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25)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탁하고 이사장실 문이 닫힌다.
“니시시시.”
하루가 웃는다.
그녀의 사이드테일이 흔들린다.
하루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진다.
“귀, 귀엽다니 그게 무슨······.”
세이라가 당황한다.
그날의 사건 때문에 어려진 이후 내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세이라가 아닌 세라땅으로 노는 취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에 알려진 적 없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취미.
별로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김덕성과 그 일행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쿠로사와 하루가 알고 있을 만한 일은 아니다.
세이라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느냐? 아니 이게 아니지, 한참 연장자인 이 몸한테 어떻게 그렇게 버릇없는 말을······!”
다른 소녀들이라면 몰라도 세이라는 친구이자 동료이며 사랑했던 남자의 딸.
절대로 얕보이고 싶지 않다.
세이라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호통친다.
움찔.
리츠코의 몸이 떨린다.
일반 생도였다면 이사장의 권위 앞에 위축되었을 상황.
하지만 하루는 아니었다.
“어디서 들었냐니? 초☆카와이☆슈퍼☆갸루☆여동생 하루는 뭐든 다 알고 있지롱. 그러니까 세라땅이 세라땅인 것도 하루는 알고 있어. 니시시시.”
짤랑짤랑.
하루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가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니시시. 그나저나 세라땅. 세라땅은 귀엽다는 칭찬 싫어? 하루는 그냥 귀엽다고 칭찬한 것뿐인데. 세라땅, 하루만큼은 아니지만, 초 귀여운 미소녀잖아? 막이래. 니시시시.”
하루가 다가오면서 세이라를 꼬옥 끌어안는다.
“세라땅, 고스로리 복장 입으니까 진짜 인형 같아. 니시시. 완전 귀여워. 니시시. 껴안고 같이 자고 싶어.”
하루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세이라의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얼떨결에 미소녀의 품에 안긴 세이라가 손발을 바둥거린다.
“이, 이 몸을 껴, 껴안고 같이 자고 싶다니, 그게 무슨 망측한······.”
“세라땅이 하루 보호자라며, 그럼 잠도 같이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니시시.”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세이라를 더 꼬옥 끌어안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것보다 이거 놔라, 놓으라고 하지 않느냐! 이 몸은 네 보호자이자 학원의 이사장이니라!”
이대로 위엄을 잃을 수 없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비서인 리츠코가 보는 앞이다.
하루에게 굴욕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진짜 힘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 세이라에게는 진퇴양난이었다.
“어쩔티비, 저쩔 냉장고. 하루는 그냥 귀엽다고 칭찬한 건데 왜 이렇게 예민해? 그러면 노잼이야. 세라땅. 니시시.”
하지만 세이라의 기대는 무참히 배신당했다.
“하루! 나는 네 아버지의 동료다! 벌써 잊었느냐? 어릴 때는 얌전한 아이이지 않았느냐!”
세이라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친다.
세이라의 머릿속에 10년도 전,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동료로서 쿠로사와 가문에 몇 번 방문했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 아직 선명하다.
아직 어린 쿠로사와 유지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붙임성 좋고 활발한 여자아이인 쿠로사와 하루에 대한 기억도 세이라의 머릿속에 선명하다.
‘어릴 때는 이렇게 건방지지 않았거늘, 대체 왜 이렇게······.’
하루가 살아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세이라였다.
하지만 이렇게 건방지게 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 맞아. 세라땅. 우리 아빠 친구였지? 흐응~☆”
세이라의 말에 하루가 말끝을 늘이면서 그녀를 살며시 놓아준다.
하루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는 희미한, 소중했던 추억 속에는 세이라도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키가 크고 가슴이 풍만했던 글래머 미녀의 모습을 한 세이라의 모습.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좋아했던 세이라의 모습을 하루는 기억했다.
과거 친언니 비슷하게 따랐던 린만큼은 아니지만, 세이라 역시 그녀에게 잘 대해줘서 딱히 싫어하는 감정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놀리고는 싶었다.
어려진 모습과 나잇값 못하는 세라땅 모드가 조금 귀엽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기 아버지를 짝사랑하던 그녀가 이제는 손주뻘인 김덕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놀리고 싶었다.
하루의 구속에서 풀려난 세이라가 숨을 고른다.
“후.”
촤르륵.
그녀가 품에서 레이스 부채를 꺼내 펼쳐서 표정을 가린다.
힐끔힐끔.
세이라의 시선이 리츠코를 향한다.
부들부들.
리츠코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표정.
