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69)
아닌데
“하와와와와······. 세상에, 소녀도 깜짝 놀란 것이와요!”
린의 말에 뒤이어 반응을 보인 건 에반젤린.
그녀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친다.
라노벨 세상에서 살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오버액션과 제스처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진 나였지만, 에반젤린의 오버액션은 라노벨 세상 평균보다 더 심해서 아직 익숙하지 않다.
“여의 홍련의 마안으로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은신이라니······. 크윽······. 인간 주제에 제법이로군.”
에반젤린 옆에 서 있던 베아트리체가 입술을 깨문다.
저 중2병 말투는 대체 언제 고치는 거지?
놀란 건 저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에리링, 완벽한 미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님한테 들키고 말았어!”
에리가 붉어진 양쪽 뺨에 손을 대면서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어딜 봐서 완벽한 미행이야.
못 알아채는 쪽이 더 이상한 수준이던데.
“이렇게 완벽한 은신을 눈치채다니 역시 주군······!”
착.
에리 옆에서는 마코토가 합장 포즈를 취하면서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코토의 말을 들은 에리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그녀가 개목걸이를 만지면서 말한다.
“마코삐 말이 맞아. 다른 사람이 아닌 주인님이라서 가능했던 일일지도 몰라! 아니 주인님이 분명 에리링이랑 연결된 인연을 느껴서 에리링을 찾아준 거야. 역시 에리링과 주인님의 인연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에리의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연결된 인연을 느끼다니.
대체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다.
“흐, 흥. 미리 마, 말해두지만 따, 딱히 당신을 감시할 의도 같은 건 없었으니까요! 이 바보들이 저를 보채서 어쩔 수 없이 전속 시녀로서! 당신과 이 바보들의 감시를 위해 따라왔을 뿐이라고요!”
올리비아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흘깃흘깃 바라보면서 말한다.
뭐 올리비아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저번 벚꽃축제에서도 그렇듯, 미행은 에리가 더 잘하니까.
“그러니까 언니들, 그런 허술한 위장으로는 오빠 눈을 속일 수 없다고. 니시시시.”
옆에서 하루가 입에 손을 대면서 웃는다.
여기서 유일한 상식인이 저런 어질어질한 말투를 가진 하루라니.
세상이 망할 징조가 분명하다.
“쿠로사와! 어설픈 위장이라니! 완벽한 위장이었어! 벚꽃축제 때도 주인님 빼면 아무한테도 안 들킨 위장이라고!”
하루의 말에 볼을 부풀리는 에리.
그 모습을 본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에리링 언니! 어쩔티비~ 저쩔냉장고~ 안물안궁~ 우짤래미~ 저짤래미~ 킹받죠?”
“이이이이이이익!”
하루의 말에 에리가 폭발한 그때.
“시끄러워요!! 전부 조용히 해요!”
올리비아가 소리를 지른다.
그녀의 말에 하루도 에리도 입을 다문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
“아, 아무튼. 대체 왜 부른 거죠?!”
올리비아가 화제를 돌린다.
그녀의 빨개진 얼굴이 보인다.
올리비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부른 이유라.
못 말해줄 건 없다.
“그냥 기념사진 같이 찍자고. 뒤에서 자꾸 따라다니지 말고.”
“기, 기념사진······. 이라고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올리비아.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붉게 물든다.
“주인님! 역시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이랑 같이 기념사진 찍고 싶었구나! 히히. 에리링, 원래 아무나하고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주인님이라면 얼마든지 찍어줄 수 있어!”
옆에서 에리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말한다.
“나도! 나도 주군이랑 사진 찍을래!”
에리 옆에 있던 마코토가 같이 손을 들면서 말한다.
“니시시. 언니들. 김칫국 마시기는. 덕성 오빠. 역시 최애 히로인인 초☆카와이 갸루★여동생 하루랑 사진 찍고 싶었구나! 하루는 언제나 환영이야!”
불쑥.
하루가 옆에서 튀어나온다.
짤랑짤랑.
하루의 손목에 걸쳐진 팔찌가 흔들린다.
“흥. 딱히 당신 같은 바보랑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지만! 원한다면 함께 찍어드리도록 하죠.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함께 찍는 사진이라고요! 감사한 줄 아세요! 아시겠나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소리친다.
저쪽 네 사람 모두 사진 촬영에 동의한 모양.
이번에는 린, 베아트리체, 에반젤린이 있는 옆쪽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너희들은 불만 없지? 같이 찍어도.”
“다른 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니······. 소녀는 완전 찬성인 것이와요!”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에반젤린.
긍정과 오버액션의 화신인 그녀답게 특유의 기도하는 듯한 합장 포즈로 눈을 반짝이며 내 말에 동의한다.
“흥. 인간들의 사진 따위. 누구와 찍던 여는 큰 흥미가 없음이라.”
옆에서는 베아트리체가 안대를 만지작대며 말한다.
중2병 언어를 해석한다면 대충 ‘같이 찍고 싶다.’라는 의미일 터.
두 사람의 대답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린에게 향한다.
“큿······.”
내 시선을 받은 린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 나는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덕성.”
린이 손사래를 친다.
스윽.
그녀가 내게 다가와 다른 사람은 안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아까 너와 단둘이 사진을 찍기도 했고······.”
후욱.
린의 몸에서 풍기는 기분 좋은 향기가 코 끝을 스친다.
린이 내 귓가에서 떨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아까와는 달리 말을 더듬지 않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는 린.
그 모습을 본 에리가 눈을 가늘게 뜬다.
탁탁.
그녀가 순식간에 린에게 다가온 뒤,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고는 양팔을 주먹 쥔 채로 허리 아래로 내리면서 말한다.
