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16)
진짜 본인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좀 심각한데.
벌써 머리가 아프다.
그때.
“······이거 청춘이로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레이스 부채를 펼친 이사장이 있었다.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쓴 세이라가 입은 수영복은 다행히 스쿨미즈는 아니었다.
세이라가 입은 수영복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고스로리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검은 레이스 원피스 수영복.
요란하기는 하지만 스쿨미즈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누님, 이번에는 정상적인 수영복이라 다행입니다······.]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번만큼은 흑태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불순 이성 교제는 금지라고 말했을 텐데요. 쿠로사와 하루 양.”
저 멀리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츠츠츠츳!
은빛 정진기가 감도는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사이온지 아리스가 저벅저벅 걸어온다.
“당장 떨어지세요!”
아리스가 소리치면서 하루를 내 품에서 떼어놓는다.
“헤에, 역시 아-쨩 언니. 냉정해. 초 재미없는 여자야. 아-쨩 언니. 귀염성 없이 딱딱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여자는 남자들한테 인기 없다고. 니시시시.”
내 품에서 떨어진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아리스에게 말한다.
“······이야기의 의도를 모르겠군요. 제 인기와 지금 당신의 불순 이성 교제가 무슨 관계입니까?”
“니시시시. 정말 몰라? 모르면 하루가······.”
하루가 아리스에게 뭔가 말하려던 순간.
“시끄러워요!!”
저 멀리서 뾰족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와 함께 계곡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지금까지 나대던 하루까지 침묵한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여름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백금빛 머리카락.
공주님답게 레이스 달린 하얀 수영복을 입고, 양손에는 커다란 비닐봉투를 든 미소녀.
올리비아였다.
“다들 조용히하세요! 특히 당신! 쿠로사와 하루! 자꾸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켰다가는 전속 시녀의 권리로서! 당장 쫓아낼 테니까요! 쫓겨나기 싫으면 처신 잘 하세요. 아시겠나요?”
“어······. 으응······. 초 대단해, 올리브 언니. 이런 게 정실의 위엄이라는 걸까? 막이래. 니시시시.”
올리비아의 푸른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루.
그 모습을 본 올리비아가 자갈밭에 쿵하고 비닐봉투 두 개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또 쓸데없는 소리를! 됐어요. 좋아요. 이제 좀 조용해졌네요.”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
[캬하하하. 역시 내 여동생이야. 기선제압 하나는 확실히 하지!]흑태자 칭찬에 오늘만큼은 동감이다.
역시 올리비아가 제일 선녀다.
탁탁.
손을 터는 올리비아.
“야, 올리비아. 저거 뭐냐?”
그녀를 보면서 나는 손가락으로 올리비아가 가져온 검정 비닐 봉투를 가리켰다.
대체 뭘 가져왔길래 저렇게 비닐 봉투가 빵빵한 건지.
“아, 이거 말인가요? 백숙 재료예요.”
올리비아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잠깐, 뭐?
“백숙?”
대체 백숙이 왜 여기서 나와?
“한국인들은 계곡에서 백숙을 먹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뭐, 따, 딱히 다, 당신을 생각해서 준비한 건 아니니까요!! 그냥 한국에 왔으면 한국 문화를 따르는 게 당연한 거라서 준비한 거니까요! 쓸데없이 착각하지 마세요!! 아시겠나요?!”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올리비아.
그녀의 말에 간신히 붙잡은 어이가 다시 하늘로 날아갔다.
얘는 대체 어디서 한국 문화를 배워오는 거야?
어디까지 미친 거지?
기껏 강원도 물 좋고 공기 좋고 산 좋은 고급 리조트까지 헬기씩이나 타고 와서 하는 짓이 진짜 계곡처럼 꾸민 인공 계곡 평상 위에서 백숙 끓여 먹기라니.
그 돈을 들여서 하는 일이 서민 피서 체험이라니 내 인지를 벗어난 창의적인 돈 낭비에 현기증이 치밀 지경이다.
“뭐예요?! 그 떨떠름한 표정은? 감히 이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인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손수 만든 특제 연산 오계 한방 능이 백숙이 먹기 싫다는 의사 표현은 아니겠죠?!”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리며 얼굴을 붉힌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떨린다.
아니 그냥 백숙도 아니고 연산군이 즐겨 먹었다는 토종 오계로 끓인 한방 능이 백숙이었냐고.
대체 누가 올리비아에게 저런 레시피 알려준 거야?
[파트너. 설마 내 동생의 수제 요리를 거절할 생각은 아니겠지?]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압박을 걸어온다.