그 모습을 본 세이라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찌릿.
세이라의 날카로운 붉은색 시선이 리츠코에게 향한다.
세이라와 눈이 마주친 리츠코가 움찔하며 얼굴 표정을 고친다.
세이라가 리츠코에게 눈치를 주는 일련의 과정을 본 하루가 웃는다.
“니시시시.”
털썩.
하루가 이사장실 책상 위에 앉아 다리를 꼰다.
“세라땅. 하루한테 세라땅이라고 어린아이 취급받아서 분했구나? 허접 이사장님이네. 허접. 허접. 이사장님은 역시 이사장님이 아니라 세라땅이 어울려☆”
“이이이이익! 하루!”
세이라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녀가 소리를 치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는다.
세이라가 숨을 고른다.
‘그래, 여기서 흥분하면 저 꼬맹이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 하루의 의도대로 주도권을 내줄 수는 없지.’
세이라가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
계속해서 하루에게 휘둘릴 수는 없다.
연장자라면 연장자답게 굴어야 한다.
“하루. 이 몸은 슈오우 영웅 학원의 이사장이자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원이니라. 그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부채로 애써 표정을 가리면서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뭐, 저 얼라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거 같은데예.”
옆에서 리츠코가 말한다.
리츠코에게 세이라는 매일매일 과로사 위협이 느껴질 정도로 막대한 업무를 떠맡기는 악덕 상사였다.
그런 세이라가 하루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살짝 통쾌한 건 당연한 일.
“리츠코.”
부들부들.
부채 끝이 파르르 떨린다.
딱.
세이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부채가 저절로 접힌다.
세이라가 발현한 염동력의 힘으로 날아간 부채가 하얀색으로 물든다.
마력이 깃든 부채가 그대로 리츠코의 머리를 후려친다.
“하이고, 할마시 이게 무신 짓입니꺼?! 폭력은 반대입니더!”
“시끄럽도다. 흥.”
세이라가 볼을 부풀리면서 손가락을 튕겨 염동력으로 부채를 다시 손에 쥔다.
촤르륵.
다시 펼쳐지는 레이스 부채.
일련의 과정을 본 하루가 입으로 손을 가린다.
“헤에······.”
“어떠냐?”
평정을 찾은 세이라의 눈빛이 빨갛게 빛난다.
“세라땅, 초 바보 같아. 지금 부채로 표정 가리면서 어른스러운 척, 치명적인 척 주책 부리는 것도 완전 웃겨. 초 귀여워.”
“그러니까 귀엽다는 말은······.”
끄응.
세이라가 앓는 소리를 낸다.
“니시시시.”
하루의 웃음소리를 들은 세이라가 한숨을 쉰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하루를 더 상대해봤자 본전도 못 건질 거라는 사실을.
“하여간, 요즘 어린 것들은······. 맹랑하기 짝이 없다니까.”
쯧쯧.
세이라가 혀를 찬다.
“그렇지만 하루, 그런 세라땅이 초 귀여워서 완전 좋아. 게다가 요즘 남자들도 하루처럼 초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들었거든.”
하루의 말에 세이라가 귀를 쫑긋한다.
요즘 남자들이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한다니.
‘혹시 꼬마도?’
부상 때문에 글래머 미녀였던 전성기 모습을 잃어버린 그녀에게 있어서는 솔깃한 정보였다.
‘이 몸도 이 정도면 제법 귀여운 모습이기도 하고······.’
세이라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그녀의 머릿속에 김덕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자신을 귀엽다고 칭찬하면서 머리를 쓰담쓰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두근.
세이라의 가슴이 뛴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이 몸이 다른 소녀들보다······. 아니 지금 무슨 망측한 생각을!’
세이라가 고개를 살짝 젓는다.
하루 앞에서 풀어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칭찬에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어른답게 넘겨야 한다.
“훗훗. 그래. 모름지기 여자는 귀여운 스타일이 제일이니라. 하루가 뭘 좀 아는구나.”
하지만 세이라의 좋은 기분도 잠시.
“응. 세라땅은 다 귀엽지만, 특히 나잇값 못하는 점이 제일 완전 초 귀여워. 세라땅의 챠밍☆포인트랄까? 막이래. 니시시시.”
뒤이은 하루의 자연스러운 무호흡 딜링에 세이라의 얼굴이 굳었다.
“큭?!”
나잇값을 못 하다니.
그게 챠밍 포인트라니.
‘대체 이 몸의 어디가 어때서!’
세이라의 뺨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당황하면 부채로 얼굴 가리는 버릇도 초 웃겨. 세라땅, 완전 귀여워. 니시시시.”
