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39)
교토 관광 장면을 지나 카스미 선배가 아키텍트에게 상처 입는 장면이 나온다.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흥분해서 대사를 내뱉는 내 모습.
“후배 군······. 역시 후배 군이야······!”
이번에 들리는 건 카스미의 목소리.
“검은 귀축한테 이런 사연이······!”
“나, 전혀 몰랐어······.”
“검은 귀축, 다시 보면 좀 잘생긴 것 같지 않아? 좀 양아치처럼 생기긴 했지만······.”
“몸은 엄청 좋잖아?”
대체 한국에서는 뭘 만들어낸 거지?
엑스트라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어지럽다.
다음으로는 축제 장면과 불꽃놀이 장면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이 기나긴 시청각 고문의 끝이 보인다.
[올리비아] [구하러 왔다. 약속대로.]콰광!
굉음과 함께 천장이 부서지며 등장한 나.
그 모습을 본 애니메이션 속 윌리엄이 기분 나쁘게 웃는다.
[감히 이 나의 올리비아한테 손을 대려고 하다니······. 검은 귀축 주제에······.]포스터에 있는 빌런 그림자랑 실루엣이 똑같네.
윌리엄이 포스터에 있는 빌런이었나.
어이가 없네.
“김덕성님! 윌리엄을 처치해주시와요!”
에반젤린이 소리친다.
“검은 귀축 파이팅!”
“힘내! 저런 놈한테 기사공주님을 빼앗기지 마!”
“저런 녀석 따위, 해치워 버리고 기사공주님을 구원하라고!”
다른 엑스트라들이 외친다.
제발, 제발 이제 그만해줘.
어쩔 수 없다.
최소한 시각이라도 차단해야겠다.
눈을 감으려고 한 그때.
“흐······. 흥······.”
옆에 있던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힌다.
그녀의 푸른 시선이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파트너, 설마 눈 감으려고 한 건 아니지?]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묻는다.
한숨을 쉰다.
그래, 내 팔자가 그럼 그렇지.
어차피 이 빌어먹게 긴 애니메이션 상영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윌리엄과 내가 싸우는 모습, 흑막의 지시에 따라 괴인으로 변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올리비아가 각성해 괴인으로 변한 윌리엄을 썰어버리는 모습이 나온다.
“검은 귀축 만세!”
“검은 귀축이 기사공주님을 구했다!”
“이래서 다들 반했구나······. 몰랐어······.”
“이렇게 멋있는데 침대 위에서도 힘이 좋다면 다들 안 반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검은 하렘왕이라는 별명이 더 어울릴지도?”
관객석에서 나오는 함성.
극장 매너는 대체 어디다 갖다 버린 거냐고.
마지막 장면은 슈오우 영웅 학원에 도착한 나와 올리비아, 마코토, 에리, 카스미 선배, 린을 보여주면서 카메라가 하늘로 이동하면서 끝났다.
드디어 끝이네.
이제 이 빌어먹을 고통도 더 이상 안 겪어도 되겠지?
스탭롤이 올라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K-POP 풍으로 리믹스된 아리랑이 스탭롤과 함께 흘러나온다.
일본 문화제에서 듣는 아리랑이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제 진짜 끝이지?
라고 생각한 그때.
쿠키 영상이 나온다.
[여름이다! 바다다!]그렇게 외치는 수영복 입은 에리, 린, 카스미 선배, 마코토, 올리비아를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난다.
방금 거 2기 예고였지?
이걸 또 한다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상으로 상영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청해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곧 발매될 TVA판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회를 맡은 한서진이 끔찍한 예고를 한다.
짝짝짝짝짝.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친다.
“최고였어!”
“검은 귀축, 의외로 멋있을지도?”
“TVA 나오면 무조건 볼래!”
마지막까지 가슴에 비수를 꽂는 관객들의 웅성거림을 끝으로, 상영회가 마무리됐다.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면서 끔찍했던 애니메이션을 기억에서 지우려 발버둥 쳤다.
가장 큰 고비를 겨우 넘겼다. 그러니 오늘 남은 일정은 이제 별거 없다.
