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32)
‘그나저나 아리스는 대체 왜 따로 보자고 한 거지?’
사실 특훈이 끝나고 같이 오자고 말했는데, 그녀 측에서 먼저 거절했다.
준비할 게 있다고 그랬는데, 대체 무슨 준비가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구교사 오는 거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야만 했다.
[파트너. 레이디한테는 준비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준비 시간이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흑태자의 말에 뭐라 하려던 그때.
“김덕성 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저,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리스가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빛난다.
교복이 아닌 한껏 차려입은 사복 차림.
왠지 모르게 향긋한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게 상기되어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살짝 놀라 고개를 숙인다.
“······.”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뺨을 긁적거린다.
평소랑 다르게 왜 저러지?
주변을 살펴본다.
다행히 인기척은 없다.
“선배.”
“예, 김덕성군.”
내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소리치는 아리스.
“주변 사람들 눈에 안 띄게 구교사로 온 거 맞죠?”
누군가에게 들켰다면 곤란하다.
내가 세운 결계진 무력화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신지의 귓가에 우리가 구교사에 출입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확인 또 확인하고 왔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스.
아리스야 거짓말할 성격은 아닌데다, 그녀의 기감은 학원 최강답게 굉장히 뛰어난 수준.
아리스가 아니라면 아니겠지.
“좋습니다. 그럼 구교사로 들어가죠.”
내 말에 아리스의 어깨가 살짝 떨린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리스가 입술을 우물댄다.
“선배, 왜 그래요?”
“김덕성군.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리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마음의 준비라니?
대체 무슨 이야기야.
“그냥 들어갑시다.”
덥석.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아리스의 몸이 움찔한다.
“알겠습니다.”
아리스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얼굴을 잔뜩 붉인 채 고개를 숙이며 나를 따라온다.
그녀와 함께 구교사 정문 앞에 선다.
폐쇄된 구교사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열어주세요. 선배.”
학생회장이나 풍기위원장의 생도 수첩이 아니면 열리지 않는 문.
내 말에 아리스가 말없이 생도 수첩을 댄다.
삑.
기계음과 함께 구교사 문이 열린다.
불이 꺼진 채 방치된 실내가 보인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건물 내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구교사 안으로 들어선다.
탁.
문이 닫힌다.
머릿속에서 기억을 더듬는다.
슈오우 영웅 학원 구교사는 문화제 에피소드 말고 최종장에서도 다시 등장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구교사를 철거하지 않고 그냥 폐쇄만 한 이유.
일반 생도들의 출입이 금지된 이유.
그건 학교 괴담에서처럼 유령이 나와서 그런 게 아니라, 구교사 지하에 브로큰 월드로 통하는 봉인된 입구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시점에는 이사장밖에 모르는, 원작 최종장, ‘학원 부수기’ 에피소드에서야 밝혀지는 비밀이다.
마에다 신지는 모르고 한 일이겠지만, 트릭스터 위치의 임무 중에는 구교사 구조 파악도 있었다.
괜히 결계진을 구교사에 설치한 게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덕분에 구교사는 애니메이션에서 제법 내부 구조가 상세하게 나온 편이었고, 나는 그 기억을 떠올려 원작에서 결계진이 나온 장소를 떠올렸다.
아리스에게 말하려던 그때.
“김덕성 군.”
뒤에서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린다.
불 꺼진 구교사 복도, 반짝이는 은발 미소녀가 시야에 들어온다.
“저를 구교사로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홍색으로 상기된 뺨.
떨리는 은빛 눈동자가 보인다.
구교사로 부른 이유라니.
그야 당연히 결계진 때문이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믿지 않을 터.
그러니 생각해둔 이유를 대야겠다.
“문화제 보안 점검 때문입니다. 물론 마에다, 아니 풍기위원장이 점검했겠지만, 만의 하나를 대비해서 추가 점검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내 말을 듣던 아리스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점검. 정말 그것뿐입니까?”
아리스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는다.
“예······.”
