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40)
“이번만큼은 빨래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군. 덕성. 너는 츤데레가 틀림없다.”
뒤이어 린까지 가세한다.
“후배 군은 소녀의 순정을 마구 짓밟는 나쁜 남자지만 솔직하지 못한 점은 귀여워.”
카스미 선배가 얼굴을 붉힌다.
대체 무슨 소리야?
아니 이거 역사 왜곡이라니까?
내가 황당해서 뭐라 하려던 순간.
“주군, 나는 알고 있어.”
마코토가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주군, 사실 마음속으로는 우리한테 상냥하게 말하고 싶지만, 솔직하지 못한 부끄럼쟁이 츤데레라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이 애니메이션은 주군의 ‘마음의 소리’를 반영했을 뿐이야.”
마코토가 의외로 소심한 그녀답지 않게 당당한 말투로 길게 이야기한다.
[오, 카미야 양의 말 정확한데, 파트너. 내가 보기에도 심각한 왜곡 같은 건 없었다고.]흑태자가 마코토의 말에 맞장구친다.
“마코삐 말이 맞아! 주인님, 입은 험하지만 사실 상냥한 사람이라는 사실. 에리링은 알고 있는걸? 히히. 겉은 까칠하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 이게 주인님의 매력 포인트야!”
찡긋.
에리가 윙크한다.
그녀의 고양이 귀가 쫑긋거린다.
“흠흠. 그래, 덕성.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네 본심을 전부 알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솔직해져도 괜찮다.”
린이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하며 말한다.
누구 본심을 알고 있다고?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캐릭터가 되어버린 거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교실 안에 쓸데없이 훈훈한 분위기가 흐른다.
올리비아에게 시선을 돌린다.
츤데레인 올리비아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츤데레 멘트로 이 알 수 없이 불쾌하게 훈훈한 분위기를 깨 주겠지?
“······흥. 적어도 저 건방진 꼬맹이보다는 우리가 저 바보를 더 잘 알고 있다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저 바보와 가까운 건 전속 시녀인 이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구요! 아시겠나요?! 쿠로사와 하루 씨?!”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말한다.
올리비아의 손가락이 하루를 가리킨다.
아니 불똥이 왜 거기로 튀어?
그 모습을 본 하루가 입으로 손을 가리며 웃는다.
“헤에? 언니들. 이거 설마 하루 견제용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야? 초 웃겨. 니시시시.”
“흥. 그쪽은 견제할 가치도 없는 꼬맹이에 불과할 뿐, 이 애니메이션은 그와 우리들의 단단한 인연의 차이에서 나오는 격차를 그쪽한테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만든 수단에 불과해요!”
척.
올리비아가 하루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올리비아의 말에 린, 마코토, 카스미 선배, 에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를 노려본다.
“흐응, 확실히 하루는 꽤 최근에 덕성 오빠 하렘에 합류했지만······.”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래도 하루. 언니들한테 질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걸? 왜냐하면 하루, 지금도 실시간으로 오빠의 최애캐에 초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니시시시.”
“뭐라고요?!”
하루의 말에 반발하는 올리비아.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하루에게 쏠렸다.
급격하게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오던 그때.
덥석.
아리스가 내 손목을 잡았다.
“이 촌극을 계속해서 보고 있을 이유가 없군요. 김덕성군. 이 틈을 타서 우리는 나가도록 합시다.”
그녀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인다.
그래.
어쩌면 하루가 어그로를 끌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탈출 기회일지도 모른다.
현장 점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나는 아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실에서 하루와 올리비아가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서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드르륵, 탁.
미닫이문이 조용히 닫힌다.
복도로 나오니 조금 살 것 같다.
숨을 들이쉰다.
“이제 다음 반으로 갑시다.”
악몽 같은 애니메이션 상영회와 사인회도 이제 끝이다.
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리스를 다음 반으로 인도하려고 하던 그때.
“김덕성군. 아까 봤던 애니메이션······.”
아리스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제 분량이 많이 적었습니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리스가 살짝 삐친 무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진짜 돌겠네.
*
1학년 A반 교실.
김덕성을 두고 하루와 올리비아를 포함한 요리부 히로인들 사이의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유일하게 무표정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회색 단발 정장 미녀, 한서진이었다.
