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38)
“쿠, 쿠로사와 아가씨, 그, 그게 아니오라······.”
“닥치라고.”
“······알겠어요······.”
입을 다무는 쿠사나기.
이제 좀 조용하네.
아무튼 시커먼 남정네들의 여장 같은 건 더 보기도 싫다.
유지와 이시하라를 철저히 외면하며 고개를 돌린다.
“덕성 오빠! 하루 초 잘했지? 하루 오빠한테 칭찬받을래! 칭찬칭찬! 니시시시.”
옆에 다가온 하루가 웃는다.
“그래, 잘했다.”
쿠사나기 담당일진 역할을 잘한 건 잘한 거니까 칭찬을 해주긴 해야지.
“좋아! 하루, 오빠의 최애캐에 한걸음 다가갔어!”
뒤에 덧붙인 헛소리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흥.”
옆에 앉은 아리스가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라노벨 문화제 클리셰처럼,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 순간.
단상에 불이 켜진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린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검은 정장을 입은 회색 단발 미녀가 들어선다.
한서진이다.
아니 한서진이 왜 저기 있어?
툭툭.
한서진이 마이크를 건드린다.
그녀가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관객 여러분. 오늘 상영회 진행을 맡은 김덕성 생도의 보좌관, 한서진이라고 합니다.”
짝짝짝짝.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수가 교실 안을 가득 메운다.
“슈오우 영웅 학원 1학년 A반의 의뢰를 받아, 저희 대한민국에서 총력을 다해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 상영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포스터에서도 봤지만 정말 구린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럼, 관중 여러분 모두 즐겁게 감상해주시길.”
한서진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탁.
불이 꺼진다.
그와 함께 화면에 빛이 투영된다.
관중석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기어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눈을 감아야 하나.
옆을 보니 아리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친다.
“!!”
아리스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더니 얼굴이 살짝 분홍색으로 변한다.
“영화에 집중하세요. 김덕성군.”
그녀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귓가에 속삭인다.
귀가 살짝 간지럽다.
그렇게 살짝 긴장이 풀리던 그때.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쓸데없이 잘 만들어진 일본어 타이포가 하늘을 배경으로 떠올랐다.
아니 왜 하필 하늘부터 시작하냐고.
제발 그러지마.
벌써 속이 아프기 시작한다.
[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장면이 전환된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나로 추정되는 미소년이 있다.
내가 저렇게 잘생겼던가?
창가 맨 뒷자리에 앉은 애니메이션 속의 내가 라노벨스러운 독백을 하기 시작한다.
[그날, 적합도 검사에서 C랭크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영원히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을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수능을 쳐서 대학교에 입학했을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간.]온몸이 오글거린다.
대체 이 나레이션 누가 쓴 거야?
이게 무슨 라노벨 1권 도입부야?
한국 최고의 소설가와 각본가들 다 뭐했냐고.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은 완전히 변했고, 지금 나는 조국을 대표해서 슈오우 영웅 학원의 생도가 되었다.]뒤에 펄럭이는 태극기.
쪽팔리기 짝이 없다.
그 와중에 성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를 정확히 똑같이 따라하는 게 더 소름이었다.
[입학 첫날, 내가 마주한 사람은──]자비없이 흘러나오는 나레이션과 함께.
마침내 이 빌어먹을 애니메이션의 두 번째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백금의 기사공주이자 프랑스 최고의 기재, 입학 수석.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그건 빙의 전 원작 애니메이션 이상의 훌륭한 작화로 그려진 올리비아였다.
뒤이어 나와 올리비아가 서로 다투는 장면이 나타나고, 마침내 그 대사가 흘러나왔다.
[만일 이 대결에서 제가 패배한다면 당신의 시녀라도 되어드리죠! 흥!]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붉힌 채 전형적인 학원 배틀물 애니메이션 1화 츤데레 히로인 아가씨 같은 대사를 내뱉는 올리비아.
그 끔찍한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한서진에게 말을 들었던 그때 이 빌어먹을 기획을 중단시켰어야 했다고.
