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77)
에반젤린과 김덕성의 혼욕!
한서진이 말한 소식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숙소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한서진의 정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욕······. 그렇군요······.”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올리비아.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에반젤린 스튜어트.
그녀는 프랑스의 라이벌인 영국 왕실의 공주.
심지어 다른 히로인들과는 다르게 에반젤린은 혈통과 신분에서도 올리비아와 밀리지 않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올리비아 역시 은연중에 그녀를 신경 쓰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에반젤린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인 적이 없기에 어디까지나 잠재적 위협에 그쳤지만.
에반젤린이 실제로 행동에 들어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 용납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하필 섬나라 공주와 혼욕이라니! 프랑스의 고귀한 황녀인 저를 놔두고 어떻게!!”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스튜어트 양······. 그동안 얌전히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에리링의 패착이야.”
올리비아 옆에 있던 에리가 볼을 부풀린다.
“에리링도 아직 주인님이랑 혼욕해본 적 없는데! 주인님한테 거품 봉사 해주고 싶었는데!”
에리가 개목걸이를 만지면서 소리친다.
그 모습을 본 마코토가 입술을 우물댄다.
“으으으······.”
마코토는 이미 남장여자 전학생 시절 김덕성과 혼욕한 경험이 있는 혼욕 유경험자.
지금 상황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괜히 말을 꺼냈다가 혼욕 유경험자라는 사실이 들키는 날에는······.
거기까지 생각한 마코토의 얼굴이 빨개진다.
김덕성과 함께 혼욕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맞아. 덕성 오빠랑 같이 씻을 수 있는 사람은 무해하고 초 귀여운 갸루 여동생인 하루밖에 없어. 영국 공주님, 생각보다 초 영악해.”
옆에서 하루가 입술을 삐죽인다.
원래 혼욕을 계획했던 건 하루 본인이었다.
그런데
“혼욕이라······.”
하루 옆에 있던 린이 말끝을 흐린다.
에반젤린을 위로하고 히로인 레이스 참가를 권유한 건 린 본인이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이 이런 식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올 줄은 린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스튜어트 양······.’
린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안 되겠어요! 지금 당장 대욕탕으로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섬나라 촌구석 공주 따위한테 그 바보를 허락할 수 없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올리비아가 빨개진 얼굴로 채비를 시작한다.
이건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자존심 문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영국 공주가 그를 가져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나도! 나도 황녀님 따라갈 거야! 주인님한테 봉사할 거야!”
옆에서 에리가 올리비아 옆에 붙는다.
그 모습을 한서진이 보고 있을 그때.
“한서진 씨.”
에리가 한서진에게 말을 건다.
“예, 니시자와 양.”
“한서진 씨도 같이 가자.”
덥석.
에리가 한서진의 팔을 붙잡는다.
같이 가자니?
순간 한서진의 머리가 마비된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그 말은······.”
히로인들 앞에서 한서진이 처음으로 말끝을 흐린다.
그 모습을 본 에리가 웃는다.
“한서진 씨도 같이 하자. 주인님이랑 혼.욕.”
에리가 혼욕이라는 단어를 스타카토 찍듯 강조하며 윙크를 찡긋한다.
혼욕.
그 단어를 들은 한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한서진.
그녀가 이 자리에 온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하렘 계획 때문.
그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울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한서진 본인은 혼욕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에리가 뜬금없이 그녀에게 제안해온 것이다.
‘김덕성님과 내가······?’
그분과의 혼욕.
감히 상상해본 적도, 참가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던 풍경이 에리의 제안으로 인해 그녀의 머릿속에 펼쳐진다.
김이 자욱한 온천탕.
단둘이 몸을 담그고 있는 그분과 자신의 모습이.
화악.
한서진의 뺨이 붉어진다.
‘역시 유세라 씨의 말이 맞았어.’
그 모습을 본 에리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의 머릿속에 문화제가 끝난 이후 유세라와 단둘이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김덕성을 제외하고 심사위원 중에서 유일하게 에리에게 10점을 줬던 유세라.
‘한서진 씨도 사실 주인님을 좋아하고 있다고 그랬었지?’
그녀는 자신이 한서진의 소꿉친구였음을 밝히면서 한서진이 주인님을 사실 좋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나서지 못한다고.
자신은 학원에 있을 수 없으니, 대신 에리라도 한서진 씨를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유세라는 그렇게 말했다.
‘유세라 씨가 준 10점의 은혜를 갚아야 해.’
들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었다.
한서진.
그녀는 원체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반응으로 확신했다.
한서진 역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에리가 주먹을 불끈 쥔다.
‘유세라 씨 걱정마세요!’
그녀가 마음속으로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유세라를 부르며 각오를 다진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서진이라면 에리도 용납해줄 수 있었다.
음지에서 모든 걸 김덕성을 위해 바치면서 묵묵히 일하는, 더불어 그녀들에게도 도움을 줬던 유능한 커리어 우먼인 그녀의 헌신은 반드시 보답받아야 한다.
에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띈 목소리로 말했다.
“가는 거지? 응?”
에리의 재촉에 한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감히 자신이 혼욕에 참가할 자격이 되는 것인가.
영웅도 아닌, 아이도 가지지 못하는 몸인 자신이.
그럴 자격은 없다.
그녀의 냉철한 이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서진의 마음 깊은 곳에 갇혀 있는 욕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분의 곁에 서고 싶다.
나도 혼욕하고 싶다.
나도 그분의 품에 안기고 싶다.
그런 검은 욕망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는 한서진의 모습.
에리가 그 모습을 보면서 몸을 배배 꼬면서 말한다.
“에리링, 한서진 씨랑도 같이 혼욕하고 싶은걸.”
