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05)
라노벨 클리셰 같은 흑태자의 경고를 들으면서 나는 듀랜달의 손잡이를 잡았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기어이 무라마사와 일대일 맞다이를 뜨게 되다니.
기분이 참 엿 같다.
날먹하기 어려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같으니라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웅
무라마사가 위험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이제 보니 알겠어. 유지의 여동생 아가씨는 세뇌 같은 걸 당한 게 아니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저 아가씨의 몸을 움직이는 건 아가씨 본인이 아니야. 정령이지. 같은 정령으로서 느껴지는데. 일종의 빙의 현상이야.]원작에서도 쿠사나기 그 빌어먹을 년이 이렇게 말하며 흥분한 유지를 설득하려고 했었지.
물론 유지는 라노벨 주인공답게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놈이라 실패했지만 말이다.
[아가씨를 원래대로 돌리려면······. 저 여자를 아가씨의 몸에서 떼어내야 해. 그러려면 내가 실체화를 해야 하는데······.]아직 나는 실체화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대안이 있다.
‘이사장님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한국에서 일본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3시간 안팎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때까지만 무라마사를 붙잡아두면 된다.
그 이후부터는 세이라와 그녀의 정령인 아마테라스가 알아서 할 것이다.
[할 수 있겠어?]흑태자가 묻는다.
‘해야지.’
안 하면 내가 죽는다.
그러니 죽기 싫어서라도 할 수밖에 없다.
[좋아. 파트너. 그런 마음가짐이야! 이제 좀 남자, 아니 영웅답구만!]흑태자가 쾌활하게 웃는다.
아무 말 없이 듀랜달을 쥔다.
“검성의 아들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게 됐어.”
무라마사가 옅게 웃는다.
라노벨 빌런답게 전투에 앞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는 모양.
하여간, 왜 저렇게 다들 싸우기 전에 주절주절 늘어놓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야 좋다.
듀랜달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우우우웅!
검은 마력이 칼날을 뒤덮는다.
무라마사는 초월무장의 보유자이자, 정령이 빙의한 상태인 만큼 상시 진명해방 상태.
힘을 아끼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파츠츠츠츠츳!
듀랜달의 칼날에서 스파크가 튄다.
검신이 빛 한점 없는, 무광의 검정색으로 물든다.
그 위로 흑염이 타오른다.
두근, 두근.
가슴의 마력로와 블랙 스톤이 공명하며 마력을 펌프처럼 뽑아낸다.
마력회로에 뜨거운 마력이 타오르듯 순환한다.
화르르륵.
전신 갑주 위로 검은 마력파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뭐, 너도 마스터께서 지정한 중요 목표 중 하나······.”
귓가에 아직도 계속되는 무라마사의 대사가 들린다.
너는 지껄여라.
나는 찌를 테니까.
[파트너, 지금이야!]흑태자가 신호한다.
파츠츠츠츠츳!
검은 마력이 듀랜달을 감싼다.
[금강불괴]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어빌리티를 사용한다.
[동기화]두 번째 어빌리티를 사용한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흑태자의 재능이 덧씌워진다.
지이이잉.
머리가 울린다.
두통을 무시하며 듀랜달을 휘두른다.
화르르륵.
흑염이 허공에 흔적을 남기며 검은 실선을 그린다.
[흑광검식] [오의] [암흑 가르기]휘이이이익.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암흑 가르기가 무라마사에게 직격한다.
콰앙!
폭발이 일어나며 부서진 지하실이 흔들린다.
“후엣?! 뭐야? 내가 알던 것보다 더 강하잖아······!!”
무라마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먹힐 줄이야.
막힐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누가 라노벨 빌런 아니랄까 봐, 당황하는 감탄사 봐라.
심지어 표정이랑 목소리까지 아까의 진지함은 어디다 갖다 버리고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당황한 귀여운 미소녀 표정이다.
돌겠네, 진짜.
“좋아. 이제 장난은 그만두겠다. 진심으로 너를 상대······.”
무라마사가 열받은 표정으로 요도를 뽑아든다.
요도 무라마사.
일본도형 초월무장이 요도라는 이명에 걸맞게 요사한 진홍빛 마력을 뿜어낸다.
[파트너, 후속 공격을!]그 모습을 본 흑태자가 내게 다시 코치한다.
나도 동감이다.
굳이 상대가 주절주절 말하는 헛소리를 다 들어줄 필요는 없다.
듀랜달을 잡는다.
화르르륵.
검은 검신에 타오르는 흑염이 보인다.
마력회로에 도는 마력이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흑광검식] [제1식] [흑광 베기]휘익.
허공에 검은 실선이 그려지며 그대로 무라마사에게 날아든다.
깡!
무라마사가 진홍색 마력이 넘실거리는 요도로 내 공격을 막아낸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큭······. 이 힘은 대체······.”
아까부터 내 공격에 고전하는 모습.
뭐지? 무라마사가 원래 이렇게 쉬운 상대였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 그때.
[파트너, 계속 몰아붙여!]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소리친다.
그래, 지금은 그런 고민조차 사치다.
계속해서 몰아붙여야 한다.
듀랜달을 계속해서 휘두른다.
깡! 깡! 깡! 깡!
파츠츠츠츠츳!!
마검 듀랜달과 요도 무라마사, 검은색과 진홍색 마력이 서로 부딪치며 충격파를 퍼뜨린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폭음이 반파된 지하실을 휩쓴다.
마력 충격파가 튀면서 콘크리트가 조각나고 철근이 휘어진다.
