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62)
나는 메시지를 받은 아리스와 함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동상이 있던 장소를 피해서 돌아가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을 뿐이다.
그렇게 다시 아리스 집에 도착한 내가 본 광경은.
“우리 아리스를 구해줘서 참말로 고맙데이!”
마당에서 엎드려 눈물을 줄줄 흘리는, 딱 봐도 3대 500은 가뿐하게 칠 것 같은 근육질 마초 아저씨였다.
엎드린 근육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호러가 따로 없다.
대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아저씨가 왜 저러는 거야.
“아부지! 지금 이게 무신 일인교?! 쪽팔리게!”
옆에 있던 아리스가 빨개진 얼굴로 아저씨의 팔을 붙든다.
아버지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라노벨 클리셰를 따르는 아리스의 가족 구성에 따르면, 아버지가 보디빌더 뺨치는 마초 근육질 남자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농사일을 해서 그런지 구릿빛으로 태닝된 피부가 인상적이다.
오히려 클리셰를 벗어나는 쪽이 더 신선했을지도 모른다.
벌떡.
아리스의 아버지가 일어난다.
덥석.
그가 꿈틀거리는 근육이 인상적인 팔뚝으로 내 손을 붙잡는다.
“김덕서이, 니 같은 머스마라면 내 우리 딸을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데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리스 아버지.
이거 그냥 떨쳐낼 수도 없고.
난감하다.
[오호. 천하의 파트너도 레이디의 부모님한테는 함부로 못 대하는구나?]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함부로 못 대하다니.
이래봬도 내가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다.
난 그렇게 예의를 밥 말아 먹은 미친놈이 아니다.
단순히 라노벨 세상이 오글거리는 사람일뿐이다.
‘넌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냐?’
[싸가지 없는 츤데레?]말을 말지.
흑태자의 헛소리에 대꾸하면 나만 손해다.
“내는 우리 딸래미가 따돌림당하는 것도 제대로 해결 못 한 바보데이······. 우리 딸래미의 웃음을 되찾아줘서 참말로 고맙데이.”
손을 잡고 흔들면서 흐느끼는 아리스의 아버지.
흉악한 근육이 꿈틀거린다.
근육질 중년 남자가 우는 광경은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아부지! 그러지 마소! 쪽팔립니더······.”
옆에서 아리스가 아버지를 토닥거리면서 사투리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흐어어어엉······. 아-쨩! 우리 아-쨩 참말로 대견하데이, 잘 컸데이. 사위 후보도 이래 집에 데려오고······.”
아리스의 품에 안기며 울음을 쏟아내는 아리스의 아버지.
누가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딸바보가 따로 없다.
찰싹.
아리스가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친다.
“그만 좀 우소! 다 큰 남자가 쪽팔리게······. 정말······.”
얼굴이 빨개진 아리스.
그녀의 재촉에 아리스의 아버지가 그제야 눈물을 닦아낸다.
“후우······. 다들 주책이라서······. 미안합니다. 김덕성군.”
아리스가 내 옆에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인다.
“아뇨. 괜찮습니다.”
지극히 라노벨 평균다운 가정 방문 반응이었다.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면 이쪽이 더 놀랐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내 답변을 들은 아리스가 얼굴을 붉히면서 작게 고개를 숙이던 그때.
“아-쨩! 꼬마야! 어서 들어오너······. 아앗?!”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라의 목소리였다.
“이사장님?”
중간에 끊긴 세이라의 목소리에 놀란 아리스가 집 안으로 들어선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내부에 들어간 나와 아리스가 목격한 광경은.
“세라땅 누나! 나랑 놀자!”
“세라땅 언니는 나랑 놀 거야!”
아리스의 동생으로 보이는, 세이라보다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세이라의 스커트를 당기면서 서로 노려보는 광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리스는 할머니부터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같이 사는 시골 대가족이라는 설정이었지.
일본은 물론 대가족의 해체가 일어나는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땅값 집값 비싼 서울 한복판 단독주택에서 서민 코스프레하면서 조부모부터 자식까지 3세대가 모여서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모습이 클리셰였던 한물간 옛날 일일연속극에서나 볼 법한 설정.