지속적인 에리의 요청에 한서진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의 머릿속에 악마의 목소리가 울린다.
‘하렘 계획 멤버 관리 때문이라면 다같이 혼욕하는 것도 문제가 없잖아?’
그럴싸한 명분을 갖춘 머릿속 악마의 속삭임에 한서진이 입술을 깨문다.
떨쳐낼 수 없다.
그녀가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잡으면서 말한다.
“그, 그럼······. 니시자와 씨 말고 다른 분들도 동의하면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한서진의 말에 에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체크 메이트였다.
그녀가 손을 번쩍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다들 한서진 씨도 같이 혼욕해도 상관없지?”
에리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흐른다.
에리를 제외한 다른 히로인들 역시, 언제나 냉철한 한서진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기 때문이었다.
‘하, 한서진 씨도 그 바보를?!’
‘한서진 씨······. 그랬었구나.’
‘큿······. 한서진 씨······.’
‘하루, 라이벌이 또 늘어난 거야?’
올리비아, 마코토, 린, 하루의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은 눈동자가 한서진을 향한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크고 작게 한서진에게 빚을 진 사람들.
올리비아는 한서진의 도움으로 강제 약혼에서 벗어났고, 린과 마코토 역시 한서진의 도움으로 하렘 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하루는 한서진의 도움으로 무라마사의 지배에서 구원받은 뒤에 국정원의 적극적인 변호로 빌런의 오명을 벗고 ‘쿠로사와 하루’라는 원래 신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들이 한서진의 혼욕 참가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좋아요······. 한서진 씨라면······.”
“어쩔 수 없지.”
“나도 괜찮아.”
“분하지만······. 언니들이 찬성하니까 어쩔 수 없네. 나도 찬성이야.”
올리비아, 마코토, 린, 하루의 허락이 떨어진다.
“그렇다는데? 한서진 씨. 에리링이랑 같이 가는 거지? 응.”
덥석.
에리가 한서진과 팔짱을 낀다.
모두의 동의에 한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심호흡한다.
“어쩔 수 없죠.”
한서진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녀가 말한다.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한다면······. 저도 참가하도록 하겠니다.”
한서진.
혼욕 참전 결정.
그녀의 말에 모두의 낯빛이 변하던 순간.
“잠깐, 여는······. 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지금까지 존재감 없이 구석에 있던 베아트리체가 용기 내서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린이 말한다.
“음? 트릭시. 그대는 혼자 기다리는 게 어떻나?”
“그건······.”
베아트리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혼자 남는 건 싫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건 더더욱 싫다.
“싫다면 이대로 혼욕에 참가해도 상관없다.”
린의 말에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붉어진다.
김덕성.
그와의 혼욕이라니.
베아트리체의 머릿속에 수영장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인공호흡으로 입을 맞췄던 기억, 그때 봤던 군살 없는 탄탄한 근육의 알몸 상반신도.
화악.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혼자 있는 건 싫다.
베아트리체가 고민에 빠진 그때.
“남던지, 따라오던지 네 마음에 따라 선택하도록.”
준비를 마친 린이 포니테일을 휘날리면서 방을 떠난다.
그 모습을 본 베아트리체가 발을 디딘다.
“잠깐! 홍련의 성녀인 여를 홀로 내버려두지 말거라! 하등한 인간들이여!”
그렇게 혼욕에 전원 참전하는 순간이었다.
*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난감하다.
이제 슬슬 배도 고프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다 보니 노곤해져서 나가서 저녁 먹기 전에 쉬고 싶은데.
이렇게 붙잡으니까 당황스럽다.
“김덕성님······.”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에반젤린이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부드러운 감촉이 등 뒤에서 느껴진다.
이거 설마 맨살끼리?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이제 나가야 한다.
“됐어. 이제 나갈 거야.”
허리를 끌어안은 그녀의 양 팔을 풀고 노천탕 밖으로 나온다.
따뜻한 온천 안에 있던 달궈진 몸이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맞으며 빠르게 식는다.
발갛게 달아오른 몸에서 김이 풀풀 솟아오른다.
시원하구만.
내가 잠시 멈춰 서서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던 그때.
“김덕성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옆에서 에반젤린이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내게 달려든다.
이제는 완전히 의미 없어진, 젖은 수건 사이사이로 비치는 하얀 살결이 보인다.
아니.
이거 왠지 불길한데.
대욕탕, 히로인, 그리고 물이 축축한 바닥.
삼박자가 모두 갖춰졌을 때 라노벨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여름학교 샤워장에서도 일어났던 그것.
럭키 스케베다.
“오지······.”
말라고까지 말하기 직전.
달려온 에반젤린과 내 몸이 부딪힌다.
미끄덩.
휘청.
젖은 바닥 때문에 에반젤린과 내 몸이 서로 뒤엉켜 넘어지기 시작한다.
“하와와와와와와······!!”
에반젤린의 붉어진 얼굴과 눈앞에 바로 보인다.
털썩.
뒤로 넘어지면서 내 입술이 에반젤린의 입술을 덮는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느껴진다.
에반젤린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여름 학교 이후 두 번째로 한 넘어지면서 키스.
아리스 때와의 차이점이라면 그녀가 아래 내가 위라는 점이다.
수건이 벗겨진 모양인지, 그녀의 맨살이 내 맨살과 서로 맞닿는다.
놀라울 정도로 자극적인 촉감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전신의 피가 들끓는다.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같으니.
다행히 그때와는 다르게 내가 위라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재빨리 일어나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덜커덕.
노천탕 문이 열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귓가에 뾰족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올리비아의 목소리였다.
아니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미치겠네.