‘그분께서 가셨구나.’
신경전에 정신이 팔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김덕성이 아리스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깨달은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가슴팍에 끌어안았다.
‘국내 흥행 실적은 그분께서 일과를 끝낸 뒤에 보고해야겠어.’
김덕성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을 이야기였다.
선전포고
슈오우 영웅 학원.
1학년 A반 교실.
관객이 전부 퇴장한 극장 같은 공간 내부에서, 에리가 볼을 부풀리고 있다.
“흥, 하루. 네가 그렇게 말해봤자 에리링과 주인님 사이는 단단하고 끈끈한 인연으로 묶여 있다구!”
에리가 개목걸이를 손으로 만지작댄다.
개목걸이에서 온기가 전해지는 기분.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야······.”
주인님이 직접 채워준 개목걸이는 그녀와 주인님을 잇는 인연의 증표.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오직 그녀만을 위해 내려준 주인님의 유일한 하사품이다.
에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에리링 언니. 설마 개목걸이 보고 그런 말 하는 거야? 그런 말 하면서 개목걸이 만지작댈 때마다 초 웃겨. 게다가 에리링 언니, 하루보다 가슴 작잖아. 절벽. 빨래판.”
하루의 말에 에리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하루의 가슴으로 향한다.
분하게도 하루의 말은 팩트였다.
꽉 찬 B컵보다 훨씬 더 볼륨감 있어 보이는 하루의 가슴.
“게다가 하루는 에리링 언니보다 어리다구. 니시시시.”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아무튼 에리링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한테는 절대로 질 생각 없으니까!”
에리가 얼굴을 붉힌다.
“니시시시. 그래?”
하루의 말에 에리가 뭐라 하려던 그때.
탁.
에리 옆에 있던 시노자키 린이 나선다.
“이번만큼은 빨래판과 보나파르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군. 하루. 너와 우리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시노자키 린의 시선이 하루에게 향한다.
10년 전에는 친자매처럼 지냈던 하루였고, 그 감정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자매보다는 연적으로서의 경쟁 심리가 더 강했다.
“지이이이이이······.”
“후배 양은 제법 건방지구나······.”
마코토와 카스미가 하루를 노려본다.
“린 언니가 에리링 언니를 감싸주다니. 하루가 그만큼 초 위협적이라는 뜻이구나? 마코삐 언니는 지이이이 소리 내는 거 여전하네. 니시시시. 초 웃겨.”
니시시시.
하루가 웃고 있던 그때.
척.
올리비아가 가슴에 손을 올린다.
그녀의 푸른 시선이 하루에게 향한다.
“잘 들으세요. 쿠로사와 하루. 그 바보한테 접근하고 싶다면 전속 시녀인 이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허락부터 받으라고요. 아시겠나요?!”
올리비아의 푸른 눈동자와 하루의 붉은 눈동자가 서로 마주한다.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의 황녀이자 백금의 기사공주.
그리고 김덕성과 만난 첫 번째 히로인이자, 그의 전속 시녀이며 동시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히로인.
하루에게 있어서는 최애캐인 아리스와 함께 가장 주의해야 할 난적이기도 했다.
“그래? 하지만 하루는 지금 언니들이 하루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보는데. 방금 그 행동, 하루 스코어 대량 감점이기도 하구.”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게 무슨 소리죠?!”
하루의 의미심장한 말에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되묻는다.
하루가 입을 가리며 웃는다.
“언니들 덕성 오빠가 아-쨩 언니랑 이미 사라진 거 모르는구나? 하루 스코어 또 다시 대량 감점이야.”
하루의 말에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올리비아, 린, 마코토, 에리, 카스미.
하지만 하루의 말대로 김덕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소란을 틈타 아리스와 함께 클래스를 벗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린의 얼굴이 굳는다.
“정말 사이온지 선배가 주인님 데려간 거야?”
에리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가 살짝 떨리는 손으로 개목걸이를 잡는다.
“권력 남용이야······. 우우우우······.”
카스미가 볼을 부풀린다.
“주군······.”
마코토가 김덕성을 부르고,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사이온지 회장님이······. 이럴 수가······.”
