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24)
원작에서도 주인공과 특훈 이후에 아리스가 주인공을 마사지해주는 장면이 존재하니까.
그런데 벗으라니?
원작에서도 그런 설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마사지를 위해서입니다.”
아리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원작에서도 마사지 장면에서 벗으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벗고 하는 마사지가 어디 있습니까? 사이온지 선배.”
갑자기 왜 저러지.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등 뒤에 서 있어서 표정이 어떤지 보이지도 않는다.
짝.
아리스가 등짝을 때린다.
아파라.
“······대체 무슨 파렴치한 생각을 한 겁니까? 김덕성군. 맨살 접촉이 마력 전도율이 높은 건 상식입니다. 저는 기특한 후배인 당신을 위해 마력 마사지를 준비했는데 당신이라는 사람은 파렴치하게······.”
아리스의 목소리가 떨린다.
맨살 접촉이 마력 전도율이 높은 건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상식이 맞긴 하다.
여기는 빌어먹을 라이트 노벨 세상이니까.
미친 세상 같으니.
주인공과 히로인이 맨살로 서로 맞대며 주물럭대는 서비스신을 위해 도입된 억지 설정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저는 진명해방의 단계에 도달한 지금의 당신이라면 제 마력 주입 마사지를 100% 받아들여 마력회로의 개선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했는데, 실망입니다. 김덕성군.”
꾹꾹.
차가운 말과는 반대로 계속해서 내 등을 누르는 아리스.
그녀의 말에는 틀린 구석 같은 건 없다.
아리스 쪽에서 먼저 제안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력 주입 마사지는 원작에서도 엄연히 등장하는 공식 설정이었다.
염병할 라노벨 세상 같으니.
“아닙니다. 그냥 하시죠. 마사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상의를 벗었다.
과정의 민망함은 차치하더라도, 아리스 말대로 마력 주입 마사지가 마력 회로 강화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원작의 흐름에서 한참을 벗어난 지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해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양방향 게이트 같은 것도 내가 살아야 의미가 있다.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아니 양방향 게이트를 열기도 전에 내가 메사이어에게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
여름 학교, 방학 합숙 이외에 상의를 벗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올리비아에게 스킬 전수 받을 때도 상의를 벗기는 했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왜 이렇게 자꾸 얼굴이 뜨거워지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내가 수치를 감수하고 더 강력한 힘을 위해 상의를 애써 탈의한 그때.
“······왜 상의만 벗는 겁니까? 아래쪽도 탈의하세요.”
아리스의 청천벽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아래쪽도 벗으라니?
지금 나더러 알몸이 되어라는 말인가?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당황스럽다.
옛날 노루표 색협지처럼 음양합일 핑계로 강해지는 설정도 아닌데 대체 무슨······.
짝.
아리스가 다시 등짝을 때린다.
“대체 무슨 파렴치한 생각을 하는 겁니까? 속옷은 남기고 하의만 벗으라는 뜻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내가 꾸물거리고 있던 그때.
“부끄러운 겁니까? 그럼 좋습니다. 당신의 수치를 덜어주기 위해서 저도 함께 탈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륵. 스르륵.
등 뒤에서 옷가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벗겠다니.
머리가 새하얘진다.
아리스가 원작에서 이런 캐릭터였던가?
머리가 굳어서 원작 내용도 잘 안 떠오른다.
툭.
옆에 옷가지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대체 어디까지 벗은 거야.
호기심 때문에 고개를 돌린 그때.
“어딜 보는 겁니까? 김덕성군. 파렴치합니다.”
아리스의 손길이 나를 다시 앞쪽으로 밀어냈다.
덕분에 나는 그녀가 어떤 형상인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스르륵.
그녀가 말없이 내 바지를 벗긴다.
“······서로 탈의했으니 이제 부끄러울 일은 없지요? 마사지를 시작하겠습니다.”
물컹.
부드러운 감촉이 등 뒤에 닿는다.
풍선처럼 물컹한 촉감.
