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30)
아리스와 같은 간장 라멘으로.
탁.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피어오르는 라멘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인다.
“오늘은 웬일로 항상 혼자 오시던 아가씨 손님께서 다른 사람을, 그것도 남자를 데리고 오셨구만. 혹시 그이?”
주인장이 아리스 앞에 라멘 그릇을 내려놓으며 껄껄 웃는다.
주인장의 말에 아리스 얼굴이 붉어진다.
“그, 그건······.”
아리스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맞네? 그이 맞구만. 그래 아가씨도 청춘이구만, 청춘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하!”
주인장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는다.
탁.
그가 커다란 손으로 군만두가 담긴 그릇을 내놓는다.
날개가 붙어 있는 일본식 군만두, 교자였다.
“이건 서비스일세! 이런, 내가 너무 청춘 남녀의 피 끓는 밀회를 방해한 건 아닐까 모르겠군! 그럼 즐거운 데이트 되시게! 아가씨.”
하하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과 함께 주방으로 사라지는 주인장 아저씨.
마지막에 아리스에게 윙크까지 한다.
라노벨답게 해명할 시간도 안 준다.
아리스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다.
뻘쭘한 정적이 흐른다.
“그······.”
아리스가 젓가락으로 애꿎은 만두를 쿡쿡 찌르면서 말한다.
“죄송합니다. 김덕성 군. 괜히 오해를 사게 만들어서. 제가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정말로 죄송합니다.”
착.
아리스가 양손을 합쳐 합장하는 자세로 사과한다.
“아닙니다.”
나는 손을 저었다.
라노벨 세상이 다 그런 건데 굳이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합장 사과도 뭐, 유지 같은 남자가 아니라 아리스 같은 미소녀가 하니까 괜찮다.
“괜찮습니다. 선배. 그리고 덕분에 서비스도 받지 않았습니까? 교자 맛있어 보이는데요.”
나는 일렬로 붙은 군만두 하나를 뚝 떼서 아리스 그릇 위로 올렸다.
만두를 본 아리스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그녀의 뺨이 분홍색으로 달아오른다.
귀엽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두 하나를 떼서 입에 집어넣었다.
만두에서 육즙이 흘러나온다.
맛있네.
일본에서 서비스받을 줄은 몰랐는데.
원래 공짜로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
[파트너, 너 묘하게 사이온지 양한테만 관대한 거 같은데.]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아리스에게만 관대한 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
[파트너. 가슴에 손을 얹어봐. 사이온지 양 편애하는 거 맞잖아. 그만큼 내 동생한테도 좀 신경 쓰라고.]흑태자가 말한다.
아니 진짜 누가 편애한다고.
아리스가 내 최애캐기는 하지만, 나는 딱히 그녀에게만 너그럽게 대한 기억 같은 건 없다.
그냥 다 똑같이 대할 뿐이다.
흑태자의 헛소리에 내가 발끈해서 뭐라 하려던 순간.
아리스의 어깨가 힘없이 축 처진다.
그래, 지금 흑태자보다 아리스가 더 중요하다.
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아리스를 응시했다.
그녀가 말한다.
“······알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래도 오늘 계속 김덕성 군한테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녀의 귓불이 붉어진다.
이렇게 계속 사과만 하다가는 끝도 없다.
“라멘 식겠습니다. 빨리 먹죠.”
“알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끊어냈고, 아리스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젓가락을 들어 라멘 면발을 휘감아 입안에 넣는다
후루룩.
육수가 배인 라멘 면발이 입안에 들어간다.
애니메이션에 나온 맛집답게 맛은 꽤 괜찮다.
라멘을 먹으면서 맞은편을 본다.
마찬가지로 열심히 라멘을 먹고 있던 아리스와 눈이 마주친다.
아리스의 얼굴이 급격히 붉어진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라멘을 전부 해치우고, 서비스로 나온 교자까지 전부 먹은 뒤.
“다음에도 그이 데리고 또 오라고! 아가씨 손님!”
나는 마지막까지 아리스와 나를 커플로 착각하는 주인장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학원에 내린다.
교문으로 향하는 길을 아리스와 함께 걷는다.
저녁이 지나 밤이 되어서 그런지 옆에 반짝이는 오다이바의 야경과 저 멀리 잔잔하게 파도치는 도쿄만의 모습이 보인다.
“잘 먹었습니다. 라멘, 맛있더라고요. 선배.”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음식 중 하나가 라멘이다.
그래서 궁금해서 일본에 도착해서 라멘을 꽤 많이 먹어봤는데, 오늘 먹은 라멘이 제일 맛있었다.
잘못 찾아가면 한국 라멘 가게보다 맛이 뒤떨어지는 데도 있더라고.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입맛에 맞아서. 김덕성 군이 한국인이라 일식은 혹시 입맛에 안 맞는 게 아닐까 조금 걱정했었습니다.”
아리스가 옅게 웃는다.
그녀의 얼굴이 분홍색으로 살짝 상기된다.