“아-쨩! 이 몸을 좀 도와다오······.”
아리스 동생들의 쟁탈전에 정신이 혼미해진 모양인지, 세이라가 헤롱헤롱거리는 눈동자로 아리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세이라의 모습을 보니 명절 때마다 어린 조카들 등쌀에 들볶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만큼은 세이라가 불쌍하다.
“그럼 못 써. 둘 다 이사장님한테서 떨어져.”
세이라의 구조 요청을 받아들인 아리스가 동생들에게 주의를 준다.
“휴우······. 겨우 살았느니라······. 아-쨩의 동생들이 어찌나 기운이 좋던지······. 늙은이인 이 몸은 요즘 어린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야.”
그제야 떨어진 세이라가 한숨을 돌리면서 내게 다가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언니다!”
“누나다!”
와아아.
탄성을 지르며 안겨드는 아리스의 동생들.
“그래. 나 왔어.”
아리스가 동생들을 안아주며 미소 짓는다.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존댓말도, 당황하면 나오는 사투리도 아닌 처음으로 듣는 아리스의 평어체.
가족적인 모습을 보니 괜히 나까지 흐뭇해지는 기분이다.
그럭저럭 훈훈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그때.
“저 형아가 누나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이야?”
“생각만큼 잘 생긴 건 아닌 것 같은데?”
두 동생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아, 아니 좋아한다니 그건 절대 아니고, 그냥 학교 후배데이!”
당황해서 사투리를 내뱉는 아리스와 의심의 눈초리로 아리스를 보던 아리스의 동생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던 그때.
“저녁 다 됐데이! 다들 저녁 묵으로 와라!”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아리스의 할머니가 우리를 부른다.
“저녁!”
“밥 먹으러 가자 누나!”
무겁게 내려앉았던 분위기가 해소되면서 단번에 분위기가 바뀐다.
아리스의 동생들이 아리스를 끌고 나간다.
세상에 밥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부채를 펼쳐서 웃는다.
“우리도 가자꾸나. 꼬마야.”
그렇게 세이라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아리스의 가족이 모두 모여 있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진수성찬.
된장국부터 고기감자조림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일본 가정식 대부분이 식탁 위에 올라가 있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데이.”
아리스의 어머니가 창백한 인상으로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습관처럼 식사 인사를 하며 자리에 착석한다.
내 왼쪽은 아리스, 오른쪽에는 세이라가 앉아 있는 상황.
밥과 된장국을 함께 먹는다.
제법 맛있다.
해산물이 많이 나는 와카야마현답게 갈치 구이도 보인다.
갈치 구이를 한 점 떼서 입에 넣는다.
맛있다.
한국과는 다르지만, 나름 집밥 같은 느낌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던 그때.
“콜록, 콜록!”
아리스의 어머니가 큰 소리로 기침한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향한다.
거기에는 손수건과 입가에 빨간 피를 묻힌 아리스의 어머니가 있었다.
“괜찮은 것이냐?”
옆에서 밥을 먹던 세이라가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아뇨. 괜찮습니데이! 항상 있는 일이라서예, 선생님께서 신경 안 써도 됩니더.”
힘없이 웃는 아리스의 어머니.
왠지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생각나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일 없이 저녁 식사가 끝났지만, 내 마음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
식사가 끝난 이후.
다다미방.
아리스 가족들과의 시간을 전부 보낸 뒤, 나와 아리스, 그리고 세이라는 한 방에 모여 있었다.
우리 셋 사이에는 조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리스의 어머니가 아픈 건 알고 있었지만, 기침으로 피를 토할 정도로 많이 아플 거라고는 예상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 네 어머니 정말 괜찮은 것이냐?”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건 세이라.
그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괜찮습니다. 예전보다는 좀 많이 나아진 상황이니까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이라 언니.”
아리스가 작게 웃으며 말한다.
빙의 전, 소설로 봤을 때도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던 아리스의 사정이었다.
하물며 소설이 현실이 된 지금, 눈앞에서 직접 그녀의 사정을 목격하니 괜히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하지만 완치할 방법을 찾지 않으면······.”