문제는 내일이다.
내일은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가 열리는 문화제 둘째 날.
원작에서 마에다 신지와 트릭스터 위치가 학원을 테러했던 그날이다.
원작과 흐름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김덕성군. 이제 다음 클래스로 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아리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화제 현장 점검을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다.
주인님의 매력 포인트
그렇게 내가 아리스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그때.
“뭐, 뭐예요?! 당신. 벌써 가는 건가요?!”
덥석.
올리비아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올리비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우우, 주인님. 우리 몰래 도망가려고 했던 거야?”
에리가 볼을 부풀린다.
도망가다니?
“기사공주랑 학생회장 선배만 편애하는 나쁜 남자 후배 군······. 소녀의 순정을 잔혹하게 짓밟는 후배 군은 나빠.”
카스미 선배가 얼굴을 빼꼼 내밀면서 이쪽을 바라본다.
“주군, 이제 가는 거야······?”
“덕성, 조금만 더 우리와 같이 있어 주면 안 되겠나?”
마코토가 소심한 얼굴로 말하고, 린이 입술을 깨문다.
아니 아주 가는 것도 아닌데.
메이드복을 입고 단체로 저러니까 누가 이상하게 볼까 봐 겁난다.
이대로 그냥 갈까, 싶더라도.
“으으으으······.”
내 손을 붙잡고 볼을 부풀리며 얼굴을 붉히는 올리비아를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저길 봐, 검은 귀축이랑 하렘 멤버들이야!”
“꺄아아아아아아!”
“사인해주세요!”
주변 사람들이 우후죽순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사인?
대체 무슨 사인을 해달라는 거지?
내가 당황하던 그때.
“이렇게 한번에 밀집하면 김덕성님께서도 난감하니 줄을 서시길 바랍니다.”
한서진이 앞에 나와서 인파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오, 파트너. 사인회 하는 거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갑자기 사인회 분위기 뭐냐고.
“주인님! 여기 앉아!”
드르륵.
에리가 어디선가 꺼내 온 내 책상을 놓으며 말한다.
책상 위에는 이미 사인용 네임펜과 사인용 종이가 놓인 상황.
아니 이거 대체 누가 세팅했어?
“어쩔 수 없죠. 사인, 하고 오세요.”
아리스가 팔짱을 끼면서 나를 바라본다.
마지막 희망인 아리스까지 사인회를 인정하면서, 이미 사인회는 빼도 박도 못하는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사인회 시작하겠습니다.”
한서진의 한마디와 함께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꺄아! 검은 귀축이다!”
“실물이 더 양아치스럽게 생겼어요!”
“눈 마주쳤어! 가버릴지도 몰라!”
엑스트라들의 헛소리는 평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들이 내미는 사인 용지에 네임펜으로 사인을 해줬다.
여기가 무슨 한국도 아니고.
일본에서 빌어먹을 사인회를 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덕성쨩! 여기 사인해줘!”
드르륵.
나를 보고 마주 앉은 사오리가 웃으면서 가슴을 내민다.
“어디?”
“여기.”
쿡쿡.
자기 가슴을 가리키는 사오리.
그녀의 안경이 반짝거린다.
누가 4차원 천재 캐릭터 아니랄까 봐, 사인 요구 부위도 아주 가관이다.
“크흑, 형님께서 사오리마저 함락을······.”
옆에서 이시하라의 헛소리가 들린다.
“다른 데 해.”
“사오리, 덕성쨩의 사인을 꼭 여기 받고 싶은데.”
사오리가 웃는다.
절대 안 물러날 태세.
뒤를 본다.
줄이 꽤 길다.
여기서 시간을 더 허비할 수는 없다.
한숨을 쉬면서 사오리가 입고 있는 티셔츠 가슴팍에 사인을 휘갈긴다.
“고마워! 덕성쨩! 평생 가보로 간직할게!”
사오리가 물러난 다음 내가 맞이한 상대는.
“김덕성님! 후후. 사인회는 처음이라 긴장되는 것이와요!”
풍성한 핑크 트윈테일이 인상적인 미소녀.
