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65)
제비뽑기는 빠르게 끝났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같은 조끼리 모여서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짝.
마유즈미 선생이 웃으면서 박수를 친다.
내가 뽑은 제비 끝에 적힌 숫자는 5.
원작에서 주인공이 편성되었던 조였다.
내가 5조라는 뜻은 역시나 원작과 조 편성이 달라졌다는 의미.
“4조! 4조 어디 있어?”
“3조!”
교실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메워진다.
각자 조를 찾는 소리다.
“5조로 편성된 사람 어디 없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린이 있었다.
남색 포니테일, 남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녀.
린의 손에는 끝에 5라고 적힌 제비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혹시······.”
린이 말끝을 흐린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제비를 들어 보였다.
5라고 적힌 내 제비를 본 린의 눈동자가 커진다.
덥석.
린이 내 손을 잡는다.
“덕성! 같은 조가 돼서 기쁘다!”
“아, 그래······.”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린이 선녀지.
눈을 반짝거리는 린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면서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건······.”
린이 말끝을 흐린다.
아직 못 찾은 모양이구만.
주변을 둘러본다.
“어, 어어어째서 당신이 우리랑 같은 3조인 거죠?!”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척.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올리비아가 입술을 우물거리며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니시시시. 언니들이랑 같은 조가 되는 것도 나쁜 건 아닐지도?”
올리비아 앞에는 하루가 있었다.
머리 끝을 빨간색으로 물들인 하루가 입을 가리면서 웃는다.
하루의 화려한 네일아트가 반짝인다.
“에리링, 기분 나빠. 에리링도 주인님이랑 같은 조 되고 싶었는데······. 내가 아닌 젖소가 주인님이랑 같은 조가 되다니.”
“지이이이이······.”
올리비아 옆에서 하루를 노려보는 에리와 마코토.
“하루도 덕성 오빠랑 같은 조 안 된 건 초 아쉬워. 하지만 언니들 놀리는 것도 재밌을지도? 니시시시. 그럼 다들 완전 잘 부탁해! 언니들! 니시시시!”
그 모습을 본 하루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한다.
“누, 누누누누구를 놀린다는 건가요?! 시끄러워요!”
하루의 말에 발끈하는 올리비아.
저 꼴을 보니 하루, 올리비아, 마코토, 에리가 4인 1조로 같은 조가 된 모양.
[아쉽네. 우리 사랑스러운 동생이 파트너랑 같은 조가 되었어야 했는데.]그 모습을 본 흑태자가 한마디한다.
흑태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살짝 아쉽기는 하다.
올리비아랑 같은 조가 되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럼 우리랑 같은 조는 누구라는 거지?
기왕이면 대하기 편한 이시하라나 부려 먹기 좋은 호구인 유지······.
아니 유지는 안 된다.
빌어먹을 쿠사나기 때문이다.
유지와 나를 쓸데없이 엮으며 망상하는 쿠사나기의 그 엿 같은 행동에는 이제 신물이 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하와와와와······. 시노자키 공! 시노자키 공과 김덕성님도 5조인 것이와요?”
척.
앞에서 분홍색 트윈테일이 흔들린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트윈테일, 볼륨감 있는 가슴.
에반젤린이었다.
“그렇다만.”
“무인도 이후로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운 것이어요! 후후 스미스 양도 시노자키 공, 김덕성 님, 저와 같은 조인 것이와요!”
눈을 반짝이는 에반젤린.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달아오른다.
“하등한 인간들의 하찮은 유희 따위에 고귀한 여가 어울려야 하다니······. 치욕이도다······.”
옆에는 베아트리체가 안대를 만지면서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베아트리체, 린, 나, 에반젤린.
여름 학교 때의 그 조 편성이 그대로 이어졌다.
딱히 좋은 건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도 아니다.
부려 먹기 좋은 유지나 이시하라가 아닌 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얼굴도 모르는 엑스트라들과 어색한 분위기로 수학여행을 즐기는 것보다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랑 같이 다니는 편이 낫다.
