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60)
인사를 끝내고 아리스 집안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일본 시골 목조 주택 내부.
처마에 딸랑거리는 풍경 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리스의 할머니에게 안내받은 장소는 다다미방 내부.
드르륵, 탁.
아리스의 할머니가 미닫이문을 닫는다.
방안에 남은 건 나와 아리스, 세이라, 그리고.
“콜록, 콜록. 우리 아-쨩 왔나.”
이부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15세 외관 정도의 미소녀가 기침한다.
역시 본 적 없는 얼굴.
하지만 왠지 누군지 알 것 같다.
“흐음. 저분은 누구냐? 아-쨩.”
세이라가 아리스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리스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옆머리를 쓸어넘긴다.
“제 어머니입니다.”
아리스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아리스의 어머니.
잠깐, 어머니라고?
[어머님께서 많이 동안이시네······.]흑태자가 말끝을 흐린다.
저건 많이 동안 수준이 아닌데?
미시 할머니에 이어 나이 어린 어머니라니.
아무리 라노벨 히로인 가족 클리셰가 그렇다지만, 이렇게까지 충실히 따라가도 괜찮은 건가?
“어머······. 그렇구나.”
머쓱한지 부채를 펼쳐 붉어진 얼굴을 가리는 세이라.
레이스 부채가 살랑거린다.
“콜록, 콜록.”
기침하는 아리스의 어머니.
아리스의 어머니는 아프다는 설정이 있었으니, 저런 모습이 맞다.
저 모습을 보니 왠지 원래 세상의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살짝 마음이 숙연해진다.
병원에서 입원한 어머니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라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가 빙의된 이후 원래 세상이 어떻게 된 건지, 원래 나는 사망 또는 실종 처리가 된 건지, 어머니가 잘 지내고는 있는 건지,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금까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모든 걱정들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염병.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이 세상에 눌러앉을 수 없다.
역시 귀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아-쨩. 도쿄 생활은 좀 어떠니? 콜록.”
아리스의 어머니가 기침하면서 말한다.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아리스의 여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어린 외모.
아리스가 익숙한 표정으로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문화제도 잘 치렀고, 이사장님과 김덕성군이 잘 대해줘서 무난한 학원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리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데이. 콜록. 어라, 저 귀여운 꼬마는 누구고?”
아리스 어머니의 시선이 세이라를 향한다.
“크흠.”
세이라가 헛기침한다.
귀여운 꼬마라는 말에 들뜬 표정이다.
하여간 아까 대문 앞에서도 그렇고 어리게 보인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기분 좋은 걸 주체를 못하는 표정이다.
“흠흠. 이 몸이 조금 귀엽기는 하지. 후후.”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흘리는 세이라.
그녀가 품에서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검은 손거울을 꺼내 본인의 얼굴을 비춰본다.
[······.]머릿속의 흑태자가 침묵한다.
확실히 외관 자체는 인형처럼 귀여운 미소녀가 맞다.
라노벨 히로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본인이 입을 열어서 그 귀여운 미소녀 이미지를 전부 까먹으니까 문제인 거다.
자기 입으로 본인이 귀엽다니.
그러지만 않았어도 괜찮을 텐데.
“어머니. 저분은 우리 학원 이사장님입니다.”
아리스가 세이라를 소개한다.
그제야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아리스의 어머니.
“흠흠. 아-쨩의 말이 맞느니라. 이 몸이 바로 슈오우 영웅 학원의 이사장, 요시자키 세이라다. 잘 부탁하지. 아-쨩의 어머님.”
자리로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하는 세이라.
아리스 어머니가 세이라를 보며 손뼉을 친다.
“어머. 이사장님. 너무 동안이십니더! 후후. 누가 보면 요즘 아들로 착각하겠십니더!”
칸사이 사투리로 세이라 칭찬을 쏟아내는 아리스 어머니.
칭찬을 들은 세이라의 어깨가 신나서 으쓱거린다.
그녀가 우쭐하는 표정과 말투로 말한다.