시청각 고문
그 이후로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애니메이터를 통째로 갈아 넣은 것 같은 훌륭한 작화로 연출된 전투신.
이후 쓰러진 나를 공주님 안기 포즈로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올리비아까지.
[······패배라니 이럴 수가······. 저는······. 대체 무얼 위해······.]봐주기 힘들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올리비아 쟤 나한테 지고 나서 저랬었나?
[어쩔 수 없죠······. 죽기보다 싫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제 당신, 김덕성의 전속 시녀예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시녀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누군가를 시녀로 부리는 건 싫으니까. 이래 봬도 민주주의 국가 사람이라서 말이지.]다음 장면은 병실.
전속 시녀 선언을 하는 올리비아에 맞서 듣기만 해도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대사를 치는 나.
아니 내가 언제 저런 말을 했다고.
이거 역사 왜곡 아니냐?
[······맛있네, 화과자.] [흐, 흥. 딱히 당신을 위해 사 온 건 아니니까요!]나는 맛있다고 한 적 없는데.
[하지만 그래도 저는 해야겠어요. 프랑스의 긍지와 보나파르트 황실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전속 시녀가 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당신의 의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요!]척.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말하는 애니메이션 속 올리비아.
이런 건 또 쓸데없이 고증을 잘해 놨다.
[마음대로 해라.] [좋아요. 그럼 오늘부터 저는 당신의 전속 시녀예요!]얼굴을 붉히며 웃는 올리비아.
벌써 역사 왜곡이 이 정도라니, 앞으로 나올 장면은 얼마나 더 끔찍할지.
참담하고 부끄러운 심정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이봐요, 당신!”
귓가에 진짜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란다.
고개를 돌리자, 얼굴을 붉힌 올리비아가 노출이 적은 빅토리안 메이드 복장을 입은 채로 옆자리에 앉아 내 귀에 손을 대고 있었다.
아니, 얘는 언제 또 내 옆자리에 앉았어.
“정말, 감히 프랑스의 황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기어이 옆자리로 오게 하다니! 당신, 매너가 정말 꽝이라고요!”
볼을 부풀리는 올리비아.
아무래도 내 옆자리에 앉지 못한 모습에 심통이 난 모양이다.
[맞아. 파트너. 매너가 정말 꽝이야!]머릿속에서 맞장구치는 흑태자.
빌어먹을 팔불출 같으니.
“그래. 옆자리 앉았으니까 이제 조용히 하고 영화나 보자.”
원래 영화 관람에서는 조용히 보는 게 매너기도 하고.
올리비아가 저렇게 소리치다가 다른 엑스트라들에게 발견이라도 되면 엄청나게 곤란하다.
검은 귀축 유니버스의 확장 따위, 별로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발 얌전히 있어 줬으면 좋겠다.
“흥. 영화 관람 매너 정도는 저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요!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뭘로 보시는 건가요?!”
올리비아가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그래, 알고 있다니까 다행이네.
올리비아의 붉어진 뺨이 부풀려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그 이후로도 끔찍한 상영은 계속됐다.
[나는 시노자키 린,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좋다, 받아들이지. 시노자키 린.]린이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에서 순순히 결투를 받아들이는 나.
벚꽃놀이는 더 가관이었다.
[우리가 모두를 지켜야 해! 게이트의 이계종으로부터 민간인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웅의 의무! 나는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나서겠어!]이노카시라 공원 호수에서 게이트가 열렸을 때 내가 히로인들을 모아놓고 하는 연설은 정말이지 못 들어줄 정도였다.
손발이 오글거린다.
무슨 뭘 지킨다고?
“어머! 검은 귀축이 게이트를 막았을 때 저랬다고?”
“생각보다 멋있을지도?”
“나라도 반했을지도 모르겠어······.”
엑스트라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누굴 라노벨 주인공으로 만드는 건지.
머리가 어질거린다.