이거 설마?
아니겠지?
“가만히 있으세요. 김덕성군.”
그녀가 양팔로 나를 감싼다.
우우우웅.
그와 함께 따뜻한 마력이 몸 전체로 펴진다.
아리스의 마력이다.
아늑하다.
꾸욱, 꾸욱.
꾸준한 지압과 뒤따르는 마력이 내게 쾌감을 준다.
내가 야매로 배웠던 마사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사지.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에 눈이 스르륵 감긴다.
*
연습실.
팬티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엎드린 김덕성의 등 위에 마찬가지로 속옷 차림의 은발 미소녀가 올라타 있었다.
아리스였다.
검은 속옷에 감싸진 그녀의 가슴이 흔들린다.
‘읏······.’
아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아리스의 시야에 김덕성의 등이 보인다.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가득한, 누가 봐도 잘 단련된 것 같은 몸.
그야말로 이상적이고 매력적인, 여자를 유혹하는 페로몬을 내뿜는 남자의 몸이었다.
‘이, 이런 몸은 반칙이데이······.’
아리스의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딱딱하고 단단한 근육의 감촉이 손바닥에서 느껴진다.
이건 반칙이다.
내가 파렴치한 게 아니다.
이런 몸을 보면 어떤 여자라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안기고 싶을 수밖에 없다.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파렴치한 남자군요······.’
아리스 본인도 초인적인 자제력이 없었다면,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을 것이다.
아리스가 얼굴을 붉히면서 은빛 마력을 반짝이는 몸을 김덕성의 등에 문지르며 마사지했다.
맨살과 맨살이 닿는 감촉.
마력이 서로 뒤섞이는 감촉에 쾌감을 느낀 아리스가 몸을 살짝 떨었다.
기분 좋다.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리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건 그저 마시지일뿐이다.
선배를 위해서 후배가 하는 마사지.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어대면서 아리스는 계속해서 마사지를 행했다.
움찔, 움찔.
마사지하는 아리스의 몸이 계속해서 떨렸다.
그렇게 김덕성의 온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한 뒤.
아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끝났습니다.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두근, 두근.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아리스는 애써 냉정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윽!”
김덕성이 엎드린 채로 비틀거린다.
뚜둑, 뚜둑.
그의 몸에서 뼈마디 소리가 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고개를 돌린다.
“피로가 다 풀린 느낌이네요. 몸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마사지 감사합니다. 사이온지 선배.”
김덕성의 시선을 받은 아리스가 옅게 웃다가 이내 얼굴을 붉힌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아직 속옷만 입었다는 사실을.
“지금 어딜 보는 겁니까? 김덕성군! 파렴치합니다!”
아리스가 얼굴을 붉히면서 김덕성의 시선을 강제로 돌렸다.
두근, 두근.
그녀의 심박수가 수직상승한다.
아리스의 온몸이 뜨거워진다.
그녀의 머리가 새하얘진다.
그에게 속옷 입은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특훈은 다 끝났으니 어서 나가세요!”
“알겠습니다. 선배. 그럼 이만, 안녕히 계시길.”
주섬주섬.
김덕성이 옷을 걸친 뒤에 인사를 건네고는 연습실 문을 닫고 나선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리스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화악.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 무신 남사스러운······.”
당황한 아리스의 입에서 사투리가 흘러나온다.
그녀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주변을 살핀다.
다행히 연습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최고급,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슈오우 학원답게 연습실의 방음도 철저하기 때문에 그녀의 사투리가 새어나갈 염려도 없었다.
“이 무신 남사스러운 짓이고, 이 가스나가 참말로 미쳤데이······.”
얼굴이 붉어진 아리스가 손부채로 뜨거운 얼굴을 식히려고 한다.
맨살 접촉이 효율적인 건 맞지만, 굳이 옷을 전부 벗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옷을 벗어 마사지했다.
이건 전부······.
두근.
아리스의 심장이 아플 듯 뛴다.