“아니, 뭐. 이왕 준비해왔으니까 먹어야지. 근데 원래 계곡에서 백숙 먹는 건 한국 문화가 아니야.”
“네?!”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올리비아.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백숙 그거 그냥 한국 계곡 주변 장사치들이 불법 점유해서 장사하는 평상 식당에서 파는 바가지 창렬 메뉴라서 유명해진 거야. 대체 누가 그런 잘못된 상식을 가르쳐줬는지 모르겠······.”
“시끄러워요!!”
내 친절한 설명을 끊는 올리비아.
그녀의 귓불이 새빨개진다.
아니 왜 가르쳐 줘도 난리야.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김덕성!! 정말이지 열심히 준비해온 사람 앞에서 눈치 없게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분위기 파악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우주 제일 바보 같으니!!”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친다.
“아까는 나 생각해서 준비해온 거 아니라며?”
“그, 그그그그그건······!! 그, 그그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말꼬리를 잡으니까, 다, 당신이 쪼잔하고 속 좁은 서민인 거예요! 아시겠어요? 흥! 어쩔 수 없네요. 역시 전속 시녀인 제가 당신을 제대로 돌봐야겠어요! 프랑스의 황녀다운 제 넓은 배포에 어서 감동하세요! 빨리요!”
척.
당황하던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다.
저 츤데레 버릇은 아직 못 고쳤네.
계속 보니까 조금 귀엽기는 한데, 매번 저러면 안 피곤한지 모르겠다.
[파트너. 감동 안 하고 뭐 해?]머릿속에 어김없이 날아드는 흑태자의 목소리.
어쩔 수 없다.
감동적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아, 그래. 감동적이네.”
“흥. 그런 당연한 일에 감동적이라고 말해봤자 아무 감흥 없다고요!”
올리비아가 붉어진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입술이 씰룩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
츤데레다운 대답이라고 내가 생각하던 그때.
“김덕성님! 저희 왔어요!”
지금까지 일본어만 난무하던 계곡에 익숙한 한국어가 들린다.
시선을 돌린다.
거기에는 유세라가 있었다.
하얀 비키니를 입고, 베이지색 머리를 흩날리는 유세라는 아이돌답게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그런 유세라 뒤에는 한서진이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차분한 무표정을 유지하는 한서진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고 유세라의 등 뒤에 숨은 모습.
그녀와 만난 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서진 씨? 왜 그래?”
“무슨 일 있으신가요?”
한서진의 태도에 이상을 느낀 에리와 카스미 선배가 묻는다.
“우리 서진이, 부끄러워하기는. 앞으로 나와 봐.”
“······부끄러워하는 건 아닌데.”
유세라의 말에 한서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파트너, 저 아가씨 왜 저래. 어디 아픈 건 아니지?]흑태자까지 놀랄 정도.
호들갑까지는 아니지만, 평소랑 너무 다르니까 궁금하기는 하다.
대체 왜 저러는지.
“안 나오고 뭐 해.”
덥석.
유세라가 한서진의 손목을 잡아 이끈다.
그제야 나는 마침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어색하게 떨리는 목소리.
여름 태양을 받아 빛나는 회색 단발머리 아래 붉게 물든 얼굴.
그 밑으로 탄탄한 11자 복근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정 비키니를 입은 한서진의 모습이 보인다.
“김덕성님,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옷이라······.”
한서진이 더듬거리면서 내게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회색 단발머리가 흔들린다.
한서진의 귓불이 붉어진다.
아무래도 정황을 살펴보니 비키니 차림이 부끄러웠던 모양.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던 포커 페이스를 무너뜨린 게 비키니라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김덕성님. 어때요? 서진이 수영복 잘 어울리죠? 매력적이죠? 그렇죠?”
덥석.
내 옆에 달라붙은 유세라가 특유의 친화력 넘치는 인싸 미소로 생글생글 웃는다.
“유세라, 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저 같은 여자한테 이런······. 예쁜 옷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에 감정이 묻어나는 한서진.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유세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인다.
“넌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게 문제야. 서진아. 남자라면 누구나 반할 만한 몸매를 그렇게 가리는 건 범죄라구!”
유세라가 찡긋 윙크한다.
“하지만······. 제 몸은 흉하니까······.”
얼굴이 붉어진 한서진.
나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고개를 다시 돌린다.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좀 신선하다.
[파트너, 여기서는 어울린다고 말해줘야지. 남자라면 말이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굳이 그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잘 어울리기는 하다.
