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58)
“여기요!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인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끓인 김치찌개예요! 울면서 감사하며 먹을 수 있도록 하세요! 아시겠나요? 흥!”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린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김치찌개 냄비를 본다.
일단 냄새랑 겉보기는 그럴싸해 보인다.
빨간 국물과 익은 김치, 두부와 돼지고기가 잘 어우러진, 백반집에서 팔 법한 돼지 김치찌개가 거기 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덕성, 나도 김치찌개를 끓였다. 이번에야말로 시노자키류 비장의 간 맞추기 비법으로 완벽한 김치찌개를 완성했다! 부디 맛봐 다오!”
린이 앞으로 나선다.
탁.
그녀가 테이블 위에 김치찌개 냄비를 올린다.
“훗.”
요리 시간만 되면 소심해지던 린이 보기 드물게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띤다.
저렇게 자신 있게 내놓으니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이거 겉보기만 멀쩡한 건 아니겠지?
“흥. 젖소. 여자력도 낮은 주제에. 요리 하면 에리링이지! 주인님! 주인님만의 메이드인 귀여운 에리링이 김치찌개를 끓였어! 주인님, 어쩌면 에리링의 김치찌개 먹고 반할지도?”
툭.
옆에서 에리가 나서면서 김치찌개를 내려놓는다.
설정집 공인 최고 요리 실력을 보유한 히로인답게 올리비아와 린의 김치찌개와는 차원이 다른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큿······.”
린이 입술을 깨문다.
린의 모습을 본 에리가 우쭐대는 표정으로 가슴을 내민다.
그녀가 웃는다.
“에리링, 오늘을 위해서 무지 연습했어! 주인님! 칭찬해줄 거지?”
에리가 손으로 개목걸이를 만지작거린다.
다 좋으니까 개목걸이 만지작대는 건 좀 안 하면 안 되겠냐?
한숨이 나온다.
“주군, 나도······. 김치찌개······.”
에리가 우쭐대고 있던 그때.
마코토가 소심한 표정으로 본인이 끓인 김치찌개를 내려놓는다.
에리만큼은 아니지만, 마코토 역시 요리를 꽤 잘 한다는 설정.
설정집에 적힌 프로필에 따르면 요리 실력 2위 정도는 된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코토의 김치찌개 역시 때깔이 괜찮아 보였다.
“뭐야? 마코삐. 김치찌개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 내가 먼저 먹어봐도 괜찮아?”
옆에서 에리가 눈을 반짝인다.
그 모습을 본 마코토의 몸이 움찔한다.
“안 돼. 에리쨩······. 이 김치찌개는 주군을 위해 내가 끓인 거니까······!”
마코토가 냄비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에리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녀의 입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히히, 우리 마코삐. 귀엽네. 에잇!”
“흐아앗?! 에리쨩! 하지 마!”
눈앞에서 또 민망한 광경이 펼쳐진다.
여자끼리 서로 가슴 터치하고 저런 건 좀 안 하면 안 되나?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때야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어이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후배 군······.”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자수정을 닮은 보라색 눈동자를 한 미소녀.
카스미 선배였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김치찌개를 내려놓는다.
“나도 후배 군을 위해서 요리······. 했어.”
탁.
카스미 선배가 냄비를 올려놓는다.
카스미 선배의 요리 실력은 올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균 수준이라는 설정.
못 먹을 물건은 아니겠지.
“하와와와······. 김치찌개가 잔뜩이와요!”
옆에서 에반젤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착.
그녀가 합장하듯 두 손을 모은 채로 핑크색 눈을 반짝이고 있다.
“······.”
베아트리체는 아무 말 없이 에반젤린의 옆에 붙어 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베아트리체가 화들짝 놀라며 에반젤린 뒤로 숨는다.
내가 뭐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베아트리체를 보며 어이없어하고 있던 그때.
“그래서, 당신. 누구의 김치찌개를 선택할 거죠?”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고개를 돌린다.
“주인님! 당연히 에리링의 김치찌개지?”
“흠흠. 이번에야말로 시노자키류 비전 신부수업을 통해 갈고 닦은 내 요리 실력이 빛을 발할 때다! 덕성! 나를 선택해 다오!”
“후배 군, 나도 있어.”
“지이이이이······.”
올리비아를 중심으로 에리, 린, 카스미 선배, 마코토의 모습이 보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꼬르르르르륵.
내 배에서 천둥소리가 난다.
꼬르륵 소리를 들은 히로인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선택이고 뭐고 배고프니까 그냥 먹자. 다 같이.”
평소라면 어울려줬겠지만, 배가 고픈데도 누구를 선택하니 어쩌니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일단 먹고 봐야 한다.
“아, 알았다······. 그렇게 하자! 무엇보다 네가 배고파 보이니 말이다. 나는 언제나 네가 우선이다. 덕성.”
내 말에 가장 먼저 답한 건 린.
그녀의 얼굴에 모성 가득한 미소가 떠오른다.
“주인님이 원한다면야······. 에리링도 주인님 말에 따를래! 에리링은 주인님의 1등 노예니까!”
뒤이어 에리가 웃으면서 내게 말한다.
“응, 알았어. 주군.”“후배 군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마코토와 카스미의 목소리도 들린다.
“······흥. 그래도 이번 승부는 제가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다들 똑똑히 아시라고요! 아시겠나요?”
마지막으로 올리비아가 볼을 부풀리면서 말한다.
새빨개진 올리비아의 뺨이 조금 귀엽다.
“야, 에반젤린이랑 거기 뒤에 숨은 트릭시. 너네도 와라.”
