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33)
“언니라고······. 부르거라. 흠흠. 이 몸 정도로 귀여운 미소녀라면 언니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
세이라가 레이스 부채를 살랑거린다.
‘귀여운 이 몸이 어딜 봐서 할머니나 아줌마라는 것이더냐······.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부채 너머 세이라의 분홍색 입술이 삐죽거린다.
그녀가 품에서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검은색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한다.
주름살 하나 없는, 아기 피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팽팽한 얼굴.
최연소자인 하루보다 더 어려 보이는 외관의 백발 적안 미소녀가 거울 안에 있다.
‘흠, 역시 이 몸은 귀여운 미소녀이니라. 틀림없는 사실인것이야.’
쭉쭉빵빵한 다이너마이트 몸매가 매력 포인트인 섹시한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요즘 젊은이들도 좋아할 만한 미모였다.
결코 할머니나 아줌마가 아닌 것이다.
“세라땅 할머니 초 뻔뻔해. 완전 철면피. 세라땅 스코어 또 초 대량 감점이야. 삐삐!”
하루가 양손을 교차해 엑스자를 만들며 말한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참자. 연장자인 이 몸이 참아야 하느니라······.’
저렇게 보여도 하루는 학원 생도 중 최연소자.
연륜과 경륜이 있는 자신이 아이의 도발에 그대로 걸려 넘어갈 수는 없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처신해야 한다.
세이라는 그렇게 결심하면서 부채를 살랑이며 말했다.
“그, 그럼 할머니나 아줌마라는 말은 빼주면 안 되겠느냐······.”
“그래? 그럼 그냥 세라땅이라고 불러줄까? 세라땅은 할머니지만 초 귀여운걸? 특히 애써 젊은 척하면서 주책 부리는 모습이 완전 초 귀여워. 니시시시.”
세이라의 말을 듣고 웃는 하루.
하루의 말에 세이라의 뺨이 파르르 떨린다.
젊은 척, 주책이라니.
거기에 세라땅이라는 별명, 타인의 입으로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
“그건······. 좀 그렇지 않느냐? 그냥 평범하게 이사장님이라고 부르거라. 아니면 언니도 좋다.”
“하루는 언니라고 부르기 완전 싫은데? 이사장님도 초 별로야. 세라땅은 세라땅이야. 싫으면 할머니나 아줌마라고 부를 거야.”
볼을 부풀리는 하루.
그 모습을 본 세이라는 이마를 짚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세이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마음대로 하거라.”
세라땅이라는 별명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할머니나 아줌마보다는 낫다.
어감이 조금 귀여워서 마음에 들기도 하고.
귀엽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이라가 부채를 살랑이며 말한다.
“후후. 그래도 하루 너도 이 몸이 귀여운 건 인정하는구나.”
“응. 그래. 세라땅. 그리고 대체 왜 말차랑 양갱을 서양식 도자기 다기 세트에 담아서 먹는 거야? 완전 초 넌센스! 언밸런스라고! 하루 스코어 감점이야! 삐삐!”
“그건······.”
“그리고 왜 간식이 양갱 밖에 없어? 초 할머니 같은 센스야. 양갱 매일 먹다 보니까 초 질렸어. 하루는 사탕이 좋은데. 사탕 먹고 싶어. 사탕 줘.”
떼를 쓰는 하루를 보면서 세이라가 한숨을 쉬었다.
오밤중에 사탕이라니.
대체 그걸 어디서 구해온단 말인가, 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세이라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국 정부에서 선물로 받은 물건 중 하나가 떠올랐다.
“흠흠. 사탕 말이더냐? 좋다. 하루라면 못 줄 것도 없지.”
“정말? 세라땅 하루한테 사탕 주는 거야?”
하루의 붉은 눈동자에 기대가 차오른다.
세이라는 웃으면서 서랍장에서 금속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연다.
세이라가 상자 안에 있는 노란색 사탕을 집어 하루에게 먹인다.
“자, 아 하거라.”
우물.
사탕을 먹은 하루의 얼굴이 굳는다.
기대하던 단맛과는 다르게 한약 같은 쓴맛이 입안에 감돌았기 때문이었다.
“세라땅! 이 사탕 뭐야! 초 맛없어! 완전 별로야!”
“한국에 갔을 때 선물로 받은 홍삼 캔디이니라. 맛이 없다니? 이 몸의 입맛에는 딱 맞느니라.”
“우우우우. 세라땅. 거짓말은 초 나빠. 하루 스코어 또 감점이야! 삑삑!”
하루의 말에 세이라는 아무 말 없이 홍삼 캔디를 하나 집어 입안에 넣는다.
씁쓸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음, 맛있구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르게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 세이라를 보며 하루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린다.
“역시 세라땅 할머니 맞잖아. 할머니가 아니라면 그렇게 초 맛없는 캔디 같은 거 보통 안 먹는다구.”
“이 몸은 할머니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하루.”