아리스가 잠재적 경쟁자라는 사실은 다들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었다.
교토 교류전 때 동침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생도들 사이에서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계속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리스 본인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고, 학생회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항상 우선순위로 뒀으며 아리스 본인이 아직 연심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아리스를 그다지 강력한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다 그녀들은 아리스의 실체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리스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공명정대하며,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고, 학생회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에 따르는 의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리스였다.
그렇기에 김덕성이 실행위원이 되었어도 그녀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회장 직무 수행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아리스라면, 김덕성에게 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테니까.
“아-쨩 언니야말로 완전 초 강력한 경쟁자라구. 하루도 물론 초 강력하지만, 지금은 하루를 견제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야. 언니들. 초 물러.”
하루의 말에 침묵이 흐른다.
“게다가 소문 못 들었어? 매일 오빠랑 아-쨩 언니랑 단둘이 특훈하는 연습실에서 초 파렴치한 소리가 흘러나온대. 니시시시.”
“하지만 그, 그건 근거 없는 소문일 뿐······.”
올리비아가 히로인들을 대표해서 말한다.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언니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하루의 말에 말문이 막힌다.
올리비아, 린, 카스미, 마코토, 에리.
그녀 모두 하루의 말에 마음이 동요하는 걸 느꼈다.
분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다.
지금도 아리스가 아무 말 없이 그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는가?
“어쩌면 하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사이온지 선배가 복병일지도 몰라.”
가장 먼저 하루의 말에 동조한 건, 그녀와 친분이 있었던 린.
“으으으, 에리링도 불안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사이온지 선배가 어쩌면 주인님한테 은근히 꼬리 치고 있을지도 몰라!”
에리가 입술을 우물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쪽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쿠로사와 하루.”
올리비아가 팔짱을 낀 채로 하루를 바라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그녀의 푸른 시선이 하루를 향한다.
“하루가 하고 싶은 말은 초 간단해. 아-쨩 언니한테 초 귀여운 하루랑 언니들이 같이 힘을 합쳐 선전포고하자는 거지.”
선전포고.
그 말을 들은 카스미가 하루를 바라보며 의문을 제기한다.
“선전포고라니, 어떻게 하자는 걸까. 후배 양은?”
스윽.
카스미의 질문에 하루가 들고 있던 손가방에서 포스터를 꺼내 펼친다.
탁.
책상 위에 포스터가 펼쳐진다.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 [참가 자격: 슈오우 학원 여생도라면 누구나 OK☆]하루가 펼친 건 문화제 둘째 날인 내일 개최되는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 포스터.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덕성 오빠의 후야제 포크댄스 파트너가 되는 걸로.”
하루가 니시시 웃는다.
“어때, 언니들?”
하루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는다.
후야제 포크댄스.
문화제 마지막 행사이자, 원하는 상대와 단둘이 춤을 출 수 있는 찬스.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사이온지 선배도 견제할 수 있고, 공정하지 않아? 혹시 사이온지 선배가 권력을 남용해서 오빠를 포크댄스 파트너로 지명하면 초 곤란하다구.”
하루가 거기에 쐐기를 박는다.
하루의 눈동자가 진지한 빛으로 물든다.
하루는 알고 있었다.
아리스는 지금까지 학생회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스스로의 연심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그 상태가 이르면 내일, 늦어도 후야제 전까지는 끝날 거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김덕성은 다른 언니들처럼 아리스를 구하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건 아리스가 구원받는다면 마침내 본인의 연심을 자각하고 인정할 거라는 사실을.
스스로의 연심을 자각한 아리스는 김덕성의 마음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하루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 초 귀여운 갸루 여동생 하루가 선수를 쳐야 해.’
연심을 자각한 아리스는 올리비아 이상으로 무서운 상대다.
하루는 그렇게 판단했다.
안 그래도 최애캐라는 사실 때문에 알게 모르게 편애가 들어가는 아리스였다.
지금이야 아리스가 스스로의 마음을 부정하기 때문에 별다른 이벤트가 안 발생하고 있지만, 연심을 자각한 아리스가 노골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아리스가 연심을 자각하기 전에 언니들과 힘을 합쳐 그녀에게 선전포고해서 포크댄스 파트너에 입후보할 기회를 만든다.