“윽······.”
하루의 원투펀치에 격침당한 세이라의 손이 파르르 떨리던 그때.
“하이고. 마 할마시 임자 제대로 만났네예. 참말로 억수로 꼬시네.”
옆에서 리츠코가 키득키득 웃는다.
세이라의 눈동자가 빨갛게 빛난다.
“······리츠코.”
“와 부릅니꺼?”
“헛소리하지말고 화과자나 더 사오거라.”
찌릿.
세이라의 시선이 리츠코를 향한다.
무언의 압박에 리츠코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알겠습니더.”
“하루는 흑당 버블티가 먹고 싶어! 부탁해! 마코삐 언니 고모 언니! 니시시시.”
세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고 웃는 하루.
하루의 공격을 직접 받고 나서야 리츠코는 세이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꼬맹이, 건방지다.
“하여간 내가 무신 심부름꾼도 아니고······.”
리츠코가 중얼거리며 문을 닫고 나간다.
둘만 남은 집무실.
“세라땅. 하루 심심해. 하루랑 놀아줘.”
세이라는 다시 달라붙는 하루를 떼어내면서 생각했다.
요즘 애들은 참 돌보기 힘들다고.
*
아리스와의 특훈을 끝낸 나는 기숙사로 향했다.
원래라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온몸이 삐걱대야 정상이지만, 마사지를 받아서 그런지 한결 가벼운 발걸음.
조금 민망하기는 해도 마사지를 받기를 잘한 것 같았다.
마지막에 본 아리스의 속옷 차림은······. 그냥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겠다.
[요, 파트너!]그때.
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디랑 즐거운 시간 보냈어? 캬하하하하하하]봉인 해제하고 등장하자마자 경박하게 웃는 흑태자.
벌써 한숨이 나오려고 한다.
‘즐거운 시간은 무슨. 그냥 마사지 받은 거야.’
[이 흑태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우리 파트너, 아무리 봐도 사이온지 양이랑 뜨거운 육체적 교류의 시간을 가진 게 분명해. 흐흐흐흐. 우리 파트너, 드디어 어른의 계단을 올랐구만. 축하해. 파트너!]머릿속에서 신난 흑태자가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머리가 아프다.
더 반박해봤자 또 헛소리만 돌아올 게 뻔하다.
그냥 무시하면서 기숙사 계단을 오른다.
덜컥.
기숙사 내 방문을 열자 불이 자동으로 켜진다.
탁자 위에는 노트북이.
노트북?
‘한서진 건가?’
노트북 화면에 눈길이 간다.
‘PV완성까지 이틀, 완성본까지 2주 남았다고?’
대체 뭘 만드는 거지?
호기심이 동한 내가 노트북을 건드리려던 순간.
번쩍.
회색 섬광과 함께 한서진이 나타난다.
“오셨습니까? 김덕성님.”
그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어, 근데 저 보고서 뭐냐?”
“노트북 보고서 말입니까? 성웅 김덕성 재단에서 이번에 담당하게 된 영상 매체 작업입니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한서진.
재단에서 동영상을 만들어?
머릿속에 화려한 썸네일로 도배된 국뽕 너튜브 영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하겠지.
머리가 어지럽다.
“그래, 알았다. 무리는 하지 말고, 적당히 해. 적당히.”
더 생각하기 싫다.
나는 손을 휘저으면서 침대에 누웠다.
“알겠습니다. 김덕성님.”
내 말에 고개를 숙이는 한서진.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
달칵.
김덕성의 수면을 확인한 뒤, 한서진은 기숙사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녀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서진 요원. 무슨 일이라도 있나?]수화기 너머에서 나온 목소리는 대통령.
이제는 익숙해진 VIP와의 직통 통화를 통해서 한서진이 말한다.
“그분의 제작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지원 감사합니다.”
[그분의 지원을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네. 한서진 요원도 그분의 하렘 건설에 차질 없게 곁에서 보좌하게나.]“모든 것은 그분의 하렘을 위해서.”
[그분의 하렘을 위해서.]대통령의 답변을 들은 한서진이 전화를 끊는다.
문화제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약 2주 남짓.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축적한 모든 문화 역량을 동원한 총력전을 벌일 시간이었다.
대체 뭘 입고 있는 거야
다음날.
“오늘 당신의 가방을 맡을 당번은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네요! 감사하도록 하세요! 아시겠나요?”
어김없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내 가방을 가져가는 올리비아와 함께 나는 등굣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