“저 아무거나 다 잘 먹으니까 괜찮습니다.”
진짜 아무거나 다 잘 먹는다.
“그렇습니까?”
아리스가 입을 가리며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 완벽 초인 아가씨의 가면을 쓰고 언제나 무표정을 가장하던 시절보다는 표정이 풍부해진 지금이 훨씬 보기에는 좋다.
아리스의 은빛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빛난다.
그렇게 아리스와 함께 교문을 통과한 순간.
“통금이 아슬아슬한 늦은 시간까지 잘도 돌아다니는군요. 회장님. 그리고 김덕성 군.”
기분 나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푸른 머리의 안경남, 마에다 신지가 풍기위원장 완장을 찬 채 서 있었다.
그 뒤에는 그의 팬클럽으로 보이는 여생도들이 눈에 하트를 띄운 채 몰려 서 있었다.
라노벨에서 학원의 왕자님 또는 학원의 아이돌 캐릭터에게 흔히 따라붙는 교내 팬클럽이다.
[마에다 왕자님 최고] [마에다 위원장님 사랑해!]플랜카드는 물론이고 심지어 치어리더 차림 여생도까지 있다.
“플레이, 플레이, 마에다 왕자님!”
“플레이! 플레이!”
뒤에서 열심히 치어리딩을 하는 마에다 신지 팬클럽.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실제로 보니까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떻게 저걸 현실에서 할 수 있지?
제정신인가?
어메이징 라노벨 월드 같으니.
“훗.”
신지가 화답하듯 화장품 CF처럼 찰랑거리는 파란 머리를 쓸어넘긴다.
“꺄아아아아아!”
“마에다 님!”
“죽어도 좋아!”
팬클럽 여생도들이 익룡 소리를 낸다.
오밤중에 이게 무슨 짓거리야.
미소녀도 아니고 시커먼 남자 놈이, 그것도 재수 없게 생긴 새끼가 저러고 있으니 아까 먹은 라멘과 교자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우웩.
진짜 엿같네.
“마에다 위원장.”
방금까지 웃고 있던 아리스의 얼굴이 냉랭한 무표정으로 변한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교칙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공무를 위한 외출이지 않았습니까?”
“상관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학원의 풍기를 바로잡을 의무를 짊어진 풍기위원장! 생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회장님께서 검은 귀축 김덕성이라는 불량한 생도와 어울리며 풍기를 어지럽힌다는 제보를 받았거든요!”
척.
마에다 신지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이게 어디서 손가락질이야.
“꺄악! 검은 귀축이다!”
“무서워!”
“매일 밤 침대 위 여자를 갈아치운대!”
“저, 저는 맛없어요! 잡아먹지 말아주세요!”
마에다 신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익룡 소리를 내는 신지 팬클럽.
화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기다.
애니메이션이 현실이 되면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구나.
새삼스럽게 여기가 라노벨 세상이라는 점이 느껴진다.
“그건 세간의 헛소문입니다. 설마 증거도 없이 김덕성 군을 모함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한발짝.
아리스가 앞으로 나서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되묻는다.
하지만 마에다 신지는 굴하지 않고 뻔뻔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회장님을 걱정해서 충언을 드린 겁니다. 그는 매일 여자를 갈아치우는 문란한 카사노바 같은 인물. 그런 불량한 생도와 이런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다니, 정말이지 조심성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이제 이 마에다 신지가······.”
듣다 보니 화나네.
내가 나서서 뭐라 하려던 순간.
“카사노바? 선배는 여자 하나 만족 못 시키는 조루면서. 조루보다는 카사노바가 백 배 나아. 허접, 찌질이, 조루 위원장. 초 역겨워. 우웩.”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흔들리는 투톤 사이드테일이 인상적인, 화려한 미모를 지닌 미소녀.
쿠로사와 하루였다.
“허, 허접? 조, 조루? 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하루의 폭언에 경악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마에다 신지.
이제 속이 좀 시원하네.
하루가 입에 손을 대면서 웃는다.
“어쩔티비, 저쩔 냉장고. 심한 말은 무슨. 하루 초 어이없어. 증거 없이 우리 오빠 모함한 쓰레기 주제에 왜 나대? 허접, 조루, 찌질이. 불유쾌해. 하루 앞에서 숨 쉬지 마.”
“컥!”
하루의 폭언을 들은 신지가 입에 거품을 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리액션.
무슨 만화도 아니고.
욕 좀 먹었다고 정신을 잃다니.
나약하기 짝이 없다.
“위원장님!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요! 위원장님!”
팬클럽들이 우왕좌왕하더니, 곧이어 정신을 잃은 신지를 업고 학원 안으로 사라진다.
“니시시시.”
하루가 그 모습을 보며 웃는다.
갑자기 난입한 하루가 K.O 승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그건 좋은데, 하루 얘는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대체 뭘 만든 거야?
상황이 대충 정리된 뒤
하루가 내 앞에 알짱거리면서 가디건을 입은 팔을 바둥바둥거린다.