한서진이 린처럼 압도적인 글래머는 아니지만, 군살 없이 단련된 11자 복근에 가슴도 적당히 있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내뱉는 건 조금 그렇기는 한데.
“어때요? 빨리 말해줘요. 김덕성님.”
유세라가 자꾸 재촉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니 어쩔 수 없다.
어떤 식으로건 답변을 할 수밖에.
“잘 어울리네.”
내 말을 들은 한서진이 움찔한다.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그······.”
한서진이 말을 더듬는다.
“······감사합니다. 김덕성님.”
그녀가 허리를 숙인다.
“좋아요. 그럼 한서진 씨까지 도착했으니, 여자들은 전부 이리로 모이세요! 지금부터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휘 아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백숙을 만들 테니까요!”
저 멀리서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저는 이만 식사 준비를 하러 가겠습니다. 김덕성님. 즐거운 시간 되시길.”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한서진이 내게 목례한다.
이제야 평소와 비슷한 말투로 돌아온 한서진.
나는 올리비아 근처에 왁자지껄 모이는 여자들을 뒤로 하면서 계곡으로 향했다.
어쨌건 계곡에 오기는 했으니 물놀이라도 할 차례다.
*
풍덩.
계곡물에 몸을 담근다.
한여름인데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
바다처럼 짠맛이나 찝찝한 느낌도 없고 좋다.
역시 피서는 계곡이지.
문득 원래 세상에서도 계곡으로 피서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가족이랑 이렇게 놀았었는데.
괜히 또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오, 형님! 들어오셨음까!”
저 멀리서 이시하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에는 유지가 첨벙첨벙 헤엄치고 있다.
둘이서 잘 노는 걸 보니 안심이다.
앞으로 나에게 접근하지 말고 계속 둘이서만 놀아줬으면 좋겠다.
계곡에 몸을 담근다.
원래 세상에서는 계곡에서 놀 때 재미있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지루한지 모르겠다.
뭔가 허전한 느낌.
여름 학교 때가 지금보다는 재밌었던 것 같은데.
그때랑 지금이랑 무슨 차이지?
[이게 다 네 곁에 레이디들이 없어서 그래,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하긴, 지금 히로인 전원이 백숙 만드는 데 투입되기는 했다.
계곡 근처 캠핑장에서 열심히 백숙 만드는 히로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야, 젖소! 재료 손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랬지?”
“큿······.”
임간학교 때의 요리 대결과는 다르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손발을 잘 맞춰서 백숙을 만드는 모습이 꽤 보기 좋다.
보기 좋다? 흐뭇하다?
내가 미쳤지.
한순간 헛생각이 든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계곡 찬물을 머리에 끼얹은 그때.
“후후, 꼬마야. 물놀이는 잘 즐기고 있느냐?”
근처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분홍색 레이스 튜브에 올라탄 고스로리 풍 레이스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백발적안의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가 있었다.
“이사장님이 여긴 웬일입니까?”
“이사장으로서 생도들의 물놀이 안전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왔느니라.”
내 말을 들은 세이라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한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요염하게 휘어진다.
이제는 빠질 수 없는 치명적인 척하는 미소.
15세 소녀 외관으로 저래봤자 주책인 걸 아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물놀이 안전 관리 감독이라니.
그거 누가 봐도.
“그냥 땡땡이네요.”
요리하기 싫어서 그냥 슬쩍 빠진 거 아닌가.
생도들이 감히 이사장의 땡땡이에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권력 남용이네, 남용.’
[누님······. 어쩌다가 이렇게까지······.]내 말에 탄식을 터뜨리는 흑태자.
세이라를 만날 때마다 저러는 걸 보니 새삼스럽게 흑태자의 멘탈이 걱정된다.
칼 속에 갇혀 동료가 어려진 몸으로 주책을 떠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잠깐 역지사지했을 뿐인데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이런 기분이었구만.
“크흠······.”
내 말에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하는 세이라.
까딱까딱.
튜브 위에 걸쳐진 발이 꼼지락댄다.
촤르륵.
그녀가 어디선가 레이스 부채를 꺼내 펼친다.
“아, 아무튼! 지루해하는 꼬마를 위해서 이 몸이 특별히 소소한 여흥을 준비했느니라!”
세이라가 붉어진 얼굴을 부채로 가리면서 황급히 화제를 돌린다.
속이 뻔히 보이는 한 수지만,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무슨 여흥인데요?”
세이라가 준비한 이벤트가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바로 수박 깨기이니라!”
엣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