“하와와와와······. 김치찌개 파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한 것이와요!”
“흐, 흥······. 인간의 음식 따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맛봐주겠다. 감사하거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에반젤린과 중2병 말투로 툴툴대는 베아트리체.
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그릇이 내 앞에 놓인다.
밥이 산더미처럼 쌓인 일명 고봉밥이다.
“많이 먹어라. 덕성.”
내게 밥을 퍼준 사람은 린.
앞치마를 두른 그녀가 밥주걱을 든 채로 웃는다.
저러니까 진짜······.
아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던 광경을 지워내면서 숟가락으로 앞에 놓인 냄비 중 아무 냄비에서 김치찌개를 한술 뜬 뒤에 밥이랑 같이 입안에 욱여넣는다.
맛있네.
내 생각보다 훨씬 맛있다.
매콤하고 시큼한 김치와 돼지고기 국물 맛이 입안에 어우러진다.
숨은 맛집으로 평가되는 기사식당 김치찌개 백반보다 훨씬 맛있는 찌개맛이다.
“주인님! 에리링의 김치찌개를 선택했구나!”
앞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내가 퍼 올린 김치찌개가 에리가 만든 것인 모양.
왠지 맛있다 했더니.
에리가 한 거라면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밥을 퍼먹었다.
오랜만에 먹은 김치찌개는 맛있었다.
무심코 원래 세상에서 먹었던, 엄마의 김치찌개가 생각날 정도로.
그렇게 그날 하루가 마무리됐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약속한 주말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외출 준비를 끝낸 뒤, 약속 시간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의 슈오우 영웅 학원.
교문 앞 주차장.
저 멀리 번쩍거리는 스포츠카가 보인다.
뚜껑이 열린 오픈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차다.
그 앞에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있었다.
“꼬마야! 이제 오는 것이냐?”
검은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은 미소녀.
스포츠카 오너인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 요시자키 세이라였다.
세이라가 손을 흔든다.
그 옆에는 아리스가 옆머리를 쓸어 넘긴 채로 서 있었다.
“후후. 한참 기다렸느니라.”
외관은 나보다 어려 보이는 주제에 타는 자동차는 스포츠카라니.
옆에 있던 아리스가 얼굴을 붉힌다.
“좋은 아침입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의 인사를 고개를 끄덕이며 받는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웃는다.
“얼른 타거라. 이 몸의 운전실력을 보여주마.”
탁.
가슴을 치면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하는 세이라.
[오우. 누님. 저 모습은 예전 그대로네.]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오픈카에 올라탄다.
그래도 헬기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운전석에는 세이라, 조수석에는 아리스.
뒷좌석에는 내가 탄 상황.
“그럼 출발하겠다.”
모두가 탄 걸 확인한 세이라가 액셀을 밟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적한 시골.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법한, 목조 주택이 들어선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논도 있고 귤로 유명한 와카야마현답게 귤나무를 키우는 과수원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이렇게 긴 거리를 운전하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오픈카를 운전하고 있는 세이라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아리스 고향 방문은 드라마 CD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온 적 없었고, 코믹스에서도 생략한 장면이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두 눈을 통해 확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으으······.”
조수석에 앉은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다.
드라마 CD에서 보인 것과 똑같은 반응.
이윽고 차가 목조 단독주택 앞에 멈춘다.
한국 시골집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모습.
이걸 보니 명절마다 내려가고는 했던 시골 할머니댁이 떠오른다.
설날, 추석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용돈도 두둑이 받아서 좋았었지.
그때와는 조금 다르지만 제법 정겨운 풍경이다.
쓸데없이 원래 세상의 추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도착했느니라. 아-쨩, 꼬마야.”
촤르륵.
레이스 부채를 펼친 채로 웃는 세이라.
내가 일본 시골을 오게 되다니.
라노벨 세상에서 오래 살면 이런 일도 있는 모양이다.
낡은 대문이 보인다.
대문에 손을 대는 세이라.
그 뒤로 부끄러워하는 아리스와 내가 따른다.
“아-쨩. 초인종을 누르거라.”
세이라의 말에 아리스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내 왔다.”
아리스가 사투리 섞인 목소리로 부끄러운 듯 스피커에 대고 속삭인다.
-쿵쾅, 와당탕!
아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안에서 뭔가 무너지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뭔가 안에서 부서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심상치 않은 굉음을 들은 세이라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세이라의 혼잣말을 들은 아리스의 얼굴이 부끄러운 듯 붉어진다.
오랜만에 손님이 방문하면 집안 정리할 때 쓸데없이 굉음을 내는 것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룰.
이런 사소한 곳에서까지 라노벨 클리셰를 따를 필요는 없는데.
어이가 없다.
철커덕, 끼이이익.
곧이어 대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타난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30대 후반의 미부가 나타나 아리스를 끌어안은다.
“이거 아-쨩 아이가! 내는 우리 아-쨩이 참말로 보고싶었데이!”
가슴으로 아리스를 끌어안는 검은 머리 미인.
원작에서도 아리스 가족은 일러스트나 캐릭터 컨셉이 나온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리스의 엄마가 아닐까?
원래 라노벨 히로인 엄마는 수상할 정도로 동안이 아니면 수상할 정도로 어린 체구가 클리셰······.
아니다.
아리스의 어머니는 설정에 따르면 요양 중인 상태.
지금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데.
그럼 저 사람은 누구지?
내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할매! 끌어안지 마소! 내가 얼라도 아니고! 답답하데이!”
품에 안긴 아리스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뭐라고?
어머니가 아니고 할머니라고?
저렇게 어려 보이는 사람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