“그렇군요. 저는 혹시나······. 밀회라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잊어주십시오. 방금 말은 잊는 겁니다.”
아리스가 밀회라고 말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실행위원인 당신은 맡은 직무에 충실하게 학원의 안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생회장인 저란 사람은 의무를 망각한 채로 그만 파렴치한 착각을 해버렸군요. 저만 착각했던 겁니다. 바보처럼 저만······.”
아리스의 어깨가 처진다.
왠지 모르게 주눅 든 아리스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인다.
아리스의 입술이 살짝 삐죽 튀어나온다.
[파트너, 사이온지 양. 아무리 봐도 삐진 것 같은데?]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말이 들린다.
삐졌다고?
[사이온지 양은 파트너와의 밀회를 기대했을 텐데, 거 참. 파트너는 이상하게 꼭 결정적일 때마다 눈치가 없어진단 말이지. 좋아. 이번 한 번만큼은 이 형님이 도와줄게.]‘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음에 제대로 식사라도 한 번 하자고 해.]흑태자가 진지하게 말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시키는 대로 해보는 게 좋겠지.
아리스 태도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나는 흑태자의 조언을 이번 한 번만 따르기로 결심하면서 아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불렀습니까?”
시선을 땅으로 내리까는 아리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 겁니까? 사과해야 할 건 저입니다. 괜히 저 혼자 착각하고 파렴치한 생각을······.”
아리스가 입술을 삐죽이면서 말한다.
“오늘 말고 다음에 식사라도 한 번 하죠.”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고, 흑태자가 시킨 대로 말한 순간.
화악.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정말입니까? 식사 약속. 정말입니까?”
아리스가 되묻는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네. 정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흠. 좋습니다. 김덕성군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죠. 약속한 겁니다? 김덕성군.”
“약속하죠.”
내 말을 들은 아리스의 어깨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래.
자신감 있는 모습이 이제 좀 보기 좋네.
덥석.
그녀가 내 손목을 잡은 채 앞장선다.
“좋습니다. 그럼 김덕성 군의 말대로 구교사 내부 순찰을 하도록 하죠. 어디부터 가는게 좋겠습니까?”
“양호실부터 가죠.”
원작에서 결계진이 있던 장소는 구교사 1층 양호실.
“알겠습니다.”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와 손을 잡고 양호실로 향했다.
빛바랜 양호실 간판.
드르륵.
낡은 미닫이문이 열린다.
그 미닫이문 너머에서 나와 아리스가 발견한 건.
“이건 대체······”
양호실 밑바닥에 그려진 기하학적 무늬와 문자로 가득한, 마력이 느껴지는 결계진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렇게 귀여운 할머니(삽화 有)
애니메이션에 나온 모습 그대로 설치되어 있는 결계진.
딱 봐도 수상한 모습에 아리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이건 문화제를 노린 수작이 분명합니다. 당장 이사장님과 협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방금까지 풀어졌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얼굴.
나는 아리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부터는 설득 시간이다.
“이사장님은 상관없지만, 협회를 포함한 외부에 알리는 건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내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반문하는 아리스.
아까 분홍색 벚꽃이 필 것 같은 화사한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남극의 한풍처럼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감돌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배신자를 제대로 색출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그 배신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마에다 신지다.
하지만 구교사 근처는 CCTV도 없고, 마에다 신지 정도 되면 침투 흔적을 지우는 것도 식은 죽 먹기라 심증은 있어도 물증을 확보하는 건 어렵다.
“이 결계진을 작동 불능으로 만든 뒤, 문화제 기간에 이 결계진을 작동하러 올 배신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 이렇게 함정을 파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나는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그래야만 배신자와 결탁한 배후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외부에 알린다면, 배신자를 막후에서 조종하던 정체불명의 흑막은 배신자를 꼬리 자르기 용도로 던져주고 어둠 뒤에 숨을 것입니다.”
