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51)
빛나는 하이라이트 조명이 아리스를 비춘다.
아리스의 복장은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촌스러운 검은 세라복, 빨간 리본, 도수 높은 뱅뱅이 안경, 양갈래로 땋은 머리.
원작 라노벨에서는 흑백 삽화로 한 컷, 애니메이션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나오는 시골 소녀 모습이었다.
관중들이 술렁술렁할 만했다.
“존경하는 슈오우 생도 여러분. 8번 참가자 사이온지 아리스입니다.”
아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저는······. 저는 과거의 제가 정말 싫었습니다. 촌스럽고, 굼뜨고, 수수하고, 바보 같은 제 모습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고향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능력을 각성하고 도쿄로 상경한 뒤, 제 모습을 버리려 노력했습니다.”
아리스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사투리도 고치고, 안경도 벗고,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성격도 바꾸고······. 정말 모든 걸 바꾸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완벽 초인, 학원 최강.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의 가면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방금까지 왁자지껄했던 관중석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완벽한 학원 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우 여러분들한테 칭찬받고, 모두한테 인정받는 학생회장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면을 쓰면 쓸수록 ‘원래의 저’는 제 마음 안에서 트라우마로 계속해서 커졌습니다.”
아리스가 가슴팍을 움켜쥔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불안했습니다. 모두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제 진짜 모습을 들키면 그때처럼 다시······. 외톨이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습니다.”
아리스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어깨가 떨린다.
“그때였습니다. 김덕성군이 제 비밀을 알아차린 건. 제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지만······. 저는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김덕성군은 저를 이해하고 긍정해줬습니다. 제 비밀도 숨겨줬습니다. 덕분에 저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내 이야기라니?
당황스럽다.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검은 귀축이 그랬다고?”
“회장의 비밀을 숨겨준 검은 귀축······. 의외로 상냥할지도?”
“내가 회장 선배였더라도 반했을 것 같아!”
“회장 선배가 매일 밤 검은 귀축의 침대로 숨어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엑스트라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침대로 숨어든다니.
어이가 없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던 동안에도 아리스는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풍기위원장이 제 비밀을 모두한테 공개해버렸을 때, 저는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김덕성군 특정 한 사람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제 비밀이 알려졌다는 사실에 저는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저 대신 김덕성군이 상처 입었을 때도, 부끄럽게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욱신.
붕대 감은 왼팔이 아직도 살짝 쑤신다.
무슨 흑염룡도 아니고.
지혈로 재빨리 응급 처치를 한 뒤에, 슈오우 학원 부속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서 다행이다.
“생도 여러분들이 저를 비난할 것 같아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망상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습니다.”
아리스가 고개를 든다.
“김덕성군도, 생도 여러분들도 제 본모습을 긍정하고 이해하고 받아줬습니다. 덕분에 시골 소녀 사이온지 아리스는 구원받았고, 저는 제 본모습을 비로소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묶은 머리를 풀자 찰랑거리는 은발이 휘날린다.
아리스가 안경을 벗자 반짝이는 은빛 눈동자가 드러난다.
“저 사이온지 아리스는 이제야 비로소 진짜 슈오우의 학생회장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생도 여러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정말 고맙습, 아니 참말로 고, 고맙데이······.”
사투리로 마무리한 그녀의 연설이 끝나자 잠깐의 침묵 후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회장 선배 최고!”
“역시 사이온지 선배!”
“사투리 귀여워요!”
“너무 기 죽지 마세요!”
“회장 선배는 영원한 우리 회장님이에요!”
상냥한 세상답게 아리스에게 환호를 날리는 관중들.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동안 힘들었구나. 아-쨩······.”
손에 든 레이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세이라의 모습이 보인다.
“크흑······. 회장 선배······.”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는 여장한 쿠로사와 유지.
“선생님, 감동 받았어요······.”
마유즈미 선생님 역시 울고 있다.
[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저도 눈물이 납니다······.]사회를 맡은 노도카까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황.
“미스 슈오우의 왕관을 차지하는 사람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이온지 아리스. 아니 아-쨩한테 한 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아리스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아리스를 보고 있던 이치로가 버튼 위에 손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옅게 웃는다.
“이런 상황에서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 기권하겠다.”
삑.
버튼이 눌린다.
[협회장님! 심사 기권을 선언했습니다!]노도카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 협회장님. 그거 0점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요?”
옆에서 모리시타 미호가 말한다.
“엄연히 다르다. 크흠.”
협회장 이치로가 부회장의 말에 대답하고 있던 그때.
“저도 기권하겠습니다.”
유지가 버튼을 누른다.
삑.
0점 대신 쏟아지는 기권 세례.
세이라와 부회장 모리시타 미호,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심사위원이 기권했다.
“훌륭한 연설이었어요. 회장님. 10점 만점에 10점 드리겠습니다!”
삑.
모리시타 미호가 버튼을 누른다.
전광판에 10점이 떠오른다.
“흐음······.”
세이라가 침음을 흘린다.
그녀의 손가락이 버튼을 탁탁 두드린다.
“이 몸이 아-쨩한테 10점을 주면 이 자리에서 우승이겠지만······.”
마이크가 꺼진 상황.
세이라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이 맞다.