[니시자와 에리의 징계 처분은 정당하지만, 그녀의 퇴학 처분은 부당합니다. 그녀가 항명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녀의 불행한 가정 환경이 원인입니다. 따라서 저는 니시자와 에리의 선처를 탄원하겠습니다.]이후 열린 징계위원회 장면.
멋있게 그려진 내가 니시자와 에리를 변호하고,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 장면이 나온다.
꼬옥.
손으로 개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주인님은 상냥해······.] [별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상냥하거나 한 게 아니야.] [주인님!] [흐앗?!]징계위원회가 끝난 뒤.
교정에서 에리가 내게 안기는 장면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속의 내가 얼굴을 붉히다가 품에 안긴 에리를 쓰다듬는다.
“히히히히······. 다시 봐도 좋아······. 에리링의 주인님······.”
앞쪽에서 에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검은 귀축, 정말로 상냥했던 거야?”
“니시자와 양의 개목걸이에 그런 사정이?!”
“오늘 다시 봤을지도, 검은 귀축······.”
“은하 제일 미소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아······. 크흑······. 아쉽지만 인정할 수밖에······.”
뒤이어 들리는 엑스트라들의 목소리.
저걸 보고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이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건가?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럽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이런 미친 짓은 이제 그만 둬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덥석.
올리비아가 손을 잡는다.
“흐, 흥······.”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보나파르트 양? 언제 저기에······.”
살짝 놀란 아리스가 이내 내 반대편 손을 슬며시 잡는다.
“······.”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살짝 붉어진 뺨이 보인다.
양쪽에 손을 구속당한 상황.
이제 벗어날 길은 없다.
나는 꼼짝없이 이 빌어먹을 교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시청각 고문을 계속해서 당해야만 했다.
벌써 임간학교.
쏴아아아아.
갑자기 비가 내리고, 린과 내가 온통 젖은 모습으로 동굴에 들어간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모닥불이 타오른다.
[역시 나는 여자로서 매력이 부족한 건가, 여자력도, 요리도, 육체적 매력도 전부······.]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는 린.
그녀가 흐느낀다.
진지한 BGM이 깔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나는······. 나는······.] [린, 너는 너야.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어. 여자력? 요리? 육체적 매력? 그런 건 상관 없어.] [왜냐하면 너한테는······. 너만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김덕성······!]내 느끼한 멘트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히는 린.
아니, 내가 저 때 저런 대사를 했다고?
아무리 봐도 안 했는데.
“큿······.”
앞쪽에서 린이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인다.
“시노자키의 아가씨가 넘어간 이유가 이거였어!?”
“나라도 반할 것 같아······.”
“헉, 나 방금 두근거렸어!”
“하렘 멤버 증식인 거야?!”
뒤이어 들리는 엑스트라들의 목소리.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이게 무슨 선전선동이야.
‘제발 그만둬······.’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혈압이 올라간다.
이대로면 나 죽는다고.
[그만두긴 뭘. 파트너. 재밌기만 한데.]흑태자의 헛소리와 함께 계속되는 시청각 고문.
이번에는 마코토였다.
남자 모습으로 전학을 왔던 마코토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멘토 외출로 들른 쇼핑몰.
[주군, 나 어울려?]마코토가 얼굴을 붉히면서 입고 있던 원피스를 내게 선보인다.
[응, 잘 어울려.] [남자 같지 않아?] [아니, 전혀. 마코토. 지금 그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리고 예뻐. 누가 뭐래도 너는 남자가 아니야 여자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응! 주군! 나, 자신감 가질게!]마코토가 붉어진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쥔다.
이제는 익숙해진 역사 왜곡.
“주, 주군······.”
앞자리에서 마코토의 말이 들린다.
[안 돼! 후배 군! 꺄아아아아아아악!] [겨우 이 정도였나? 일본 제일이라는 슈오우의 수준도 별 것 아니군······.] [네놈······. 감히······. 감히 호시노 선배를! 나의 호시노 선배를······!!] [나의 호시노 선배를 상처 입히다니!! 절대 용서 못 해!!]계속해서 애니메이션이 진행된다.
이번에는 교토 연수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