물론 마에다 신지를 어떻게든 잡아넣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한다면 더 강력한 빌런이 쳐들어온다는 게 문제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피해로 적을 막아내는 것이 내 목표.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그리고 함정을 파기 위해서는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됩니다. 함정을 위해서라면 결계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고, 적을 속이려면 우선 아군부터 속여야 하니까요.”
그리고 명분도 그럴싸하니, 회장이라면 내 말에 넘어가겠지.
“흠.”
내 말을 들은 아리스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째깍, 째깍.
양호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아리스가 불길한 마력이 깃든 결계진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좋습니다. 김덕성 군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배신자 색출이라······.”
아리스의 주먹이 쥐어진다.
“어떤 생도가 슈오우 학원을 배신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신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아리스의 눈동자가 떨린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이사장에게 거는 전화였다.
*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 공관.
학생회장 공관과 교관 관사 바로 옆에 있는 이사장 공관은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대저택이었다.
이사장 공관 저택 안.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있는 길쭉한 원목 식탁.
그곳에는 지금 공관의 주인이자 학원의 주인, 이사장 요시자키 세이라가 앉아 있었다.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은 채, 고급 본차이나 도자기에 우아하게 말차를 담아 홀짝이는 세이라.
그 옆자리에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과 빨간색이 뒤섞인 투톤 헤어를 사이드테일로 묶은 소녀, 쿠로사와 하루가 있었다.
“으, 재미없어.”
하루가 투덜댄다.
현재 하루의 임시 보호자는 이사장 요시자키 세이라.
덕분에 그녀는 다른 생도들과 달리 세이라의 공관에 함께 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특권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하루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세이라도 세이라지만, 무엇보다 방과 후 숙소로 복귀한 이후 다시 외출하려면 보호자인 세이라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제 마중도 세이라의 허락이 아니었다면 나갈 수 없었을 터.
‘덕성 오빠 보고 싶어.’
하루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것보다 세라땅 할머니.”
“푸웁!”
하루의 말을 들은 세이라가 말차를 뿜어냈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 할머니라고?! 방금 이 몸을 할머니라고 부른 것이더냐?!”
할머니라니!
이렇게 젊은 자신을 보고 할머니라니!
세이라의 얼굴이 패닉으로 물들었다.
그런 세이라를 보면서 하루가 고개를 갸웃한다.
“세라땅 할머니 맞잖아. 설마 세라땅 하루한테도 아-쨩 언니처럼 언니라고 부르라고 할 거야? 그거 완전 초 유치해. 완전 웃겨. 니시시시.”
하루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는다.
세이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하루여! 이 몸이 어떻게 할머니란 말이더냐! 이렇게 귀여운 할머니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이더냐! 이 몸은 할머니가 아니라 귀여운 미소녀이니라!”
세이라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친다.
다른 호칭은 다 좋다.
하지만 할머니라고 불리는 것만큼은 싫다.
무심코 그와 나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그가 자신의 손주뻘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호칭이기 때문이었다.
“어쩔 티비, 저쩔 냉장고. 쿠쿠루삥뽕. 방금 세라땅 할머니 그 말, 하루 스코어 초 대량 감점이야!”
“크흠, 그래도 하, 할머니는 좀······.”
촤르륵.
세이라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면서 말을 더듬거린다.
그 모습을 본 하루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녀가 웃는다.
“니시시. 그럼 세라땅 할머니, 하루 아빠 친구니까 어릴 때처럼 세라땅 아줌마라고 불러도 돼?”
“뭣······. 그건······.”
세이라의 머리가 새하얘진다.
십 년 전의 기억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쿠로사와 가문에 종종 들를 때, 어린 하루가 세이라를 보고 아줌마라고 부르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순진했던 어린 꼬마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도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다.
할머니보다는 낫지만, 아줌마 역시 그녀에게는 나이 차이를 자각하게 하는 호칭.
세이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 그것도 안 되느니라!”
“그러면? 할머니랑 아줌마를 할머니랑 아줌마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하루가 식탁 위에 양 팔을 올리면서 말한다.
그 말에 세이라가 헛기침하면서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