어차피 나는 모든 히로인들에게 10점을 주기로 각오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세이라가 10점을 주면 총합 30점으로 아리스가 간단히 우승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는 문화제의 꽃. 미스 슈오우를 결정하는 건 심사위원이 아닌 관중이어야 의미가 있겠지. 여기서는 기권을 통해서 관중 투표로 넘기는 것이 맞을 것 같구나.”
무슨 대통령 선거도 아니고.
왜 저렇게 진지한 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아-쨩이 관중 투표에서 질 것 같지도 않으니라. 아-쨩의 우승은 모두의 손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좋겠지. 그렇다면 이 몸도 기권하겠다.”
삑.
세이라가 버튼을 누른다.
[이사장님도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현재 사이온지 아리스 양의 점수는 10점! 남은 심사위원은 생도 대표, 검은 귀축 김덕성군뿐입니다! 김덕성군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흥분한 노도카가 마이크를 잡고 떠들어댄다.
어떤 선택은 무슨.
내 점수는 정해져 있다.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누른다.
삑.
전광판에 10점이 떠오른다.
[10점! 10점 나왔습니다! 설마 하던 전원 동점! 이렇게 되면 대회 규율에 따라 관중 투표를 통해서 미스 슈오우를 뽑게 됩니다!]관중 투표.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방식이다.
아니 원작에서는 아리스의 시골 소녀 연설 자체가 없었다.
물론 7권의 타이틀이 아리스인만큼, 원작의 우승자는 아리스였지만 말이다.
[그럼 관중 여러분. 버튼을 눌러주세요! 투표 시작하겠습니다!]노도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와 함께 조명이 꺼진다.
삑! 삑! 삑!
어둠에 잠긴 메인 아레나 관중석에서 버튼 누르는 효과음이 울린다.
탁.
조명이 켜진다.
[관중 투표 끝났습니다!]노도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무대 위에는 지금까지 나왔던 참가자들이 전부 서 있다.
하루, 올리비아, 카스미 선배, 린, 아리스, 에리, 마코토의 일곱 미소녀다.
스태프로 보이는 생도 하나가 봉투를 노도카에게 전달한다.
[지금 막, 투표 결과가 제게 도착했습니다!]스윽.
노도카가 봉투의 봉인을 떼어낸다.
[그럼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의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의 우승자는······.]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말끝을 흐리는 노도카의 진행에 모두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린다.
*
“그럼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의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의 우승자는······.”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 무대 위.
수많은 관중 앞, 진행자 노도카의 말에 일곱 미소녀는 제각기 긴장된 표정으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온지 아리스 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마침내 발표된 결과.
동시에 폭죽과 축하 음악이 흘러나온다.
결과를 들은 아리스의 뺨이 떨린다.
“내, 내가 우승이라고······?”
그녀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반쯤 오기로 참여한 미인대회였다.
우승은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본모습을 받아준 모두에게 감사하기 위해 나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덜컥 우승해버릴 줄은 몰랐다.
“정말······?”
“그래, 정말이야. 회장 선배.”
아리스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니시자와 에리가 있었다.
에리가 웃는다.
“솔직히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이 우승 못 한 건 좀 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선배의 우승을 인정할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에리링도 어쩔 수 없잖아.”
“빨래판의 말이 맞습니다. 사이온지 선배.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에리 옆에 있던, 무녀복을 입은 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사이온지 선배, 어서 가요.”
“회장 선배. 우승 축하해. 왕관이 기다리고 있어.”
카스미가 아리스의 등을 떠밀고, 마코토가 왕관을 언급하며 웃는다.
“쳇. 회장 선배. 치트키 쓰는 거 초 치사해.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다음번에는 절대로 안 봐줄 테니까. 이 하루가 덕성 오빠의 최애캐가 되고 말 거야. 그러니까 각오해. 니시시.”
하루가 옆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니시시시 웃는다.
“흥.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결과지만······. 생도들의 결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죠. 특별히 이번 한 번만 봐 드리겠어요. 회장 선배. 저한테 감사하라고요. 아시겠나요? 무, 물론 그렇다고 전속 시녀로서 선배를 인정한다는 건 절대 아니니까요! 착각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린 채 얼굴을 붉힌다.
그 모습을 본 아리스의 뺨이 떨린다.
“너희들······.”
서로 경쟁 관계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승하면 미움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후배들은 상냥하게도 자신의 우승을 인정하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와락.
아리스가 후배들을 끌어안았다.
“참말로 고맙데이!”
아리스의 품에 안긴 후배들의 얼굴이 붉어진 순간.
“미스 슈오우 선발대회 우승자, 사이온지 아리스 선배.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진행자 노도카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린다.
아리스의 시선이 돌아간다.
“지금부터 미스 슈오우 왕관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끼리릭.
스태프 역할을 맡은 생도들이 화려한 왕관이 놓여 있는 카트를 끌고 무대로 나온다.
“왕관을 수여할 심사위원은······. 검은 귀축 김덕성군입니다!”
노도카의 선언과 함께 교복 차림의 김덕성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화악.
그와 동시에 아리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두근.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 맥동한다.
‘기, 김덕서이라꼬?!’
아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제 막 연심을 자각한 사춘기 소녀에게는 너무 큰 자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