콰-과-과-광!
폭음과 연기가 치솟는다.
“후엣!? 히익?! 뭐, 뭐야! 그만해! 멈춰! 그만하라구!! 나쁜 놈아!!”
무라마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솔직히 예전처럼 다치는 것도 각오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대가 너무 수월하다.
무라마사는 지금 내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무라마사가 이렇게 약했나?’
일전에 싸운 상대가 EX랭크라서 일어나는 착시 현상인가?
[상대가 약한 게 아니야.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파트너가 강해진 거야. 지금까지 겪은 실전 경험과 훈련이 낳은 결과지. 자랑스러워해도 좋다고. 파트너.]흑태자가 웃는다.
솔직히 아리스랑 훈련할 때마다 토 나오고 하기 싫었는데도 안 빼먹고 꼬박꼬박 한 보람이 있다.
승기를 잡았으니 이대로 계속 몰아붙여야 한다.
듀랜달을 휘두른다.
깡!
요도와 마검이 다시 부딪힌다.
콰광!
폭음과 함께 마력 스파크가 튄다.
진동과 함께 바람이 소용돌이친다.
무라마사의 적안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문다.
*
무라마사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가 경계한 상대는 쿠로사와 유지였지 김덕성이 아니었다.
쿠로사와 유지는 검성의 아들.
끝모를 정도로 불합리한 재능과 무색의 마력을 보유한 그를 일격에 죽이지 못한다면, 반드시 더 강해질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김덕성은 아니었다.
그의 적합도는 C랭크에 불과하다.
듀랜달의 선택을 받고, 진명해방을 불완전하게나마 성공했지만 그뿐.
정령 실체화조차 못하는 반푼이인 것이다.
그렇기에 무라마사는 유지가 아닌 김덕성이 나타났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 반푼이한테 어떻게 내가······!’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라마사는 본인의 오판을 인정해야만 했다.
김덕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진짜 흑태자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완벽에 가까운 검술부터 끝없이 솟아오르는 마력까지.
깡!지금은 간신히 그의 공격을 받아넘기고 있지만, 무라마사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패배하고 말리라는 사실을.
실제로 그녀의 몸에는 생채기가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다.
그녀가 맡은 임무는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임무.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
따라서 패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지금의 이 불리한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젠장······.’
무라마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만큼은 쓰기 싫었는데······.’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다른 빌런들이 다 그렇듯, 무라마사 역시 숨겨둔 비장의 한 수가 존재했다.
문제라면 그 비장의 한 수를 사용하는 순간 육신이 잠시 무방비가 된다는 것인데.
‘어차피 이대로면 무조건 진다.’
무라마사는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상대는 실체화조차 제대로 못 한 애송이.
육체라면 몰라도 정신 방어력은 낮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궁극 스킬, ‘마인드 브레이크’을 시도할 가치가 있다.
마인드 브레이크는 육신이 아닌 정신을 직접 공격하는 스킬.
메사이어가 직접 그녀에게 하사한 비장의 스킬이기도 하다.
마인드 브레이크를 통해 일시적으로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려 혼란에 빠뜨린다면, 육신이 아무리 대단해봤자 소용이 없을 터.
‘그렇다면 나의 승리다.’
모든 계산을 끝낸 무라마사의 눈이 불길한 빨간색으로 반짝인다.
우웅!
그녀의 본체인 요도 무라마사가 마력을 받아들인다.
마인드 브레이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본체인 요도 무라마사로 상대를 직접 타격해야 한다.
무라마사가 이를 악문다.
“쿠로사와 신검류! 제1식!”
무라마사가 쿠로사와 하루의 육신에 새겨진 스킬을 사용한다.
우우우우웅!
요도 무라마사가 떨린다.
“선단일점(先端一點)!”
번쩍!
섬광이 터진다.
일점에 모든 힘을 집중하는 쿠로사와 신검류의 찌르기가 요사스러운 진홍색 마력과 함께 쏘아진다.
꿈틀.
김덕성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그가 듀랜달을 급히 방어 태세로 전환했지만, 요도 무라마사는 이미 그 이전에 김덕성의 옆구리에 도달한 상태.
“이런······.”
김덕성이 낮은 목소리로 흘리던 그때.
요도 무라마사가 그의 옆구리에 닿는다.
무라마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넌 이제 끝이다. 김덕성. 마인드 브레이크!”
무라마사가 스킬명을 외친 순간.
번쩍!
김덕성의 옆구리에 닿은 요도에서 진홍색 섬광이 터졌다.
*
“넌 이제 끝이다. 김덕성. 마인드 브레이크!”
난 또 뭘 하나 했더니.
기껏 한다는 게 마인드 브레이크였어?
흑태자에게 정신 방어 능력이 있는데 저걸 걸어온다고?
어이가 없다.
번쩍!
진홍색 섬광이 시야를 메운다.
[파트너, 파트너의 정신 방벽에 적의 공격이······. 잠깐.]흑태자가 말을 하다 멈춘다.
[이거 잘하면 이용할 수 있겠는데? 파트너. 조금만 기다려. 이 흑태자 님이 힘을 쓰도록 하지.]흑태자가 희희낙락하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왠지 불안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두근!
심장이 두근거린다.
두근, 두근, 두근.
마력로와 블랙 스톤이 공명한다.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가슴에서 막대한 마력이 솟아올라 듀랜달로 향한다.
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듀랜달이 마력을 게걸스럽게 빨아먹는다.
[동기화]제멋대로 어빌리티가 발현된다.
[동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