그것이 하루의 계획이었다.
“확실히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군. 합리적이야. 나는 하루의 제안을 따르겠어.”
가장 먼저 동의한 건 린.
“분하지만 에리링도 쿠로사와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지금 싸울 때가 아닌 것 같아.”
그다음은 에리였다.
“후배 양은 의외로 조리 있게 말을 잘하네요.”
“에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카스미와 마코토가 하루의 말에 동의한다.
네 명의 동의를 받아낸 하루가 올리비아를 바라본다.
“올리브 언니는, 하루 제안 어떻게 생각해?”
하루의 눈빛을 받은 올리비아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하루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은 다른 소녀들과는 다르게 하루는 뉴 페이스라 꺼려지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그런 미약한 거부감만으로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하루의 제안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미인대회 우승자를 포크댄스 파트너로 한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공정하며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선전포고 날짜는 정했나요?”
“내일 아침. HR 시작 전.”
올리비아의 말에 하루가 눈을 반짝인다.
“학생회장실에서 할 거야. 언니들은 그때 학생회관으로 오면 돼.”
니시시시.
하루가 웃음을 남긴다.
하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던 한서진의 눈동자가 차갑게 반짝인다.
‘쿠로사와 하루, 도중에 레이스에 참가한 뉴 페이스인데도 모두를 휘어잡다니······. 보통내기가 아니군요.’
한서진의 하렘 계획에 주시 대상이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
애니메이션 상영회 이후의 현장 점검은 별 것 없었다.
살짝 삐진 아리스는 금방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귀신의 집 같은 걸 체험하면서 현장 점검을 마무리했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김덕성군.”
“알겠습니다. 사이온지 선배.”
현장 점검이 끝난 이후, 아리스의 작별 인사를 받고 난 뒤에야 나는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문화제 첫째 날이 끝날 시기.
오늘의 행사도 슬슬 마무리 단계인지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교정을 지나 숙소에 도착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김덕성님.”
한서진이 깍듯이 인사하며 나를 맞이한다.
씻고 난 뒤에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여기저기 쏘다니고, 애니메이션 상영회니 코스프레 카페니 뭐니 다녀온 탓에 정신적 피로가 쌓여 온몸이 노곤하다.
이제 좀 자볼까 하던 그때.
“김덕성님.”
한서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뭐지?”
내 질문에 한서진이 말없이 태블릿 PC를 내민다.
무심코 시선이 한서진이 내민 태블릿 PC화면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강 대통령 영화 관람 도중 오열하는 모습 포착······. “너무나 감동적인 영화. 우리 시대의 영웅인 성웅 김덕성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 찬사를 보낸다.”]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 개봉 1일차 누적 관객수 200만 돌파······. 개봉 첫날부터 사상 최고 오프닝, 최고 일일 관객수 기록 갱신······.] [성웅 vs 성웅의 대결?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 2000만 관객 돌파 가능성은? 역대 국내 흥행성적 1위 영화 ‘명량 해전’보다 더 빠른 성장세] [(봉 감독 인터뷰)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영웅의 귀감이 되는 이야기. 성웅 김덕성님의 연대기를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낸 따뜻한 애니메이션]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 PV 영상 공개 일주일만에 글로벌 1억 뷰 돌파!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이미 초토화 상태! 일본이 경악하고 미국이 칭찬한 K-애니메이션의 정수 지금 개봉!] [세계를 휩쓰는 K-애니메이션의 위력! 일본 열도를 정복하다! 전 세계가 K-영웅 김덕성에 열광하는 이유는? 세계 최강 K-문화산업이 K-영웅과 만나면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 집중 조명!] [세계는 21세기에 머무르는데 한국만 23세기에 있는 이유는?! 전 세계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23세기형 K-애니메이션의 놀라운 비밀은?] [한국이 드디어 해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클래스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K-POP, K-Food, K-영화, K-드라마에 이어 이제는 애니메이션까지!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K-애니메이션 검은 머리 소년의 영웅담 하이라이트 모음!]빌어먹을 국뽕거리가 있었다.
뭘 어떻게 해?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마주친 국뽕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제발 그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