“그럼 김덕성님, 시노자키 공. 잘 부탁드리는 것이와요!”
꾸벅.
에반젤린이 인사를 한다.
“······흥. 하등한 인간 따위한테 홍련의 성녀인 여가 고개를 숙일 수는 없는 법이지.”
옆에 있던 베아트리체가 입술을 삐죽인다.
저 빌어먹을 중2병 말투는 대체 언제 고치는 거지?
“어머. 트릭시 양. 오랜만에 만난 친우들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것이와요! 어서 인사하는 것이와요!”
쿡.
에반젤린이 옆에서 베아트리체의 허리를 찌른다.
“흐윽?! 계약자여! 여의 약점을 공격하다니 비겁한것이다!”
베아트리체의 하나밖에 없는 눈동자가 커진다.
베아트리체는 유난히 허리가 약하다는 설정이었지.
에반젤린과 베아트리체.
원작에서는 없던 조합이다.
원작의 베아트리체는 스토리 최후반은 되어야 등장하는 마지막 히로인.
자연스럽게 다른 히로인들과 접점도 별로 없었다.
원작 비중은 공기에 가까운 히로인인 에반젤린과는 당연하게도 아예 접점이 없던 캐릭터.
그런데 베아트리체가 원작보다 일찍 등장하면서 에반젤린과 접점을 넘어 친구가 된 것이다.
그것도 그냥 친구가 아니라 꽤 친한 친구.
‘그런데 베아트리체 쟤 교단으로 안 돌아가나?’
문득 머릿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간다.
생도 신분을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베아트리체에게 있어서 그건 위장 신분.
그녀의 정체는 세계관 제3세력, 진리의 교단의 성녀다.
[교단보다는 생도로 위장하는 편이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흑태자가 답한다.
그의 추측이 정답이라면, 내 예상보다 대장로의 교단 장악이 조금 더 빠르다는 이야기인데.
이쪽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쨌건 메사이어를 상대하고, 나아가 양방향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베아트리체를 반드시 포섭해야 하니까.
“······자, 잘 부탁한다. 하등한 인간들이여. 홍련의 성녀인 여의 인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교통정리가 끝난 건지 베아트리체가 붉어진 얼굴로 말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흥.”
“잘했사와요! 트릭시 양.”
쓰담쓰담.
베아트리체가 트릭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계약자여! 여는 어린아이가 아니도다!”
그걸 또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지만 기분 좋다는 얼굴로 받아들이고 있는 베아트리체.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던 그때.
“후후. 보나파르트. 빨래판. 카미야 양. 봤는가? 난 너희들과는 달리 덕성과 같은 조로 선택받았다.”
귓가에 린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가슴으로 우쭐거리는 린의 모습이 보인다.
“으으으으······. 이이이이익! 전속 시녀인 이 저도 실패한 걸 어떻게 당신이······!”
올리비아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다.
“에리링 분해. 에리링이 젖소보다 주인님한테 봉사 더 잘해줄 수 있는데! 수학여행 매일 밤마다 잔뜩 봉사할 수 있는데!”
옆에 있던 에리가 개목걸이를 만지면서 말한다.
“방금 들었어? 봉사래, 봉사.”
“꺄아아아악! 봉사라니! 검은 귀축, 수학여행에서도 하렘 멤버들을 이부자리로 끌어들일 생각인 거야?!”
“이부자리만 하겠어? 온천에서 혼욕하면서 그렇고 그런 일을 할지도 몰라!”
“본인 제외 전원 미소녀로 구성된 조라니······. 역시 검은 귀축······!”
“교환학생들까지 벌써 검은 귀축의 손아귀에 떨어진 거야? 영국 공주님까지?!”
오랜만에 듣는 엑스트라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머리가 아프다.
온천에서 혼욕이라니.
대체 뭘 상상하고 있는 거지?
어이가 없다.
“지이이이이······.”
마코토가 입으로 의성어를 소리 내며 린을 노려본다.