하루의 말에 세이라가 답하던 그때.
우웅.
식탁 위에 놓인 세이라의 핸드폰이 울렸다.
세이라의 시선이 휴대폰 스크린에 뜬 이름으로 향한다.
“아-쨩이?”
전화를 건 상대는 아리스.
세이라가 전화를 받는다.
*
아리스가 전화를 걸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라가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한 세이라에게 아리스와 나는 결계진을 발견한 경위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문제라면 세이라를 따라온 불청객이 있다는 거였다.
“덕성 오빠! 아-쨩 언니! 구교사에서 둘만 있었구나······.”
부채를 살랑이는 세이라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뜬 사이드테일 미소녀.
쿠로사와 하루였다.
스윽.
하루가 아리스 곁에 붙으며 말한다.
“설마 이렇고 저렇고 그런 짓 한 건 아니지?”
“그런 파렴치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생회장을 뭘로 보는 겁니까! 쿠로사와 양!”
“헤에? 그렇지만 아-쨩 언니. 매일매일 파렴치, 파렴치 입에 달고 다니면서 정작 본인이 초 파렴치☆걸인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정체불명의 마술진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말에 귀까지 얼굴을 붉히며 화제를 돌리는 아리스.
하루가 혀를 차면서 입술을 삐죽인다.
“쳇.”
“······흐음. 이 마술진의 형태는 익숙하군. 발푸르기스의 밤······. 대규모 환상 결계를 발현시키기 위한 결계진이로구나. 누가 설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이라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결계진만 보고 정체를 바로 알아맞히다니.
파이브 크라운즈 짬밥은 괜히 먹은 게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요즘 이 몸이 꽤 얕보인 모양이구나. 이런 어중이떠중이들 따위가 감히 백색 여제의 영역을 넘보는 걸 보면.”
세이라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녀의 몸에서 하얀 마력이 줄기줄기 뻗친다.
파이브 크라운즈.
백색 여제.
라노벨 캐릭터 느낌 때문에 푼수처럼 느껴지는 세이라지만, 실은 이 세계관에서 최강자 라인에 속하는 괴물인 것이다.
그때만큼은 장난치는 하루도, 얼굴을 붉힌 아리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꼬마야.”
세이라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이 결계진을 작동 불능으로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함정을 파서 배신자는 물론 배후까지 한 번에 현행범으로 구속해서 처리하자고 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촤르륵.
세이라가 부채를 펼친다.
그녀가 요염한 척 눈웃음을 흘린다.
“좋은 책략이구나. 좋다. 꼬마의 뜻대로 하자꾸나.”
후후.
세이라가 웃으면서 차가운 눈길로 결계진을 내려다본다.
“이번 일로 적들은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이름에 도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세이라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결계진을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작동 불능인 상태로 만들었다.
그 이후로는 별일 없이 무탈하게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문화제 당일이 다가왔다.
미신은 믿지 않습니다
문화제 당일.
허락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슈오우 영웅 학원의 정문이 활짝 개방되었다.
[모두와 함께 불태우자, 청춘! ~슈오우 영웅 학원 문화제~]펄럭.
문화제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이 휘날린다.
여의도의 몇 배나 되는 드넓은 인공섬에 조성된 학원 캠퍼스.
본관으로 통하는 대로에는 수많은 외부 방문객들과 생도들이 연 노점으로 북적였다.
하늘에는 슬로건이 적힌 에드벌룬이 떠 있었고, 본관 창문에는 클래스별로 생도들이 만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가 가득한 시끌벅적한 학원 내부.
그곳에서도 축제 분위기가 유독 옅은 장소가 있었다.
바로 내가 있는, 문화제 실행을 총괄하는 실행위원회가 있는 제2별관이었다.
오전 회의.
모든 실행위원이 모인 자리에서 실행위원회 회의가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학생회장 의자에 앉은 아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회의를 주관한다.
“풍기위원장.”
“예, 학생회장님.”
“오늘 인원 통제와 보안에 각별하게 신경 써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리스의 지시를 받은 신지가 재수 없게 웃는다.
역시 기분 나쁘다.
애니메이션으로 봤을 때도 별로였지만, 현실이 되니까 더 역겹다.
“드디어 문화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간 준비에 수고가 많았지만, 아직 우리의 맡은 바가 전부 끝난 건 아닙니다. 모두 문화제 마지막 날까지 조금만 더 힘내도록 하죠.”
학생회장의 말에 실행위원 모두가 박수를 친다.
나도 박수를 쳤다.
나 혼자만 안 치면 이상하잖아.
[파트너, 박수를 왜 그렇게 열심히 쳐? 건성건성 할 것 같더니······.]흑태자의 헛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럼 저는 회의 이후 문화제 현장 점검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가 나를 부른다.
“예, 회장 선배.”
“현장 점검에 동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문화제 현장 점검.
원작에서 실행위원을 맡았던 주인공 유지도 했던 임무.