“후후. 그렇게 말하는 어머님도 상당한 동안이군. 이 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법 귀여운 미소녀야. 누가 보면 아-쨩의 어머니가 아니라 여동생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어.”
은근슬쩍 자신이 더 귀엽다는 전제를 깔고 말하는 세이라.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스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하이고, 이사장 선생님도 그래 내 얼굴에 금칠해주면 참말로 부끄럽습니더. 후후후후.”
얼굴이 붉어진 채로 마른 세수를 하는 아리스 어머니.
“지가 동네에서 동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기는 합니더.”
“그렇지? 후후. 이 몸 역시 마찬가지다. 바깥 마실을 나가면 귀여운 미소녀인 이 몸을 학생 취급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이야. 역시 동안인 사람끼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군.”
세이라가 더 신난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동안인 사람끼리 통하는 게 있다니.
대체 내가 지금 무슨 대화를 듣고 있는 거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선생님 같은 좋은 사람이 아-쨩의 은사라니까 참말로 다행입······. 콜록, 콜록!”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기침하는 아리스 어머니.
“몸은 괜찮은 것이더냐?”
세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리스 어머니에게 묻는다.
아리스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면서 힘없이 웃는다.
“예, 괜찮습니더······. 그나저나 이쪽이······?”
그녀의 시선이 내게 돌아온다.
“니가 김덕성 군이가?”
아직 자기소개도 하기 전인데 벌써 이름부터 나오다니.
아까 할머니도 그렇고 아리스가 대체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 놓은 건지 모르겠다.
“예. 그렇습니다.”
“일로 함 와바라. 콜록! 콜록!”
손짓하며 나를 부르는 아리스 어머니.
옆에 있던 아리스의 얼굴이 다시 새빨개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누워 있는 그녀 옆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덥석.
아리스 어머니가 내 손을 잡는다.
그녀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친다.
“하이고. 생긴 것도 참말로 듬직하게 생겼데이······.”
아리스 어머니가 시골 할머니 같은 말투로 내게 말한다
“후후. 우리 예비 사위 얼굴 이래 직접 보는 건 처음이데이.”
아리스 어머니가 웃는다.
시골 할머니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미소녀라니.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런데 뭐? 예비 사위라고?
내가 당황하던 그때.
“어, 엄마는 무슨?! 예, 예비 사위라니?!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아리스가 발개진 얼굴로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다.
다급해진 그녀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후후. 엄마는 하도 아-쨩이 김 군 이야기를 해서, 둘이 이미 진도 다 나간 줄 알았데이.”
웃는 얼굴로 폭탄 발언을 하는 아리스 어머니.
그녀의 말을 들은 아리스가 애꿏은 치맛자락을 만지면서 고개를 숙인 채로 말한다.
“지, 진도는 무슨······. 김덕서이랑 내는 그런 관계가 아니데이!”
“어라? 아니가? 후후. 우리 딸도 참 수줍게 굴기는, 이럴 때는 확 자빠뜨려야 한데이!”
내 손에서 손을 뗀 아리스 어머니가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대면서 웃는다.
“자, 자빠뜨리기는! 그게 무슨 남사스러운 소린교?! 엄마는 못하는 말이 없데이!”
아리스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다.
그녀의 뺨이 파르르 떨린다.
“와 남사스러운데? 후후. 이 엄마도 니 나이때 아빠랑 학교에서 만나서 자빠뜨려갖고 졸업하고 바로 빠르게 결혼했다 아이가. 후후. 우리 아-쨩도 엄마처럼만 하면 된다.”
아리스 어머니가 태연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한다.
아리스 부모님 속도위반 결혼이었냐고.
이런 사소한 설정은 설정집에도 원작에서도 안 나와서 나도 몰랐다.
“어, 엄마처럼 하면 되기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소!”
“부끄러워하기는······. 후후. 아-쨩은 너무 자신감이 없어서 탈이데이.”
“아니라니까!”
어머니 앞에서 꼼짝 못하는 아리스.