“니시시시. 린 언니 신났구나? 덕성 오빠랑 같은 조 돼서? 하지만 어쩌나. 덕성 오빠의 마음은 이미 하루가 완전 점령했는걸?”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그 모습을 본 린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는다.
한 발짝, 린이 하루에게 나서면서 말한다.
“하루. 너는 덕성과 키스해본 적 있나?”
“······.”
하루의 입에서 처음으로 침묵이 흘러나온다.
“나는 해본 적 있다.”
“쳇······.”
린의 말에 입술을 삐죽이는 하루.
그 이야기가 왜 지금 여기서 나와.
머리가 어질어질하던 그때.
“하루도!”
귓가에 하루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가 린을 바라보며 말한다.
“하루도 언젠가는 덕성 오빠랑 혀와 혀가 교류하는 끈적한 초 진한 러브러브 키스할 거니까! 언니들 완전 각오해!”
초 진한 러브러브 키스라니.
아니 왜 저런 말을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내뱉냐고.
머리가 아프다.
“꺄아아아! 혀와 혀가 교류하는 끈적한 초 진한 러브러브 키스래!”
“검은 귀축, 하렘 멤버들이랑 매일매일 진한 키스 하는 거야?”
“키스뿐일까? 당연히 그 이상도 할지도?”
“시노자키의 아가씨 키스 선언이라니. 무서워······. 이쪽 보지 마! 꺄아아아악!”
이제는 조건반사적으로 뒤따르는 엑스트라 반응.
빌어먹을.
진짜 돌겠네.
내가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때.
“그, 그, 그런 파렴치한 이야기는 둘 다 여기서 그만! 그만 하세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그녀의 말에 하루도, 린도 입을 닫는다.
“후우.”
심호흡한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말한다.
“이봐요! 시노자키 양!”
“왜 부르지? 보나파르트.”
올리비아의 말에 린이 살짝 움찔한다.
“우리가 했던 약속, 잊지 않았겠죠?”
꿈틀.
올리비아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녀의 말에 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다. 나 역시 시노자키 가문의 이름을 걸고, 한 번 한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는다. 믿어도 좋아.”
린이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시노자키 가문의 이름을 걸다니.
전에는 시노자키가 아니라 김 린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흥. 미덥지 않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죠. 알겠어요.”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리면서 볼을 부풀린다.
그런데 약속?
‘대체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야?’
[캬,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 역시 우리 사랑스러운 동생이야.]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팔불출 모드로 들어가는 흑태자.
혹시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는 건가?
‘넌 약속 내용이 뭔지 아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우리 동생이니까!]이럴 줄 알았다.
흑태자를 믿은 내가 등신이지.
속으로 한숨을 쉬던 그때.
“자! 조 확인 끝났으면 다들 자리에 앉아요!”
탁탁.
마유즈미 선생이 출석부를 교탁에 치면서 말한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앉는다.
“그럼 선생님이 수학여행 일정을 설명할게요! 우선 목적지는 벳푸예요!”
수학여행 목적지는 원작과 달라지지 않았다.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 지방 도시 벳푸.
일본 라노벨, 아니 서브컬쳐 하면 빠질 수 없는 온천신을 찍기 위한 장소 선정이었다.
[크으. 온천. 온천이라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기대된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일본 온천이라.
원래 온천으로 유명한 나라이니만큼, 기대가 안 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일정은 4박 5일! 첫날은 조별로 자유여행이고 숙소는······.”
마유즈미 선생의 말이 귓가에 계속해서 들어온다.
이 역시 원작과 별 다를 바 없는 일정.
문제라면 원작과 100% 달라질 게 분명한 메인 빌런인데.
대체 누가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이사장으로부터 긴급 상황에서는 협회장이나 부협회장이 지원 오는 방안을 확인받았고.
이 정도라면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목숨은 건지겠지.
그렇게 조 편성 이후 일주일이 지나고.
마침내 수학여행 당일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