아리스가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 그래 이건 전부 다 내가 학생회장으로서 후배를 아껴서 그런 기다.”
아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저, 절대로 남사스러운 짓이 아니데이! 절대로 내가 남자에 미쳐서 그런 게 아니데이!”
그녀가 고개를 흔들면서 스스로를 부정한다.
그래.
이건 전부 후배를 위하는 선배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다.
결코 파렴치하거나,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거기까지 합리화하자 아리스의 달아오른 머리가 가까스로 천천히 식어간다.
아리스가 눈을 감으면서 심호흡한다.
“그런 겁니다. 파렴치하게 생각하는 쪽이······. 잘못된 겁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아리스의 말투가 표준어로 돌아온다.
그래.
잘못된 게 아니다.
마사지를 결심하면서, 왠지 모르게 신경 쓰여서 부회장의 조언을 받아 난생처음으로 면적이 적고 노출도와 방어력이 높은 어른의 속옷을 걸치기는 했지만.
결코 그에게 보여주려고 입은 건 아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선배로서 후배를 위해 지속적인 마사지 행위를······.”
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그래, 그런 거다.
전부 후배를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아리스는 뒷말을 삼키면서, 붉어진 얼굴을 양 손으로 감쌌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의 체온이 그녀의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
같은 시각.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실.
썰렁할 정도로 넓은 공간, 학원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통유리를 배경으로 백발 적안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차를 음미하고 있다.
“음. 차 맛이 좋군. 양갱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탁자 위에는 차밖에 없었다.
사둔 양갱이 전부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이라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던 그때.
쾅.
문이 열린다.
“이사장님은 부하가 저밖에 없습니꺼? 왜 맨날 지한테만 심부름시키는 건데예?”
이사장의 비서.
마코토의 고모이자 카미야 일문의 전 문주.
카미야 리츠코가 민트색 머리를 휘날리면서 탁하고 토라야에서 사 온 양갱 세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오, 리츠코. 때마침 잘 와줬구나. 역시 양갱은 토라야 양갱이지.”
리츠코의 항의를 무시하면서 세이라가 양갱 세트를 뜯어 한 입 베어문다.
양갱의 달콤한 맛이 세이라의 혀를 자극한다.
“근데 이사장님.”
“왜 부르는 것이냐?”
“그, 이번에 오는 전학생 말인데예. 이사장님이 당분간 돌봐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꺼?”
“하루 말이더냐? 그래. 당분간 이 몸이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했지. 그런데 리츠코 네가 하루는 왜?”
세이라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녀의 말에 리츠코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게, 마코토랑 같은 반이라캐서 신경 쓰여갖고······.”
마코토를 한때 가혹하게 대했던 리츠코지만, 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마코토를 암살자로 키운 것 역시 뒷세계에서의 생존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그녀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세이라의 비서가 된 지금도 마코토에 대해서는 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리츠코였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런 거라면 좋다. 하루는 이 몸의 친우인 검성의 딸이기도 하니, 이 몸이 직접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옆에서 볼 수 있도록.”
세이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차를 들이킨다.
다른 소녀들이라면 몰라도, 하루는 친구이자 사랑했던 남자인 검성의 딸.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충분히 보여줄 자신이 있다.
세이라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덜컥.
이사장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문 너머, 검정 빨강 투톤 사이드 테일이 흔들렸다.
쿠로사와 하루였다.
하루의 모습을 확인한 세이라가 흠흠하며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녀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왔느냐? 하루. 오늘······.”
“세라땅!”
하지만 세이라의 근엄함은 하루의 말 한마디에 산산이 부서졌다.
세라땅이라니?
그걸 대체 어떻게 알고.
세이라의 표정이 굳는다.
툭.
세이라의 손에 든 양갱이 책상으로 떨어진다.
세이라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하루가 웃으면서 소리친다.
“세라땅! 귀여워. 니시시시.”
최연장자 히로인과 최연소자 히로인의 첫 대면에서 최연소자가 판정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세라땅의 챠밍 포인트
이사장실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