귓불까지 새빨개진 아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후후. 뭐 됐다. 이 엄마는 아-쨩이랑 예비 사위에 선생님 얼굴까지 봤으니까 이제 괜찮다.”
“예비 사위 아니라니까······.”
마지막까지 부끄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리스.
그녀의 말에 아리스 어머니가 웃는다.
“그러니까 아-쨩. 우리 사위랑 같이 나가서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너라. 그, 뭐꼬. 요새 아들 말로 데이트 하고 오라고.”
아리스 어머니의 말에 아리스의 뺨이 떨린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와, 싫나?”
“아, 아니. 시, 싫은게 아니라······.”
움찔.
아리스가 몸을 떨면서 내 쪽을 바라본다.
“기, 김덕서이······. 아니 김덕성군은 괜찮습니까?”
아리스가 사투리를 정정하면서 내게 묻는다.
동네 한 바퀴라.
안 나갈 이유까지는 없다.
무엇보다 아픈 아리스 어머니가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굳이 아리스 어머니 앞에서 대놓고 거절해서 아리스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저는 괜찮습니다.”
내 수락이 떨어지자 얼굴이 살짝 펴지는 아리스.
“고맙습니다. 김덕성군.”
그녀가 내게 살짝 고개를 숙인다.
“후후. 우리 사위도 아-쨩한테 마음이 있는 모양이데이. 참말로 잘 어울린데이.”
그 모습을 본 아리스 어머니가 웃고 있던 그때.
살랑살랑.
세이라가 부채를 흔들면서 말한다.
“흠흠. 그렇다면 이 몸도 아리스의 고향을 함께······.”
“이사장 선생님.”
세이라의 말허리를 자르는 아리스 어머니.
“제가 이사장 선생님한테 학부모로서 긴히 할 말이 있는데예, 남아주실 거지예?”
아리스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그녀의 말에 세이라의 뺨이 파르르 떨린다.
세이라와 아리스 어머니.
비슷한 외관 나이를 지닌, 겉으로 보면 자매로 착각할 정도인 두 미소녀 사이에 짧은 시선 충돌이 벌어진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러도록 하지.”
침묵을 깬 쪽은 요시자키 세이라.
그녀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누님······. 그러니까 본전도 못 찾을 말은 안 하는 게 상책이었는데······.]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탄식과 함께 한마디를 던진다.
“후후. 알겠습니더. 그럼 엄마는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아-쨩. 둘이서 잘 놀다 온나.”
그렇게 세이라를 아리스 어머니 방에 남겨둔 채로, 나와 아리스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집에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집을 나서게 되었다.
*
끼익, 탁.
대문을 닫고 집을 나선다.
시골 풍경이 시야에 보인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아리스의 은빛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
얼굴이 붉어진 아리스가 고개를 숙인다.
나와 아리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파트너,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중간에 낀 내가 더 어색하잖아.]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나를 재촉한다.
중간에 끼기는 누가 끼었다고.
흑태자의 말은 황당하지만, 분위기가 어색한 건 사실이다.
그냥 아무 말이라도 일단 던져 봐야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뭔가 말하려던 순간.
“김덕성군.”
아리스가 나를 부른다.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치맛자락을 움켜쥐면서 말한다.
“고향이 시골이라 볼 게 별로 없지요? 죄송합니다. 이런 촌구석으로 김덕성군을 초대해서······.”
아리스가 어색하게 웃는다.
미안하다니.
“아뇨.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시골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내 말을 들은 아리스의 얼굴이 살짝 밝아진다.
아리스가 입술을 달싹이면서 뭔가 말하려던 그 순간.
시야에 뭔가 이상한 동상 같은 게 들어온다.
“선배.”
“왜 부르십니까? 김덕성 군.”
내 말에 웃으며 나를 보는 아리스.
내가 손가락으로 동상을 가리킨다.
“저 동상, 원래 선배 고향에 있던 동상입니까?”
아리스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을 향한다.
거기에 있는 건.
반짝이는 은빛이 인상적인 아리스의 동상이었다.
와, 이게 여기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