는 훌쩍이는 사람도 있고, 혼절 직전인 사람도 있다.
[오우, 우리 파트너. 완전 인기 폭발인데?]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따위 인기는 별로 갖고 싶지 않았다.
벌써 위장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자, 앉으시죠.”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는다.
고맙게도 대통령이랑은 다른 테이블.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 8명에 한서진까지 포함해서 아홉 명만 앉은 테이블이다.
“오늘의 메뉴는 우리나라의 맛과 멋을 살린 한식 코스요리입니다.”
테이블에 앉은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식! 에리링, 한식 먹고 싶었어!”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에리.
그녀가 주황색 눈동자를 반짝인다.
“덕성, 너의 모국의 음식이라······. 한 번쯤 맛보고 싶었다.”
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반응한다.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문다.
“후배 군, 나 엄청 기대하고 있어.”
“하와와와와······.”
카스미 선배가 웃고, 마코토가 얼굴을 붉힌다.
라노벨 히로인들이 국뽕 만찬회장에 초대받아 참여한 광경이라니.
여기가 라노벨 세상인지 국뽕 월드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내 옆에 앉은 올리비아와 눈이 마주친다.
“······흥.”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
올리비아라도 한결같은 태도라서 좀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파르르 떨고 있는 내 왼손에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진다.
올리비아.
그녀가 테이블 밑에서 내 손을 잡아준 거다.
“꼴사납게 긴장하지 말라고요. 쓸데없이 멍청한 실수하기 전에. 아시겠나요?”
올리비아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며 말한다.
울렁거리는 속이 그나마 조금 가라앉는 기분.
“그래.”
“······따, 딱히 당신이 좋아서 조언해준 건 아니니까요! 다, 당신이 실수하면 전속 시녀인 저의 위신도 같이 떨어지니까, 그래서 이야기한 것뿐이라고요! 착각하지 마세요! 흥!”
올리비아가 내 귓가에 빠르게 츤데레 멘트를 속삭인 뒤 고개를 돌린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대통령님의 건배사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붉고 푸른 태극 컬러로 꾸며진 무대 위로 대통령이 올라간다.
그의 손에 샴페인 잔이 들려 있다.
“대한민국의 자랑, 민족과 겨레의 성웅인 김덕성 군이 오늘 학우분들과 함께 귀국했습니다. 다들 박수로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성웅이라니.
저 호칭은 들을 때마다 내가 다 부끄러운 걸 넘어서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차라리 검은 귀축이나 검은 하렘왕이라고 불리는 편이 낫다.
죄송합니다. 이순신 장군님.
아, 일본 가고 싶다.
짝짝짝짝짝.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영빈관을 가득 메운다.
“김덕성 군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영웅 전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머나먼 해외에서 수많은 활약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나아가 적성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수호해왔습니다. 그는 이미 민족의 성웅이며, 전 세계가 사랑하는 글로벌 K-영웅입니다. 크흑······.”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니 왜 또 울어?
황당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주변을 둘러본 나는 경악했다.
만찬회장은 이미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