“뭐야. 젖소. 주인님이랑 방금 무슨 밀담을 주고받은 거야? 수상해. 설마 개목걸이를 달라고 이야기한 건 아니겠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니 안심하도록, 빨래판. 훗.”
에리의 지적에 웃는 린.
그 모습을 본 에리가 린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면서 말한다.
“그 대답이랑 웃음 보니까 더 수상해. 쳇. 주인님. 개목걸이는 에리링 전용인 거지? 젖소한테는 안 주는 거지?”
뭘 누구에게 줘?
왜 아직도 개목걸이 가지고 뇌절이냐고.
“역시 매일 밤마다 하렘 멤버들한테 개목걸이를 채우고 공원 산책을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꺄아아아악!”
“검은 귀축! 무서워!”
귓가에 엑스트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그 빌어먹을 공원 산책은 한 적도 없는데 왜 자꾸 소문이 도는 건지 모르겠다.
한숨을 쉬면서 개목걸이를 만지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리를 향해 말한다.
“너 말고는 안 줄 테니까 좀 입 다물고 사진 찍게 얌전히 있어.”
개목걸이를 대체 누굴 더 준다고.
생각 같아서는 지금 에리가 착용 중인 개목걸이까지 벗겨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저 개목걸이 때문에 받은 오해를 생각하면······. 역시 그때 그냥 도게자만 시켰어야 했다.
이래서 무지성 사이다가 안 되는 거다.
“사진 찍게 빨리 좀 모여.”
“알았어! 덕성 오빠! 하루는 오빠한테는 초 착하고 완전 완벽한 여동생이니까! 덕성 오빠 말 들을래! 언니들이랑 다르다구. 니시시시.”
내 말에 이미 와 있는 에리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다가온 건 하루.
“주군! 나도!”
“흥······.”
뒤이어 마코토와 올리비아가 옆으로 다가온다.
에리, 린, 마코토, 올리비아, 하루, 에반젤린, 베아트리체.
나까지.
총합 8명.
모두 모이니 많긴 하네.
이러면 누구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맡겨야 하지?
역시 행인에게 부탁해야 하나.
내가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순간.
번쩍.
눈앞에서 회색 섬광이 걷히며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회색 단발, 잿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정장 미녀.
한서진이었다.
“기념사진 촬영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삼각대를 세우고 DSLR을 꺼내든다.
잠깐,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는데 한서진이 왜 여기 있어.
“넌 왜 여기 있냐?”
“언제 어디서나 김덕성님을 보좌하는 것이 저의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한서진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무 당당하니까 내가 다 뻘쭘하다.
하긴,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모습이 제일 한서진답기도 하다.
“아, 그래······.”
고개를 무심코 끄덕이다가 문득 그녀가 기념사진을 찍어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렇게 한서진이 사진을 찍어줬었는데, 정작 그녀와 같이 찍은 사진은 없다.
괜히 마음이 좀 찝찝하다.
한서진과 찍은 기념사진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번에는 너도 같이 찍자. 한서진.”
내 말에 한서진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그녀가 말한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어. 괜찮으니까 타이머 눌러놓고 이리로 와.”
내 말에 한서진이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김덕성님. 그럼 타이머를 조작하겠습니다.”
한서진이 삼각대 위에 설치된 DSLR의 타이머를 조작한 뒤에 이쪽으로 합류한다.
찰칵, 찰칵.
곧이어 카메라 셔터음과 함께 사진이 자동으로 촬영된다.
그렇게 기념 촬영과 함께 그날의 주간 관광이 끝났다.
*
조별 관광이 끝난 뒤.
저녁 시간.
슈오우 학원의 모든 생도가 지정된 숙소인 료칸에 집합했다.
벳푸가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인만큼, 슈오우 영웅 학원에서 통째로 전세 낸 료칸 역시 커다란 노천 온천이 딸려있는 일본 전통식 고급 여관이었다.
당연하게도 온천은 라노벨의 법칙에 따라 남탕 여탕 구분 없이 커다란 노천 온천에 사용 시간만 남녀 따로 구분되어있는 형식.
료칸에 도착한 생도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에리와 마코토 역시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 입구.
사용 시간이 적힌 팻말이 있었다.
남자 입욕 시간과 여자 입욕 시간이 분명히 구분되어있는 팻말을 본 에리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마코삐.”
“으, 응?”
유카타를 입은 에리가 웃는다.
“주인님이랑 혼욕하고 싶지 않아?”
혼욕.
그 말을 들은 마코토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호, 혼욕이라니······. 그, 그건······.”
마코토가 말을 더듬는다.
그녀의 머릿속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김덕성과 함께 목욕하는 자신의 모습도.
게다가 마코토에게 있어 혼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남장하고 슈오우 학원에 전학왔을 때, 대욕탕에서 같이 혼욕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마코토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김덕성의 근육이 탄탄한 몸이 마코토의 머리에 떠오른다.
“솔직히 말해. 마코삐. 에리링한테까지 숨길 거야?”
쿡.
마코토의 허리를 에리가 찌른다.
“히익! 에리쨩······.”
마코토가 화들짝 놀라면서 입술을 우물거린다.
에리의 말이 맞다.
그녀와 자신은 친구.
이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다.
“하, 하고 싶어······.”
혼욕을 하고 싶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말한 마코토가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습을 본 에리가 웃는다.
“좋아. 마코삐도 동의했으니까, 이제······.”
휙.
에리가 주변을 살핀다.
욕탕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녀가 팻말에 손을 댄다.
“입욕 시간을 바꿔놓으면······.”
에리가 그렇게 말하려던 그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마코토와 에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마코토와 에리가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카미야 씨. 니시자와 씨.”
유카타를 입은 무표정한 회색 단발 미녀.
한서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