목적이야 클래스별 행사 전반을 총책임자로서 점검하는 거지만 실제로는 아리스와 문화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데이트나 다름없는 행위.
원작과는 달리 유지가 실행위원이 아닌 지금, 누가 동행에 지목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다행히도 내가 지목당했다.
“회장 선배가 검은 귀축을 지목했어!”
“회장 선배가 검은 귀축의 마수에 떨어졌다는 그 소문, 역시 사실이었어?”
“검은 귀축이 교토의 스위트룸에서 이미 회장의 순결을 빼앗았대!”
“두 사람, 매일 밤 학생회장 집무실에서 은밀하고 뜨거운 밀회를 한다던데?”
지목과 동시에 술렁대는 엑스트라들.
[파트너, 왜 그렇게 기분이 들떠 보여?]흑태자의 헛소리가 또 머릿속에 울린다.
내가 이번에는 흑태자의 헛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뭐라 하려던 그때.
누군가가 입술을 깨무는 소리가 들린다.
“큭······.”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마에다 신지가 있었다.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놈과 눈이 마주친다.
내 시선을 마주하자 화들짝 놀란 놈이 이내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다.
아니, 구교사의 결계진을 생각하면 가식이 아니라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
역시 비호감 원탑 악역 캐릭터다운 찌질한 모습.
뭐 저것도 조만간이다.
구교사에는 이미 감지 센서와 감시 카메라를 안 보이게 설치한 상황이니, 놈이 결계진에 도착한 순간 상황 종료일 테니까.
“그럼, 오늘 회의는 이걸로 종료하겠습니다. 각자 위치로.”
탁탁.
아리스가 서류철을 정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예! 회장님!”
“알겠습니다! 회장 선배!”
“데이트 잘하고 오세요!”
엑스트라들이 웃으며 대답한다.
“데이트가 아니라 현장 점검입니다.”
그 말에 흔들리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하는 아리스.
“회장 선배는 여전하네.”
“완전 모범생, 조금 재미없어.”
“검은 귀축이 함락하지 못하는 여자도 있는 걸까?”
옆에서 다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함락은 무슨.
쟤네는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어이가 없다.
내가 혀를 차고 있던 그때.
“따라오세요. 김덕성 군.”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아리스가 내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선배. 가시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현장 점검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
아리스와 함께 본관 앞 대로에 도착했다.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던 문화제 풍경 그대로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대로 양옆에 펼쳐진 수많은 노점과 호객행위 하는 생도들, 그리고 외부 방문객이 보인다.
축제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도 보인다.
문화제라고 해서 약간 기대했는데, 대학교 축제랑 별반 차이도 없다.
술 안 파는 대학교 축제 같은 느낌? 하긴 요즘은 대학교 축제 주류 판매 금지 규제 때문에 주점에서 술 파는 것도 옛날 말이라고 듣긴 했다.
“회장님이다!”
“회장님! 타코야끼 먹을래요?”
“회장 선배! 우리 클래스 야키소바도 먹어줘요!”
아리스가 나타나자마자 그녀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생도들.
그 모습을 본 아리스가 헛기침을 한다.
“흠흠. 현장 점검 실시 예정입니다.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아리스의 말에 다시 돌아가는 생도들.
“그럼 가죠. 김덕성군.”
아리스가 내게 체크리스트를 맡기며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가게의 위생 상태는 확실히 괜찮군요.”
“회장 선배! 여기 우리 클래스 타코야끼 드셔보세요!”
“감사합니다.”
“회장 선배! 검은 귀축이랑 진짜 데이트 중인 거예요?”
“······아닙니다.”
실행위원회 때와는 달리, 전 학년 최고 인기 아이돌이라는 설정에 충실하게 점검을 위해 노점을 들릴 때마다 수많은 생도가 아리스에게 접근했다.
아리스 본인은 익숙한 모양인지 짓궂은 질문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덕분에 나도 덤으로 타코야끼 같은 간식을 이것저것 먹을 수 있었고.
우물.
방금 받은 타코야끼 상자를 열어 타코야끼 하나를 이쑤시개로 찍어 입 안에 넣는다.
그럭저럭 맛있네.
내가 그렇게 평가한 그때.
“큭!”
옆에서 숨 막히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아리스가 가슴을 치고 있다.
타코야끼를 먹다가 목이 막힌 모양.
“사이온지 선배, 목 막히면 이거 드십쇼.”
품에서 내가 먹으려고 준비했던 콜라를 꺼내 건넨다.
[오, 파트너. 콜라 주는 거야? 파트너가 다른 사람한테 콜라 주는 모습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동안은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었는데, 이번에는 100% 진담이야. 다른 레이디들도 좀 챙겨주라고.]‘무슨 헛소리야? 저렇게 목 막히는데 줄 수밖에 없잖아.’
흑태자랑 언쟁을 하고 있던 사이.
아리스가 콜라를 따서 들이킨다.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