세이라가 말끝을 흐리던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원작 설정이 하나 떠오른다.
아리스의 어머니를 완치할 방법.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양방향 게이트를 완성해서 내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까지.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는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있습니다. 방법.”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떨린다.
“아-쨩의 어머니가 걸린 불치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단 말이더냐?”
세이라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있다.
“리그에 소속된 EX랭크 빌런인 언더테이커······. 놈의 유물인 ‘이모탈 하트’라면 아리스의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언더테이커.
뉴 월드 리그 소속 EX랭크 빌런 집단인 포 호스맨.
포 호스맨을 구성하는 전쟁, 역병, 기근, 죽음의 네 빌런 중에서 죽음의 기사를 담당하는 네크로맨서 컨셉의 마술사 빌런.
이명이 프로레슬러 같기는 하지만, 영어로 장의사라는 뜻이다.
딱 봐도 작가 놈이 대충 영어 사전 뒤적거려서 그럴싸하게 멋진 영단어를 가져다 붙인 수준의 이명.
아무튼 놈이 지니고 다니는, 하루에 한 번 모든 상처와 디버프를 회복할 수 있는 유물인 이모탈 하트를 사용한다면.
아리스의 어머니는 물론이고 우리 엄마까지 살릴 수 있다.
메사이어와 뉴 월드 리그가 나를 주요 목표로 삼았다는 정황은 저번 서울 테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상황.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라면, 무보수로 싸우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최대한 내 이득을 취하는 것이 맞다.
일이 이렇게 된다면 우리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양방향 게이트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
“김덕성군. 그 말이 사실입니까?”
“꼬마야, 네가 그 정보를 어떻게······.”
내 말에 놀라는 아리스와 다른 의미에서 놀라는 세이라.
하긴, 평생에 걸쳐 리그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던 세이라가 리그 최고 간부인 포 호스맨의 신상 명세를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봐야 맞다.
그녀가 놀란 건 내가 이 정보를 취득한 경로가 궁금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한국 국정원에서 알려준 정보입니다.”
이럴 때는 그냥 국정원 핑계를 대기로 했다.
실제로도 프랑스 때 내 생각보다 국정원에 훨씬 유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도 하고.
의심할 건덕지도 없을 거다.
“국정원, 과연 그렇군요.”
“흐음. 국정원이라면 납득이 가기도 하는구나. 하지만 꼬마야. 언더테이커는 EX랭크 빌런에다 리그 마스터의 심복으로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언더테이커는 지금까지 꼬마가 상대했던 빌런과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야.”
내 말에 바로 수긍하는 세이라와 아리스.
세이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세이라의 걱정은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저는 정체불명의 흑막, 리그의 주요 테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태. 제가 싸움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차피 싸우게 될 상대인데, 그냥 싸우는 것보다는 전투를 통해 얻은 전리품으로 아리스 선배의 어머니를 치료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원래 세상에 대한 정보는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리스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만 꺼냈다.
내 말에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러니까 두 분이 저를 도와주십시오. 언젠가는 놈이 저를 노릴 테니까요.”
난 아직 EX랭크 빌런은 단독으로 상대할 수 없다.
아리스와 세이라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됐다.
*
언더테이커와 이모탈 하트.
그 존재를 언급한 김덕성을 보는 세이라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아무리 국정원이라도 리그 최고 간부인 포 호스맨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어려울 텐데······.’
리그는 매우 비밀스러운 흑막 조직.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정평이 난 국정원의 첩보 능력으로도 리그의 최고 간부인 포 호스맨의 일원, 언더테이커의 상세 정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장 세이라 본인도 10년이 넘는 오랜 투쟁 끝에 간신히 얻은 정보가 아니던가.
‘꼬마야······. 너는 대체······.’
무슨 사정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
세이라는 뒷말을 삼키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통찰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김덕성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이 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지.’
그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정이 있다면 이 몸한테 말해주는 게 좋으련만······.’
세이라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녀의 시야에 김덕성의 모습이 비친다.
두근.
세이라의 심장이 작게 맥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