영국 공주 에반젤린이었다.
부욱.
그녀가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수많은 굿즈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김덕성 부채, 김덕성 포토카드, 김덕성 클리어파일, 김덕성 응원봉 등등.
마지막으로 김덕성 캐릭터가 그려진 크로스백까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에반젤린이 핑크색 눈동자를 빛낸다.
“소녀, 김덕성님의 사인회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와요! 그럼 사인, 부탁드리는 것이와요!”
초롱초롱한 핑크색 눈동자.
처음부터 사인받으려고 이 많은 굿즈를 전부 들고 온 거냐고.
게다가 가방까지 굿즈라니.
[오우, 에반젤린 양. 덕성사랑 영국지부 회장이라더니 장난 아닌데?]흑태자가 머릿속에서 놀란다.
“그래. 알았다.”
이제는 그냥 포기했다.
체념하고 네임펜을 들어 일일이 굿즈에 전부 사인을 해준다.
“하와와와와······. 김덕성님······. 고마운 것이어요······.”
사인이 끝나자 에반젤린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굿즈를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은 뒤 자리를 떠난다.
“어머, 언제 영국의 공주님까지 함락시킨 거야?!”
“프랑스에 이어 이제는 영국까지······. 검은 귀축, 어쩌면 프린세스 킬러일지도?”
“백년 전쟁이 다시 일본에서 일어나는 거야?!”
수군거리는 엑스트라들.
안 그래도 빌어먹을 사인회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고 있던 그때.
“김덕성님! 저도 사인······.”
코토리 베이지의 미녀가 자리에 앉는다.
이번에는 유세라다.
그녀가 소심하게 사인 용지를 내민다.
얘는 저번에 한국에서 사인받아가지 않았나?
나는 살짝 의문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사인을 해줬다.
사인을 받아든 유세라가 얼굴을 붉히며 물러난다.
그 이후로도 사인회는 마라톤처럼 계속됐다.
수많은 사인 용지에 네임펜으로 사인을 한 뒤에야 기나긴 사인 행렬이 끝났다.
정신적으로 지친다.
상영회에 사인회까지 끝난 뒤.
유세라, 사토우 레나, 이시하라 사오리, 에반젤린은 문화제를 더 구경하고 싶다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 빠져나갔다.
이시하라 다이키와 쿠로사와 유지 역시 반을 나갔고.
그렇게 1학년 A반 교실에는 나와 올리비아, 카스미 선배, 마코토, 에리, 린, 그리고 한서진과 하루, 학생회장인 아리스만 남게 되었다.
척.
올리비아가 허리에 양 손을 올린다.
“이봐요 당신!”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오늘 애니메이션 상영, 어땠나요? 따, 딱히 당신의 의견이 신경 쓰여서 묻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요! 착각하지 말고요!”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린다.
“맞아. 주인님. 주인님과 우리들의 단단한 인연을 그린 스토리! 감동적이지?”
불쑥.
옆에 있던 에리의 주황색 트윈테일이 흔들린다.
“후배 군, 애니메이션 재미있었지?”
“주군, 역시 우리가 최고지?”
카스미 선배와 마코토의 시선이 내게 향하고.
“나는 네 감상이 궁금하다. 말해다오. 덕성.”
린이 커다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감상?
나더러 그 끔찍한 애니메이션의 감상을 말해 달라는 건가?
“······.”
한서진이 아무 말 없이 이쪽을 응시한다.
다른 히로인들과는 달리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검은 눈동자 안에 잠재된 광신적인 국뽕의 열기가 이쪽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두렵기 짝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
씹덕 시절에 봤다면 갓애니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빌어먹게 오글거리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나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씹덕이 아니라는 거겠지.
무엇보다.
“다 좋은데 스토리가 너무 역사 왜곡 아니냐? 내가 언제 애니메이션에 나온 대사처럼 말했다고.”
나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처럼 소년 만화나 라이트 노벨 주인공 같은 오글거리는 대사를 친 적이 없다.
내 말에 에리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주인님. 부끄럼쟁이네. 완전 츤데레야.”
뭐?
부끄럼쟁이? 츤데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