“오빠. 하루 초 잘했지? 완전 쩔었지? 칭찬해줘! 칭찬! 니시시시. 초 슈퍼 여동생 하루는 덕성 오빠한테 쓰담쓰담을 받고 싶은걸?”
하루가 머리를 내민다.
쓰담쓰담은 무슨.
저 니시시시 웃음소리를 들으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
“넌 여기 왜 온 거냐?”
쓰담쓰담 대신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그거? 세라땅 할머니가 덕성 오빠랑 아-쨩 언니 마중하라고 시켜서 그래. 니시시시.”
세라땅 아주머니도 아니고 할머니라니.
이 자리에 이사장이 없어서 그렇지, 그녀가 들었다면 큰일 날 발언이었다.
[누님을 할머니라고 부르다니, 저 소녀는 대담한 건지 간이 큰 건지 모르겠어.]흑태자까지 이렇게 말하는 수준.
“그래서 덕성 오빠, 하루 쓰담쓰담 안 해줄 거야? 하루, 이번에 완전 초 대활약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루가 손목에 찬 팔찌를 짤랑거리며 뭐라 한다.
염병할 쓰담쓰담이 대체 뭐가 좋다고.
속으로 한숨을 쉰다.
어쨌건 그녀가 공을 세운 건 사실이니, 대충 쓰담쓰담 해주고 치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선 순간.
스윽.
나보다 한발 먼저 나선 아리스가 하루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다.
“감사합니다. 쿠로사와 양.”
쓰담쓰담.
아리스가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야? 아-쨩 언니. 왜 아-쨩 언니가 하루 머리 쓰담쓰담하는 거야?”
하루가 볼을 부풀린다.
“김덕성 군을 대신해서 슈오우 학원의 모든 생도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인 제가 쿠로사와 하루 양의 공을 치하한 것일 뿐입니다.”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난다.
그녀의 목소리는 놀랄 정도로 냉랭했다.
아리스의 말을 들은 하루가 볼을 부풀린다.
“쳇, 권력 초 남용. 완전 반대.”
“그건 혹시 교칙에 따른 학생회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에 불만이 있다는 뜻입니까? 쿠로사와 하루 양.”
“아니야. 흥. 이번 한 번만 하루가 특별히 봐줄게. 아-쨩 언니. 다음은 없어.”
하루의 말에 아리스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을 떼어냈다.
“그럼, 일도 전부 해결됐고,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내일을 위해 다들 자러가도록 하죠. 김덕성 군도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쓰담.
아리스가 이번에는 손을 옮겨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의 뺨이 살짝 분홍색으로 달아오른다.
쓰담쓰담에 재미를 붙인 건가?
감촉은 나쁘지 않다.
“하루도! 하루도 덕성 오빠 머리 쓰담쓰담할래! 니시시시.”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하루가 또 손을 흔들흔들대며 나선다.
내가 뭐라 하려던 그때, 아리스가 하루의 손목을 덥석 잡는다.
“쿠로사와 양은 저와 함께 가도록 하죠.”
“아-쨩 언니, 은근 철벽 초 강해. 견제 완전 잘해.”
하루가 볼을 부풀리며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
쳇, 하루가 혀를 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스는 하루의 손을 잡은 채로 그녀를 끌고 가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만. 김덕성 군. 편안한 밤 되시길.”
“덕성 오빠, 하루 꿈꿔! 니시시시.”
마지막까지 요망하게 웃으며 떠나는 하루.
그렇게 아리스가 하루를 끌고 사라지면서, 나는 혼자 남았다.
[파트너. 역시 사이온지 양한테만 약한 거 맞잖아. 머리 쓰다듬는 데도 가만히 있는 파트너라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르겠어.]정확히는 흑태자까지 합쳐서 둘.
나는 흑태자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고민에 빠졌다.
갑자기 바뀐 마에다 신지의 태도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에다 신지는 내게 간접적인 압박을 가할지언정,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발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역시 수상하다.
원작 내용을 떠올린다.
원작의 마에다 신지는 테러 준비를 끝마친 뒤, 자신감에 부풀어 올라 뜬금없이 주인공 유지에게 시비를 걸었다.
원작에서 마에다 신지와 리그가 합작해서 준비한 테러는 대규모 환상 마술 결계 ‘발푸르기스의 밤’.
7권 메인 빌런, 트릭스터 위치의 주특기인 환상 마술을 증폭시키는 결계진을 설치하는 것이 놈의 임무였던 셈이다.
발푸르기스의 밤 결계 내부에서 트릭스터 위치의 능력은 EX랭크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승하지만, 대신 결계 준비에 사전 준비가 오래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리그는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지와 접촉했으며, 신지는 리그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하게 이행해서 인적 드문 폐쇄된 구교사에 풍기위원장의 권한을 이용해 들어가 결계진을 설치한 것이다.
구교사에는 일반 생도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교관들도 별 신경 쓰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에 보안이 허술해서 결계진 설치에 안성맞춤이라는 설명이 원작에서 나오기도 했고.
[파트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대답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